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로 나선 산책
강산(江山)은 강과 산이라는 뜻으로 자연의 경치를 이르는 말이다. 그제는 열차를 타고 낙동강 강가로 나가 가을빛이 내려앉는 운치를 느껴봤다. 삼랑진에서 원동까지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며 물억새와 갈대 이삭이 팬 풍경을 완상하고 시골 할머니가 도토리로 빚은 묵을 사 집으로 가져와 잘 먹고 있다. 벼랑의 작원 잔도를 보고 전설이 서린 처자교 현장을 지나기도 했다.
어제는 진전 둔덕 산골로 들어가 여항산의 우뚝한 산세를 바라보며 낙남정맥 오곡재를 넘었다. 깊은 산중 고갯마루를 넘는 길섶에 피어나는 가을 야생화들을 탐방했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물론 송이풀과 오리방풀이 피운 꽃도 봤다. 오곡재를 넘어가니 맞은편 상데미봉 능선에는 피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기미년 만세 운동 때 순국한 박상엽 애국지사 묘를 지나기도 했다.
구월 첫째 금요일 아침은 어제 다녀온 상데미봉 피바위에 서린 전설을 시조로 한 수 남겨 지기들에게 보냈다. 이후 어제 그제 산과 강에 이에 이어 바다가 드러난 곳을 찾아 나섰다. 내가 30년 가까이 사는 창원은 강과 산과 더불어 바닷가로 산책을 나서기도 한다. 강과 산은 물론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로도 쉽게 산책을 나설 수 있는 창원에 살고 있음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집 앞에서 마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당항포 근처로 가는 77번 버스로 갈아탔다. 어시장을 지나니 시장을 봐 가는 시골 할머니들이 다수 올라타 좌석은 만석이 되다시피 했다. 댓거리를 거쳐서 밤밤고개를 넘어간 버스가 동전터널을 지난 진동 환승장에 이르자 승객은 거의 내리고 진전면 사무소 오서와 탑동을 지나 창포를 거쳐 갔다.
당항포 입구 갯마을 소포를 앞둔 동진대교 앞에서 내가 마지막 승객이 되어 내렸다. 동진대교를 건너면 고성군 동해면이다. 그곳은 예전 한적한 갯가였으나 지금은 소규모 조선소를 비롯한 몇몇 공장이 들어선 산업 물동량의 이동으로 대형 차량이 많이 다녔다. 창포에서 동진대교 건너 동해 해안도로는 한때 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들었다.
당항포 입구는 운하를 방불하리만치 바닷물이 좁게 드나드는 물길이다. 거제섬으로 에워싼 호수 같은 바다는 윤슬로 반짝였다. 노변에 자연산 해산물을 파는 포장마차는 아직 문이 열지 않은 이른 때였다. 통신공사 인부들이 전주에 걸친 케이블을 손보는 공사로 오가는 차량을 통제하기도 했다. 모텔과 횟집을 지나 창포로 나가니 얕은 바다는 양식장 부표가 점점이 떠 있었다
찻집과 횟집이 보이는 마을 앞을 지나니 예전 초등학교가 폐교된 터가 나왔다. 바다 건너편 내가 가고자 하는 선두와 장기 갯가가 드러났다. 멀리 낙남정맥의 서북산이 광려산으로 건너간 산등선이 바라보였다. 가까운 들판에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 수확을 앞둔 때였고 갓길엔 코스모스가 피어 가을 운치를 더해 주었다. 바닷가 쉼터에서 가져간 삶은 고구마로 커피를 마셨다.
암하에서 율티를 지나니 조선 후기 유배객 김려가 남긴 ‘우해이어보’ 산실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김려는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과 동시대 인물로 초기 천주교 박해 사건 때 함경도 회령으로 쫓겨가 다시 진해로 옮겨 유배를 살았다. 율티를 돌아간 해안은 대형 조선소로 납품될 선박 부품 공장은 쇳소리와 함께 용접 불꽃이 튀었다. 남근석 서낭당의 선두 갯가에서 장기로 갔다.
장기는 진해만의 작은 섬들이 에워싼 포구였다. 봄이면 앞바다에 양식한 미더덕과 오만둥이를 건져 올려 손길이 바쁜 곳으로 아직은 철이 아니라 한적한 갯가였다. 장기를 돌아가니 고현 포구였는데 같은 지명이 거제와 남해에도 있다. 오래전 진해의 현청 소재지가 그곳이 아니었을까 추정이 가능했다. 고현에서 지금의 진동 관아까지는 가까웠는데 거기까지 걸어 점심을 때웠다. 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