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herb)는 ‘향이 나는 푸른 풀’이다. 동양에서는 주로 나물로, 서양에서는 샐러드용 채소로 이용한다. 약용(藥用) 허브는 아주 오래전부터 약 대신 이용됐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을 약처럼 먹고, 약을 음식처럼 먹으라”고 했다.
생활 주변에 널려있는 허브가 훌륭한 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동양에도 식약동원(食藥同源)의 전통이 있다. 허브는 동양에서 생약으로 통한다. 한약은 녹용ㆍ웅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허브’라고 볼 수 있다. 약용 허브는 차ㆍ탕ㆍ습포ㆍ목욕ㆍ공기 흡입 등 다양한 형태로 사용된다.
냉이ㆍ달래ㆍ씀바귀ㆍ질경이 등은 나물로 먹는 허브다. 민들레ㆍ치커리 같은 허브는 샐러드에 들어간다. 뿌리를 요리에 사용하는 펜넬도 허브의 일종이다. 파ㆍ마늘ㆍ파슬리ㆍ월계수 잎처럼 향신료로 이용되는 허브도 있다. 연꽃ㆍ카네이션 등은 눈으로 감상하는 관상용 허브들이다. 허브 중에는 독초도 있다. 폭스글로브ㆍ아마릴리스ㆍ샤프란 등은 독을 지녔다. 허브의 일종인 양귀비ㆍ코카 등은 마약으로 분류된다.
허브가 ‘자연산(natural)’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치료 목적으로 허브를 사용하려면 해당 허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미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ㆍ의료 정보 사이트 ‘웹엠디(www.webmd.com)’에서 선정한 ‘베스트 약용 허브’들을 알아보자.
◆소염진통제 강황=강황은 심황이라고도 하며 카레의 주성분으로 유명하다. 강황은 통증을 완화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강황에 풍부한 커큐민은 강력한 소염 작용을 한다. 따라서 관절염 환자에게 강황이 괜찮은 진통ㆍ소염제가 될 수 있다. 커큐민은 통증ㆍ부종을 유발하는 COX-2 효소를 억제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은 커큐민 480㎎과 양파ㆍ양배추ㆍ사과 등에 풍부한 항산화 성분 쿼세틴 20㎎을 하루 세 번 꾸준히 섭취하면 대장의 폴립(용종) 크기가 줄어들어 대장암 발생 위험이 감소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카레를 즐겨 먹는 인도인은 대장암 발생률이 현저히 낮다. 이는 강황의 커큐민 효과일 수 있다.
커큐민이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 예방을 돕는다는 미국 UCLA대학팀의 연구결과도 나왔다. 인도인의 알츠하이머병 유병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강황은 위(胃)에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평소 위가 약한 사람은 과다 섭취를 피해야 한다. 인도에는 위산과다 등 위장병 환자가 많다.
◆혈당을 낮추는 육계피=서양요리에서 시나몬(cinnamon)이라 부르는 것이 육계피다. 우리나라에서 수정과나 한과 재료로 사용하며 보통 계피라 부른다. 서양에서는 계피를 ‘중국 시나몬’이라 부른다. 육계피 추출물을 하루 1g씩 꾸준히 섭취하면 2형(성인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이 10%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독일에서 나왔다. 육계피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는 데도 유용하다.
◆발암물질 없애는 로즈마리=고기를 불로 굽거나 기름에 튀길 때 HCA라는 발암물질이 생긴다. “고기의 탄 부위는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래서다. 미국 캔자스대학 연구진은 쇠고기를 요리하기 전에 로즈마리 추출 분말을 섞으면 HCA가 현저히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로즈마리에 함유된 항산화 성분이 HCA의 생성을 억제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추론이다. 로즈마리 외에 마늘ㆍ양파ㆍ파슬리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향신료를 조리에 함께 사용하면 HCA 생성량은 더욱 감소한다.
◆소문난 멀미약 생강=임신ㆍ멀미ㆍ항암 치료 등으로 속이 심하게 울렁거릴 때 생강이 효과 만점이다. 크루즈 배에서 4시간마다 생강 캡슐(500㎎)을 섭취하면 멀미약(드라마민)을 복용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는다. 생강은 혈압을 낮추고 관절염 통증을 덜어주며 암을 예방하는 데도 유용하다. 멀미 예방을 위해 생강을 먹을 땐 적어도 출발 30분 전에 섭취해야 한다. 4시간마다 먹되 하루 4g을 초과하는 것은 피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 장애를 부를 수 있어서다.
◆소화불량 두통에 홀리바실=홀리바실(Holy basil)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에게 권하는 허브다. 일부 동물 실험에서 홀리바실이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양 가정에서는 소화불량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가족에게 홀리바실 잎을 넣어 끓인 차를 마시게 한다. 홀리바실 차가 유방암의 전이를 억제한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다.
◆불안을 덜어주는 성 요한초=성 요한초(St. John’s wort)는 우울증 치료제다. 가벼운 우울증이나 우울감ㆍ불안치유에 효과가 있다. 그래서 별명이 ‘자연의 프로작(Prozac, 유명한 우울증 치료제)’이다. 잘게 썬 성 요한초를 끓는 물에 5∼10분 우려낸 후 마시면 기분이 나아진다. 성 요한초는 밤에 숙면을 취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수면ㆍ각성 주기를 관장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피부염ㆍ가려움증ㆍ두통ㆍ피로ㆍ식욕부진 등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다. 성 요한초를 우울증 치료약과 함께 섭취하는 것은 금물이다. 효능이 비슷한 약과 허브 또는 건강기능식품을 동시에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암 예방에 탁월한 마늘=중국에서 연구된 결과를 보면 마늘을 연간 1.5㎏씩 먹는 사람은 거의 먹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암에 걸릴 위험이 50%나 낮다. 마늘은 혈액 순환도 돕는다. 성질이 뜨거운 마늘은 몸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해주고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내려준다.
이런 이유로 손발이 찬 사람에게 마늘을 추천하는 것이다, 마늘즙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심장병ㆍ뇌졸중ㆍ암 예방을 위해서는 하루 5쪽 가량의 신선한 마늘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감기·호흡기 질환에 천심련=천심련(andrographis)은 우리에게 생소한 허브로 인도인이 많이 먹는다. ‘파이토메디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감기로 인한 피로감ㆍ불면ㆍ목통증ㆍ콧물 증세를 최고 90%까지 줄여준다. 인도 뱅골 지방에서는 아이가 배가 아플 때 천심련 잎으로 만든 약을 먹인다.
천심련은 ‘서유기’에도 등장한다. 삼장법사가 제자들과 함께 서역으로 가던 중 반도 강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저팔계가 설익은 복숭아를 배 터지게 먹은 후 위장에 단단히 탈이 났다. 손오공이 천심련을 구해와 3일을 달여 먹였더니 다 나았다는 옛 이야기다.
◆애주가에게 유익한 칡=칡은 술을 덜 마시게 하고 주독(酒毒)을 풀어준다. 애주가에게 칡 추출물을 하루 500㎎씩 1주일간 제공했더니 술(맥주) 소비량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미국에서 나왔다. “이제 그만 마셔도 충분해”라는 명령을 뇌가 빨리 내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방에서도 칡뿌리(갈근)와 갈근차를 주당(酒黨)에게 권한다.
◆기관지염에 좋은 스페인 감초=스페인 감초(licorice)는 서양에서 감기약 대신 사용된다. ‘약방의 감초’라는 속담에 등장하는 감초와 스페인 감초는 ‘사촌’ 간이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스페인 감초는 기관지염ㆍ기침ㆍ가래 치료에 쓰였다. 하지만 4주 이상 매일 복용하거나 하루에 세잔 이상 마시면 심장ㆍ신장에 부담을 주고 혈압을 올릴 수 있다.
◆자연의 수면제 쥐오줌풀=쥐오줌풀(valerian)은 인류 최초의 신경안정제다. 잘게 썬 쥐오줌풀의 말린 뿌리 10∼25g을 끓인 물 1ℓ에 30분 쯤 담가 놓았다가 잠들기 한 시간 전에 마시면 불면증에 효과를 볼 수 있다. 불안ㆍ공포ㆍ긴장ㆍ신경성 소화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에게도 쥐오줌풀을 추천한다. 집중력을 높이는 데도 유효하다. 수면제와 달리 부작용ㆍ금단 증상 등이 거의 없는 것이 장점이다. 캐모마일ㆍ라벤더ㆍ호프ㆍ레몬밤ㆍ패션플라워 등도 숙면ㆍ진정 효과가 있는 허브들이다.
◆심신 진정 효과 캐모마일=캐모마일(chamomile)은 ‘식물 의사’라는 별명이 있다. 심신의 균형을 되찾게 하고 신경을 진정ㆍ안정시킨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잇몸 건강도 돕는다. 서양인들이 양치질할 때 캐모마일이나 타임 차로 입을 헹구는 것은 이래서다.
캐모마일 꽃 2 찻숟갈(6g)을 끓는 물(약 150㎖)에 붓고 뚜껑을 덮은 뒤 15분 쯤 우려내 마시면 밤새 부은 잇몸이 가라앉고 목통증도 완화된다. 캐모마일은 피부를 부드럽고 윤기 있게 만드는 데도 유익하다. 그릇에 올리브유 60㎖와 마른 캐모마일 1 큰 숟갈을 넣은 뒤 2∼3주간 가끔 흔들어주면 캐모마일 액(液)이 만들어진다. 세안ㆍ피부 손질ㆍ목욕 후에 이 ‘허브 화장품’을 바디로션 대신 사용하면 좋다.
◆편두통 치료제 화란국화=화란국화(fever few)는 여성에게 흔한 편두통 치료를 돕는다. 화란국화에 함유된 성분이 염증을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젊은 여성의 가벼운 히스테리 치료에도 사용했다. 1 찻숟갈의 화란국화 잎(또는 꽃)에 뜨거운 물 150㎖를 넣고 3분간 우려낸 후 뜨거운 상태에서 하루 세잔 가량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 류머티스성 질환ㆍ알레르기ㆍ생리 불순 등의 치유에도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을 위한 허브 블랙코호시와 신선초=19세기 유럽에서는 블랙 코호시(Black cohosh, 승마)와 신선초(angelica)를 갱년기 장애가 심한 여성에게 권했다. 실제 두 허브에는 폐경 이후 분비가 거의 중단되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성분이 들어 있다. 블랙 코호시는 지금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불안ㆍ우울감을 호소하는 갱년기 증상 완화에 사용된다. 생리불순과 생리통을 덜어주는 데도 효과가 있다.
◆남성을 위한 허브 톱야자=톱야자(Saw palmetto)는 중ㆍ노년 남성에게 흔한 전립선 비대증을 완화해 소변을 잘 볼 수 있도록 한다. 방광을 잘 비워주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전립선이 병적으로 커진 남성 10명 중 9명에게 톱야자가 처방된다.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허브의 특징
▶약초로 이용된다.
▶대부분 향기가 난다. - 장미ㆍ백합ㆍ제라늄 등
▶ 나물ㆍ채소로 이용한다. - 민들레ㆍ치커리ㆍ양파ㆍ냉이ㆍ질경이 등
▶ 관상용 식물로 활용된다. - 연꽃ㆍ카네이션 등
▶조심해야 할 독초도 있다. - 폭스글로브ㆍ아마릴리스 등
▶잡초도 있다 - 민들레ㆍ달맞이꽃ㆍ속새ㆍ질경이 등
▶국내산도 많다. - 민들레ㆍ쑥ㆍ달맞이꽃ㆍ인삼 등
▶향신료ㆍ양념으로 쓰인다. - 파ㆍ파슬리ㆍ월계수 잎ㆍ마늘 등
▶마약으로 분류되는 것도 있다. -양귀비ㆍ코카 등
▶ 꽃ㆍ껍질ㆍ열매ㆍ뿌리 등도 포함된다. - 마조람ㆍ파슬리ㆍ바질ㆍ페퍼민트ㆍ라벤더ㆍ캐모마일ㆍ떡갈나무 등
◆주요 허브의 효과와 부작용
▶ 마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낮춤. 항균·항암 효과. 위장 장애ㆍ혈액 응고 장애 등 부작용 유발 가능.
▶ 생강: 위(胃) 진정 작용. 임산부의 메스꺼움ㆍ멀미 증세 개선. 많은 양을 섭취하면 위장 장애 유발 가능.
▶ 인삼: 혈압 조절. 혈당 감소. 비만 개선. 일부에게 불면 유발 가능. 심혈관 질환자는 조심해서 사용.
▶ 녹차: 항산화 효과 지닌 폴리페놀 함유. 콜레스테롤 수치 낮춤. 혈소판 응집 감소. 혈당 조절 도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어 불면증 유발 가능.
▶ 은행잎: 치매 위험 낮춤. 두통ㆍ어지럼증 등 부작용 유발 가능.
▶ 톱야자: 양성 전립선비대증 증상 개선. 과도하게 섭취하면 설사 유발 가능. 유방암 환자ㆍ임산부에게는 금물.
▶ 가새풀: 면역계 자극. 항암제 치료의 부작용을 줄여줌. 자가 면역질환이나 임산부는 사용 금지. 6주 이하 섭취 권장. 장기 섭취하면 효과 감소.
▶ 알로에: 면역계 자극. 피부 질환 치유. 항균 효과. 설사ㆍ외과 수술ㆍ복부 팽만이 있는 사람에게 사용하면 치유 지연.
▶미슬토(겨우살이): 당뇨병 환자에 유용. 항암 효과.
▶ 성 요한초: 우울증 치료에 효과. 식욕 부진ㆍ피로 등 부작용 유발 가능. 고용량을 섭취하면 햇볕 과민성 유발 가능.
▶ 밀크 시슬: 간질환 개선. 일시적인 가벼운 설사 등 부작용 유발 가능.
▶ 차전자피(껍질):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낮춤. 변비 예방, 혈당 조절에 유익. 충분한 물과 함께 섭취해야 함. 임산부ㆍ장(腸)폐색 환자ㆍ당뇨병 환자는 조심해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