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자 A가 자신의 결혼 생활에 굉장히 불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비혼주의자인 친구 B는 A의 불평불만을 듣고 있다가
그렇게 싫으면서 도대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가 뭔데?
라고 물어보았어요.
A가 한숨을 쉬며 대답합니다.
"이혼이 뭐 말처럼 그렇게 쉬운 줄 알아?!"
마침 곁에 있던 친구 C가 심리학자였었죠.
C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이혼을 할 수 없는 A의 심리 상태에 대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관계의 유지 여부에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는데,
만족도는 단지 그 중에 하나일 뿐이라네.
다시 말해서, 만족도가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다른 변수들이 관계를 유지하도록 강제한다면,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이별 공식
남녀관계의 헌신도를 예측해내는데 가장 효율적인 모델 중 하나는
암스텔담 대학의 Caryl Rusbult 연구진이 고안한 "투자 모델"입니다.
정확히는, "Investment Model of Close Relationship"이죠.
쉽게 말하자면,
관계의 헌신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세가지로 아래와 같으며,
이 세 변수의 토탈패키지 점수로 관계의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관점입니다.
① 관계 만족도 (관계로 인한 행복 - 불행)
② 총 투자 비용 (내가 투입한 모든 시간, 비용, 노력 등)
③ 대안의 존재 여부 (더 나은 잠재적 파트너를 만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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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기혼자 A가 이혼을 고려할 때,
제3자들은 흔히 관계 만족도가 가장 중요한 변수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만족도는 전체 비중의 33%에 불과할 뿐입니다.
내가 이 결혼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투입했는지,
또, 이 사람보다 더 나은 누군가를 만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이런 사항들이 우리의 머리속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 저울질되고 있다는 것이죠.
통상적으로,
기혼자들이 이혼을 망설이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게 바로 "총 투자 비용"입니다.
인간에게는 손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성이 있고,
내가 투입한 비용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여기서 철수했을 때의 손실 또한 어마어마해지므로,
어떻게든 손해를 입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실패로 향해가고 있는 일들을 붙잡고 매달리게 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부르며,
이러한 비용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에, 앞으로 투자를 지속할 지 여부에 고려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ex. 어떻게 해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라면, 이러한 비용의 경제적 효용은 0이 된다.
따라서, 경제적 가치가 없는 매몰비용이 앞으로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인 것이다.
사기꾼에게 10억 날린 걸 아무도 투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심리는 산수가 아니죠.
인간에게 관계에 있어서의 매몰비용에는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포함됩니다.
단순히, 함께 산 아파트나 살림살이들, 재산의 영역을 떠나서,
이 결혼에 얽히고 섥힌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곧 내가 떠맡은 비용이 되는 것이죠.
우리 엄마아빠에게 자녀로서의 도리
자녀들에게 부모로서의 도리
물론 도리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도의적 책임감은 단순히 경제적 효용만으로 따질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지니기에,
일종의 "도덕적 효용"으로써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죠.
만약, 책임감을 비롯한 총 비용의 크기가 감당할만하다면,
또는, 언제라도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날 자신이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이혼이라는 의사결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세 가지 변수 중 최소 둘 이상을 만족해야지만 이혼 쪽으로 무게의 추가 기울게 되는 겁니다.
낮은 만족도를 기본으로 깔고 간다면,
총 비용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언제든지 더 나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이미 만났다거나)
이 둘 중에 하나만 해당되도 이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을 하고 생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기혼남녀들이
어장 관리를 하고 있을 정신도 없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애 세포도 소멸 직전이며,
무엇보다도 결혼에 대해 현타가 오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차갑게 식어 버렸을 상황에서,
지금 이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즉, 이미 갈아 탈 상대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안의 요소는 이혼의 사유가 되기 쉽지 않음)
관계 만족도는 최악이지만,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 관문은 결국 내가 체감하고 있는 총 투자 비용의 크기가 되겠죠.
즉, 잃을 게 많은 이혼일수록, 의사결정은 어려워질 것이고,
그럴 거면 왜 살아? 라는 말을 주변 친구들에게 들으면서
불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어쩔 수 없이 이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가정의 이혼 문제는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지인이나 전문가에게 여타의 조언을 들을 수는 있을지언정,
선택의 몫은 오로지 본인에게 있으며, 그 결과 역시 본인이 감당해 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인생은 유기체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저 우리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 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또, 그 선택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시시각각 다르게 흘러가며, 이러한 흥망성쇠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우주의 이치라는 것이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모든 걸 포기하고 자연으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 곳에서 극도의 행복감을 맛 볼 수 있었다면,
이러한 행복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했기 때문에 만끽할 수 있는 감정일 겁니다.
우리의 인생이 실패에 걸맞는 행복이라는 모습을 재창조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죠.
(반면 성공한 인생에는 성공에 걸맞는 고통의 모습이 재창조된다.)
결국, 어떤 인생이든 흥망성쇠는 있으며,
우리의 선택에 따라 명과 암이 유기적으로 형성되고 공존하는 것이지,
하나의 선택에 빛만 가득하다거나, 어둠만 가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았을 때의 장단점이 있을 수 있고,
이혼을 하고 나서의 장단점이 있을 수 있는데,
한 번에 하나의 인생만 살 수 있는 우리가 무엇이 나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인간만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이란 말이 있듯이,
불행 뒤에 예상할 수 없었던 행복이 찾아오고,
행복 뒤에 결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 곧 인간의 일생입니다.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든, 희노애락은 피할 수 없으니,
어쩌면 관건은 이 선택을 하냐 마냐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는 환상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 여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자녀의 존재가 참 크죠.
그래서 제 ex는 갈아탈 놈 만나서 나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