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동의보감촌으로
시월 둘째 일요일은 형제와 함께 보낼 일정이 잡힌 날이다. 일전 진주 사는 여동생이 매제가 운전하는 차에 고향 큰오빠 내외와 함께 창원의 막내 오라비도 함께 산청 한방 엑스포를 다녀오자는 제안이 왔다. 그 행사가 이번 가을에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마침 교통편이 쉽게 해소되어 다행이었다. 우리 집은 진주까지는 열차로 이동해 큰형님 내외분과 매제 내외를 만나기로 했다.
아내는 나들이가 좀체 드문 편인데 마지못해 응하는 듯했다. 우리 내외는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예매 열차표로 동대구에서 진주로 가는 무궁화를 탔다. “유의태 머문 산음 허준이 찾아가서 / 한의학 사제 인연 우뚝한 업적 남긴 / 금서면 동의보감촌 한약 내음 번진다 // 산비탈 온통 덮은 희디흰 구절초꽃 / 모두가 기대하는 건강한 백세 시대 / 약령시 한방 엑스포 관람 인파 붐빈다”
‘산청 한방 엑스포’는 진주로 가는 열차 안에서 하루 일정을 머릿속에 그리며 남긴 한 수다. 진주역에 닿으니 부산 사는 둘째 여동생이 버스로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새 진주 매제 내외는 고향의 큰형님 내외분을 태워 진주역으로 와 7남매 가운데 절반만으로 하루 일정을 진행했다.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를 따라가니 지리산권 산허리는 아침 안개가 걸쳐졌다가 걷히는 즈음이었다.
남강 상류에 해당하는 경호강이 바라보이던 나들목 근처는 왕산과 필봉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락국 마지막 임금 능으로 전하는 돌무더기 구형왕릉이고 축구 감독 박항서 고향 생초에서 바라보인 앞산이 필봉이다. 산청은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가 태어난 고장으로 전하는데 후세 사람들은 허준이 찾아와 사사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것을 기려 동의보감촌이 생겼다.
그곳 자치단체는 10여 년 전부터 금서면 왕산 자락에 조성한 동의보감촌으로 바깥의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애쓴다. 특히 올해 추석 이전 개막된 행사가 여태 진행되었는데 외지 관람객이 다수 찾았는데 공식 이름은 ‘2023 산청 세계 전통 의학 항노화 엑스포’였다. 나는 수년 전 여름 동의보감촌을 한 번 들린 적 있긴 했으나 그때보다 규모나 시설 면에 많은 변화가 있었더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로 동의보감촌으로 가니 산언덕에 구름처럼 피어난 구절초꽃이 우리 형제 내외를 반겨주었다. 행사장 입구 청정골 약초 명품관을 지나 엑스포 주제관과 한의학 박물관을 차례로 둘러 약초관과 전통 의학관을 거쳐 기 체험장 귀감석과 석경도 어루만져 봤다. 무릉교 출렁다리는 고소 공포로 건너지 않았다. 되돌아 나올 때는 궤도가 없는 힐링 열차를 탔다.
셔틀버스로 주차장으로 나와 진주 동생이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차를 곁들였다. 2부 행사장은 국민 체육센터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한의사 무료 진료는 길게 줄을 이었고 나는 온열 체험을 받아보고 명상 수행이 궁금해 눈여겨 봐두었다. 곳곳의 부스마다 사람들이 운집해도 이동 간 형제자매 간에 오붓한 정담이 오가기도 했는데 점심때가 훌쩍 지나도 앞선 간식이 든든했다.
동의보감촌에서 곶감 산지 덕산으로 향해 산채 정식집을 찾아가니 대기 손님이 많아 산나물 뷔페로 옮겨 취향 따라 식도락을 누렸다. 나는 식전 틈새 남명 조식 선생을 향사하는 덕천서원도 둘러봤다. 귀로에 형제들은 단성을 지나다가 예담촌 고가의 흙으로 돌담을 쌓은 골목길을 같이 걸었다. 경호강 강가 성철 스님 생가터를 절로 바꾼 겁외사를 둘러보고 진주 시내로 들어왔다.
조카 집을 방문해 다과를 들면서 귀가를 늦추어야 했다. 해마다 가을 이맘때 남강에 띄우는 유등 축제가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날이 저무는 시간 형제자매에 조카네까지 불어난 일행이 남강으로 가니 야간 개장 유등 개막을 보려는 인파로 둔치와 강둑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촉석루로 건너는 강심에는 부교 등불이 켜졌지만 불꽃 축포와 유등은 못 보고 창원행 시외버스를 탔다. 2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