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입안한 사람은 산타크루즈 제독으로
당시에는 레판토해전에서도 활약했던 스페인 해군의 명장이었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영국함대를 궤멸 시킨 후
영국 잔여함대의 격멸, 해상권 장악 및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영국함대를 격퇴시키면서 영불해협을 통과한 후,
스코틀랜드를 돌아서 아일랜드의 서해안을 타고 내려와서
스페인으로 귀함하는 것이 산타 크루즈 제독의 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영국함대에 대한 저평가 및 보급문제에 대한 것이 간과되어 있었는데,
실행되기도 전에 계획의 입안자였던 산타 크루즈 제독이 사망합니다.
문제는 이후 무적함대 사령관에 취임한 사람이 해전경험이 전무한 시도니아 공작이었고,
본인도 고사를 했었으나 필리페 2세가 받아들이지 않고,
이후 유능한 해군제독들을 보내준다는 조건 하에 절충이 됩니다.
무적함대에 대항한 영국함대의 전술의 근간은
신대륙 쪽에서 해적활동을 했었던 블레이크 제독의 경험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며,
영국함대는 장거리 포인 캘버린을 장착한 작고 빠른 함선들이 주력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영국함대가 무적함대를 상대한 전술은
육전에서의 궁기병 전술로 생각하면 됩니다.
무적함대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갤리선들이 주력이었으므로
보급문제에 난항을 겪게됩니다.
처음 시도니아 공작이 이끌었던 무적함대는 150여척이었으나
출항하자마자 푹풍으로 30여척을 잃게되고
실제 전투에 참가하게 되는 스페인 함대는 124척,
영국함대는 197척으로, 영국함대는 숫적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는 규모였으며
영국근해의 해전이었으므로 영국함대는 익숙한 지리적 잇점 및 보급문제가 전혀 없었으며,
블레이크와 홉킨스 등의 스페인해군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유능한 제독들이
부사령관급으로 함대들을 지휘하면서
이전의 해전과는 다른 함포 중심의 해전양상이 됩니다.
영불 해협에서 첫 교전이 벌어지는데
영국함대의 전술에 무적함대는 전혀 대응을 못하고 젼열이 붕괴되자
무적함대는 칼레항으로 피항하게 됩니다.
무적함대가 칼레항에 봉쇄된 채 보급을 하면서 정박된 틈을 타서,
블레이크 제독은 화공선 공격을 하게되고 무적함대는 괴멸됩니다.
시도니아 공작은 남은 잔여 함대를 계속 이끌었으나,
영국함대에 의해서 본국으로의 퇴로가 막힌 상태였으므로,
원래의 전략에 따라서 영국 동해안을 따라서 북상을 하게되고
계속적인 영국함대의 추격과 보급이 끊긴 상태였으므로,
본국에 되돌아 온 무적함대는 원래의 절반도 안되는 66척 뿐이었습니다.
이 전투 후에 제해권은 영국으로 넘어가게 되지만,
스페인의 해상력이 봉괴된 것은 아니였고,
스페인은 계속적으로 신대륙의 광대한 식민지를 운영할 정도의 능력과 해상력은 보유했었지만,
이후에 신대륙의 신민지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 의해서 잠식당하게 되고,
결국 북아메리카는 영국과 프랑스에 완전히 넘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