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재 너머로
시월 첫째 목요일이다. 어제 양산 원동을 찾아 시골 농가에서 할머니가 빚어 파는 도토리묵을 사 집으로 가져와 잘 먹는다. “풋중이 탁발 나서 빈 바랑 달랑 메고 / 깐촌을 지나다가 처녀에 마음 홀려 / 샛강에 돌다리 놓아 이긴 편에 맡겼다 / 아가씨 섬섬옥수 건장한 비구 앞서 / 승부에 밀린 스님 강물에 몸 던지자 / 처자도 뒤를 따라가 쌍다리만 남았다” ‘쌍다리 전설’ 전문이다.
앞 인용절은 아침에 일어나 지기들에게 보낸 시조로 어제 전설의 현장을 지나다 떠올린 시상이다. 삼랑진역으로 건너가 낙동강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원동으로 걸었다. 강가 작원관을 앞두고 4대강 사업 때 전설로 전해오던 돌다리 실체가 드러났던 현장은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적 있었다. 소설가 이병주의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아침 식후 산책 행선지를 진동 방면 산자락으로 정해 길을 나섰다.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에서 출발해 진전 둔덕으로 가는 76번 버스를 탔다. 환승 시간이 빠듯해 곧장 어시장으로 나가 진행 방향 길목을 지켜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댓거리에서 밤밭고개를 넘어가 진동 환승장에 잠시 들렀다가 진전면 소재지를 거쳐 일암과 대정을 지나 골옥방에 제법 머물다가 둔덕 종점에 닿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골짝 공기는 쾌적하였지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깊은 산골이라 도심보다 공기는 깨끗하였고 밤사이 대기 온도가 조금 내려간 듯했다. 인적 드문 산중을 즐겨 찾는 나는 낙남정맥의 한 고개를 넘으면서 정점으로 가는 가을에 핀 야생화를 감상할 생각이다. 진전 둔덕 종점으로는 연중 몇 차례 찾아 한 달 전 가을이 오던 길목도 미산령에 핀 꽃을 잘 완상했더랬다.
봄날에는 영아자나 참취를 비롯한 산나물을 뜯느라고 몇 차례 넘었던 미산령이다. 이후 여름과 가을에는 여항산 미산령 임도 길섶에 피는 야생화를 구경하러 일부러 발품을 팔아 찾아간다. 겨울에는 북풍이 차갑고 응달은 빙판이라 찾지 않는다. 아마 오늘 말고도 남은 가을에 한두 번 더 둔덕을 찾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는 미산령이 아닌 오곡재를 넘어 군북으로 나가볼 생각이다.
국도나 지방도가 아닌 격이 더 낮아져도 아스팔트로 시원스레 포장된 길을 따라 산기슭으로 올랐다. 봄날에 머위 순을 뜯었던 골짜기는 칡넝쿨이 덮쳐 무성해져 있었다. 미산령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군북으로 가는 오곡재로 향해 올랐더니 아스팔트 확장 포장이 중단된 산마루 고갯길이 나왔다. 광복 전 일제 강점기 금광인지 철광석인지 지하 광물을 채굴한 흔적의 동굴이 보였다.
좁아진 길섶에서부터 야생화를 본격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잎줄기가 배초향을 닮은 오리방풀은 보라색 꽃도 그와 비슷했다. 가을을 대표하는 야생 들국화인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무더기로 피어났다. 고갯마루에는 발산재와 오봉산으로 가는 이정표와 미산봉과 미산령으로 가는 이정표가 마주 서 있었다. 행정구역은 낙남정맥이 창원시와 함안군이 산등선을 맞대고 진주시와 이어졌다.
고개를 넘어간 건너편은 상데미봉에서 흘러내린 피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아리따운 처자가 신랑감을 고르다가 구렁이가 변신한 총각을 만나 격하게 싸워 흘린 핏자국이 비친 전설의 바위 더미다. 내리막길에서 분홍색으로 곱게 핀 송이풀꽃과 노란 이고들빼기꽃을 봤다. 먼발치 골짜기 바깥 오봉산과 백이산이 아스라했다. 기미년 만세 운동 때 순국한 애국지사 박상엽 묘를 지났다.
오곡마을이 가까워진 산기슭엔 야생 밤을 줍는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묵정밭 언덕엔 갈대가 이삭이 패어 눈부시었고 돼지감자가 피운 노란 꽃 덤불이 화사했다. 오곡마을 회관 앞에는 누렇게 익은 벼를 배경 삼은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려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일명당과 콩밭골을 지나 폐광산 얼음굴까지 걸어 나오니 읍내에서 군내버스가 들어와 가야로 나가 마산을 거쳐 왔다. 2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