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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무지개빛이 아닌, 악마의 허연 이빨과도 같은 새하얀 광채가 천홍검의 검극(劍極)을 통해 발출되었다.
그 백색의 검광은 마치 빨랫줄처럼 뻗어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마 도소미의 유혹을 이겨냈을 때부터이리라.
당문우의 뇌리 속에는 세 가지의 검초(劍招)들이 환상처럼 맴돌고 있었다.
악령겁화(惡靈劫火)……
악령현신(惡靈現身)……
악령천하(惡靈天下)……
그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악령성자가 당문우의 뇌리에 심어준 검공(劍功)이었다.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그것이 도소미로 인하여 의식 밖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음에도 당문우는 악령삼검(惡靈三劍)의 그 진정한 오의(奧義)와 진수(眞髓)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문우가 의식적으로 악령삼검의 검초들을 익히기 거부했던 탓이었다.
그 검초를 익히게 되면 자신이 악령성자와 같은 악마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이하자 당문우는 불가항력으로 그 검초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위력은 가히 파천(破天)의 그것이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세상에 나타나본 적이 없었던 것이기에……
챙……!
요란한 쇳소리가 터졌다.
순간, 당문우는 엄청난 힘이 자신의 가슴을 파고든다고 느꼈다. 그와 더불어 천홍검이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으아아악-!"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처절한 비명,
푸아앗……!
입에선 뜨거운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지고, 그의 몸은 가랑잎처럼 날았다.
순간이었다.
"크흐흐……!"
천랑신마가 처절한 괴성을 터뜨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가슴이 깊게 베어진 채 핏물과 함께 오장육부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의 열 개 손가락은 싹둑 잘려져 있었다.
그때였다.
쿵……
당문우가 힘없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잘 묶어 놓았던 짚단을 풀어 헤쳐놓은 것처럼 그의 가슴이 끔찍스럽게 짓이겨져 있었다.
하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피부와 살점들이 짓이겨진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핏물이 흘러나왔다.
"……."
땅에 떨어진 당문우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정도의 충격과 상처 속에서도 정신을 지니고 있다면 오히려 비정상이리라.
"흐흐흐……"
천랑신마가 혼절해 있는 당문우를 노려보며 잔혹한 괴소를 흘렸다.
"네놈이…… 우욱! 네놈을…… 찢어…… 죽이리라……!"
그는 안간힘을 다해 기묘한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잇……
그러자 혈랑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더니 일제히 당문우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천랑신마가 징그럽게 웃었다.
"흐흐흐…… 결코…… 혼자 죽을 수는 없지……"
그렇다. 그도 당문우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모면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다.
"흐흐흐……"
그의 눈에 광기가 떠올랐다.
그는 혈랑들을 향해 힘겹게 소리쳤다.
"죽…… 여…… 라……"
캬우우욱!
"물어…… 뜯어…… 뼈다귀 하나…… 남기지 마라…… 흐흐흐……"
크어엉……
카르르르릉……
혈랑들은 이미 당문우를 덮치고 있었다.
천랑신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흐흐…… 오냐…… 잘한다…… 놈을…… 씹어…… 먹어라……"
그의 눈빛이 급격하게 풀려지기 시작했다.
죽음의 신(死神)이 그를 덮치고 있는 것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캥! 캐캥!
크아아아아-!
혈랑들의 처절한 비명이 잇달아 터져나왔다.
"……?"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당문우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천랑신마의 눈에 극도의 경악이 떠올랐다.
"저…… 저것은?"
언제 나타난 것일까?
황량하고 사막을 연상시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나타나 당문우를 덮치고 있는 혈랑떼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펼치는 무예는 인간의 무예가 아니었다.
그저 가볍게 손을 휘젓는다 싶었을 뿐인데, 그때마다 혈랑떼들이 폭죽처럼 터지면서 핏물을 난비하며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대…… 대체 저놈은……?"
천랑신마가 눈을 부릅떴다.
그때였다. 천랑신마의 등뒤에서 물처럼 고요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으냐?"
"……."
"생사판관(生死判官) 장유금…… 신선팔숙(神仙八宿) 중의 하나이지."
"신선팔숙?"
천랑신마의 뇌리에 언뜻 하나의 전설이 떠올랐다.
"그…… 그렇다면…… 신선도?"
등 뒤에서 담담한 웃음이 들려왔다.
"후후…… 그렇다. 그는 신선도에서 파견된 사람이다."
"……."
천랑신마는 뭔가를 더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그런 그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서히 꺼져들고 있었다.
'아…… 안돼! 지금…… 죽어서는……'
힘겹게, 아주 힘겹게 그는 안간힘을 다해 다시 물었다.
"신선도 사람들은……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중원에 나타났느냐는 것인가?"
"그…… 그렇…… 다……"
"그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이다."
"……."
"첫 번째는…… 본 도의 반도(叛徒)인 숭보잠위(崇甫潛衛)를 찾아 목을 베어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숭보잠위가 훔쳐간 악마의 술법서(術法書)인 천단금서(天丹禁書)를 회수하기 위함이지."
"……."
"천금단서에는 세 가지 가공할 무공이 실려 있는데, 그 세 가지 무공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 소수마인(素手魔印)이라는 것인데……"
"……."
"지금까지 우리가 조사한 결과…… 마전의 누군가가 천단금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
"묻겠다!"
"……."
"마전의 전주인 십절마제 후금량의 미간에 붉은 점 하나가 있지 않느냐?"
'붉은 점?'
천랑신마는 고개를 저었다.
"어…… 없다……"
"없다고?"
"그, 그렇다……"
그러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천랑신마는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 간다고 느꼈다.
그렇게 느끼면서 그는 보았다.
자신의 곁을 스치듯 지나 당문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한 궁장(宮裝)의 여인(女人)을……
화려한 금의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수발(鬚髮)을 풀어 헤치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왜소한 체구의 어린아이가 목마를 타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는 여섯이나 일곱 살 가량의 사내아이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아이의 머리는 백발(白髮)이었고, 그 길이는 무려 여섯 자(六尺)에 가까웠다.
여인의 어깨에 목마를 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백발은 땅바닥까지 치렁치렁 흘러내리고 있었다.
"……?"
천랑신마는 의혹을 느꼈다.
'대체 저들은 누굴까…… 저들도 신선도에서 나온 신선팔숙들이란 말인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천랑신마는 자신의 영혼이 서서히 자신의 육체를 떠나가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더욱 궁금했다.
흑발의 여인과 그녀의 어깨 위에 목마를 타고 있는 백발의 어린아이 같은 괴인의 정체가……
"헉!"
가물거리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천랑신마가 돌연 눈을 부릅떴다.
흑발여인과 백발괴인이 혈랑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찌된 영문인지 혈랑들이 돌연 공포의 눈빛을 띄우더니 슬금슬금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왜……?'
의혹의 눈으로 혈랑들을 바라보던 천랑신마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제보니 여인의 어깨에 목마를 타고 있는 백발소동(白髮小童)의 소맷자락 속에서 희미한 은빛의 광채가 쉴새없이 폭사되고 있었는데, 그 은빛의 광채가 폭사될 때마다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혈랑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혈랑들은 쓰러지기가 무섭게 형체도 없이 얼음처럼 녹아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 저것이 뭐기에……?'
하지만 천랑신마는 더 이상 의혹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죽은 것이다.
* * *
"……."
당문우는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종유석(鐘乳石)이 주렁주렁 매달린 동굴의 천장과 눈에 매우 익은 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그는 생사판관 장유금이었다.
장유금은 지금 추궁과혈의 수법으로 당문우의 전신을 부드럽게 안마를 해주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 위에는 뿌연 기류가 다섯 개의 고리(五環)로 뭉쳐져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무림인들이 꿈속에서조차 이르기를 갈망하는, 무림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삼화취정의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이때, 당문우가 눈을 뜨자 장유금의 손놀림도 멈춰졌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 떠있던 다섯 개의 환이 그의 콧속으로 빨리듯 사라졌다.
장유금이 조용히 말했다.
"운기(運氣)를 해봐라."
옛날과 조금도 변함이 없는 황량하고 삭막한 음성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당문우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답고 부드러운 소리보다 다정하고 다감하게 들렸다.
'……'
그는 재빨리 운기를 해보았다.
진기(眞氣)가 막힘이 없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상(內傷)이 완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재빨리 상체를 세웠다.
그의 눈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발가벗겨져 있었는다.
그런데 그토록 지독했던 상처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감쪽같이 치료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다 조그만 흉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형님께서 치료해 주셨습니까?"
"형님?"
뜬구름 없이 흘러나온 당문우의 호칭에 장유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었다.
"녀석…… 아마 네 조부라도 나에게는 형님 소리 보다는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 것이거늘……"
"예?"
당문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럼…… 형님의 나이가 이백이 넘었단 말입니까?"
"녀석……"
장유금이 다시 피식 웃었다.
"무산성모가 우리 신선팔숙의 막내라면 넌 믿을 수 있겠느냐?"
"무산성모님이 형님의 사매란 말입니까?"
"그렇다. 세상은 전혀 모르고 있지만…… 무산의 자미원은 우리 신선도에서 세운 것이다. 무산성모는 신선팔숙의 막내이고……"
"그럴 수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에 당문우는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사형, 그 아이에게 옷을 입혀 주세요.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요."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아름다운 여인의 음성과 함께 백색의 유생복 한 벌이 날아들었다.
당문우는 재빨리 옷을 입었다.
옷은 마치 맞춘 것처럼 몸에 딱 맞았다.
그가 옷을 다 입자 한 여인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면사(面紗)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금의(錦衣)의 궁장 여인이었다.
"……."
동굴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당문우의 눈이 충격으로 가득찼다.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투명한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여인의 얼굴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는데, 하늘에 맹세코 그 용모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등 뒤로 폭포수처럼 시원스럽게 흘러내린 검은 수발(鬚髮)이며, 이마 아래 햇살처럼 밝고 얼음처럼 투명한 맑은 옥부(玉膚)에 붉디 붉은 단순(丹脣)과 호치(晧齒)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섭게 잡아끌고 있었다.
거기에다 촛불이 일렁이는 듯한 한 쌍의 서늘한 눈망울과 마주치게 되면,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깨끗하게 정화(淨化)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리라.
용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늘씬한 팔등신(八等身)의 몸매에 깃들어 있는 기도(氣度)와 기품(奇品)은 우아하면서도 고고했으며, 고고하면서도 존귀하기 이를데 없었기에 당문우는 감히 눈길조차 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소림사에서 보았던 자비불향(慈悲佛香) 옥산랑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미색이다. 그런데, 방금 전에 저 소녀는 장유금을 보고 사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 그렇다면 저 소녀의 나이가 이백을 넘었섰단 말인가?'
당문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새삼스럽게 면사여인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주안술(朱顔術)이 제 아무리 뛰어났다 하더라도…… 이제 갓 이십 세 정도로 보인다는 것은……?'
그때였다.
면사 소녀가 당문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순간, 매우 달콤한 사향(麝香) 내음이 당문우의 코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면사소녀의 음성은 그 사향 내음보다 더욱 향기로웠다.
"당신의 이름이…… 당문우인가요?"
"그, 그렇소만……"
당문우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소녀는 살포시 웃으며 다시 말을 건넸다.
"소녀가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는데…… 괜찮겠어요?"
당문우는 가볍게 검미를 찌푸리며 대꾸했다.
"물어보는 것은 좋은데…… 그보다 먼저 낭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오?"
"푸훗…… 그리고 보니 소녀가 실례를 범했군요."
소녀가 화사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소녀는 신선도에서 살고 있는 옥미인(玉美人) 백은경(白銀暻)이예요."
"신선도?"
당문우가 놀란 표정을 짓자 장유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설명을 해줬다.
"우리 도주님의 장중주(掌中珠)이기도 하다."
장중주(掌中珠)란 하나 뿐인 고명딸이라는 뜻이다.
당문우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선도주의 딸이라면 매우 고귀한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여인이 직접 중원에 나왔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백은경의 달콤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우리 신선도는 중원이 현재 당면한 위기라던가 미구에 일어날 혈겁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든 가능하면 관여하지도 상관하지도 않을 방침이예요."
당문우는 내심 움찔했다.
'미구에 중원에서 혈겁이 벌어질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들은 현재 중원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음모나 혈겁 등에 관해 파악해놓고 있단 말인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든말든 백은경은 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소녀가 당 공자님을 구해드린 것은…… 중원의 입장이나 장차의 운명과도 전혀 관계가 없는…… 단지 우리 신선도에서 발생한 한 가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어요."
"……."
당문우의 표정이 가볍게 굳었다.
백은경의 말인 즉, 우리가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너를 구해준 것이지, 결코 너를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준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말에 당문우는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났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그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쨋거나 그들은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백은경이 계속해서 말문을 열었다.
"죄송하오나…… 소녀는 당 공자님께 몇 가지 자문(自問)을 구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만약 공자님께서 소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신다면…… 저희가 두 번에 걸쳐 공자님을 도와드린 것과 상쇄시키는 것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공자님은 소녀나 저희 신선도의 도움에 대해 조금도 부담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
"소녀가 당 공자님께 알고 싶은 것은…… 십절마제 후금량이란 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는가 하는 점이예요."
"모르오."
당문우는 즉시 고개를 흔들었다.
"소생은 후금량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소. 그 자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무림에서 종적을 감췄으니까……"
"부친께서 아무런 말씀도 해주시지 않던가요?"
"없소!"
"그래요?"
백은경의 눈 속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당문우는 재빨리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그 자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오?"
백은경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는 반도를 찾고 있어요. 그 자는 본래 신선팔숙 중의 하나였는데…… 사십 년 전에 본 도에서 천단금서(天丹禁書)라는 무공기서를 훔쳐서 달아났지요."
"……."
"우린 그 자가 후금량으로 변신(變身)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어요."
"……."
"본래 숭보잠위의 별호는 천면서생(千面書生)이었어요."
"……."
"별호가 말해주듯…… 변장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이지요.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신조차 감쪽같이 속여넘길 수가 있어요."
"……."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그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모두가 그의 신비무쌍한 변장술 때문이에요."
"……."
가만히 듣고만 있던 당문우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어떤 신체적인 특징 같은 것은 없소?"
"있어요."
"……?"
"그에게는 두 가지 신체적인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미간(眉間)에 콩알만한 붉은 점이 있다는 것이고……"
"……."
"두 번째는 좌수(左手)에 손가락 하나가 더 많은…… 육지(六指)라는 점이에요."
"……."
"그는 본도에서도 인정했던 불세출(不世出)의 기재(奇才)였어요. 그의 무공은 사십 년 전에도 본 도의 일류(一流)에 속했어요."
"……."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지만…… 공자님의 아버님을 세인들이 천하제일인이라 부르던데…… 사실 그 분의 실력으로도 본 도에서는 간신히 일류의 대열에 올라설 정도라고 생각하면 정확한 판단이 될거예요."
"……!"
당문우의 눈썹이 세차게 꿈틀거리며 용틀임을 일으켰다.
'아버님의 무위가 신선도에서는 간신히 일류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당연히 기분이 나빴다.
당사적이 어떤 인물이던가?
무림 역사상 최강의 고수로 손꼽히는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부친을 간신히 일류의 반열에 들어가는 실력이라고 말하니 어찌 기분이 나쁘지 않으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당문우를 힐끗 바라보며 백은경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사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만약 그가 천단금서를 익혔다는 가정을 한다면…… 그의 무예는 천하의 어느 누구라도 일초지적(一招之敵)이 되지 못할 정도로 가공스러워졌을 거예요."
"……."
"본시 천단금서는 악마(惡魔)의 술법서(術法書)라고도 부르는데…… 숭보잠위, 그 자의 자질이라면 이미 그 안에 수록되어 있는 역천(逆天)의 무학들을 모조리 연성했을 거예요."
"……."
"우리가 이렇듯 다급하게 천하를 뒤지고 다니는 것은…… 무서운 야망을 품고 있는 그에 의해 천하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가능한 빨리 방지하기 위함이에요."
"……."
거기까지 말한 뒤 백은경이 당문우에게 한 가지 물건을 불쑥 내밀었다.
"공자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그녀가 꺼낸 물건은 손바닥만한 삼각깃발이었다.
삼각기의 한 쪽에는 신선(神仙)들이 백학(白鶴)을 타고 구름 속을 노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반대편에는 선부(仙府)라는 글씨가 황금색 수실로 섬세하면서도 용사비등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것은 우리 신선도의 지존(至尊) 영기(靈旗)예요."
"……."
"혹시라도…… 차후에 공자께서 숭보잠위를 만나게 되면…… 이 삼각의 깃발을 사람이 많이 출입하는 곳을 찾아 문루나 지붕에 꽂아주세요. 객점이나 기방 같은 곳이 가장 적합할 거예요."
"……."
"공자께서 이 깃발을 꽂아 놓으면 반 각 이내에 저희나 저희 형제들이 공자님을 찾아갈 거예요."
"……."
"부탁드려요……"
"……."
당문우는 삼각 깃발을 받지 않고 잠시 삼각깃발과 백은경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불쑥 엉뚱한 말을 꺼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소."
"……."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고……"
"……."
"솔직히 말해서…… 소생이 낭자의 부탁을 들어드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오. 그러나…… 그냥 들어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 소생의 솔직한 심정이오."
"……."
장유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당문우를 바라보았다.
두 번씩이나 자신에게 구원을 받았으면서 자신들의 부탁에 조건을 붙이다니……
'괘씸한 놈!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
한데, 그가 막 발작하려는 순간 백은경이 당문우에게 배시시 웃어보이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뭘 원하시죠?"
순간, 당문우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꺼냈다.
"당신! 당신을 나의 두 번째 아내로 삼고 싶소!"
"……."
장유금과 백은경은 졸지에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럼에도 당문우는 태연하기만 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충격이었고, 그 충격이 워낙 컸던 탓일까?
그 침묵은 오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장유금의 입에서 폭갈이 터졌다.
"네 이놈!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네놈을 두 번씩이나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었거늘……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런데, 당문우는 오히려 유들유들 웃으면서 장유금에게 태연스럽게 말했다.
"형님은 이미 청춘이 흘러버려 까마득히 잊어버린 모양인데…… 나는 백 소저를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소이다. 그리고…… 형님께서는 은혜 운운 하셨는데…… 은혜와 사랑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뭐야?"
"생각해 보시오. 난 백 소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얻고 싶다는데…… 그것을 형님이 나를 구해준 것과 결부시킬 필요는 없지 않소?"
"……."
당문우는 당당하기만 했다. 또한 뻔뻔스럽고 능글맞기 이를 데 없었다.
장유금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다가 그는 백은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매, 이런 놈과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놈이 아니더라도 그런 부탁을 들어줄 놈은 이 세상에 부지기수이니……"
"아니에요."
백은경이 장유금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당 공자……"
그녀의 시선이 당문우의 얼굴에 정면으로 맞춰졌다.
웃는 얼굴로 그녀는 다시 말했다.
"정말로……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으세요?"
"물론이오."
당문우는 거침이 없었다.
백은경이 다시 물었다.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게 된 동기는 무엇이죠?"
당문우는 피식 웃었다.
"사랑에도 이유가 따라야 한단 말이오? 그런 사랑이라면 이 당문우는 아예 사랑의 사 자도 입에 담지 않았을 것이오."
"……."
그의 말에 백은경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더욱 짙어갔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한 가지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말해 보시오."
"방금 전…… 공자께서는 소녀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 하셨는데…… 그럼 이미 혼인을 하셨나요?"
"그게 무슨 말이오!"
당문우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단순히 상상이라도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시오. 누구 혼삿길 막을려고……"
"그렇다면…… 이미 첫 번째 아내로 결정해 놓은 아가씨가 있나 보군요?"
"없소!"
당문우의 말에 백은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어째서 제가 두 번째 부인이죠? 제가 첫 번째 부인으로 자격이 없다는 뜻인가요?"
"후후…… 괜히 지레짐작 하지 마시오."
당문우는 백은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생의 첫 번째 부인은 소생 어머님이 결정하는 여인을 말하는 것이오."
"……."
"그녀가 설사 추하고 우매한 여인이라 할지라도 어머님께서 결정하신 여인이라면…… 난 기꺼이 그녀를 첫 번째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오."
"……."
"생각해 보시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부모 없이 태어날 수 있었겠소?"
"……."
"부모님이란…… 하늘과도 같은 것이오."
"……."
"때문에 자식은 부모가 결정해주는 상대와 짝을 짓는 것이 도리인 것이고……"
"……."
그저 단순하기만 한, 별다른 묘사가 전혀 없는 표현이었지만 그 말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아름답게 꾸민 말보다 훨씬 진실되고 아름다웠다.
백은경의 눈 속에 문득 야릇한 기광이 떠올랐다.
"공자께서 소녀를 마음에 들어하신다면…… 그것은 소녀에게도 더할나위 없는 영광스런 일이지요."
"그럼……?"
"좋아요. 공자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소녀에게도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
"조건?"
"공자께서 정녕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어떻하든 숭보잠위를 찾아내세요. 만약 공자께서 숭보잠위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소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없어요."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그래요. 그를 찾아내면 나중의 문제는 저희들이 처리할 거예요."
"알았소. 그럼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이오?"
"그건……"
백은경의 아름답고 서늘한 눈 속에 다시 야릇한 광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나중에 소녀가 공자의 어머니를 뵈었을 때…… 어머님께서 소녀를 싫어하거나 멀리하지 않으신다면…… 소녀를 첫 번째 아내로 맞이하라는 거예요."
"하하하하…… 좋소!"
당문우는 호탕하게 웃었다.
"어머님이 낭자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까짓 일이 대수로울 수 있겠소."
"그럼 이 삼각기를 받아주세요."
"하하…… 그럽시다."
당문우는 백은경으로부터 삼각깃발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가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첫 번째 아내!
그 문제로 인해 먼 훗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여난(女難)에 빠지게 될 줄을……
* * *
우린 그 동안 마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아냈어요.
그 중에서 가장 큰 비밀은, 개천십마왕 중 막내인 광마천(狂魔天)에 관한 것이었어요.
-광마천(狂魔天)!
그는 비록 개천십마왕의 마지막 서열이지만, 사실 그의 무공은 다섯 번째라고 과언이 아닐 거예요. 앞의 네 사람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하다는 것이죠.
또한, 그는 지혜가 비범한 인물로 소문이 나있어요.
그래서 그는 마전의 전주인 후금량으로부터 특별명령을 받고 전혀 다른 신분으로 외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녹포마존(綠袍魔尊) 철무강(鐵武 )!
감숙무림을 지배하고 있는 녹포마존 철무강이 바로 광마천의 또 다른 신분이에요.
그는 앞의 아홉 마왕들과는 달리 십팔반(十八班) 병기 모두에 능통하다고 해요.
또한, 잔인하기로 말하자면 개천십마왕 중에서 으뜸으로 쳐주죠.
그런데 그는 유난히 여자를 밝혀요.
그 중에서도 처녀성(處女性)의 순결(純潔)을 간직하고 있는 어린 소녀만을 상대하며, 단 하루도 여자없이 지내는 법이 없다고 해요.
그리고 그에게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취미가 있어요.
첫 번째 취미는 살인(殺人)이에요.
이유란 없어요.
그저 무조건 죽여요.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죽이고……
나쁘면 나쁘다고 죽이고……
심심하면 심심하다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여버리는 악마같은 살인광이 바로 광마천이에요.
그리고, 일단 죽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설령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어도 상대를 기필코 죽여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위인이에요.
한마디로 인간의 모습이라곤 조금도 없는 살인마죠.
그의 두 번째 취미는 병기(兵器)를 수집(收集)하는 거예요.
십팔반 무예 모두를 달통한 때문인지 그는 어떠한 병기든 병적(病的)으로 수집해요.
중원은 물론이고 새외변방에서도 조금만 이름이 나있는 병기가 있으면 무조건 찾아가서 가져 오는데, 지금까지 그가 소장(所藏)한 병기의 숫자가 무려 수천에 달한다고 해요.
소녀가 어째서 그에 대해 이토록 상세히 설명해 드리는가 하면, 우린 그 자의 집에서 소수천마(素手天魔)가 출현하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공자께서 찾고 계시는 예옥상이란 소녀를 어쩌면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몰라서 말씀드리는 것이죠.
끝으로, 그는 단 하루도 여자 없이 밤을 보내는 적이 없었다는 것과, 언제나 숫처녀만 골라서 합방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어쩌면, 소수천마가 예옥상을 납치한 것도 철무강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백소저는 이제 어디로 가실 셈이오?"
"마전에 한 번 들어가볼 생각이에요."
"나도 같이 가면 안되겠소?"
"예옥상이란 소녀는 어떡하구요?"
"하긴……"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
"우리가 먼저 마전에 가 있을 테니……
공자께선 예옥상이란 소녀를 찾은 뒤 그곳으로 오세요.
우리가 흔적을 남겨 놓을 테니……
첫댓글 즐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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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요!!!!!!
늘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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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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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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