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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저서 채희석 저 <<판스퍼미아1권>>에서 인용
동이족이 세운 나라 수메르
수메르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뒤쪽에 편집되어야 하지만 필자가 서술하는 내용 중 상당부분이 수메르기록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메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만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보인다.
《성서》라는 단어 bible은 그리스어 bibilon에서 유래한 것으로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에 글자를 기록한 것을 말한다. 그 어원은 지금의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40km북쪽의 지중해에 면한 고대도시 비블로스byblos로 책이나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했던 파피루스의 심이라는 뜻이다.
바빌론bibilon은 밥일논food+producing field이며 갈대아chaldea는 갈대+밭이라고 김효신님은 주장한다.
원래는 ‘신들의 문’이라는 뜻이다.
고대 히브리 《성서》 창세기의 제목은 ‘베레쉬트’bereshith로서 ‘태초에’, ‘처음에’ 라는 말이다. ‘레쉬트’reshith는 히브리어로 ‘처음’, ‘시작’, ‘우선’이라는 뜻으로 고대 남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수메르인들이 ‘위’, ‘처음’, ‘앞’, ‘북쪽’ 등의 뜻으로 ‘머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6)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의 이름이 ‘A 베레쉬트’ 즉 ‘에베레쉬트’인 점을 생각해 보자. A는 알파벳의 첫 글자이며, 에베레스트는 즉, ‘수머리’가 되고 이는 ‘수메르’와 같다. 물론 에베레스트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였지만 이름에는 반드시 연원이 있는 것이다.
아카드어로 된, 길가메쉬 서사시가 발견되기 전만해도 <창세기>의 홍수이야기는 《성서》가 원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이야기가 발견된 후에 또 수메르원전에 해당하는 원형이 발견되었다.
현재의 남아있는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수메르의 점토판기록이다. 점토판기록이 발견되고 해석됨으로 해서 성경의 원본이 바로 수메르 점토판기록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성서》 내용의 기원은 수메르의 점토판기록이며, 수메르신화나 기록의 원형은 모두가 서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대륙이 원형이다.
우리민족은 ‘배달(해달)민족’이다. 우리민족의 조상은 환인桓因님이시고 마고(가이아)와 한 몸이었다.
수메르신화에서는 Anki에 해당하고 《기억여행》의 기록에는 Ma-Ra/Ha-Ra로서 남녀합체의 신이었다. 티벳불교인 탄트라교에서 원래 태초의 종교인 본교本敎의 신이며 인도에서는 브라흐마와 사라의 합체신이다.
티벳불교에서는 남녀합체인 합체불로 표현되고 있고, 네팔등지에서는 달과 태양이 함께 있는 그림 또는 조각으로 표현되고 있다. 즉 달신과 태양신이 함께 합체의 몸이 된 신이 바로 환인桓因이다.
우리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하는데 배달이란 ‘해달’의 뜻이다. 일관을 해씨解氏 월관月官을 월씨月氏라고 궁직으로 불러오다가 성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서양기록에는 VaiDal Haithali+tesHeph+ thali tes라고 불렀다. 배달민족 중 일부인 월지月氏국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우르와 수메르였음을 알 수가 있다. 김효신《상고연구자료집》
《한단고기》에는 한국은 12개의 연방국가였는데 그 중에는 ‘수메르’와 ‘우르’가 있었다.
BC 8,000년을 전후하여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의 비옥한 유역에서 일련의 혁신이 일어났다. 도예, 직조, 영주가옥(천막이 아닌), 조직적공동체, 곡물과 물품의 거래, 달력, 수학, 그리고 특히 문자의 등장을 말한다. 이러한 놀라운 혁신의 원동력은 농업의 발달이다.
수메르를 세운 민족들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플레이야데스인 셈야제의 증언에는 제우스(지소)의 후손인 백인들이 수메르를 공격할 때, 수메르인들은 원래 검은 피부에 몸이 큰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전쟁을 하지 않고 원래의 고향인 북쪽의 내륙으로 이동하였다고 되어 있다.
옛 기록에 시리우스인들의 피부는 원래 푸른색이었다. ‘이시스’라는 여신의 이름이 ‘시리우스’와 동일하다. 인도의 검은 칼리야말로 무서운 어머니로서 신들의 어머니인 마고이다. 그런데 햇볕을 받아서 검은색으로 변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와 수메르 등의 기록과 신화에는 시리우스와 관련된 기록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청인종인 청궁씨의 후손으로 보인다.
《부도지》의 기록으로는 청궁씨는 동쪽 문을 나가서 운해주로 갔다고 하였다. 청색은 동쪽을 상징하므로 천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퍼진 종족이다. 운해주는 파미르고원의 동쪽 중원지역에서 시베리아의 동쪽 바다, 캄차카 반도까지의 땅이다.
우루는 흑룡강 북쪽에 있었는데 BC 8,000년 전후의 지구변동 때 몽골 고원 쪽으로 이동하여 동몽골 흑룡강 상 중류의 시베리아에 있다가 후에 점차 남하하여 부여의 옛 땅인 흑룡강남쪽으로 내려와 동몽골 흑룡강 상류를 경계로 남우루와 북우루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베리아가 추워지자 캄차카반도 지역의 구다천국과 우루국, 부여 등은 점차 남하하여 서요하와 북경일대에서 우리역사의 주축세력을 이루게 된다. 이들 중의 일부와 수메르족이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남북으로는 몽골에서 인더스강 하류까지, 동서로는 티베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큰 십자벨트(十字belt)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메르 왕조를 BC 3,378∼2,233=1,145년으로 또는 에렉(환인)왕조가 끝나고 우르(월신 복희)왕조 BC 3,378∼2,353 또는 기쉬(염제신농/기자箕子)왕조가 끝나는 BC 1,730년으로 치고 있다.
수메르 기쉬왕조는 기자조선으로 보이며 흰두쿠쉬 등 지명도 모두 쿠쉬(기자)의 이름으로 딴 것으로 보인다.
기자의 묘는 산서성 동 남양주 묘현에 있다.
수메르족은 BC 5,000∼4,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 나타나서 BC 3,000년경부터 고도의 문명을 전하고 BC 2,000년경에 아모리인에 멸망하여 사라졌는데 지금의 시리아 지역을 경유했다. 시리아 지역에 도착한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로 일부는 이동하고, 이집트 방향으로 진출해서 이집트 문명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리아’ 또는 ‘앗시리아’ 나라이름 역시 시리우스와 매우 관계가 있어 보인다. 앗시리아인들은 매우 호전적인 북쪽의 민족으로 BC 1,500~BC 1,100사이에 수메르지역을 점령했다. 그들은 매우 잔인했는데 신독국이라고 불렀던 잔인한 민족 한국과도 통한다.
수메르지역에서는 님루드(요 임금)라는 인물이 날개달린 인두황소로 표현되고 있다.
바빌론 우르 3.7m~2.7m에서 BC 3000년경의 대홍수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 아래서 신전, 탑, 채색그릇, 사륜마차, 가장 오래된 책으로 메워진 도서관 등이 발견되었다. 니느베에서는 21.1m~21.3m 침전물 깊이의 BC 3,000~4,000년경의 대홍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우수주(牛首州 : 수메르국)의 앙골과 동생 장골이 난을 일으켜 서쪽 변두리 백성들이 피해를 입으니 부여후가 평안할 수가 없었다. 이에 웅가 충달을 보내 치게 하니 예후와 속진후(진번후)가 군사를 도와서 5년 만에 앙골을 평정할 수가 있었다. 《규원사화》<단군기>
위의 내용 역시 단군시기에도 우수주(수메르)가 조선의 영역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학자들은 윗 글의 우수주가 부여국의 근처에 있는 북경근처라 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부여 역시 한때에는 천산 (우루무치)근처에 있었다가 점차 동으로 이동했다. 진번은 토얼번이다. 《한단고기》에는 한국桓國시대에 남북5만 리 동서2만 리의 땅이라 하였고 색부루단군 시기에도 5만 리의 땅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법률 역시 수메르 인들이 만든 것이다. 우르남무라는 수메르 왕이 반포한 이 법률은 유명한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에 큰 영향을 남겼으며, 먼 훗날 모세의 법률을 특징짓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이 함무라비 법전에 정확히 들어있는 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단군시대의 팔조금법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매우 흡사하다.
함무라비는 자신이 동쪽에서 건너온 자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데, 다음의 내용은 함무라비가 단군이 임명한 왕 중 한명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마루둑’을 위대한 신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게 만들었을 때, 그들이 그 고귀한 이름을 바빌론에 선포하여 바빌론을 세계의 지역들 가운데 당할 곳이 없는 도시로 만들었을 때, 그러는 가운데 그를 위하여 그 기초가 하늘과 땅만큼 견고한 왕국을 세웠을 때, 그때 아누와 벨은 경건한 왕자이자 신들을 섬기는 자인 나 함무라비(BC 1,728~1,686)를 불러, 나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 땅의 의로움을 통치하게 하고, 사악함과 악을 일소하고,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누르는 것을 막게 하고, 인류위로 해처럼 빛을 발하게 하고, 땅을 밝게 비추게 하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도록 하였다.
Anu와 벨이 ‘함무라비’를 불러 통치하게 하였다. Anu는 환웅-오시리스(BC 2,381년)에 해당되며 벨은 단군왕검/호루스(BC 2,333년)로 보인다.
마루둑/단군왕검/호루스(빛나는 산의 아들, 빛나는 우주의 아들, 위대한 주, 천지의 주)의 승천은 함무라비왕의 시대인 BC 2,150년이다.
‘수메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검은 머리’와 ‘소머리’‘으뜸 산’‘수말/卒末=예맥濊貊-숙신肅愼-수 마을’이다. 첫째로 수메르란 ‘소머리’를 말하며 우르(UR)도 소를 뜻하는 말이다. 또한 우르는 월月과 발음이 같다. 따라서 달신이며 동시에 소의 신인 환웅(견우)을 뜻한다. 나중에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겠지만 지구의 수많은 고대국가에서의 신들은 모두 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소의 머리라는 뜻은 신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우두머리’ 역시 ‘소머리’를 뜻하고 있다.
수메르는 12한국 중의 하나였으므로 우리나라 말과 일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수메르라는 말은 우리말 ‘으뜸 산’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산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중심이 되는 산을 ‘수메르’라고 하였다.
수메르에서 ‘수’는 ‘흰’이 구개음화된 것이기도 하므로 흰머리산(백두산)이다.7) 히말라야산은 ‘힌마리산’으로 흰머리산과 비슷하다.
인도에서 신들이 사는 신성한 산의 이름이 ‘메루’산이다.
‘메루’는 ‘머리’ 또는 ‘산’이다. BC 4,000∼BC 3,000년경은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긴밀하게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BC 2,300년 경 유물로 추정되는 원통형 인장에 새겨진 배는 이 시기 이전부터 수메르와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다르 문명권은 바다로 접촉했음을 알 수 있다.
BC 3,500~BC 2,800년까지 우르크기 문화이고 젬네트나스리기(BC 2,800~BC 2,700)경에 도시가 출현한다.
수메르의 여왕 슈브엘(BC 2,900년 경)의 무덤 속에서 발굴된 악기 끝에 소머리가 그려져 있다. 우르왕비의 우아한 황소머리 리라(거문고), 수염 난 황소와 거문고자리의 상징인 리라는 직녀인 마고의 상징이다. 수염이 달린 황소머리, 메소포타미아 왕권의 일관된 상징으로 나타나는 수염난 황소와 염소상은 이집트신화 속에서 염제신농을 연상시키고 있다. 마고와 직녀는 모두 직조기술자를 뜻하는데 수메르는 직조기술이 발달해 옷을 만들고 옷에 물들여 입었다.
‘리라’는 ‘해달’의 뜻이며 이는 ‘밝달’ ‘배달’과 동일한 뜻이다. 군장의 상징이던 비파형 청동 검을 기억하자.
수메르는 혈통적, 언어적으로 고산지대 또는 중앙아시아 고원에서 내려온 듯 하다.
아즈택의 태양신 라라羅羅/나나가 아즈택어 로는 ‘발’을 뜻했다고 한다. 따라서 태양신은 발의 신(빠르게 걷는 신)헤르메스임이 분명해진다.
한국어는 알타이어 기층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알타이어계통 언어와 친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수메르어는 한국어와 동일한 교착어로서 어근을 같이한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數詞)가 남아 있고 수메르의 수사와 같은 부분이 있다.
수메르어와 중국어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의 소리, 글씨가 같은 것이 많다. 한문처럼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여섯 단계로 발전한 것이 같고 두 나라 말이 상당수 같은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문자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물’을 나타내는 문자는 ‘강’, ‘비’, 또는 ‘씻다’ 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별’ 을 나타내는 문자는 ‘하늘’, ‘신’, ‘높다’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 한가지의 중요한 것은 그림 문자가 소리 문자 (phonogram)로 발전된 것이다.
또한 애비, 애미, 애기, ‘아이고아이고’(장례치를 때 곡), 고수레, 누리, 누이, 등 우리말과 동일한 단어들이 많다.
수메르어와 한국어 비교
아누-하느님, 안-하늘, 기르-길,라-~로, 아비-아비, 니므-님, 바드-발, 나-나, 그-그, 이-이,움마-엄마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굴된 채색토기가 중국의 섬서성, 감숙성에서 출토된 채색토기와 비슷하다.
수메르와 섬서성 주변의 유사성은 토지에 물을 대는 관개시설의 유사성,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의 존재, 바빌로니아 건축의 벽돌 쌓는 양식과 만리장성의 망루에서 보이는 양식의 일치, 양자 모두 점성술이 발달해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프랑스의 데리안 드 라크베르는 수메르민족의 한(漢)민족 기원설을 주장했다.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태양숭배, 삼신숭배(하느님), 간장점, 상투, 평좌법, 씨름 등이 우리와 같다.
BC 2,500년경 유물로 추정되는 수메르의 구리 향로의 조각은 우리나라 왼씨름자세와 일치하고 있다.
An의 숫자상징은 60이었고, 앤키나 앤릴의 숫자 상징은 50이었다. 현재 지구 인구는 60억이 되고 인간의 세포 수는 60조라고 한다. DNA 이중 나선의 두 리본은 인간의 각 세포마다 6억 번씩 서로를 감고 있다.
동양은 60‘갑자’인 60진법을 사용해 왔다. 수메르도 60진법을 사용하였다. 반면에 음양오행은 5를 매우 중요한 숫자로 보고 5의 배수인 10을 단위로 10진법을 사용했다. 10진법은 상업 회계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12진법에 5를 곱하면 60이 된다. 12지신과 10간을 조합하여 60간지를 사용했다. 즉 12지신과 10간의 조합을 다섯 번 반복하여 60간지를 만들었다.
천상의 주기는 60에 6을 곱하여 360으로 계산되었고 더하기 5는 일년의 순환주기를 표시하여서 365일이 되었다. 덧붙인 5일은 영원의 무한으로부터 영적에너지가 지구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성스러운 열림의 시간을 나타냈으며 이 기간을 축제의 기간으로 정했다. 이는 이집트에서 나머지 5일을 각각 신들과 대조시켜서 축제를 지냈던 것과 동일하다.
옛날의 달력은 12월 22일이 12월 25일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따라서 12월 22일 동지날은 성대한 축제가 5일 동안 열렸다.
옛날에는 6진법도 사용하였는데 5와 6을 합하여 56이라는 숫자가 되었다. 이는 영국의 스톤핸지가 옛날의 돌로 된 컴퓨터였고 정확하게 56이라는 숫자에 맞추어져 있었다. 56은 해와 달이 만나는 즉 일식현상이나 달과 지구가 만나는 월식현상을 기록한 것이다. 복희와 여와는 두개의 달이므로 55의 숫자로 표현되었다.
옛 달인 보름달은 태양처럼 보이고 또 태양의 신하였기 때문에 태양으로도 표현된다. 50은 새로운 달인 초승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들은 달의 주기에 모든 것을 맞추었다. 초기 인간들 대부분은 커다란 강가에서 생활을 했고 강물의 범람은 매우 중대한 문제였고 그것은 달의 주기와 일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앤키와 앤릴의 숫자상징 50의 흔적도 여러 곳에 있다. 복희씨가 발견한 8괘에 의한 점을 칠 때 50개의 산목을 사용한다. 시리우스B가 시리우스A를 공전하는 기간 역시 50년이며 Anu의 아들들인 아눈나키의 수가 50이다. 아르고원정대 배의 승무원이 50이고, 다나오스와 그록의 딸들 50명을 이집트에서 라도스로 실어 날랐다.
뱀은 수메르에서 신성시 되었는데 용, 뱀은 바로 만물의 어머니, 즉 땅의 여신을 상징하였다.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은 오늘날의 대한민국과도 같다. 특히 황제의 황皇은 암컷봉황새인 황凰에서 나온 단어이므로 여성중심주의 사회였음을 알 수가 있다.
수메르는 모계주의로 땅의 여신, 곡물의 여신을 받들었으나 셈족은 부계주의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수메르는 현실적인 땅에, 셈족은 이상인 하늘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남성문명인 아틀란티스 여성문명인 레무리아 모두가 고대한국으로부터 퍼져나간 것이다. 수메르와 셈족 모두 동이족의 일부임을 알 수가 있다.
수메르 신전도시 대부분은 BC 2,735년 움마 군주 루갈자기시에 의해 통합 약 1세기 후 아카드왕 사르곤대제(BC2725~2671)(황제헌원)가 재통일 다시 1세기 후 ‘구티’족 공격으로 붕괴되었고 ‘구티(구이九夷)’ 정권은 내란으로 붕괴 1세기 후 우르 3왕조가 전성기 때 동쪽에서 엘람 족 서쪽 리비아-아라비아의 아모리족에게 무너졌다. 그 뒤 함무라비 왕시기 이후로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위대한 셈족 군주 사르곤(황제헌원)은 하나의 왕조를 형성해서 그 뒤로 10명의 후손이 왕좌에 올랐다. 그 뒤로 북동부에 살던 야만인들의 습격을 받아서 BC 2,150년 경 무너졌다. 그들은 누구일까? 우르의 북동쪽은 오늘날 신강성이다.
즉, 우루무치근처에 근거를 두었던 동이족으로 보인다. ‘산에서 온 용들’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남편으로부터 부인들을 강탈하였고, 부모로부터 자식들을 강탈하였고, 수메르 땅으로부터 왕국을 강탈하였다.”그들의 인종 특성에 대하여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들의 왕은 자칭 구티(Guti)구이九夷와 사방四方의 왕이라고 하였다. 사방을 평정한 왕이라는 뜻이며 이는 ‘제齊’로서 ‘평정하다’를 뜻한다. 즉 백제 이전의 고대백제임을 알 수가 있다. 백제는 만월(보름달)로 불리었다. 서양인들이 보름달을 무서워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통치기간은 BC 2,150년부터 BC 2,050년까지 백 년 정도라고 하였다.
수메르문명(함족계열)은 BC 2,350년 경~BC 2,150 사이에 셈족계열의 아카드인들의 공격으로 막을 내린다. 아카드인들은 생명나무를 전나무형태로 그렸다. 따라서 그들이 전나무로 덮여 있던 추운 북쪽지방에서 살던 민족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가 있다. 그런데 아카드인들은 수세기 동안에 이르는 화산폭발과 오랜 가뭄으로 옥토가 모두 사막으로 바뀌는 바람에 멸망하고 만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아카드인들은 신라계열의 사람들이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화산폭발과 가뭄으로 이 지역이 사막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이곳이 사막으로 변한 것이다. 당시의 무기들은 오늘날의 핵무기들이었다.
마침내 시나이반도의 동북쪽 끝에서의 격전에서 호루스(단군왕검)는 세트(황제헌원)을 성공적으로 공격하여 살해했다. 그 후 세트(황제헌원)의 아들들은 팔레스티나를 거쳐 수메르 지역으로 도망가서 고대의 발단이 되는 문명을 창시했다. 그런데 세트(황제헌원)의 자손인 수메르 사람들은 이집트에서의 그들의 통치를 되찾겠다고 결심했다.
지구의 표면에서 혹시 남아 있을 수도 있는 레무리아의 그 어떤 잔존물도 단호히 말살하겠다고 수메르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포톤벨트》
BC 2,300년대에는 셈계의 아카드인이 수메르를 정복하는데 이후 200년의 지배기간 동안 수메르 문명은 셈족화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도 아카드시대 때 쓰여진 것이다.
이후 BC 1,900년경에 바빌로니아 제국이 아카드의 뒤를 잇고 셈족은 주변으로 퍼져나가 서쪽의 지중해 지역을 점령했는데 이때 셈(신라)족의 여러 방계가 쪼개어졌다. 여기서 등장하는 민족 중에 하나가 유태인이다.
수밀이국(수메르)의 유물에서 출토된 인물들의 조각상을 살펴보면 그들의 종교관을 알 수 있다. 원래 삼신사상에 의해 하늘세계의 하늘님, 칠원성군님, 천지신명님을 섬기며 살아오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삼육대례법을 행했다.
이 수메르인들의 인물상에서 삼육대례법의 예를 올리는 모습인 두 손을 십자로 모아 태극모양으로 읍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밀이국인들이 만든 ‘지구라트’는 삼신사상에 의한 삼위산을 그대로 옮겨 인위적으로 만든 산이다. 지구라트에 계단을 만든 것은 《삼일신고》에 나타나 있는 ‘계만선 문만덕’의 이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만개의 계단을 오르고 만개의 문을 열어야 하느님을 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수메르인들은 즐겁게 사는 것보다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의 자세였다. 왕은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의 우두머리였고, 지상에서 신들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신들은 하늘에 있었으므로 신들에게 드리는 예배도 높은 언덕이나 산에 자리잡은 신전에서 이루어져야 했고 인간이 가까이가면 갈수록 신의 만족도 커지며 그렇게 되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신수메르시대에 건설되었다. 지구라트는 100개의 계단을 가진 세 개의 층계로 구성된다.
그 도시는 수천 년이 지난 이후의 도시들과 비교해도 매우 체계적인 도시였는데 대규모였으며 2층 가옥 형태였다. 역사서에는 유소씨가 2층 가옥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양자강 주변의 가옥들은 모두 2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에서는 동물들이 살고 2층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양자강 주변은 땅으로부터 습기가 올라와서 아래층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소족의 집의 형태인데 소巢란 원래 새의 둥지를 말하는 것으로 높은 곳에 지은 집을 말한다. 유소씨는 거발한 환웅으로 환인桓仁/제우스이다.
집가家는 이층을 짓고 아래는 돼지를 키우고 사람은 위에서 살던 것을 표현한 것이며, 제주도의 집은 아직도 그렇다. 돼지는 뱀과 상극이므로 뱀이 올라오는 것을 막아주었다.
중국에서 최고의 성인시대로 일컫는 요순시대의 순임금의 아버지가 중국사서에는 고수로 되어 있고 눈이 먼 장님이며 성질이 고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부도지》에서는 그의 이름이 유호씨이다. 유소/환인桓仁/제우스의 손자이다.
먼저 유호/토트/헤르메스씨가 부도에 있을 때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 보다 나이를 백여 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에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가 되어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운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부도지 18장>
유호/토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 성생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와 흑소씨가 살던 곳이다. 백소와 흑소씨의 후예들이 오히려 보금자리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높은 탑과 계단을 많이 만들었다. -중략- 그러나, 오직 옛일을 맡아보는 자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래의 이치를 말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부도지 25장>
즉, 유호씨 일족은 투루판에서 카스를 거쳐서 파키스탄과 수메르지역으로 이동하였다.
BC 2,300년경에 셈족이 정복하였다고 하였는데, 부도지 기록의 유호씨가 바로 당시의 사람이다. 윗 글에서 보면 유호씨는 조상대대로 단군과 환웅을 모셔온 가문이며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는 문화사절단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월식주는 서남아시아 지역을 말하고 성생주는 인도 중남부를 지칭하고 있다. 또 계단이나 탑은 지구라트나 피라미드를 말하고 있다.
수메르에서는 시리우스별에서 온 오아네스(환웅桓雄-오시리스)를 인류의 문명을 전수해준 고마운 스승으로 맞이했다. 베로소스가 언급한 오아네스의 별칭인 ‘압카루Apkallu’의 어원은 수메르어의 ‘압갈Ab.Gal’이다. ‘압갈’은 말로서 압도되도록 가르친다는 우리말이다. 이집트 신 토트는 말의 스승이라고 불렀다.
《부도지》에는 여러 페이지에서 환부들이 다른 제족들을 말로서 가르치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Ea에아는 물의 신이다. 달은 원래 물과 매우 관련이 깊다. 달의 인력에 의하여 조수가 생기는 것이다. 즉 ‘환웅-오시리스’는 물의 신이다. 에아의 또 다른 이름은 압주Ab-Zu였다. 수메르어로 ‘물의 심연’을 의미한다. 또 태양을 압수(압주Ab-Zu)라고도 불렀다. 창조이전의 ‘카오스의 물’이다. 또한 대홍수 이전에는 에아는 앤키라고 불렀다. 앤키Enki는 En은 수메르어로 주인이라는 뜻이고 ki는 땅이다. 즉 땅의 주인이며 사제군주를 말한다.
수메르 점토판 신화에 의하면 티아마트는 바닷물로 구성된 행성이었고 그의 짝인 태양은 압수(담수)였다고 한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만 보더라도 수메르어나 다른 언어들은 모두가 한국말로부터 퍼져나간 언어임을 알 수가 있다. 압주는 원래 압수이다. 압수란 말 그대로 ‘깊은 물’이다.
또 Ab.Zu를 표시하는 원형 상형문자는 축(샤프트)으로 땅속에 깊은 구멍을 뚫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에서 자압 Za-Ab이 생겨나는데, 이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히브리어와 그 자매어에서 진귀한 금속, 곧 금을 가리키는 말로 써왔다. 우리말에 차압 또는 압수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귀금속 등, 매우 값어치 있는 물건을 빼앗는 것을 말한다.
수메르신화에서 이들 우주인들은 금과 보석을 캐러 지구에 내려왔다. 그러므로 에아는 지구의 광물을 탐사하는 신도 된다. 그리스어의 ‘아비소스abyssos(영어의 abyss, 심연深淵)’는 원래 아카드어의 압수Absu에서 파생하였는데, ‘땅속에 뚫은 아주 깊은 구멍’을 의미했다. 또 아카드어에서 압수는 ‘니크부nikbu’를 의미하는데, 이것에서 파생된 히브리어의 ‘니크바nikba’는 인공적으로 굴착한 깊고 정확한 구멍, 곧 천공穿孔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아카드어의 ‘비트니미쿠BitNimiku’는 ‘깊은 곳에 있는 집’이라고 해석된다.8)
우리말에 ‘벨이 꼬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말 ‘벨’은 창자를 말한다. ‘벨’은 창자로서 광산의 깊은 굴과 같다. 에아의 아들 ‘마루둑’의 다른 이름은 ‘벨’이다. 따라서 벨의 아버지는 ‘압(아비)-벨’이 되고 에아(환웅桓雄-오시리스)는 ‘아벨’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에아에게 바치는 축가에서는 그를 ‘벨 니미카(Bel Nimika) 곧 탄광의 주님이라 불렀다. 벨 니미카에서 Nim은 ‘님’과 동일하게 존칭접미사이고, 미카엘에서 El은 남성명사이고 엘이 생략되었다고 보면 니미카와 미카엘은 동일한 이름이다.
유태인 카발라 6세트로피 태양신 엘로아 바다트의 천사장이 미카엘이다. 압수가 태양이었으므로 미카엘과 일치한다.
또한 ‘파라Pa-Ra’는 8세트로피 엘로힘 차오바트의 천사장으로 수성의 신이었으므로 파라엘과 파라는 동일인이다.
‘마루둑’에서 ‘둑’은 우리말 그대로 강둑처럼 무엇을 막는 둑을 뜻하고, ‘마루’는 넓은 판자를 잇대어 만든 튼튼한 판을 말한다. 즉, 광산의 내부를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는 나무로 된 둑을 ‘마루둑’이라고 한다. 그래서 ‘광산 굴’인 ‘벨’과 ‘마루둑’은 동일한 이름이 된다.
우리 역사에는 곰이 백일동안 굴속에서 수양한 다음 웅녀가 되었고, 그와 환웅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바로 ‘단군’이다. 위의 ‘벨 마루둑’과 일치하고 있다. 즉 수메르의 주신이 되는 ‘벨 마루둑’은 ‘단군’이었다.
‘단군’은 수메르어로는 ‘딘 기르 Din Gir’로 ‘우주로켓’이므로 ‘하늘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성서》의 ‘엘로힘’과 일치하고 있다. ‘엘로힘’역시‘하늘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Din은 로켓 Gir는 캡슐모양인데 ‘밝은, 빛나는’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아카드어로 ellu가 되었다가 히브리어에서 엘로힘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Ellu는 El과 Lu가 합해진 글자로 Ellu역시 창조된 lu루魯임을 알 수가 있다.
플레이야데스인들은 최고지도자인 신을 ‘이시비시’라고 했는데 ‘이시비시’를 줄여서 ‘야훼’라고 했다. 따라서 ‘야훼’ 역시 남성신의 일반명사였다. 제우스濟牛首는 ‘신들의 왕’이라는 뜻으로 ‘야훼’와 같다. 따라서 우수주牛首州/수메르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땅/백제’이라는 뜻이다.
신단수神檀樹는 신을 모신 단을 나무 널판으로 둘러 세운 것이다. 그런데 신단수神檀樹의 뜻이 ‘마루둑’과도 일치하고 있다. 단군인 ‘마루둑(호루스/전욱고양)’은 환웅桓雄/오시리스를 모시는 제사장이었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천왕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어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 때에 구한은 모두 삼신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를 관리하고 관경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들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의논하여 하나로 뭉쳐 화백하였다. 아울러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구한은 모조리 삼한에 통솔되고 나라 안의 천제의 아들을 단군이라 불렀다.《한단고기》<삼성기전하>
따라서 ‘환인’이나 ‘환웅’도 단군이었다.
수메르 최초의 도시는 라가쉬Lagash로, 그 통치자는 ‘엔시(En.Si)’ 곧 ‘정의로운 통치자’로 불리어졌고, 이 왕조는 서기전 2,900년 경 시작되어 6백 5십 년간 계속되었다. 엔En은 정의로운 이며 ‘시Si’는 ‘신하’를 뜻하며 신의 명을 받은 신의 대리자 ‘왕’을 뜻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문서에 이 왕조의 43명의 엔시들의 이름과 계보 및 통치기간이 모두 적혀있음이 확인되었다. 엔시의 기록에는 왕들이 신의 승인이 있어야만 권좌에 오를 수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시기에 아시아대륙 전역은 12개의 한국 연방체로 되어 있었다.
수메르 점토판에는 에아(앤키/아벨)에게 금속덩어리를 바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위쪽의 초승달은 그의 상징이며, 그의 양쪽에 흐르는 물은 그가 강의 신임을 보여준다. 에아는 초승달의 신이며 물의 신인 하백이었다.
수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한다든지, 아침은 ‘아사(일본어)’라고 하는 것 등,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아사’는 ‘아시’가 변한 말로 새롭다는 뜻이다. ‘아사달’은 조선의 수도였고, 그 뜻은 ‘초승달’이다.
아시아란 말은 아시리아 말 압수Aszu로부터 된 것인데, 해뜸에서 밝음이라는 뜻을 가졌고, 반대말 Ereb인데, 이것은 해짐과 어둠이란 말인데 유럽Europe가 되었다. 안호상《겨레역사》
Ereb은 치우가 다스렸다는 에렉과 비슷하다. 메소포타미아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있음을 기억해 보자.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를 Ast(아스트)라고도 불렀다. 아사달에서 아사는 ‘새벽’을 뜻하기도 했고 ‘달’은 별(star)을 뜻하기도 했으므로 새벽별인 금성을 뜻하기도 한다. 또는 Asa는 임금의 높임말로도 썼다고 하므로 아사달은 ‘임금의 땅’ ‘하느님의 땅’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바그다드 근처와 티그리스 평야의 ‘델 아스마’(Tell Asmar)에서는 비교적 위생시설을 갖춘 집들과 신전들이 발굴되었다. 곤명의 석림에는 ‘아스마’전설이 있으며, 아스마는 한국말 ‘아줌마’이며 즉 아이를 점지해준다는 칠성신 ‘마고’의 이름이다. ‘델 아스마’는 ‘달 아사’로서 ‘아사달’의 변형으로 보인다. ‘마’는 ‘마마’로서 신이나 왕에게 붙였던 극존칭이다.
첫댓글 시안 피라미드와 더불어 아주 오래된 떡밥인데 아직까지 돌아다니네요.
수메르문명에 대한것을 살펴보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History Begins at Sumer)” 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합니다.
전형적인 환빠들의 논리같지도 않은 논리.... 환국의 거수국인 수밀이국이 바로 수메르.... 코메디도 이런 저질코메디가 따로 없죠...
여기선 비하언어 환빠라던지 ~까, 사용자 즉시 강퇴대상입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비하언어를 사용하는것은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게시판운영자
재밌는것은 한단고기는 수밀이국이 수메르라고 언급을 안한겁니다. 수밀이=수메르라는 공식을 만든건 한단고기를 주해한 작고한 임승국 교수라는 사실입니다. 그거 때문에 한단고기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은거 같습니다만...
아직 단정을 내리기에는 모든 것이 이른 시기인것 같습니다. 함께 연구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우기는 것도 이상하고 무조건 비난을 가하는 사람 또한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리풀이 하는 이유는 현재 알아가고 있는 진행형의 논리지 확증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잘 맞는 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죠.
호루스님께서 저의 생각과 일치하는군요.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환단고기가 위서는 아니고 가필의 흔적이 있어 의심의 여지가 많지만 학계와 재야사가 뭉처서 진실된 내용을 골라 국가 정식 사료로 보아야할 것입니다.
제가 한번 이집트에서 얼굴은 새고 몸은 사람이고 머리에 태양을 이고 다니는 [호루스] 신도 한번 한글이론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이상하게 잘 맞아요. 호로스 = ㅎ(해) + ㅗ(정오태양, 가장 밝은 태양) + ㅅ(새), 이집트에서는 피닉스라는 소리처럼 [스]는 새를 뜻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스]를 새로 풀었습니다. 해설) 호르스 : 아주 밝은 태양과 새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