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곱게 핀 이 가을 어느 들길을 걸을 때 꽃처럼 환하게 웃는 소녀가 곧 달려나올 것만 같다.
11 코스모스 (오광수·시인, 1953-) 저 길로 오실 게야 분명 저 길로 오실 게야 길섶에 함초롬한 기다림입니다
보고픔으로 달빛을 하얗게 태우고 그리움은 하늘 가득 물빛이 되어도 바램을 이룰 수 만 있다면,
가냘픔엔 이슬 한 방울도 짐이 되는데, 밤새워 기다림도 부족하신지 찾아온 아침 햇살에 등 기대어 서 있습니다
12 코스모스 (조정권·시인)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高士慕師)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을 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꽃이옵니다.
1 3 코스모스 .(최광림·시인) 누가 저 가녀린 목덜미께로 하현달 한 토막쯤 걸어놓았나
홍역 앓던 막내 놈 불질하던 열꽃을 바람 놈이 사알짝 얹혀 논 게야
역마살로 떠돌던 햇볕 한 조각 손톱 끝에 아려오던 생살 저린 그리움도 상심한 이 계절에 꽃물 들어 내리었거니
가슴 속 깊디깊은 가장자리에 비밀한 연서 한 쪽 색실 고운 명주실로 엮어 올릴까,
속삭임도 공해란다 붉은 입술 파르르 그 속에 내가 앉아 너를 보는 오늘은
14 코스모스 (이춘우·시인, 경북 영덕 출생) 어릴 적 코스모스는 내 키보다 더 컸다
어머니 닮은 코스모스 삽짝에 서서 날 반겨주고 떠나올 때도 손짓으로 나를 보냈다 ˝잘 살아야 한데이˝ 어머니의 걱정에 눈시울 뜨거워지고 나는 어느새 코스모스 키를 훌쩍 넘어섰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코스모스는 울어머니꽃 해마다 코스모스 필 때 어머니도 거기 서 계실지.
15 칠월의 코스모스 (김경숙·시인) 가을까지 기다리기엔 그리움이 너무 깊어
뜨거운 태양의 시선도 뒤로 한 채
솟구치는 열정 끌어안은 칠월의 코스모스
가녀린 목 길게 드리운 곱디고운 미소는
우주를 껴안고도 남을 사랑아
16 코스모스 (유창섭·시인) 모든 것 휩쓸려 내려간 척박한 땅, 가뭄도, 홍수도, 태풍에도, 끄떡없이 반쯤 뿌리 뽑혀 누운 허리 굽은 몸으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먼 산 너머로 눈길을 보낸다
하마 소식 한 줄 있을지 몰라 삶은 온통 기다림의 세월이라는 걸 겨우겨우 깨닫고 나서야 산 그림자 따라 나서는 가을 햇살에도, 아무도 없는 들길 어쩌다 만나 마주치는 눈길에도, 날려보내는 향
가장 낮은 바람에도 허리를 굽혀 흔들리는 마음
17 코스모스 (정연복, 1957-) 코스모스처럼 명랑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순하게
코스모스처럼 다정다감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아(端雅)하게
코스모스처럼 가볍게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코스모스처럼 꺾일 듯 꺾이지 않으며!
18 코스모스 (정연복·시인, 1957-) 국화과에 속한 한해살이풀 꽃말은
순정(純情)
그러니까 너는 단 한 해를 살면서도
순수한 감정의 꽃 하나로 피고 지는 거지
단순하면서도 깊은 한 생(生) 살다 가는 거지.
씽씽 불어오는 바람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아픔도 괴로움도 안으로 고이 감추고
길고 가느다란 몸 살랑살랑 춤추는
티없이 밝은
성격의 명랑한 아가씨.
신(神)의 맨 처음 습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더 정답게 느껴지는 동구(洞口)
밖 사랑의 파수꾼.
19 코스모스 (안희선·시인) 다소곳한 얼굴 속눈썹 드리운 가슴은
오래 전에 일렁이는 그리움
21 코스모스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이규리·시인, 1955-) 몸이 가느다란 것은
어디에 마음을 숨기나 실핏줄 같은 이파리로 아무리 작게 웃어도 들키고 만다 오장육부가 꽃이라, 기척만 내도 온
체중이 흔들리는 저 가문의 내력은 허약하지만 잘 보라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도 똑같은 동작은 한 번도 되풀이 않는다
코스모스의 중심은 흔들림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중심, 중심이 없었으면 그 역시 몰랐을 흔들림,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이 저보다 더 무거운 걸 숨기고 있다
22 코스모스
연가 (황라현·시인, 전남 해남 출생)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 성급하게 몸을 열어주지 못했어요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기만 하고 지나가는 신작로에
자리잡고서 날 매만져 주고 가꾸어 주지 않아도 깊게 뿌리 내리지요
가을 햇살과 벗하고 싶어 발돋움 하다가 가녀린
몸매에 키만 컸어요
알몸으로도 바람을 껴안을 수 있고 옅은 향기로도 마음껏 폼을 내며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스치는 차들이 심술로 뿜어내는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그대 다니는 길에 순정으로 꽃길
밝히어요
23 코스모스에 바침 (홍수희·시인) 그 어디 한(恨)서린 혼령들 있어 외로운
들녘 눈물처럼 무리져 피어났는가
가도 가도 저만치서 손을 흔드는 베일을 휘감은 비밀의 전설
오늘은
그대 떠나보내고 내일은 또 너희 누굴 위하여 가지마다 여윈 손 흔들어 주어야 하나
어느 서럽고 야속한 땅에
그리운 한 목숨 그렇게 있어 저절로 붉게 붉게 울어야 하나
꺾지 못할 질긴 모가지, 차마 이승을 뜨지 못한
듯 빗물만 그렇게 마시고 선 듯
그 어디 한(恨) 많은 혼령들 있어 소낙비 스쳐간 들녘 눈물처럼 통곡처럼
피어났는가
24 코스모스 (류정숙·시인) 여덟 꽃잎의 무게를 가누기에도 힘겨워 가는 허리는 벌스럽다
미풍 한 자락에도 흔들려야 하는 외다리 발돋움은 서러웠다
잠시 벗하던 머리에 인
구름 한 자락 떠나가면 와줄 이 없는 길목 지키고 서서 먼 계절 思鄕譜를 꽃으로 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