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공연예술의 산업화는 가능한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김 승 국
예술적 표현과 행위가 향유의 개념을 넘어, 산업으로서 이윤을 창출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을 ‘문화예술산업’이라고 한다. 전 세계 문화예술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는 공연기업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를 들 수 있다.
세계적인 공연기업으로 성장한 <태양의 서커스>는 불과 30년 전인 1984년에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북부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곡예자인 기 랄리베르테(Guy Laliberte)가 이끄는 12명의 길거리 공연자들의 집단으로 출발하였다.
기 랄리베르테가 이끄는 초기 <태양의 서커스>단원들은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죽마를 타고, 저글링을 하고 춤추고, 입으로 불을 뿜기도 하며 음악을 연주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치 그 모습은 우리나라의 유랑예인집단 남사당패와 유사하였다.
그 당시에는 <태양의 서커스>가 ‘머니 프린팅 컴퍼니(money printing company)’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불루 오션 전략의 대명사로서 세계 공연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이 출발한 몬트리올 북부지역의 작은 마을은 악취와 가스가 가득한 화학 쓰레기를 매립하던 지역이었는데 그 지역을 주민들의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한 무용가의 제안이 받아드려져 지방정부와 주민들이 협력하여 문화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1959년 퀘벡 주에서 태어난 기 랄리베르테는 “피카소가 법무부의 승인을 받고 <게르니카>를 그리지는 않았다.” 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거리축제에서 발굴한 공연자들을 훈련시켜 <태양의 서커스>를 창립하였다.
또한 그는 대단한 통찰력을 가진 공연기획자이자 사업가로서 기존의 전통적인 서커스에 극적인 요소, 의상, 라이브 음악, 조명 등을 조화시켜 완벽한 구성과 예술적 표현으로 기존의 서커스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 올림은 물론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혁신적인 공연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오늘날의 세계적인 <태양의 서커스>를 만들어 내었다.
<태양의 서커스>는 세계 각국의 신화나 민속놀이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한국의 민속놀이인 ‘널뛰기’도 그들의 작품 소재가 된 적이 있다. 그들은 해마다 상상을 뛰어 넘는 대작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환상적인 아크로바틱과 3D를 접목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만도 17만 관객의 흥행 신화를 이끈 2007년 ‘퀴담’과 2008년 ‘알레그리아’ 2011년 ‘바레카이’와 2012년 ‘마이클 잭슨 디 임모털 월드투어’는 너무나 익숙한 그들의 작품이다.
<태양의 서커스> 단원들의 연기력은 한 치의 실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며 예술적 수준도 세계 정상급으로 손색이 전혀 없다. 그들은 공연 퀄리티의 완벽성을 지키기 위하여 작품에 대한 라이센스나 복제를 하지 않으며 각 공연 마다 한 액트를 담당하는 연기자도 한 명 뿐이며 더블 캐스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태양의 서커스> 창립 후 기 랄리베르테의 대담한 통찰력이 적중하여 공연은 성공의 성공을 거듭하여 2004년에는 인터브랜드가 시행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 조사에서 22위로 선정됐으며 지금은 현재 1,200여명 정도의 공연자들을 포함, 5,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려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 구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간매출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가 넘는 글로벌 공연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태양의 서커스>는 창립 후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해 세계 5대륙의 300개 도시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연인원 1억만 이상의 관람객이 찬탄과 열광 속에서 그들의 공연을 지켜보았으며 설립자 기 랄리베르테는 현재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500대 갑부가 되었다.
<태양의 서커스>의 ‘퀴담’, ‘알레그리아’, ‘바레카이’, ‘마이클 잭슨 디 임모털 월드투어’에 대적할 만한 한국의 대표적 문화브랜드 상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없다. 그와 같은 고수익성의 공연예술 작품은 아직 없다. 그나마 우리의 대표적 공연예술 상품으로 ‘김덕수 사물놀이’, ‘난타’, ‘점프’, ‘뮤지컬 명성황후’ 등이 있을 뿐인데 <태양의 서커스>가 보유하고 있는 공연상품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풍물을 모체로 재창조된 작품인 ‘사물놀이’는 우리 전통예술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대한민국의 대표적 문화브랜드 상품이다. 그러나 김덕수가 운영하고 있는 예술단 <사물놀이 한울림>은 ‘사물놀이’가 탄생한지 40년이 가까워 오는데 전용극장 하나 없이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어 씁쓸한 우리 공연예술계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사물놀이’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또 하나의 대표적 문화상품인 ‘난타’가 전용극장을 통한 상설공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난타’ 이외에도 ‘점프’ 등 우수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어서, 공연예술산업의 모범적 성공 사례로 꼽을 만하나 그 이상의 경쟁력을 갖춘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나와야한다.
<태양의 서커스>는 30년 전 불과 200년의 역사의 캐나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출발하였다. 몇 백 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진 캐나다의 한 공연기업이 성공적 문화예술상품을 만들어 내는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다양하고 풍부하며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유산을 가진 우리나라가 <태양의 서커스> 같은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국가나 대기업에서 관심을 갖고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면 얼마든지 단기간 내에 그들을 능가하는 대기업 수준의 공연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공연예술작품이 세계문화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서구 문화와 차별화된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전통적 원형질의 토대 위에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서구 공연예술의 구성과 방식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아류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우며 우리의 전통예술 속에서 소재를 찾아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재창조하여야 한다. 그를 위한 안정적 기반을 조성하는 데는 국가와 대기업 모두 보다 많은 관심과 집중적 투자가 따라야한다.
조선조까지 우리의 공연예술사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은 민간 전통연희였다. 민간 전통연희는 주로 민중들에 의하여 면면히 이어져 온 전통예술로서 풍물(농악), 가면극(탈춤), 무속, 남사당 등 전통예인집단의 예능(줄타기, 버나, 재주넘기, 솟대타기 등의 곡예적 요소)을 통칭하며 악가무극 일체의 통합적, 총체적 예술이면서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훌륭한 예술이다.
중국영화 ‘패왕별희’는 작품 전체를 중국의 전통연희극인 경극의 미감 안에서 진행시킨 작품으로, 경극의 강렬한 인상을 널리 전한 바 있다. 여러 해 전에 상영된 영화 ‘왕의 남자’ 또한 전통연희에 대한 인식을 상당히 제고시켰으며, 줄타기․재주넘기․소리․탈춤 등 전통연희의 요소들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하게 하였다.
원래 민중들에 의하여 면면히 계승된 우리 전통예술의 본 모습은 무대와 객석의 구별 없이 함께 어우러져 벌이는 흥과 멋을 지니고 있다. 점잔을 떨며 숨죽이고 무대를 주시하는 서구의 공연예술과는 달리 객석과 무대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음악과 노래와 춤이 일체화된 연희 중심의 예술이다.
그러나 해방 후 오늘날까지 국악계는 가·무·악 일체의 전통연희 공연방식을 뒷방으로 보내고, 기악과 성악, 그리고 춤이 각각 독립되어 연행하는 서구식 공연방식을 모방한 결과 전통공연예술은 무대와 객석이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따분한 예술로 전락해버렸다.
충분하지는 않았으나 국악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60년전 ‘국립국악원’이 들어선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지금은 남원의 민속국악원, 진도의 남도국악원, 부산국악원 등 지역 분원이 들어섰으며, 국악전문교육기관으로서 중고등학교 과정인 국립국악중고등학교와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대학과정으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이 운영되고 있어 인재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의 진흥과 지원을 위하여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고, 수많은 국공립 국악관현악단이 창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또한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하여 국악방송이 설립 운영되고 있고 국가가 주도하는 문화예술지원사업에 있어 전통예술분야에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타 예술장르에 비해 국악분야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많았으나 투자에 비하여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산업화와 세계화의 임무까지 수행하기에는 자생 기반이 건강하지 못하다.
공연예술계의 세계적인 추세는 단편적 기능의 연주가보다는 종합적 재능을 가진 공연예술가들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단일 장르보다는 탈 장르의 총체적 융복합 공연예술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전통공연예술계를 들여다보면 종합적 재능을 가진 공연예술가 뿐 아니라, 그를 뒷받침하여 산업화로 이끌어낼 제작․기획․마케팅․무대․연출 분야의 전문가들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체계적 전문 인력양성의 기반도 허약하다. 또한 전통공연예술의 유통구조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못한 것도 문제이다.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제는 문화예술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과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21세기는 국가 간의 경쟁체제가 무기나 전쟁을 통한 힘의 원리가 아닌 문화의 경쟁력에 따른 경쟁체제’에 들어섰음을 인지하여 변화하고 있다. 더구나 물적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에 주목해야 함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