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의 하룻밤
싱싱하게 자라던 나무는 오랜 세월 풍파를 겪고 고목(古木)이 되고, 싱싱한 윤기를 잃어 거친 모습으로 변해 버린다. 사람도 나이를 먹고 늙어갈수록 신체의 기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탄력 있던 피부에는 주름이 생기고 곱던 얼굴은 생기가 없어진다. 살아있는 존재란 모두가 세월이 지나면 향기를 잃고 흉한 모습으로 변하는 게 자연의 이치인가 보다. 가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벼운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얼굴에는 주름살, 검버섯, 얼룩 점 ... 몰골이 흉하고 보기가 싫다.
얼굴의 점 하나를 제거 하려고 가까운 피부과를 찾았다. 피부과 에서는 진찰을 해보고 종합병원으로 가 보라는 소견서를 주는 것이었다. 서대문 사거리에 있는 S종합병원으로 갔다. 피부과 담당 의사는 얼굴의 점 일부를 떼어 내서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병원을 찾는 환자의 입장이란 늘 의사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드나든다. 점 일부를 제거하고 조직 검사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조직 검사라는 게 심상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언제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조직검사 결과는 피부암 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암(Cancer)란 바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질환으로 생각해 온 게 사실이다. 기초 암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 이었다. 피부암은 거의 전이가 되지 않는다는 주치의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암으로 판정이 났으니 수술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10여일을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의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수술 날자가 되어 아침 일찍 가족들과 병원으로 가면서도 내심 긴장이 되었다. 가족이나 보호자들은 대기실로 안내하고 나 혼자만 수술실 입구로 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선다. 칸막이 사이로 보이는 수술 도구와 기계 장치 에서 번쩍이는 불빛, 음향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장면 이었다. 무더운 날씨인데도 실내는 냉기가 돌고 살벌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수술실은 사람의 몸에 칼을 대고 피를 흘려야 하는 장소라서 그런지 살기(殺氣)마저 느껴지는 분위기 이었다. 지정된 침대에 뉘이고 눈과 얼굴을 모두 가린다. 마취를 하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30여분 수술을 하는 동안 부분 마취를 했기 때문에, 집도 의와 팀원들 끼리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생생하게 귀에 들어왔다. 수술이 끝나고 침대에서 내려오니 약간 현기증이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몇 시간 안정을 취한 후 귀가 했다가 다음날 병원으로 오든지, 하루 정도 입원실에서 보내고 다음날 치료를 받고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가족들 권유로 지정된 입원실로 갔다. 병원 시설은 옛날에 비해 무척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깨끗한 환경과 현대식 첨단시설, 의사나 간호사들의 친절에 저절로 고마운 마음이 인다.
한 병실에 5-6 명 환자가 머무는 입원실에 자리를 잡았다. 보호자나 간병인 간호사 방문객 등 인적이 끊이지를 않으니 밤새도록 쉽게 잠이 오지를 않는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가지고 갔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인기 탤런트 김혜자 씨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 대리 대사를 맡아 봉사 활동을 하였다.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소말리아, 르완다, 방글라데시,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보스니아, 케냐, 우간다 ...전쟁과 가난 질병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돕는 데 앞장서 왔다.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난민들 참상을 쓴 책(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이었다. 필자는 매일 의료진을 비롯한 구호 요원들에게 힘든 결정을 알려야만 했다. 사경을 헤매는 수많은 환자를 모두 치료할 수 없어, 일부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여 죽음으로 방치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결정 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농촌에서 배가 아프다고 위 통증을 호소하다 사망하는 걸 자주 보았다. ‘속아리’ 병이라 했지만 그것은 현대 의학으로 보면 위암 같은 병 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흔히 앓는 감기를 ‘고뿔’이라고 하던 시대를 살아왔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고 질병 예방과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문명사회가 발달하고 선진화된 나라일수록 의료 시설이나 서비스는 우수하다. 우리도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살만 해지니 훌륭한 병원 시설과 선진화된 의술 혜택을 받고 산다는 자긍심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허전하고 씁쓸한 기분이 드는 밤 이었다.
지구상의 60억이 넘는 인구 중에서 12억 인구가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전쟁과 질병 빈곤의 희생자다. 1억 5천명 아이들이 거리에서 자고, 먹고, 일 하고, 뛰어 다니고 꿈을 꾼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야 하겠지만 불평등한 세상이 존재 한다는 건 “인류문명의 모순”을 의미 하는 것 같다. 허탈하고 씁쓸한 기분이 드는 입원실의 하룻밤이었다.
첫댓글 의학의 발달로 초기에 발견 되어 치료를 받으니 문명의 고마움을 느끼고 갑니다.^^
마음 고생하셨지만 치료가 잘 되신것 같아 기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