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다 타버린
연탄이 놓여 있는 줄 알았다.
골목에 쌓인 상자처럼 무뚝뚝하다.
문 닫힌 연탄가게 앞을 지날 때면
주름살에 가린 쑥 들어간 눈
언제나 거리의 사람들을 쫓는 늙은 여인.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린 채 앉아 있다.
늙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 사람을 쬔다.
아침의 부신 빛에 다 타버린 연탄
하얗게 허물어져내린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10.25. -
인생의 노년은 늦가을에 비유되곤 합니다. 늙음은 늦가을과 마찬가지로 뜨겁고 화려했던 날들을 지나왔다는 표상입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다 타고 남은 연탄, 늦가을 그리고 노년의 여인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고 있습니다.
꽃을 피우고 뜨거운 계절을 지나 열매를 맺은 후에야 비로소 겨울 입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뜨겁게 온몸을 불살라 다 태워버린 다음에야 회색빛 연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노년 역시 그냥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탄재도, 늦가을 황량한 풍경도, 늙음도 모두 긴 시간을 버티고 불사른 후에 힘들게 얻은 훈장 같은 것입니다.
〈최형심 시인〉
Brahms Symphony No.3 3rd. Mov.ㅣHerbert Von Karaj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