이 때
최 현 선
할 말이 많아서
너는
하얀색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구나
궁금한 게 많아서
나는
네 모자에 빨대를 꽂고
테두리를 따라 휘휘 젖는다
우리는 늘 이런 식이지
예를 들면
너는 목까지 이불을 덮어야 잠이 오고
나는 이불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아야 잠을 자고
휘젓던 빨대를 들어 올리면
멈칫멈칫 딸려오는 네 입술
카푸치노라면
예쁜 그림이 있어야지
네 모자에 우유를 붓고
하얗게 내 입술을 그린다
내 입술이 더 예쁘니까
입이 무거운 너는
다시 모자 속으로 가라앉는다
성질이 급한 내가
굵은 빨대를 꽂고 모자를 마셔버린다
그러고 나면
결과는 늘 이런 식
벗겨진 모자의 안쪽은
언제나 어둡고, 쓴맛이고
네가 하려던 말이
내 입술에 하얀 털실 뭉치로 묻어서
손으로 실의 끝을 잡아당겨 풀어준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발표
최현선 시인
2019년 《발견》을 통해 등단. 시집 『펼칠까, 잠의 엄브렐러』(상상인, 2023) 출간. 현재 인천시인협회 회원, 해시문학회 동인, 선경문학상 운영위원
[출처] 이 때 - 최현선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신작시ㅡ통호 제169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