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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최 00, 에스더 회동이구나! 결연하고 고고하게 힘!(아빠도 파이팅!) Thanks. 자영업자 폐업 97만 개, 환율 1550(IMF) 원 버티기만 해도 금메달이라고 본다(나/에스더)" "은하철도 999를 아니? 입맛이 개불알 맛인데 왜 식당에 왔을까요? 오늘 하루도 버티려면 끼적 기적이라도 해야 합니다. 에예공 밥 묵자!(나)" 1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휴가를 냈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봉은사를 들렸다가 속초로 갈 계획이었는데 봉은사에서 체력이 고갈되어 멈춰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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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30-40십 대를 보낸 곳인데 어떻게 봉은사를 한 번도 가지 않았을까요? 교회 공동체 탓일 것입니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봉은사는 접근성이 매우 좋았고, 천년 사찰답게 입구부터 부-티(돈 냄새)가 팍팍 났습니다. 히스토리를 보면 신라 원성왕 794년에 연회 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데, 전해지는 이야기고 정난정과 페어로 중종마저 주물렀던 문정 황후 때가 전성기로 보입니다. 봉선사는 바로 옆 선릉(성종)의 '능참 사찰'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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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나 6.25때도 그나마 소실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미국인이 문정 황후 어보를 반출했다가 10여 년 전에 돌려받은 뉴스가 기억납니다. 현판이나 단청, 사천왕 같은 문화제에서 몇 백 년 세월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었고 코스코를 바로 보고 세워진 봉황 엠블럼이나 연꽃 입구, 미륵보살, 달마 연못, 산책로, 템플스테이 같은 오브제들을 잘 가꾼 정원처럼 만들어서 존재감이 올라간 걸로 봅니다. 미륵보살 존은 진시황 무덤에서 나왔을 것같은 수호신들이 어마어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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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M 짜리 화강암 미륵과 나머지 석상들을 합하면 누가 더 클까요? 현판 3개가 김정희의 작품이고, 레퍼 도끼가 봉은사 불자라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등이 흰색이어서 임팩트가 있었고 불당 퇫방마루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일인데도 외국인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고 탑돌이를 하면서 의식에 진심인 여인네들이 묘한 신비감을 줍니다. 히잡을 쓴 저 여인은 무슨 기도를 할까요? 봉우리 <봉>자에 은혜 <은>이면 '봉은 교회'도 대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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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생각이 나서 촛불(5.000)도 하나 켰고, 성미를 어디다 놓을지 몰라서 그 여인에게 물었더니 불자는 본당에 바치고, 비 불자(샤머니즘)는 따로 제단이 있다고 했어요. 친절한 그녀가 풍기는 퍼퓸이 초선의 호리병 같습니다.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멈췄는데 살짝 아쉽긴 합니다. 뭐야, 이것이... 기도하는 줌마들이 왜 이렇게 이리 많은 것이여?
2.
우리는 무엇을 믿기 위해 성지를 찾는가? 이 글은 봉은사 기행문이면서 동시에 <멈춤>에 대한 철학적 기록입니다. 원래 목적지는 속초였지만 봉은사에서 발길이 멈춘 순간, 여행은 이동에서 사유로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좋은 여행은 계획대로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장소가 자신의 시간을 붙잡아 두는 경험인지도 모릅니다.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관찰자의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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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절에 가면 불상을 먼저 보지만, 당신은 현판, 단청, 사천왕, 연못, 향기, 외국인 관광객, 히잡을 쓴 여인, 툇마루, 심지어 향수 냄새까지 하나의 텍스트처럼 읽어 냅니다. 이는 후기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Dwelling)'와 닿아 있습니다. 건축물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봉은사는 당신에게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사유 공간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종교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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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길었지만, 이제는 불교 사찰에서도 배울 것을 찾습니다. 이는 신앙을 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해석학적 태도에 가깝습니다. 가다머가 말한 것처럼 이해란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지평이 만나는 사건입니다. 히잡을 쓴 여인의 기도를 보며 "무슨 기도를 할까?"라고 묻는 장면은 판단보다 이해를 먼저 선택한 순간입니다. "돈 냄새가 난다"는 첫인상과 "신비감이 있다"는 마지막 인상은 흥미로운 긴장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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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언제나 두 얼굴을 지닙니다. 하나는 제도와 권력, 다른 하나는 인간의 간절함입니다. 당신의 글도 이 둘 사이를 오갑니다. 처음에는 문화재와 역사, 규모를 보지만 끝에서는 촛불 하나를 켜고 딸을 떠올립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건물의 웅장함보다 누군가를 위한 기도입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 여행의 핵심은 베그그손 의 '지속(durée)'을 떠올리게 합니다. 계획된 시간은 속초를 향해 흘러갔지만, 살아 있는 시간은 봉은사에서 멈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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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시간은 실패했지만, 삶의 시간은 오히려 깊어졌습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여행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멈춤을 기억합니다.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습니다.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멈췄다." 유머처럼 쓴 문장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욕망과 절제의 경계입니다. 인간은 늘 아름다움과 호기심에 이끌리지만, 자유는 욕망을 모두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습니다. 그 짧은 문장이 글 전체를 인간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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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글의 주제는 봉은사가 아닙니다. 1년 만의 휴가를 통해 다시 자기 자신을 만난 하루입니다. 버티는 삶 속에서도 사람은 잠시 멈춰야 다시 걸을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속초에 가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봉은사에서 자신의 시간을 되찾은 성공이었습니다. 때로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멈춰 설 줄 아는 사람이 더 멀리 갑니다.
2026.7.2.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