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서조선·거대조선… ‘NK모델’ 세계로 뻗쳤다
‘시 아저씨’ 같던 시진핑도 종신 집권
푸틴은 러시아를 ‘거대한 북조선’으로
전근대· 反인권· 反자유주의로 몰고가나.
좌중우러.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인 지난달 27일, 북한 김정은은
좌우에 중국 대표와 러시아 대표를 세우고 주석단 중앙에 섰다.
공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에서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그날, 열병식을 보기 위해
김정은의 양편에 선 양국 대표는 자신들의 조국이 요즘
‘서조선’ ‘거대한 북조선’으로 불린다는 걸 아는지 궁금하다.
물론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미국과 신형 대국관계를 주장한다.
하지만 ‘요즘 중국’이라는 책을 쓴
곤도 다이스케에 따르면,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선 대국은 커녕
서조선이라고 자학적으로 부른다.
북조선의 서쪽에 자리 잡은 중국에서
당원들이 시진핑 주요 담화를 베껴 써야 하는 등
전체주의 북조선처럼 됐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처음엔 ‘시 아저씨’처럼 친근한 척하던 시진핑이 차츰
개인숭배, 1인 지도체제, 폭압정치, 종신집권의 독재자 본색을
드러내면서 북조선을 닮아갔다는 점에서 ‘북조선 모델’의
무서운 승리라 함 직하다.
홍콩 유명 TV 앵커와의 불륜설로
돌연 면직된 친강 중국 전 외교부장이
최근 ‘간첩설’이 도는 로켓군 수뇌부 숙청설과
관련 있다는 에포크타임스의 보도 역시
과거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숙청을 연상케 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용병대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공격으로 면이 깎였던 사람이다.
그러고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걸 보면
충성심 하나는 알아주는 것 같다. 독재국가에서 살아남으려면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충성심이다.
독재자는 자기보다 똑똑한 자를 절대 곁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잘 싸우는 자를 찾아 용병대장으로 썼더니 결국
배신당하고 리더십도 깎인 지도자가 푸틴이었다.
이런 푸틴이 러시아를 ‘거대한 북조선’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때 같은 나라였다는 이유만으로 주권 국가를 침공하고,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고, 제 국민을 공포와 테러와 폭압으로
통치하면서 제 나라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영화 제작자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 정권의 무덤이 될 것”이라며
“그는 이미 러시아를 거대한 북조선으로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도
러시아를 푸틴이 북조선으로 만들고 있다며 다른 점은
11개의 타임존을 가졌을 만큼 거대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들 외국인은
자이언트 노스 코리아(giant North Korea)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그냥 ‘거대한 북한’이라고 하면
북조선과 거대조선 또 서조선이 지닌
시대착오적, 전근대적 특성을 도저히 담아낼 수 없다.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은 한말의 초기 부르주아적 근대화를 부정하고자
일본과 같이 대한이 아닌 조선 호명으로 돌아갔다”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논문에서 지적했다. (2020년 ‘한국과 조선’).
우리는 3·1독립운동을 거치면서 헌법상 국호로 대한민국을 택했다.
그들이 택한 국호가 조선왕조의 조선이든, 고조선이든,
김일성이 주장한 새조선이든 김일성 주체사상 종교에 바탕을 둔
신정 체제라는 점에서 중세이고, 전체주의다.
거대조선과 서조선도 마찬가지다.
거대조선은 러시아정교를, 서조선은 시진핑 사상을 종교로 섬기며
지배자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첨단 디지털 장비로 감시하고 탄압한다.
특히 푸틴은 북조선에서 배운 전법으로
미국의 제재를 피해 무기를 들여오고,
핵 위협을 자행하는 미치광이 전술을 휘둘러 더 위험하다.
권력을 가진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파괴하고 착취할 수 있는지,
굶겨 죽이고 고문해 죽이고 탈출하면 또 잡아다 가둬 죽이는
인간종말사회 같은 곳이 북조선이다.
심지어 최근 BBC 비밀 인터뷰를 통해 방송된 북한 주민은
“최대한 빨리 전쟁이 일어나
(김정은) 정권을 통째로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예사회보다 못한 반(反)인권, 반인륜, 반근대,
반이성, 반지성, 반자유주의, 반세계화의 ‘북조선 모델’이
과거 공산주의 종주국까지 정복했다는 점에선 징한 승리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은 귀국 직전인 5월 출간한
책 ‘대한민국 생존전략’에서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국제규범의 붕괴와
미국의 유라시아 퇴조는 더 빨라지고 러시아의 영향력은 커질 것”
이라고 썼다.
미안하지만 ‘후기 조선’ 사람처럼 러시아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전쟁을 “민주주의 대 독재의 대결”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원치 않겠지만 ‘한국 모델’을 따라
휴전을 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차라리 다행이다.
자유민주주의 K모델은 이미 승리했다.
글 / 동아일보 칼럼 / 김순덕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