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민한 사람들, 즉, HSP들은 역설적으로 순한 곰탱이 같은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습니다.
HSP들은 초감각 특성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각종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매우 강한데,
특히,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부정적 자극에 굉장히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물론 긍정적 자극에도 더 잘 반응하는 편이지만,
인간에게는 "부정성 편향"이란 기제가 있어서, 긍정적인 자극보다 부정적인 자극의 체감 세기가 대략 2.5배 이상 강하다.
따라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강한 긍정적인 감정과 "훨씬" 더 강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스트레서(스트레스의 원인) 중 가장 으뜸은 단연코 관계 갈등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남들보다 스트레스에 훨씬 더 취약한 HSP들은
본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관계 갈등을 회피하는 쪽으로 행동 패턴을 조성하게 됩니다.
어떤 식으로 회피하느냐?
최대한 협조하고 배려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관계 갈등으로부터 올 수 있는 스트레스를 사전에 원천 차단코자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능동적 회피"인 것이죠.
갈등이 발생하고나서 수동적으로 회피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친사회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갈등이 생겨날 여지 자체를 줄여버리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HSP들의 이러한 스트레스 방어 전략은 중단기전에만 유리할 뿐,
장기전으로 갈수록 효율성이 우하향하게 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네가 여태 곰인 줄 알았어.
항상 정에 굶주려 있지만, 모종의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사람 A가 있었습니다.
A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더라도 내 진심을 알아주고 내 닫힌 마음을 열어 줄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쌀쌀맞게 구는 한편, 내가 사실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힌트도 항상 소소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남기죠.
하지만 항상 돌아오는 건,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거리두기 뿐이었습니다.
A는 점점 지쳐만 갔고, 어떻게 해야 이 외로움을 해소해야 할 지 감도 잡을 수 없었죠.
그런데 사실 이는 주변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혼자 있고 싶은 게 분명해, 사람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거야.
괜히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말 붙이고 하는 건 쌍방 모두에게 좋지 않겠지.
A가 속내는 비록 a일지라도 겉으로는 매번 b의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그에 맞춰 항상 b~라는 대응 행동을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A는 사람들이 a~로 행동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해 왔던 것이죠.
이러한 과정이 이렇게 글로 보면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굉장히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짜 나와 페르소나간의 괴리, 그리고,
페르소나를 진짜 나로 여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
이러한 불협화음에서부터 생겨나는 인지하기 힘든 스트레스들
센터를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질감으로 인해 내적 불편감을 겪고 계시는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가령,
HSP 분들은 비록 자신이 선택한 방어기제지만,
내 기질과는 반대로 넉살 좋은 둔감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날 계속 성격 좋은 곰탱이 푸우처럼 대하는 것에 대해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지니고 있어요.
물론 이러한 행동의 결과로 관계 갈등이라는 치명적인 독소는 피할 수 있겠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 주는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에너지 소모가 불가피한 것입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왜 항상 고단하고 피곤한 걸까?
주변 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자처하면서,
행여나 생길 지도 모를 잠재적 갈등을 차단하기 위해 평상시 기를 쓰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겉으로 봐서는, 그저 사람 좋은 둔탱이처럼 보일 뿐,
그 이면에는 HSP들의 남모를 발버둥이 숨어 있는 겁니다.
예민한 사람들에게 최악의 결말이란,
결국 참지 못하고 터졌을 때,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냉담한 것입니다.
쟤 뭐야? 이제까지 그럼 자기만 노력하고 있었단 거야?
나랑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혼자서만 노력하고 이제는 혼자서 지쳤고 또 그게 내 탓이란 거야?
현실적으로,
내가 사실은 이렇게 다 맞춰오고 있었어, 이제는 너무 지쳤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힘들었겠다, 미안해, 이제는 내가 그만큼 잘할께
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기들도 벙찌겠죠.
그리고나선 마치 내가 이제껏 눈치 없이 배려를 받아먹고만 있었던 사람 취급을 당한 것에 화가 날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엔 둘 모두 기분이 상하는 lose-lose의 결말인 거죠.
한편, 이렇게 될 거라는 걸 HSP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가벼운 관계가 아닌, 연애나 결혼 같이 상대적으로 헤비한 관계에서는
어떡해서든지 끝까지 이중 생활을 유지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인내심이 역치를 넘어섰을 때, 아무런 설명 없이 입을 꾹 닫고 관계를 끝내는 패턴을 보이게 됩니다.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몰라도 되지만,
나와 엄청나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예민한 내가 숨을 쉬면서 살 수가 있어요.
관계 갈등은 풀면 그만이요, 스트레스는 해소하면 그만이지만,
나를 숨기면서 사는 이중 생활이란 언젠간 반드시 끝이 나게 돼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은 비극적인 결말로 말이죠.
지금까지 안 그런 척 지내왔는데, 갑자기 내 본모습을 보이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이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내 본모습을 어필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① SNS 상에 내 정체성에 대한 글들을 올린다.
사실 난 어쩌구저쩌구 이런 사람이다. 다만 이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행동할 뿐. 주절주절 왈가왈부
② SNS 상에 예민한 성격에 대한 글이나 책 등을 자주 링크 건다.
링크용으로는 무명자 블로그를 추천합니다.
③ 함께 있을 때 성격 검사를 해 보고 결과를 공유한다.
오 역시 나 예민한 사람이었네. 오 예민한 사람은 오히려 둔감해 보인다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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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사람들이 헤비한 관계에서 내 정체성을 오픈하는 것은,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보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내 파트너가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를 알려준다는 "의무적 의미"도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고,
또, 나(a)에게 맞는 대응 반응(a~)을 제대로 보일 수 있을 테니까요.
예민한 사람들의 인생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내 곁에 남게 됩니다.
소중한 사람이고, 어차피 알게 될 사이라면,
그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는 것만이 관계 안정화의 지름길이겠죠?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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