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을 읽는 노인과 문제가 많은 수요일, 11월 15일 (2)
나는 관리사무소에 내려가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첫 번째 반응은, 이런 문제가 발생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 반응은, 관리사무소에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만, 그 문제는 원칙적으로 아래윗집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니 방수 전문업체를 보내겠다고 하였다. 2주를 얌전하게 기다린 후에 나는 다시 관리사무소에 내려갔다. 그 1주일 후, 업체 사람이 왔다. 베란다를 둘러보고는 한다는 말이, 아파트 바깥 벽면을 보수하여야 하니 사다리차를 불러야 한다고 것이었다. 사다리차요? 그거 한 번 부르는데 얼마나 드나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는 것 같았다. 어디 벽면요? 윗 층의 벽면을 보수하나요? 그렇단다. 그러면 저하고 같이 지금 윗 층으로 올라가서 사정을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럴 수는 없단다. 이 사람은 일을 따내는 데에 의욕이 없는 듯 보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내 하소연을 들은 지인 하나가 전혀 다른 해결책을 귀띔해 주었다. 아파트 외벽은 공용 부분이므로 관리사무소에 관리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관리사무소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보험에 들어놓았을 거라는 것이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지만, 세대수는 적고 관리자들의 전문성은 떨어지는 시골 아파트에는 통하지 않는 해결책이었다. 그 대신에, 관리소 직원은 윗 층에 가서 사정을 말해주겠다고 하였다. 정기사(技士)다. (이 때 나는 이 사람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몇 해 전부터 우리 아파트는 아파트 관리를 전문업체에 맡기고 있는데, 그 이후 관리소장과 직원이 자주 바뀌어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1705호 문이 열리자 나는, 먼저, 아래 층에서 왔다고 말하였다. 사정도 모른 채, 주인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어머 그러세요.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여 나의 굳은 얼굴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용건은 정기사가 나서서 말해주었다. 그러나 알고 봤더니 아주머니네는 세입자였다.
정기사가 집주인과 통화를 끝낸 후 통화내용을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아들이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하고 상의해서 고쳐주겠대요. 고쳐준다고요? 예. 그렇게 말하던대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관리사무소를 나왔으며 며칠을 또 기다리기로 하였다. 역시 1주일은 너무 짧은 것 같아서 또 2주일을 기다렸다. 내가 지난 몇 주일을 이 문제만 생각하면서 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내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심심할 때마다 고개를 내밀고는 “너란 인간은 역시 이것밖에 안 되는 거잖아. 이런 사소한 문제로 이 좋은 가을을 흔쾌히 즐기지 못하다니 쯧쯧” 하면서 나를 놀렸다.
놀랍게도 정기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입장에서 볼 때에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지만, 나는 다소간은 침착하게, 그리고 다소간은 짜증을 내면서 그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여차여차하여 저쪽 집주인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직도 전화가 안 왔나요? 전화 오면 저한테 알려주신다고 했잖아요.” 그제서야 기억을 해낸 정기사는 한참 딴소리를 하고난 후, 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보수 공사를...... 보수 공사를 말이예요...... 보수 공사를 아직 안 했나요? “뭐라고요?” 나는 한층 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걸 정기사님이 저한테 물으시면 어떻게 해요?” 공사를...... 공사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1705호에서 공사를 했어요. 게다가 공사했다고 사장님 — 나를 가리킨다 — 한테 알려드렸던 것 같은디...... “했다고요? 하여간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그 때는 관리소장도 곁에 있었는데, 정기사는 관리소장하고도 몇 마디 말을 섞으면서 점점 더 공사를 끝냈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공사를 했다면 잘된 것이 아닌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정기사의 다짐을 받았다. “방수공사가 끝난 게 확실하다면 페인트 작업하는 사람을 불러 베란다 도색을 시키겠습니다. 확실한 거지요?” 정기사, 이 양반, 기억력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윗 층 집주인은 공사를 끝내기는커녕 공사를 할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답답하다. 그러나 정기사가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내 상대일까? 이 문제에서 나와 싸우는 상대는 역시 윗 층 주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까? 아니면, 아파트의 낡은 구조나 긴 장마가 있는 대한한국의 날씨?
내가 삼례의 작은 아파트에서 이런 자잘한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을 때 내 친구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거대한 암삵괭이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내가 답답한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시시하고 답답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것은 읽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 친구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암삵괭이가 나오고 노인과 암삵괭이 사이의 싸움이 끝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그렇다면 노인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노인의 상대역은 암삵괭이라고 보아야 할까? 노인을 미워하는 권력자 읍장(邑長)도 나오고, 아마존을 개발하려고 들어온, 양키라고 불리는 백인들도 나온다.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드러나는 바에 의하면,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원래 산촌 지역에서 살았다. 결혼까지 했는데, 아이가 없었다. 수군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안토니오 부부에게 모욕적인 충고를 하였다. 신부(神父)가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난잡한 광란의 파티로 돌변하는 어떤 축제에 부인을 홀로 내보내라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 안토니오 부부에게도 아이가 생길꺼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부부는 마을을 떴으며 긴 여행을 하여 아마존 개척민 마을에 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은 말라리아로 죽고 안토니오는 밀림으로 들어가 수와르족과 같이 살게 된다. 장기간 그렇게 살았던 것 같은데, 모종의 불행한 일을 계기로 안토니오는 수와르족 마을을 떠나, 지금 살고 있는, 아마존강 유역의 한 마을로 나왔다.
그 불행한 일은, 안토니오로서는 억울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다. 백인이 수와르족의 한 사람을 죽였다. 죽은 사람의 친구인 안토니오는 그 백인을 죽여 복수를 하였다. 그런데 그 살해 방법이 문제가 되었다. 백인과 격투 중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엉겁결에 백인의 총을 빼앗아 백인을 쏘았다. 안토니오는 수와르족이 예로부터 사용해 온, 큰 대롱으로 부는 독침으로 백인을 죽였어야만 한다. 수와르족의 믿음에 의하면, 독침으로 복수를 해야만 죽은 친구의 영혼이 편안히 잠든다. 수와르족은 안토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언제든지 우리 마을에 들러도 좋지만, 결코 우리 마을에 머물 수는 없다. 살쾡이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미루어야겠네. (계속)
첫댓글 삼례나 아마존 밀림이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