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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라 할지라도...
샤르별의 존재들이라고 하여 모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행복과 불행의 이름이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비교현상이라면 아름다움과 추함도 상대적 비교에서 결정되는 주관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샤르별의 존재들이 지구 인류들에 비해서는 아름답지만 그들 세상에서도 역시 아름다움과 추함이 주관적 사고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추한 모습들은 스스로 불행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샤르별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우열이 존재
했다.
우열의 현상은 객관적 가치로 정해지지 않았고 순수 주관적 판단으로 결론을 내린 현상들이었다. 지구 인류들의 입장에서는 우월자라도 그들 세상의 기준으로는 열등생이 될 수 있었다.
어떤 세상에서나 열등생의 비관으로 말미암아 삶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이치는 동일할 것이다.
그래서 샤르별에서도 '못난이 주의보' 라는 심리경계령이 발동되고 있었다.
'못난이 주의보'는 자칭 열등생들이 주관적 판단으로 삶의 자존감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령이었다.
'못난이 주의보'의 창시자가 추처디누비라는 이름의 러우였다. 추처디누비는 우주심리학을 완성한 철학자로서 샤르별의 존재들에게 정신계의 장자로 추앙 받는 신선이기도 했다.
나도 샤르별에 도착해서 차별 없는 대우와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다가오는 열등심리는 떨쳐버리기 어려운 마음의 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심리를 파악한 샤르비네의 권고로 나는 추처디누비와 심리상담을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추처디누비와 심리상담이 예약되어 있는 신선도 많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심리질환의 중증에 해당되는 열등심리를 겪고 있어서 심리상담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추처디누비를 찾아가 상담에 임할 때부터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배려를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반면에 추처디누비와 마주 앉아 상담을 시작할 때 귓가를 때리는 강력한 메시지도 전달되어 왔다.
“살인자라 할지라도 끝까지 자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
"온 세상이 자신을 향하여 틀리다고 손가락질해도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내용의 메시지들이었다.
곧 온 세상의 비웃음을 사고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도 자신은 자신을 끝까지 변호하고 방어하며 지켜줄 자아애(愛)가 필요하다고 추처디누비가 강조했다.
추처디누비는 나를 상담석에 앉혀 놓고 이런 질문부터 했다.
"지구에서 여행 왔다고 했지?"
"네. 러우님."
"샤르별에 머문 기간은 어느 정도?"
“3. 4개월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쯤이면 우리들 세상과 적응이 이루어졌을 만도 한데…. 아무튼 좋아. 마음의 병은 빨리 치유할수록 좋아. 마음의 병이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큰 질환이니까."
“꼭 병든 제 맘을 고쳐 주세요."
“걱정마라. 나는 어떤 헝클어진 마음도 가지런하게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네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란 어려운 과제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제부터 본격적인 상담을 나누도록 하자. 정확한 심리상태를 파악해야 네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을 테니까. 상담에 임할 준비가 되었느냐?"
“네. 준비가 되었습니다.”
“네가 지구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까…. 지구 인류들은 샤르별의 존재들과 비교해서 많은 결함을 안고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지?"
"네, 인정합니다."
"지구 인류들이 가장 혐오하는 죄악의 대상이 무엇이냐?"
"살인마란 이름이 붙게 되는 살인자일 것입니다."
“살인자라. 끔찍한 이름일 것 같구나. 그렇다면 지구 인류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심리상태일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니?"
“아마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당할 때일 것입니다."
“그러겠구나. 그러면 네가 우리 샤르별에 머물고 있으면서 조롱거리
가 되고 비웃음을 사 본 경험이 있느냐?"
“샤르별에서 그런 경험을 사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
“열등감입니다. 신체적 조건이나 내적인 문제 등...” “네 스스로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열등의식을 느끼는 심리가 아"니냐?"
“그렇기는 하지요."
"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처음 네 입으로 말한 살인죄?"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이지. 샤르별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죄이지. 그런데 말이다."
“네, 러우님. 어서 말씀하십시오."
“살인죄와 똑같은 악행이 있다. 무엇인 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바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살상하는 일이다."
"자살을 말씀하시는가요?"
"스스로 옳지 않은 판단을 하며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고 스스로를 버리는 행위가 남의 생명을 손상시키는 살인죄 못지 않은 악행이다.”
"그 정도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온 세상이 버려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요?"
"스스로이다. 세상이 모두 자기를 버리더라도 자기는 자기를 버리면 안 된다. 설령 말이다."
"네, 러우님."
"살인자라도 말이다. 세상이 모두 악한 놈이라고 자기를 향해 손가락질 하더라도 자기는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자기를 버리면 그 자아가 세상에 머물 곳은 없으니까. 알겠니?"
"알겠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온 세상이 자기를 버려도 자기를 지켜 주는 대상이 누구라고 생각하니?”
"하늘의 신인가요? 하느님 같은...."
"바보 같은 소리 마라. 신도 세상을 다스리는 잣대가 있다. 그 잣대로 재서 맞지 않으면 버린다. 하지만 자신은 영원히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이용 가치가 있건 없건... 자신이 쓸모가 있건 없건.... 그 자아는 끝까지 자기를 버리지 않고 운명을 함께 한다. 그보다 소중한 대상이 세상에 있느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자아를 학대하고 비하하고 업신여기는 행위가 악행이냐, 아니냐?"
"악행일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은 것이 아니라 그렇다! 인정하겠느냐?"
"인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스스로를 학대하지 마라. 아무리 못난 자아라도자기는 우주에서 하나뿐이다. 하나뿐인 그 자아를 잃는 것은 하늘과 땅과 우주를 모두 잃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하나뿐인 자아를 이제부터 하느님처럼 생각하며 잘 받들어라. 자기가 자기를 잘 받들어주는 만큼 자아는 반드시 큰 것으로 보답할 것이다."
이런 말을 마치고 추처디누비는 못난이 치료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못난이 치료원은 자존감을 상실한 신선들에게 영적 능력을 강화시켜서 자존감이 높은 신선의 존재로 거듭나게 회복시키는 훈련원이었다.
못난이 치료원에는 의외로 많은 신선들이 입원하여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못난이 치료를 받고 있는 신선들은 연령이 높은 신선도 있고 연령이 낮은 신선도 있었다. 그리고 사회 지도층이나 전문가로 활동하는 유명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해맑은 표정을 한 선녀들…. 구김살 없는 어린 동자들…. 사회적 명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는 지도자들이 자존감 상실증을 앓고 있다니...
샤르별은 지상천국이요, 지상낙원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는 풍요한 세상이건만…. 무엇이 부족하여 샤르별의 신선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자존감을 상실하며 불행한 삶을 자초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모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샤르별의 신선들은 불행하지도 않은 일을 불행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으리라.
못난이 치료원은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진 자연을 배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못난이 치료원을 샤르별에서는 러어미코디라고 불렀다.
주변은 온통 복사꽃 물결이 출렁거리고, 향기로운 꽃들은 지천에 피어 있으며, 붉고 노란 과일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평화로운 땅이었다. 뒷배경에는 기암기석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산이 있고, 계곡에서는 맑은 물줄기들이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며, 앞쪽으로는 맑은 강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가는 장소였다.
러어미코디 수련원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그림 같은 집들은 여기저기 꽃 수풀에 가려져 지어져 있고, 한가롭게 움직이고 있는 신선의 무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무언가의 신선놀음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존감 상실증에 시달리는 신선들이라도 그 아름다운 배경의 세상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회복되고 영적능력을 증폭시켜 사회로 복귀할 것이란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그 자존감 상실증의 환자들보다 나는 몇 배나 중증을 앓고 있는 자존감상실증 환자였을 것이다.
추처디누비는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훈련으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했다.
러어미코디 수련원에 입소한 첫 날. 하늘누각에 올라 나를 각인시키는 훈련을 했다.
밤이 되어 하늘누각의 하늘창이란 장소에 앉아 있으니 밤하늘의 영롱한 별들이 쏟아질 듯 신비한 빛을 발하며 저마다의 존재를 뽐내고 무수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의 치료를 담당하는 지도원은 우시듀시 선녀였다.
우시듀시 선녀는 처음으로 나와 멘토링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다 자기를 버려도 자신만은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버림받은 자기는 우주의 어떤 자리에도 설 수 없는 고아의 신세를 면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밤이 되어 나를 하늘누각의 하늘창가로 안내하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했던 것이다. 이유는 몰랐지만 우시듀시 선녀가 시키는대로 순종했다. 천상에서나 살고 있을 모습을 한 우시듀시 선녀는 바라보는 그 자체의 분위기만으로 상처 난 영혼을 치유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늘창가에서 나와 마주 앉은 우시듀시 선녀는 내게 또 이렇게 말했다.
"밤하늘의 별들이 참 영롱하고 아름답게 빛나지요?"
다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모든 영혼들은 각자의 별을 가지고 있어요. 샤르앙은 자신의 별을 찾아보세요.”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별 하나가 있었다.
유난히 밝은 빛을 반짝이는 왕별의 뒤에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별이었다. 그 작은 별이 나에게 무언가 호소의 목소리를 보내는 것 같았고, 그 작은 별의 신세가 바로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왕별의 뒤에서 빛나고 있는 작은 별이 제 별이 아닐까요?"
짐작이나 한 듯 우시듀시 선녀가 말했다.
"샤르앙의 마음이 저 작은 별의 처지와 다를 게 없다는 뜻이군요?""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면 그 앞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왕별은 누구의 별이란 생각이 들어요?"
“틀림없이 샤르비네의 별일 것입니다.”
"어머나! 저걸 어째. 샤르앙은 샤르비네의 큰 존재 앞에 고개도 들 수 없는 초라한 신세라는 뜻이구나!”
"누가 판단해도 그렇지 않을까요?"
“맙소사! 난 샤르비네를 너무 잘 알아요. 어릴 때부터 그녀가 성장해온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샤르비네가 크고 빛나는 영혼의 소유자가 맞아요. 하지만 샤르비네가 샤르앙의 지금 말을 들으면 슬퍼할 텐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선녀께서 하는 말뜻이….”
"샤르비네는 샤르앙을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아세요?"
"아름다운 우주의 인연이라고 생각할 걸요? 우리는 서로 일심동체의 사이이니까."
"일심동체의 언약이란 영혼의 격차를 가지고 있는 사이에서는 맺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셨나?"
"샤르비네와 제 영혼의 격차는 존재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샤르비네는 최소한 샤르앙의 영혼을 동격의 위치로 바라보고 있을거에요. 그러므로 이제부터 샤르앙은 새로운 자신의 별을 하늘에서 찾아야 해요. 그것이 일심동체의 언약을 맺은 상대에게 갖출 최소한의 예우에요."
"전 모르겠으니 선녀께서 한 번 제 별을 추천해 주실 순 없나요?"
“내가?"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럴까요? 어차피 내가 샤르앙의 영혼을 치료해 주어야 하니까. 샤르앙의 별을 찾아 주는 것도 그 과정의 일환이겠지요.”
우시듀시 선녀가 찾아 준 나의 별은 쌍둥이별이었다.
둘 다 크고 영롱한 빛으로 나란히 떠서 반짝이는 별이었다.
쌍둥이별을 나에게 권하며 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 쌍둥이별의 하나는 샤르앙, 하나는 샤르비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나는 우시듀시 선녀의 깊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 쌍둥이별을 나와 샤르비네의 별이라고 생각하며 밤마다 열심히 바라보았다. 샤르비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샤르비네도 너무 좋아했다.
지구로 돌아와서는 그 쌍둥이별을 하늘에서 바라볼 순 없었지만 비슷한 별자리는 찾았다. 비슷한 별자리를 찾아놓고 밤마다 그 쌍둥이별을 바라보며 샤르비네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우시듀시 선녀는 밝은 날에 나를 데리고 정원의 풀밭을 찾아갔다. 풀 속에서 작고 귀여운 야생화 꽃을 발견하곤 나에게 바라보라고 권했다.
작지만, 그리고 풀잎에 가려 얼굴조차 제대로 찾아보기 힘든 작은 꽃망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비하고 아름다운 빛이 당당해 보였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꽃망울이지만 당당하고 도도하게 피어 있는 작은 꽃...
"무슨 생각이 들지요?"
작은 꽃의 얼굴을 관심 깊게 들여다보는 나에게 우시듀시 선녀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작지만 당당하고 도도한 꽃잎의 빛이 자랑스럽게 느껴져요."우시듀시 선녀는 내 말을 듣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내가 생각하는 샤르앙이 아니지...."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저 왜소하고 작은 꽃송이도 풀잎에 가려 힘들게 피어 있으면서도 당당한 자존감을 잃지 않고 빛나고 있는데, 샤르앙의 영혼은 얼마나 큰 자존감으로 살아야 할까요? 무언가 느낀 감정이 없어요?"
“제가 잘못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소중한 영혼을 크게 생각할 줄 모르고 스스로 어리석은 판단을 하며 자존감을 상실하고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져요."
“그러면 됐어요. 샤르앙은 이제 스스로를 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제대로 뜨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강인한 영적능력을 훈련받도록 해요.”
이후로 나는 다양한 자연의 스승들을 교훈삼아 영적능력을 배양시키는 훈련에 임했다. 15일 정도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나에게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자존감이 부쩍 성장해 있었다.
그러한 내 모습을 보고 샤르비네가 흡족해 했다.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애쓰는 주변의 존재들이 모두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샤르별에서는 자존감 상실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가장 불쌍하게 생각하고 모두들 동정했다. 그리고 자존감 상실증의 환자는 온 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해서 그 영혼을 회복시키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도록 온갖 배려를 잊지 않았다.
바라볼수록 정이 넘치는 샤르별의 신선들이 아닐 수 없었다.
못난이 치료원을 다녀온 후로 나는 부쩍 자존감을 발휘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아무리 크고 명성을 떨치는 존재들을 만나도 마음이 위축되거나 움츠려 들지 않았다.
"나는 나야!"
이런 강한 자존감이 삶의 활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샤르비네와 나는 못난이 치료원 퇴소 기념으로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 목적지는 너러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섬이었다.
너러 섬은 푸스효시 큰 바다의 한복판에 떠 있는 외롭고 작은 섬이었고, 주변을 바라보면 검푸른 물결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적막한 세상이었다.
너러 섬에 도착하자 아름답게 잘 자라고 있는 숲이 소리 없이 반겨주고 있었고, 희고 깨끗한 백사장은 섬 주변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었다.
샤르비네와 나는 그곳에서 아담과 이브가 된 기분으로 옷을 벗고 백사장에서 뒹굴거나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놀다가 심심해지면 춘우셔시를 보트처럼 물 위에 띄우고 검푸른 바다를 달렸다. 춘우셔시는 하늘에서만 날아다니지 않고 물 속을 잠수하거나 물 위를 달리는 보트와 같은 기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춘우셔시 보트를 타고 빠르게 물 위를 달리면 긴 포말의 물줄기가 선편 후미에서 갈라지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춘우셔시가 물 위를 달리는 속도는 굉장했고 그렇게 빨리 달리다가 물 속에 숨겨진 암초를 만나기라도 하면 금세 하늘로 치솟아 위기를 피하기도 했다. 바다에서 살고 있는 물새들은 춘우셔시가 물 위를 달릴 때 처음에는 따라오는 시늉을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빠르게 날 수 있는 물새라도 춘우셔시의 빠른 속도는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춘우셔시가 물 위를 달릴 때 샤르비네와 나는 선실에 앉아 있지 않고 선실 밖의 선상으로 올라가서 보트놀이의 짜릿한 맛을 즐겼다.
둘 다 벌거벗은 몸으로 손잡이에 의지한 채 서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전속력으로 물 위를 달리는 기분은 스릴 만점이었다. 아무리 무거운 스트레스라도 그 순간만은 깨끗이 사라지고 말 것 같았다.
불같은 태양은 머리 위에서 빛나고 푸른 창공에는 구름만 한가롭게 떠서 흘러가고 있었지만, 아무리 위대한 눈이 우리를 바라보아도 우주의 주인공은 샤르비네와 나 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칠 것 없이 물 위를 달리며 하늘과 땅의 주인으로서 위용을 과시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졌다.
보트놀이를 마치고 섬으로 돌아와서 샤르비네와 나는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시원한 나무 그늘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벌거벗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홀가분하고 평온하다는 생각이 드오."
내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옷을 벗고 사는 것이 기분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것같다구요?"샤르비네가 무심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몸을 싸고 있는 옷을 벗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싸고 있는 옷을 벗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이오.”
“오오라. 나는 또 샤르앙이 무슨 말을 한다고……. 이번에 못난이 치료원에 다녀온 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뜻인가요?"
"못난이 치료원에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이제까지 제 마음을 싸고 있던 것들은 넝마의 조각처럼 거추장스런 것들이었고, 불필요하게 그것들로 마음을 감싸고 남에게 내어 보이지 않으며 스스로 위축된 채 살아왔던 시간들이 어리석게만 느껴지오."
"어쨌든 샤르앙이 이제부터 못난이가 되지 않고 잘난이가 되어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란 기대가 제 마음을 기쁘게 해요. 그래요. 이제부터는 마음을 감싸고 꼭꼭 숨겨 둔 어두운 생각들일랑 말끔히 지워버리고 홀가분한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가세요. 하늘과 땅의 유일한 주인이 바로 샤르앙 자신이라 생각하고 당당한 자존감을 일깨우며 살아가세요. 밤하늘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쌍둥이 별자리가 우리 둘이듯, 보석 중에 보석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샤르앙 스스로가 당당해지면 샤르앙의 영혼도 당당해지고 하늘과 땅도 당당해진 샤르앙을 존귀하게 여길 거예요. 스스로 하찮게 여기면 하늘과 땅도 외면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아요. 결국 스스로 존귀하게 여기는 영혼이 귀한 대접을 받고 스스로 낮게 생각하는 영혼이 천한 대접을 받게 된다는 우주의 이치를 마음에 새기세요. 저는 제 일심동체가 하늘과 땅으로부터 천한 대접을 받고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슬퍼요."
"샤르비네, 걱정 마오. 이젠 더 이상 샤르비네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소. 당당한 우주 주인의 모습으로 당당한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오."
"샤르앙이 그렇게 말해주니 제 마음이 너무 기뻐요. 역시 저는 일심동체의 짝을 잘 골랐어요."
샤르비네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한 쌍의 새가 서로 사랑의 춤을 추면서 놀기 시작했다. 한 마리는 희고 한 마리는 붉은 색을 띤 비둘기 정도 크기의 새였다.
샤르별에서 사랑새라고 알려진 새였는데, 그것들은 샤르별의 공원이나 정원 같은 숲에서 자주 눈에 띄었고, 아무 장소나 가리지 않고 사랑의 춤을 추는 새들로 유명했다.
행복하게도 샤르비네와 나는 사랑새가 추는 사랑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사랑새의 사랑춤이 멈출 때까지 샤르비네와 나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구경에 열중했다.
사랑춤이 끝난 사랑새 한 쌍은 금세 연기처럼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자리에 행복의 여운만 그림자처럼 남아 가셔지지 않았다.
사랑새가 떠나고 샤르비네와 나는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까 사랑새의 모습을 잘 지켜보았나요?"
샤르비네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지켜보았소. 보는 마음조차 행복하오."
“사랑새의 사랑춤도 흥미롭겠지만 샤르앙은 더 깊은 의미를 깨달았어야 해요."
"그것을 말해주오."
"사랑새들이 사랑의 춤을 추는 순간, 그 작은 생명체들은 세상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샤르앙과 제가 지켜보건 말건, 주변의 사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말건, 아무런 시선도 아랑곳없이 그것들의 사랑놀음만 마음껏 즐기던 모습에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나요? 그 당당함이 이를 데 없는 존재감에 대해서 말이에요."
"존재감이라구요?"
"그렇다니까요? 당당한 자기과시의 존재감..."
“저는 그런 느낌으로 사랑새의 춤을 바라보지 않았는데……. 샤르비네가 그렇게 말하니 부끄러워지는 생각도 드오."
“세상의 미물들도 스스로를 생각하는 느낌은 각별해요. 모두가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살고 스스로 귀하게 여기며 살다가 삶을 마감하곤 하지요. 말 못하는 미물과 심지어는 느낌조차 없을 것 같은 식물들도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보존본능은 대단하지요. 하물며 우리들 영혼은 더욱 각별한 애정과 자존감을 발휘하며 하늘과 땅의 주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네요. 우리들 영혼은 미물보다 크며 하늘과 땅이 우리들 영혼에게 걸고 있는 기대는 클 것이라고 느껴지네요. 하늘과 땅의 미래는 우리 영혼들의 몫이고 그래서 후천세상의 참 주인들이 어떤 당당한 의식으로 삶을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후천세상의 모습은 다르게 개편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론 더욱 후천세상의 주인된 사명감을 명심하고 자존감을 빛내며 고운 영혼의 빛으로 살기를 소망하겠소."
“모든 살아 있는 영혼들은 하늘 대영성체(大靈性體의 새끼들이에요. 대창조주(大創造)의 사랑스럽고 소중함이 이를 데 없는 분신들이구요. 지구에서는 그 대영성체를 하느님이라 부르고 조물주라고도 부른다지요? 어떤 이름이든 대창조주 대영성체를 부르는 건 같은 의미일 거예요. 그 대영성체는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모든 소생물(蘇生物)을 가꾸고 양육하며 스스로의 영광을 흠향(歆하지요. 곧 땅에서 살아가는 것들은 하늘의 영광이며 하늘은 땅의 광명이지요. 하늘은 땅의 소생들로 인하여 어떤 영광을 흠향할까요? 존재적 당당함이지요. 풀숲에 가려진 채로 피어 있는 작은 꽃송이 하나라도 자기 존재감의 과시를 위해 안간힘으로 향기를 발산하고 고운 태깔의 꽃잎을 피워 올리지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미물들은 존재감을 알리는 파동의 에너지를 만들어서 이웃들에게 전달하며 생명력을 과시하지요. 우주 삼라만상은 이런 크고 작은 존재감이 어우러져 하늘의 영광을 총체적으로 발산시키지요. 그중에 가장 큰 존재감을 피력한다면 역시 살아있는 영혼들의 당당함일 거예요. 살아 있는 영혼들은 또 다른 창조주로서 역할을 하며 저마다의 세상을 건설해서 살아가지요. 그 창조적 역할을 존재감으로 표현하고 자기세상 창조의 다른 표현을 당당함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요. 하늘은 살아 있는 영혼의 창조주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발산하며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살아 있는 영혼들이 당당한 자존감을 표출하며 저마다 개성 넘치는 자기세상을 건설하고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살아 있는 영혼들의 사명이란 뜻이군요?"
“네, 맞아요. 하늘은 당당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발산시키는 영혼들을 사랑하며 그 영혼에게 하늘의 무한 축복을 허락하지요."
"샤르비네는 고명한 철학자 못지않은 설법으로 지금 제 영혼을 감동시키고 있소."
“그렇게 생각하나요?"
"결국 샤르비네는 제 영혼이 항상 당당한 자존감을 발휘하며 우주 주인으로서의 제 몫을 다하여 만고청청 빛나는 푸른 솔이 되라는 충고를 전하고 싶은 모양이군요?"
"어떻게 제 마음의 정곡을 정통으로 찌를 수 있나요?"
“이젠 눈빛만 보아도 샤르비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흘렀지 않아요?"
“샤르앙이 제 마음을 바르게 읽었다니 기쁘구요. 그래서 이제부턴 자존감을 상실한 못난이 증후군에 빠져들지 말고 이 샤르비네의 자랑스러운 일심동체로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래요. 약속할 수 있"나요?"
“샤르비네의 부탁을 꼭 잊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고마워요. 나의 일심동체!"
이런 대화를 나눈 후 샤르비네와 나는 여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해변의 모래밭을 뛰어다니고 뒹굴며 한 쌍의 물개처럼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망중한을 즐겼다.
그 사이 해변의 생명체들과 친해지고 바람과 파도와 하늘의 구름과도 친해지며 우주 주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산시켰다.
'세상아 기다려라! 샤르앙이 간다. 우주의 주인이 세상을 바꾸러 간다. 하늘과 땅아 기다려라! 우주의 주인이 하늘과 땅을 바꾸러 간다.'
이렇게 속으로 외치면서 몸 속에서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해변의 모래밭을 뒹굴었다. 기세등등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샤르비네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4차원 문명세계의 메세지 5 <샤르별의 자연, 문명과 신선 인류들> - 박천수著
첫댓글 쌍둥이 별^^
역시 남자는 그냥 알몸으로 표현하셨넹 ㅎ
아 알몸..
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리오
나는 내가 참 좋다
있는 그대로
네 맞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