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을 읽는 노인과 문제가 많은 수요일, 11월 15일
내가 “문제가 없는 화요일”이라고 불렀던 그 날은 지난 여름의 한 날, 찾아보니, 7월 4일이었다. 그 날 나는, 누가 자꾸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기도 하였고(인간관계의 문제), 베란다 안쪽으로 빗물이 흘러들어오기도 하였지만(보통의 문제), 어찌어찌하여 모두 해결이 되었고, 나는 다시 편안해졌다고 썼다. 잘난체한 것이지. 나는 큰 욕심없이 소박하게 살 뿐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 현명한 늙은이로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허영심이, 마음의 평화와 더불어, 여지없이 깨지고만 것은 장마가 끝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습기를 머금고 부풀어 올랐던 베란다 천장 몇 군데가, 습기가 빠져나가면서 껍질이 벗겨져있는 것이 아닌가? 베란다 바닥에는 허연 페인트 가루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냥 놓아둘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저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이런 질문이 들면서 베란다에 나가기가 싫어졌다. 짜증이 났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불현 듯 새로운 생각 하나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천장의 누수는 윗 집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방수 공사를 한다면 윗 층의 어딘가를 손봐야 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이리하여 문제는 보통의 문제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발전하였다. 1705호에 당장 올라가 보나? 관리사무소에 가서 말해야 할까? 답답하네. 이럴 때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라면 어떻게 할까?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어진다. 그는 사람을 통쾌하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우리 또래다. “호적에는 60세로 되어있지만, 출생신고를 할 때 나는 벌써 걸어다녔으니까 실지로는 70이 다되었을 겁니다.” 에쿠아도르인가, 어딘가 출신인데,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도 국적 같은 것은 중시하지 않는 듯하다. 그는 아마존강 유역에 사는데, 이 점이 중요하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당사자 입장에서 보아도 그렇다. 그는 아마존 밀림에 사는 수와르족이라는 원주민 부족과 젊었을 때부터 교류하여 밀림의 삶에 통달해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으로, 그는 연애소설 읽기를 즐긴다. 매우 엉뚱하지만 사실이다. 마을의 치과 의사가 단골 창녀에게 갔다 올 때마다 그녀로부터 연애소설을 빌려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에게 건네준다고 한다. 한 달에 두 권씩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글을 잘 읽지 못한다. 어렸을 때 가갸거겨는 뗀 것 같은데, 평생을 글자 없이 살아왔으니 다 까먹은 것 같고, 최근 들어 소설책을 읽으면서 거의 새로이 문해력을 익히는 것처럼 보인다. 혼자서 말이다. 학습 방법은 단순 반복이다. 한 단어를 수십 번 반복하여 읽어서 그 뜻을 알 듯하면 다음 단어로 넘어가고, 그런 식으로 하다가 또 한 문장을 수십 번 반복하여 읽는 식이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전혀 답답해하지 않는 눈치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아껴 가면서 먹듯이 페이지 넘어가는 것을 아까와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읽는다. 온갖 정성을 다해서 읽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노인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느냐고? 번역이 되어있거든. 소설책 제목은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서 책 읽어주는 것을 듣는데, 여자 성우가 노인 목소리를 흉내내어 노인의 대사를 읽어줄 때면, 그렇게 다정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정말 친구 같다. (계속)
첫댓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이름 길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