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 연안에서
오늘은 세종 임금이 이 땅에 한글을 반포한 지 577돌 되는 해다. 한글은 1443년에 제정되었으나 3년간 시험 운용 기간을 거쳐 1446년 가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훈민정음’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현직을 떠난 지 이태 지난다만 40년 교단에서 우리 글과 말을 가르친 일을 업으로 삼았고 남은 생에도 우리 글과 말을 공기 중 산소처럼 소중히 여기련다.
전날 형제들과 산청 동의보감촌을 비롯한 그곳의 몇몇 명승 고적지를 둘러본 늦은 귀가였다. 새벽에 일어나 몇 줄 글을 남기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산책을 나섰다. 현관을 나서 이웃 동 뜰로 가니 꽃대감이 내려와 있어 안부를 나눈 인사가 오갔다. 친구가 모닝 카드로 보내는 문구가 날로 세련되고 멋져 보인다고 감상평을 언급했다. 우리 가사 율격의 4음보와 글자 수도 잘 지켰다.
월요일은 내가 걷는 여정에 동행하려는 지기가 있어 함께 길을 나서게 되었다. 이웃 아파트단지로 건너가 지기를 만나 팔룡동 창원역 근처에서 한 지기를 더 만나, 그가 운전대를 잡고서 교외로 향했다. 동마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월영동으로 가서 청량산터널과 동전터널을 지났다. 진동에서 팔의사 창의탑과 해병 전적비를 지나 암하에서 창포로 가는 동진해안도로를 따라갔다.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길섶에는 키가 높이 자라 청초하게 핀 코스모스가 눈길을 끌었다. 갓길에는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솥단지를 걸어둔 한 사내가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지기에게 차를 세우게 해서 간식으로 삼을 옥수수를 사자고 제안했다. 현장에 가니 사내는 열을 가하는 옥수수가 10여 분 후 익는다고 했다. 그새 일행 셋은 창포만이 드러난 들녘의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벼들이 익어 고개를 숙여가고 갓길엔 구절초와 쑥부쟁이꽃이 가을 운치를 더해 주었다. 창포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갯벌로 이어진 연안이라 물때가 썰물이니 넓은 갯벌이 드러났다. 벼농사를 짓는 들녘을 에워싼 산책로 끝 정자는 우해정(牛海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우해는 진동 앞바다의 다른 이름으로 조선 후기 유배객 김려가 물고기 백과사전 ‘우해이어보’를 남긴 바닷가다.
해안선 따라 들녘을 한 바퀴 둘러 차를 세워둔 곳으로 와 삶은 옥수수를 사서 동진대교를 건너갔다. 섬들로 둘러싸인 거제만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면서 외산리 고분군 곁을 지났다. 고성에는 이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시대 고분군 가운데 송학리가 큰집이면 외산리는 작은집 격이다. 외산리에서 내산리 대천마을로 가서 차를 세우고 쉼터에서 옥수수를 벗겨 먹었다.
쉼터에서 당항포 내해가 바라보인 해안을 따라 걸었다. 대천 부두에는 현지 한 아주머니가 갯지렁이로 물고기를 낚고 있었는데 보리멸을 연이어 낚아 올렸다. 바깥 부두에는 외지에서 온 세 사내는 다른 어종을 겨냥하는지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관찰자로만 머문 우리는 해안에 핀 코스모스와 다른 들꽃에 관심을 더 기울이다가 검포리 토속 식당에서 맛깔스러운 점심상을 받았다.
점심 식후는 당항포 연안을 따라 동진대교를 건너와 율티에서 선두마을 찾아갔다. 대형 조선소로 납품될 구조물을 제작하는 공장을 지나니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 나왔다. 작은 어촌 선두마을 방파제에는 인공이 가미된 듯한 남근석 서낭당을 둘러봤다. 포구 가까운 시골집에는 노부부가 살았다. 오라비가 타계 후 남편과 친정으로 와 머무는 한 할머니가 살아온 내력을 알게 되었다.
선두마을에 장기를 거쳐 고현으로 왔다. 어촌 체험장 해안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을 관찰하도록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을 둘러보고 소규모 조선소를 지나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 진동 앞바다에 점점이 뜬 섬과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봤다. 고현에서 진동으로 나와 광암을 거쳐 군령삼거리에서 유산과 덕동을 거쳐 가포에 이르니 마산 시내가 가까웠다. 2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