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장에 들어서자, 예전에 파티때와는 달리 조금은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장식들이 되어 있었다.
아까 젠이 말한, 정말 입 밖으로 꺼내기도 민망한 ‘천상의 여신’테마는…
아무래도 집안 식구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옅은 하늘색에 약간의 화이트가 섞인 청아한 느낌의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예전 동화에나 들었던 공주들처럼 하늘색 빛의 왕관같은 것을 썼는데,
그에 맞게 긴 머리는 살짝 틀어 올렸다.
치맛자락이 길어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굽이 약간 높은 하늘색 파스텔 톤의 구두를 신고,
복잡한 링 모양이 뒤얽힌 귀걸이를 걸었다.
그리고, 보통은… 이럴 때 레드 카펫을 까는데, 뭣 때문인지 파란색 카펫이 단상까지 깔려있었고,
하늘색 휘장이 천장 가득히 걸려 흔들리고 있었으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지… 참석한 집안 식구들이 모조리 하늘색 옷을 입고 있었다.
“뭐야… 이게”
“어서 들어가세요, 아가씨.”
어느새 하늘색 복장을 한 젠이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어색하게 파란색 카펫 위를 걸었다.
비록 집안 식구라고는 하나, 모든 시종들과 시녀들이 모이니 60명 가까이는 되는데,
그사이를 홀로 걷자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최 상석에 서계신 아버지가 점점 가까워 졌고, 아버지의 양쪽으로 오빠들을 포함한 기사단이 서있었는데,
평소에 입던 갑옷이 아닌, 바로 ‘트로일’기사단의 예복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지 몰라도, 예복역시 하늘색….
이 웃긴 상황에도 비장한 표정의 기사들은 의장용 검을 뽑아들고,
내가 가는 길의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
이거… 사관학도가 결혼할 때 친구들이 해주던 그거 아닌가…
얼떨떨한 느낌으로 계단을 오르고 드디어 아버지의 앞에 마주섰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시던 아버지가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
“자랑스러운 내 딸. 로안 진 미하엘.”
“네”
“난, 네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네가 내 딸임을 의심치 않았단다.”
“…….”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된 너를 이후에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아버지로서는 지우지 못할 행운일 것 같구나.”
사적인 이야기였는지, 아니면 성인식의 절차였는지 알 수 없는 말을…
가슴에 박히는 그 말들을 내게 한 아버지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이후부터, 나의 딸이자 미하엘 공작가의 후계자인 로안 진 미하엘은
한사람의 성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며, 자신의 위치에 맞는 행실을 할 것이며,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임을 약속하는가?“
“예.”
“이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이 이를 공인한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미래.
아버지, 당신은… 끝까지 저를 위해 그렇게…
원한다면, 공작영애라는 이름의 허울에 끌리지 않고 자유로이 살도록, 꾸역꾸역 접어 넣은 나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말.
하지만… 당신에게는, 수없는 채찍질을 했어야 했을 어려운 말.
저는 말이죠, 아버지.
…….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정말 짧은 식이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말에 모두들 박수를 쳤고, 상당한 울림이 연회장에서 공명했다.
한사람. 하나의 성인으로서. 그 울림도 함께.
공식적인 식이 끝나고 사람들의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하자, 한쪽에서 근엄하게 검을 잡고 서있던 오빠들이 다가왔다.
“자.”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내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더니 어색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뭔데?”
“선물.”
“선물?”
“응.”
손바닥을 펼쳐 손에 쥐어진 작은 물건을 살펴보았다. 엉성하게 포장한 모습이… 영락없이 오빠들이 주는 선물이다.
작게 킥킥대며 웃은 나는 조심스레 포장을 풀었다.
포장 속에 놓인 물건은…
제비꽃…
투명한 크리스탈 속에 제비꽃이 있었다. 짙은 보랏빛을 품은 제비꽃은, 봄 그대로의 향기를 가졌다.
“이건…”
“전에, 영지에 내려가 있을 때 네가 말해준 게 생각나서…”
“말…?”
“고향에 피어있었다는 꽃. 네가 대충 그려주기는 했었는데 찾느라 고생 좀 했지.
따뜻한 지방에만 피는 꽃이라면서? 지금 이곳은 여름이고, 이 꽃 자체가 제국에는 없대서… 뭐.
그냥,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어.“
말을 하는 크리스 오빠를 포함해 약간 민망한 듯 딴 곳을 보고있는 네 명의 오빠들과 카뮤엘을 보았다.
제비꽃은…
한국에 있을 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예쁜 추억을 가진 꽃이다.
언젠가, 아주 어렸을 때. 길을 잃었었다.
아니, 버려졌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어쨌던 갈길을 모르고 헤메던 나는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길가를 걷고 있었고,
그때까지도, 내가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발걸음으로 걷고 또 걷고, 한참을 걸었을 때서야 함께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조금씩 두려움을 가졌었더랬다.
아무래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으니만큼, 담은 매우 높았고 주변은 삭막하기 이를데없는
어린 나로서는 끝없는 미로였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붉게 노을이 져 갈 무렵 어둠을 느끼기 시작해 맺혀오는 눈물을
억지로 억지로 참아내고 있을 때.
이 보라색의, 소박하지만 예쁜 꽃을, 그 높은 담벼락 밑에서 자라는 이 작은 생명을 보았다.
나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금새 잊어버렸고,
어린 마음에 무심코 꽃을 꺾으려던 그때 나를 만류했던 작은 손이 있었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보이던 남자아이.
‘꺾으면 안돼. 그 꽃, 나만 아는 보물이었는데. 너도 발견해 버렸구나?’
지독히도 순수한 눈이었음에도, 어른스러웠던. 그 아이.
‘그럼 이제 너랑 나만 아는 거다? 여기에 이렇게 귀여운 꽃이 자라고 있단 건, 어른들은 아무도 모를 거야. 그치?’
순진한 미소로 내게 손을 내밀었던 그 아이는,
‘어디서 온 거야? 여기 살아?’
똑같이 어린아이였지만, 그곳에서 멀디 먼 나의 집까지 데려다준 아이는.
‘나중에 또 보자, 그리고, 꼭 비밀이다?’
그이후로는 끝내 만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추억속의 아이.
어쩌면 어린마음에 느꼈던 첫사랑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 아이를 만난 그 기점으로 가족들에게 무시당해온 나로서는,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추억 중에
가장 보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 아직까지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로.
“정말… 고마워…”
의미를 모를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추억하고 싶다. 그때를…
내가 울기 시작하자 당황한 오빠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그때 누군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나 없다고 란이 울리는거야? 정말. 얼마나 내가 없었다고 벌써 울리길 울려? 나없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지?"
그 능글맞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얼마전 나를 찾아온 시라크 일행을 이끌고 칼날을 갈며 영지로 돌아갔던 샤르트 오빠였다.
“오빠! 오빠가 어떻게…!”
“동생이 평생에 한번한다는 성인식을 한다는데, 오빠가 빠질수 있나. 뭐… 떨거지들이 좀 많긴 한데…”
“떨거지…?”
왠지 불안한 마음에 샤르트 오빠의 어깨너머를 살짝 보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한쪽 손을 흔들고 있는… 시라크 외 몇 명이 보인다.
“아하하. 뭐, 오겠다는데 말릴수는 없고…”
“…군기가 덜잡혔구나? 우후후, 그래, 뿌린대로 거두는 게지. 오빠, 만약 내 기대에 못미칠 상태라면…
각오해두라고 전해.“
한참 훈련할 시기에 어딜 밍기적 거리고 오길 와?
앙?
혼날까봐 주눅든 모습이 보이기는 한다만…
어이, 거기. 불쌍하게 웃어도 소용없어.
“근데, 우리말고 다른 손님도 있던 거 같던데?”
“다른… 손님?”
“어. 저쪽 기둥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호라…”
샤르트 오빠가 검지손가락으로 가르킨곳은 연회장을 떠받치는 여러 기둥중 하나였다.
우후후, 왠지 내 눈에는 기둥이 ‘움찔’하는것 처럼보일까?
나는 언제울었냐는듯 사악한 미소를 흘리며 기둥쪽으로 다가갔다.
그래, 아까부터 이게 신경쓰인다 했어.
“아아, 기둥아. 내 성인식이 그렇게 보고싶었니?”
안타까워 하는 척 열연을 하며 한쪽손을 턱 기둥에 얹었다.
그리고는…
“다 알고 있습니다. 셋셀동안 나오세요. 하나. 둘…”
“아하하하! 란, 오늘 정말 아름다운데요?”
“친구가 되었는데… 오지 않는게 실례가 될까봐…”
목소리를 내리깔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자 기둥뒤에 숨겨지지도 않는 커다란 덩치의 장정 두명이
튀어나와 내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한명은 저 능청스러움이 어울리지도 않는 은발에 적안의 남자.
한명은 시니컬한 외모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는 바이올렛의 남자.
이보세요…?
“황자님!!”
“아니뭐, 굳이 오고싶어서 온거라기 보다말이죠…”
“황자씩이나 되는 분들이 이런데를 오면 어떻게 해요?!”
“아니, 뭐 그게…”
“그리고, 누가 오라고 그랬어요?”
말그대로, 이 소문을 흘린 ‘범인’을 묻자, 두 황자는 어울리지도 않게 우물쭈물 하기 시작했다.
시원시원하게 말좀해봐!
“내가 오라 그랬단다. 란아.”
“아버지!”
아버지가 어째서…
“타 귀족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너를 아는, 너를 아껴주는 사람들은 지켜봐야 하지 않겠더냐.
그래서 두분을 내가 모셨다. 힘든 걸음을 하신 분들인데 그렇게 문전박대 하면 되겠니.“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니. 너도 방금 성인이 되었단다. 그러니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겠지?”
“예…”
적어도 공식화 된바로는 우리 집안은 황태자파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이 흘러나가든, 그 집안의 영애의 성인식에 황태자의 정적인,
한명도 아니고 둘 모조리 다 참석했다는 이야기가 퍼진다면 둘의 신상에 결코 좋지는 않을것이다.
솔직하게말해서… 둘이 이곳에 와주어서 고마웠다.
나도 북적거리는 행사를 하고싶었다.
하지만… 왠지 그건 죄짓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내 스스로 거절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제 레이디의 성인식에 참석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뭐, 엘 다워요. 후후후.”
펠로시안황자는 내 말에 대꾸는 없었지만, 좀처럼 짓지않는 그 미소로 나는 충분한 대답을 얻었다.
내가 이렇게 얻은 사소한 모든 행복들이 영원하길 빈다.
제비꽃에 얽힌 그아이처럼 절대로 추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럴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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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연회가 끝나고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단지, 내가 단언한대로 시라크들의 실력을 확인한것이
이벤트였다면 이벤트였을까?
샤르트오빠의 말에 의하면, 진짜로 전쟁에서 깨달은게 있는지
고된 훈련을 군소리 하나없이 잘도 받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고, 냉철한 판단력을 지녔던 시라크는 놀랄 정도로 일취월장 하고있다고.
카뮤엘과 짧은 대련에 그는 패배하기는 했지만,
기대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어서 내 마음을 만족스럽게 해주었다.
“시라크, 대단해졌구나!”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딱딱하게 굴긴. 더더, 정진하셔서 제 호위가 되길 바랍니다. 시라크경?”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레이디.”
그리고,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사실, 리턴된거나, 그중간에 있던 소설이나
예전에 올렸던것들이나 지우면서 가장 아쉽고 힘들었던것은
읽어주신 여러분들이 성의껏 써주신 꼬릿말이 삭제되버린다는거였습니다.
으음.... 모두 다 읽고, 답글까지 달고, 일일이 이름도 기억해두기위해
따로 적어두고도 있지만, 그때 그순간에 모든분들이 느꼇던
그순간의 감정을 쓴 그것은 그때만이 가치가 있는것이니까요.
무튼...... 총 10편을 지우면서도 그리고 그이전에 70편가량을 삭제하고
다시 올리면서도 약간은 착잡한 마음이 들곤했습니다.
그건그렇고, 근 4일만에 돌아온 율입니다.
공지만 땡그렁 올려놓고 ㅌㅌㅌㅌㅌ 했던 저에게 돌을 던져도 저는 할말이 없군요 ㅠㅜ
하아, 간격은 전에비에 확 줄어들었을거에요
되도록 이제는 리턴되는일이 없을거라 '아마도' 생각합니다
그거, 일일이 확인하시고 리턴방으로 옮겨주신 산책님도 매우 수고하셧습니다
그럼 저는 내일 다시 복구하러 올게요 <<
카페 게시글
로맨스판타지소설
[판타지]
엇갈린 운명[Mischief of destiny] ㅡFour·Four
율、
추천 0
조회 164
07.01.13 23:21
댓글 14
다음검색
첫댓글 아아 다 읽었던 내용이라 다 읽지는 않았지만 돌아온걸 축하해요 율님!!얼마나 보고싶었다구요~~
네에, 저도 유천님이 매우 보고싶었습니다 ㅠㅜ ,.... 이 복귀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
리턴 이제 안되게 하시면 되죠 히힛, 언제나 반가운 마음으로 읽고 답글다는 바입니다 ㅇ_ㅇ* 오랜만에 뵈서인지 더 반갑네요 ~
네에~ 저도 언제나 반갑게 리플에리플을 달고있답니다// 저도 반가워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정말 재밌구 담편도 기대요>ㅂ<!
어머머, 안녕하세요~ 이시간에... 정말 감사해요 /ㅅ/
에에, 리턴되기전에 올라와있던 편들 다 읽었었는데....., 다음편 기대해요^^
감사합니다 ㅠㅜ 전부터 읽어주신분이네요, 오늘까지 복구들어가고 다음부터 새로운편 올라가요 'ㅂ'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역시 마지막에 사람이 가장 많은건가요. [긁적]
그러게나말이에요 <<<< 그런거지요... [...]
란이가 기둥을 보고 다 알면서도 연기를 할 때 그때 정말 웃었어요 ㅎ
앗, 훈훈한 장면이지요< 저도 그걸 쓰면서 실실웃었던....[...?]
꺄악~ 저 이거 처음부터 다 읽었어요 오늘 ㅇㅅㅇ. ㅎ 새로 다 올리신거예요?? <- 이제부턴 꼬릿말 꼭꼭 달게요ㅜㅡ ㅋ크 -.,- 다다다다다음편도 기대하고 잇을께요 ㅇㅅㅇ! 건필하세요~~
어머머, 감사합니다~ 예 새로 다올렸지요 ㅠㅜ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