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가스검침원이 떠나고 난 후 — 언제부터인가 젊은 아줌마로 바뀌었다 — 카페 휴앤안은 평정을 되찾았다. 거의 1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던 것이, 엊저녁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는데, 그것은 영락없이 새로운 라이벌의 등장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였다. 화장실 쪽에 서, 너 명이 모여 무슨 작업을 하는지 시끌시끌하였다. 영어도 들려왔다. 작업자들이 떠나고 난 후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누가 와서, 카페 한 구석에 어항을 설치해주었다는 것이다. 무료로 말이다. 그 사람은 단골이란다. 나는 경계심을 가지고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피라미보다도 작고 흔해빠진 물고기 몇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도 안다. 캠퍼스에서 몇 번 보았다. 외국인 교수다. 영어를 쓴다는 것까지는 아는데, 그 이상은 모른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게 내 습성이니까.
영화나 소설에 보면, 주인공은 항상 삐딱한 사람으로 나온다. 직업이 경찰이건, 교사건, 일반 회사원이건,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의가 없으며 무식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인간미가 있을 뿐 아니라 아주 훌륭한 사람인 것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계속 적응못하고 예의없으며 무식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에 대비되는 조연의 인물이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하게 되어있다. 매사에 모범적이지만 관객이나 독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나는 공연히 찔끔하여, 이 인물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이다.
벌써 10여년 전 일이지만 외국인 교수 한 사람과 인사를 하면서 지낸 적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저녁 시간, 삼례역에서 기차를 내리려는데, 내 또래의 외국인이 보였다. 그는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신, 우석대 교수 아니냐? 나도 우석대 교수다. 내가 당신 비 맞지 않게 해주겠다. 오케이? 오케이. 나는 그를 내 차에 태우고 그의 아파트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리고는 마주칠 때마다 헬로우하면서 인사를 하고 지냈다. 특히 삼례 수영장에서 자주 마주쳤다. 한번은 그가 “컨택트 미”라고 하기에 “연락 좀 하지그래”라는 말로 듣고 “아이 윌”이라고 대답했으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나와 통하는 데가 아주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수영애호가였으며, 철학자에, 기타연주자였다. 학교에서는 호텔경영학과에 소속되어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지만, 자기 전공은 철학이라고 말했으며, 고대 희랍 철학과 근대 독일 철학을 주로 공부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블루스 기타 연주자라고 말하면서 그 외에 락이나 칸추리, 포크도 한다고 말하였다.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가 이태원의 클럽에서 친구들과 연주를 한단다. 호텔경영학과 사람들 말로는, 학과 MT를 할 때면 기타를 가지고 와서 치는데, 아마추어급은 훌쩍 넘는다. 그의 철학에 대해서는 평가하는 말을 들은 바가 없다. 캐나다인이고 이름은 대이빗.
내가 교환교수로 1년을 떠나있다가 돌아와 보니 데이빗은 떠나고 없었다. 학교와의 계약 조건이 어떠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삼례에, 혹은 이태원에 오래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이미 세계의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도 대화를 할 사람은 만날 수 있으며 같이 연주를 할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단다. 영어회화를 가르칠 수 있으니 굶어죽지는 않는다고도 말하였다.
하루는, 수영장에서 그가 나를 보고 “굿 핏”, 즉 “너 몸 좋다”고 말하여서 나도 답례를 하려고 하였는데, 차마 “너도 몸 좋은데 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나는 그냥 “땡큐”라고만 하였다. 그의 수영은 개울이나 바다에서 배운 동네 수영이다. 그는 그런 수영으로 상급반이나 심지어 연수반의 레인을 유유히 헤쳐나가, 제대로 강습을 받은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나는 수영을 불필요하게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몸이 불필요하게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자동차도, 아파트도...... 그는 자동차도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주로 학생들이 자취를 하는, 작은 평수의 낡은 아파트였다. 결혼을 한 적이 있지만 이혼한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지금쯤 그는 치앙마이나 코타 키나발루의 카페에서, 혹은 류블랴나나 프리토리아의 제즈바에서, 그곳에서 새로 사귄 사람들과 브루스를 연주하고 있을지 모른다. 운 좋으면 그곳의 대학에서 영어회화가 아닌 3학점짜리 철학강좌를 하나 맡았을지도 모르고.
세상은 바람불고 고달프다거나, 떠돌다 떠돌다 어느 하늘 아래 잠든다거나 하는 노래가 있지만, 나는 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없는지 모른다. 제대 무렵이 되면 다들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일부는 군에 말뚝을 박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지만, 나는 아무 고민이 없었다. 학교를 졸업할 때도 그랬다. 그냥 복학을 하면 되었고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람없는 온실에서 살았으며, 나에게는 항상 가야만 할 곳이 있었다. 교환교수로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알라바마는 객지로 느껴졌으며 그저 빨리 내가 있었던 곳으로, 그곳이 내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인 듯, 돌아가고 싶었다. 인도 여행자 유시화는 한국의 단체여행객들을 비꼬아, 그들은, 바가지 쓰지 않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듯, 심지어 기념품 같은 것을 한푼이라도 싸게 사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듯 처신한다고 말하였는데, 나는 인생을 한국의 단체여행객들처럼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런 우연이 있나. 나는 지금 카페 휴앤안의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아 공책에 연필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잠시 전에 아까 말한 그 외국인 교수, 즉 엊저녁에 어항을 설치해준 그 사람이 들어왔다. 지금 그는 노트북을 꺼내놓고 무슨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전의 가스검침원은 이곳에 들르는 시간대가 나와 같았다면, 이 사람은 나와 달랐던 모양이다. 일요일 이 시간에 이곳에 나온 것은 나로서는 거의 처음이다.) 그는 대머리를 보이며 나에게 등을 진 채 출입구 쪽에 앉아있다. 나는 글을 다 썼고 커피도 다 마셨으므로 이제 이곳을 나갈 참이다. 나는 커피 쟁반을 카운터에 반납하고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한 후 출입구 쪽으로 걸어갈 것이다. 나는 그의 앞을 지나가게 되어있다. 그의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그의 얼굴을 흘낏 볼 참이다. 아, 이 때 그는 나를 쳐다볼까? 나를 쳐다보고 목례라도 할까? 만약 그가 그렇게 나오면, 나는 “하우 아 유”라고 하면서 아는 채를 해야 할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앞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끝)
첫댓글 우선 휴엔안의 새로운 라이벌인 반짝반짝 대머리 아저씨의 어항 위세에 안 쫄아도 될 듯...ㅋ
조영남이가 노래는 참 디럽게 잘 불러.. 게 중 모란동백이 돋보이는디..데이빗이 주인공??
유시화 시인의 단체여행객 발언, 참 예리하다.. 데이빗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네~
훌훌 어디 자유롭게 여행이라도 가고 싶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