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바라는 사람은 주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제비뽑기로 선발된 사람 외에,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려면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백성들의 대부분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을 기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백성들 가운데 일부는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성 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거룩한 성의 주민이라는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 곧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줍니다. 즉 우리가 새 예루살렘의 주민이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주인이신 주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원치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새 예루살렘과 그곳의 주인이신 주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직 영광만을 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새 예루살렘과 주를 위한 고난을 감수하지 않고는 영광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있을 수 없었던 것처럼 새 예루살렘과 주를 위한 고난을 받지 않고는 영광도 없습니다.
성경은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그분을 위한 고난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고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 앞에서 종려가지를 들고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계 7:9-17). 이 장면은 참으로 영광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 명시적인 언급은 없으나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이 계신 곳은 하나님 나라의 새 예루살렘이 분명합니다(계 19:5-9; 21:1-3). 그렇다면 흰옷 입은 무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경은 이들이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주를 위해 고난을 감수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새 예루살렘의 주민이 되어 주의 영광을 함께 누리려면 새 예루살렘과 주를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이 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주의 이름은 부르되, 주를 따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주를 따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마16:24). 즉 주를 따르는 데는 그만큼 고난이 따르는데, 이 고난을 싫어하기에 주의 영광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다 새 예루살렘의 주민이 되어 주의 영광에 동참하기를 소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와 주를 위한 고난을 기쁨으로 감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