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에는 '字倣古篆(글자는 '古篆'을 본 땄다)'이라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인 해석은 '고전 전서체의 상형 방식(또는 글씨체)을 본 땄다'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한국학 교수인 개리 레드야드(Gari Ledyard)는 고전(古篆)이 몽고전자(蒙古篆字), 즉
원나라의 공용문자였던
파스파 문자('Phags-pa script)를 가리키는 것이라 주장했다.
참고.

한글의 자음 ㄱㄷㅂㅈㄹ는 각각 발음이 비슷한 ꡂ [k], ꡊ [t], ꡎ [p], ꡛ [s], ꡙ [l]을 단순화한 형태이며, ㄱ, ㄷ, ㅂ, ㅈ에 획의 변화를 가해 유기음 ㅋ, ㅌ, ㅍ, ㅊ을 만들었고, ㄷ, ㅂ, ㅈ에서 한 획씩 지워 비 파열음 ㄴ, ㅁ, ㅅ을 만드는 식으로 한글의 자음이 제작되었다는 가설이다.
유창균 교수, 미국의 게리 레드야드 교수나 중국의 주니스트를 비롯한 몇몇
몽골인 교수 등이 이 가설을 주장해왔으며 이후 지속적인 토론의 대상이 되어 오면서 2010년대부터는 한글학회나 국어학회 등에도 국어 연구자들이 관련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 다만 레드야드 교수 본인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는데, 자신의 연구는 '파스파 모방설의 주창자'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기원을 파스파 문자 등 남아시아 문자들에서 찾아보려는 시도 자체는 서구에 한글이 알려진 당시부터 수없이 존재해왔고, 레드야드의 경우 이런 기존 가설들을, 본인의 논문 집필 시점 몇년 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새로 알게 된 창제원리와 합치하게끔 다듬은 절충안에 가깝다. 정작 레드야드 본인은 한글이 파스파문자의 개량형이라기보단 처음의 기본 자음 5자를 만들 때 파스파자를 참조했을 뿐 조음기관을 추상화한 형태로 만들었고, 그 이후의 과정은 독자적으로 음운학에 기초해 완성했다는 입장으로, 박사 논문에서 한글의 기원에 있어 몽골 파스파 알파벳의 역할이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즉, 자음의 일부는 파스파 문자에서 따왔으되 ㅇ과 가획원리, 모음 등은 세종의 창작이라는 것.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파스파 가설 자체가 상당한 비판의 여지가 있는데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훈민정음은 파스파 문자와 달리 각 음소의 간결한 표기를 위해 획을 최소한만 사용한다. 다음으로, 이렇게 획수가 제한되고 좌측상단부터 직선으로만 긋는 조건에서 나올 형태는 한정적이다. 처음에ㆍ, ㅡ, ㅣ를 그리면, 그 다음 가능한 획은 ㄱ, ㄴ 두개다. 여기에 획을 더해가면 당연히 밭전田형태의 문자들만 나온다. 그래서 티벳자를 정방형으로 다듬은 파스파자와 기본골격이 비슷해보일 수 있다. 근데 그게 전부다. 한두획으로 음소를 나타내는 한글과 달리 파스파 문자는 기존 문자를 손봤을 뿐이라 획은 훨씬 많고 일관성이 떨어지는데다 대부분의 글자가 ㄲ, ㄹ, ㅌ를 닮았다. 여기에서 ㄱ, ㄷ, ㄹ, ㅂ, ㅈ의 다섯 기본형을 추출해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아무 글자나 골라잡고 이현령비현령 한글과 엮어도 비슷해보인다. 글자 형태가 거기서 거기이므로.
세종실록을 해독함에 있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안그래도 자국만의
오랑캐 문자만든다고 신하들과 유생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 세종대왕이고
[16],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도 여말의 신진사대부들 중에서도 북원과의 화친을 극렬히 반대했던 급진반몽주의자들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인데, 조선 초기에 문자를 만들면서 오랑캐 문자인 몽골문자에서 따왔다고 밝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막이야 어찌되었든 조선 왕실의 공식입장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이지 파스파 문자에서 베껴왔다는 게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레드야드는 실록 등에 나오는 고전자古篆字를 몽고전자蒙古篆字로 해석했지만 고古를 몽고로 해석한 것부터가 비약이고, 또한 이 관점은 기록의 맥락에 어긋난다. 실록 중 이 표현이 나오는 부분에서 최만리는 새 글자를 반대하며 이렇게 운을 뗀다: 儻曰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 "혹 말하기를 언문은 다 옛 글자를 본떴고 새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비록 모양은 옛 전문篆文을 베꼈어도 음을 쓰거나 글자를 합치는 것은 다 옛것에 거스르는 것이니 실로 근거랄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표음과 자모 조합이라는 방식만을 지적하며, 이어서 다음 논거를 든다: 自古九州之內, 風土雖異, 未有因方言而別爲文字者, 唯蒙古, 西夏, 女眞, 日本, 西蕃之類, 各有其字, 是皆夷狄事耳, 無足道者."옛부터 구주 안의 풍토는 비록 달라도 지방의 말 때문에 따로 글자를 지은 일이 없고, 오직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 무리만이 각기 글자를 가졌지만 이는 다 오랑캐짓일 뿐이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오랑캐에 몽골도 있다. 만약 고전자가 이 "오랑캐"의 문자를 뜻했다면 최만리가 당연히 고전자부터 문제삼았겠지만 그는 새 문자의 창제 자체와, 음소조합이라는 문자의 원리를 비판할 뿐, 고전자 부분에선 오히려 "비록(雖) 고전자를 본떴지만"이라며 한 수 무른다. 만약 최만리가 '고전자'를 파스파 문자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면, '모양도 고전자 따위를 본뜨고...'라는 식으로 모양조차도 비난해야 한다. 적어도 최만리가 언급한 고전古篆이라는 표현은 한자의 전서체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