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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의 만남
샤르별에 도착한지도 어언 4개월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샤르별은 한마디로 고차원 정신세계와 우주 초첨단문명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지구에서 느낄 수 없는 삶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세계였다.
어디를 가나 하늘을 맞닿을 듯이 높게 솟아 있는 산들, 광활한 평야에 끝없이 펼쳐진 초원들, 바다 위에 별처럼 떠 있는 1억 개의 섬들, 무엇 하나 장엄한 자연의 경관이 아닐 수 없고, 우주의 대서사시(大敍事詩)가 아닐 수 없었다.
복사꽃 물결이 출렁거리는 공원이나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꽃수풀속에 그림처럼 지어진 집들은, 선경세상의 전원적 풍경과 우주첨단문명적 초감각이 어우러지는 무릉도원의 신천지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우주의 낙원이 있다 해도 무릉도원 선경세상의 지상낙원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새로운 문명이 펼쳐진 샤르별에서 4개월 이상 지나는 동안, 나 자신의 정신세계도 서서히 신세계의 질서에 동화되어 가는 듯 했고, 그 세계는 처음으로 방문한 우주의 신천지가 아니라 본래부터 살아왔던 곳으로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아름다운 세계에서 샤르비네와 함께 꿈결 같은 신선놀음을 즐기며 무한한 정신적 만족감에 도취되어 있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무덤에서 환생한 영혼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던 UFO에서 쏘아 주던 파뵤시 빛으로 분명히 그리운영혼의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고, 무덤 속에는 그리운 영혼의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빈 무덤이었다.
즉 그리운 영혼의 흔적은 무덤 속에서 사라져 있었고, 사라진 영혼은 살아 있는 몸으로 샤르별에서 제2의 생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초시를 통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나는 환생(還生)한 영혼과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있으며, 언젠가 그리운 영혼의 모습을 살아있는 모습으로 만나볼 것이란 기대감을 한 번도 지워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문득 샤르비네에게 그리운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지만, 자칫 희망적인 이야기보다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걱정되어 함부로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을 바에는 차라리 아니 듣는 것만 못하리란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운 영혼이 진짜로 환생하여 이곳에 살고 있다면 이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고, 그것이 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초시의 지어낸 말이었다 할지라도 원망할 마음은 없었다.
그리운 영혼은 항상 내 마음속에 살고 있었고 그래서 그리운 영혼을 생각할 때마다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고 자위하며 지낼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무정한 작자들 같으니라구... 꿈에라도 나타나 얼굴 한번 보여주기라도 하련만... 죽은 혼령이라도 너무들 하는구나. 죽은 혼령이라도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다녀가면 오죽 좋을까?"
보통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명절날이라든가 잔치 같은 날에 이웃의 아들딸들이 선물을 한 보따리씩 싸와서 부모나 친척들을 찾아보고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실 때였다.
어린 내 가슴에도 그런 모습들이 좋아 보였고 부럽기도 했다.
우리 집은 어떤 명절이 되어도 찾아 줄 친척이나 형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씩 먼저 떠나간 그리운 영혼이 보고 싶을 때는 무덤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보내며 잠이 들었다가 돌아올 때도 있었다.
남들은 무덤이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무덤 속의 영혼이 살아 있는 것 같고 항상 곁에서 위로를 보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마음속에 간직했던 그리운 영혼의 모습을 바쁜 일상의 일 때문에 소원하게 생각했던 시간이 있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초시는 분명히 UFO의 파뵤시 에너지를 이용해서 무덤 속을 보여주었고 빈 무덤이란 걸 확인시켜 주었고 빈 무덤의 주인은 샤르별에서 제2의 생으로 환생하여 행복한 여생을 잘 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거짓이라 해도 나는 그 말을 꼭 믿고 싶었던 것이다.
초시는 내가 샤르별을 방문할 때 그리운 영혼과 재회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샤르별에서 4개월을 머무는 동안 한번도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 약속을 잊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스쳐가는 말이었는지, 아직 그 약속에 대해 아무 언질도 비치지 않을 때는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구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 만큼 반갑다.'
죽은 영혼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처럼 반가운 일은 세상에 없다는 우회적 표현일 것이다.
그리운 영혼의 모습을 꿈속에서라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물론 평온하고 행복한 영혼의 모습을 볼 때일 것이다. 혹시라도 불행한 모습을 한 영혼을 만날 때는 꿈속에서라도 기분이 좋지 않다.
만약에 그리운 영혼이 샤르별에서 제2의 생을 진짜로 맞이해서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점이 너무 궁금했다.
모습은 생전 그대로일까? 바뀌었을까?
그러한 생각들을 감추지 못하다가 끝내 샤르비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샤르비네는 뜻밖의 소식이라고 했다.
샤르비네는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왜 그런 말을 아직 저에게 꺼내지 조차 않았어요?" 하고 원망까지 했다.
샤르비네는 이내 무선통신으로 연결해서 우주타운에서 근무하고 있는 초시를 불렀다. 무선통신과 연결된 가상공간에 초시의 모습이 나타났고, 초시는 우리들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며 반가워했다.
샤르비네는 가상공간화면에 나타난 초시에게 안부도 묻는 둥 마는 둥하고 이 말부터 꺼냈다.
"아빠는 왜 샤르앙이 그리워하고 있는 영혼에 대해서 아직 한마디 말씀도 제게 하지 않으셨나요?"
초시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응. 그 얘기 말이냐? 샤르앙을 위해서였지. 샤르앙이 우리 샤르별을 방문한 목적은 여러 가지 중요한 뜻이 있다. 오자마자 그리워했던 영혼의 이야기를 꺼내고 그쪽으로만 생각을 빼앗기다보면 다른 중요한 목적을 그르칠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겠니? 샤르앙, 네가 대답해 보아라.”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말씀을 하지 않으실 때는 무언가 속 깊은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제가 샤르비네에게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초시님....”
나는 큰 실수라도 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주었다.
초시는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나의 어깨를 도닥거려
"그러면 아버지. 샤르앙이 그리워하는 영혼의 안부만이라도 전해 주세요. 어딘가 잘 계시는 거죠?"
샤르비네가 나보다 더 급한 것처럼 그리운 영혼의 안부를 챙겼다.
초시는 웃으며 대답했다.
"평안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염려 마라. 살아 있는 모습은 우주 끝을 찾아가서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 아직 얼굴은 못 보았겠지만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마라."
“다행이에요. 아버지."
샤르비네는 제 일처럼 좋아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초시는 또 이렇게 입을 떼었다.
“샤르앙의 그리운 영혼은 지금 정신수련의 중요한 과정을 수행중이다. 너희가 찾아갔던 엄이주피 수련원에서 2년째 고행 과정을 수행하고 있으니 앞으로 2개월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들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소식을 들려주었을 것인데 성급하게 일이 터졌구나."
샤르비네는 정중하게 초시에게 잘못을 빌었다.
"아버지.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경솔하게 굴었어요. 아빠가 입을 열지 않을 때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텐데…. 샤르앙의 사정이 너무 딱해서 그만...."
초시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나와 샤르비네를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마음을 알았으면 별도의 말이 있을 때까지 편하게 마음을 갖도록 해라. 그리고 잘들 지내거라. 난 이만 바쁜 업무가 있어 통신을 끊겠다.”
무선통신이 끝나고 가상공간 화면도 사라졌지만 초시의 모습은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초시에게 다짜고짜 실례를 한 것 같은데 결과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이었다.
그리운 영혼의 안부라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샤르비네도 나처럼 급한 성격이 있었는데, 급한 성격으로 인해서 좋은 일도 만들어내고 나쁜 일도 가끔씩 만들어 냈다. 좋은 의미로는 추진력이 뛰어나고 화끈한 성격일 수 있고 나쁜 의미로는 경솔하거나 신중하지 못해서 너무 앞서가는 경향도 있었다. 지구의 언어로 표현해서 우먼파워가 강하고 매사에 의욕이 넘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그녀의 성향이었을 것이다.
엄이주피 수련원은 샤르비네와 내가 정신수련을 위해 자주 들르는 장소였는데, 그곳에서 그리운 영혼이 우리와 함께 정신수련에 정진하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엄이주파 수련원에는 일시에 수만 명에 달하는 수련생들이 운집하고 있어서 누가누군지 분간하기도 어려웠지만 한 번쯤 가까이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샤르비네는 엄이주피 수련원에서 교무비서를 담당하고 있는 즈오라는 선녀를 잘 알고 있었다. 즈오 선녀는 샤르비네의 친구였고 나도 그 선녀와 대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엄이주피 수련원에 들릴 때는 꼭 그녀를 만나서 춤을 추거나 숲속의 맑은 물에서 함께 목욕도 했기 때문에 나도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샤르비네는 즈오에게 무선통신으로 연락해서 그리운 영혼의 소재를 파악하도록 부탁했다. 즈오는 교무를 담당하는 비서였기 때문에 엄이 주피 수련원에 입소하거나 다녀간 신선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운 업무가 아니었다.
부탁을 한 다음 날 즈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운 영혼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했다.
즈오의 연락을 받은 샤르비네와 나는 즉시 춘우셔시 하늘자동차를 타고 부리나케 엄이주피 수련원으로 향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즈오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샤르앙의 그리운 영혼은 2년을 목표로 수행중에 있지요. 샤르앙의 그리운 영혼은 우리들 세상에서 누지오디라는 이름으로 제2의 생을 살고 있으며 구디무 암자에서 모범적으로 고난도 수행에 열중하고 있답니다. 구디무 암자는 엄이주피 수련원의 보석과 같은 의미가 있으며, 구디무 수련원을 거쳐 간 수행자는 모두 최고 러우의 반열에 올라, 불로불사의 화신들이 많이 태어나는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구디무 암자수행은 그 기간이 2년이며 앞으로 1개월이 지나면 목적했던 수련기간을 채우게 되지요. 그 전에는 누지오디 신선을 접견할 수 없으니 샤르앙이 이해하길 바래요."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군요. 그러면 제 그리운 영혼이 정말 이곳에서 살고 있기는 있나 보군요. 제 그리운 영혼이 이곳에서 고난도 정신세계를 수행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 아무튼 그리운 영혼을 1개월 후면 진짜로 만나볼 수 있다니요. 그리운 영혼과 이별한 후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그깟 1개월쯤 더 기다리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소. 아무튼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니 즈오 선녀 정말 고맙구려."
"호호호, 샤르앙은 참... 제가 업무를 파악한 내용을 전해줄 뿐인데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아야 할 명분이 있나요? 그러고 보니 오히려 제가 그동안 샤르앙의 그리운 영혼에 대한 소식을 빨리 알아서 전해 주지 못했던 점이 미안해요. 아무튼 샤르앙의 그리운 영혼인 누지오디 신선은 고난도 정신수련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뜨겁다고 소문나 있어요. 그래서 누지오디 신선은 우리들 세상의 도통자 러우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자자한 칭찬을 듣고 있답니다. 누지오디 신선도 반드시 러우의 반열에 오르고 끝내는 450세 이상 불로장생한 후 불로불사의 몸으로 화신하여 샤르별의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샤르앙도 그리운 영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제 그리운 영혼이 누지오디란 신선으로 환생하여 4차원 문명세계의 주역으로 훌륭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니 그 소식을 전해 듣는 느낌이 너무 행복하오. 아무튼 백억 광년 떨어진 지구의 고향을 떠나서 외로움을 털고 멋지게 제2의 삶을 시작한 누지오디 신선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소."
“앞으로 1개월 후 샤르앙이 그리워하는 누지오디 신선을 꼭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드릴게요."
"고맙소. 즈오 선녀."
나는 즈오에게 감사의 뜻으로 입맞춤을 하고 샤르비네와 함께 자리를 떠서 엄이주피 수련원을 빠져나왔다.
엄이주피 수련원을 빠져나오면서 우리는 춘우셔시 하늘자동차를 구디무 암자의 상공으로 날게 했다. 엄이주피 수련원에 비해 점처럼 작은 암자가 송림의 숲속에 숨어서 고즈넉한 모습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저 작은 암자 속에서 고난도 정신수행에 열중하고 있을 그리운 영혼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아쉬운 마음을 남겨두고 우리는 엄이주피 수련원의 상공을 멀리 벗어났고 샤르비네는 어디론가 춘우셔시의 선체를 돌렸다.
내 얼굴은 우울한 표정에 잠겨 있고 그러한 내 마음을 달래 주려는 의미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려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샤르비네는 춘우셔시 하늘자동차를 천천히 날게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섬 여행이에요."
"섬 여행이라구요?"
“그래요. 샤르앙. 샤르별의 바다에 녹색의 보석처럼 떠 있는 1억 개의 섬들을 모두 만나보기로 해요. 섬들마다 펼쳐지는 신비로운 생태계를 살펴보면서 샤르앙의 우울한 기분을 풀기로 해요."
“제 기분을 알아주니 고맙소."
"샤르앙은 무슨 말을... 일심동체가 몰라주면 누가 샤르앙의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라고….”
샤르비네는 나에게 입을 맞춰 주고 포옹을 해주면서 등을 도닥거려주었다. 샤르비네가 포옹해주자 어두웠던 마음이 한결 밝아지며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샤르비네는 약속대로 춘우셔시 하늘자동차를 조종해서 샤르별의 넓은 바다에 떠 있는 푸른 섬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미리 설명을 듣던 대로 넓은 바다의 푸른 물결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은 저마다 많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고즈넉한 모습으로 떠 있었다. 섬들마다 독특한 생태계가 전개되고 신비한 현상과 볼거리들은 가는 곳마다 지천에 널려 있었다.
어떤 섬의 인종들은 평생을 나무 위에서만 태어나고 자라며 생활하는 인종들도 있었다. 숲사람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인종들은 나무 위에 새처럼 집을 짓고, 나무 위에 열린 열매들만을 따먹으며 그렇게 평생 살아간다고 했다.
어떤 섬에는 달팽이 사람이란 별명을 가진 인종들이 살고 있었다. 이 인종들은 평생동안 달팽이 껍질 같은 집 하나를 지고 다니면서 달팽이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달팽이 껍질처럼 생긴 집은 달팽이 사람들의 의상이기도 했는데, 평소에도 이 인종들은 집 밖으로 나오는 법이 없이 죽을 때까지 집을 지고 다니며 다른 옷을 입고 벗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달팽이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짝짓기를 하여 후손들을 퍼뜨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달팽이 사람들이 지고 다니는 집은 달팽이 사람들의 몸집이 커지면 껍질의 집도 저절로 커지며 자란다고 했다.
타뵤시라고 부르는 섬에는 사람은 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유명했다. 타뵤시 섬에는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모습으로 나무들이 자라고 동물들이 살아가는 곳이지만 온종일 돌아다녀도 원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은 발견되지 않는 섬이었다.
그런데 이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그중에는 싸우는 듯한 목소리도 들려오고 어린애가 우는 목소리도 들려오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때로는 물건들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오고, 무언가 쿵쿵 울리며 일을 하는 듯한 소리들도 들려오고 했다.
그 소리들은 결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도 아니고 그 섬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인데, 그 소리의 주인공들이 바로 투명세계의 투명인간들이라고 했다.
투명세계의 소리들은 잘 들리는 경우도 있고 전혀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이유는 주변에서 전개되는 특수한 기운의 작용 때문이라고 했다. 그 특수한 기운의 작용으로 투명세계의 모습들이 안개처럼 어렴풋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이라도 투명세계는 나름대로의 문명과 문화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점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스러 섬은 배처럼 물 위에 떠다니는 섬으로 유명했다. 주스러 섬은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풀과 나무도 자라고 동물들도 살아가는 평범한 생태계의 섬인데,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존재한다는 현상이 특이했다.
주스러 섬은 바나나처럼 길쭉한 모습으로 생겼고, 폭은 4km 길이는 75km 정도로 큰 섬은 아니었지만 이리저리 이동하며 떠다니는 유도(流島)였다. 주스러 섬은 대륙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망망대해의 멀리까지 떠밀려가 고도孤島)의 신세를 못 면하기도 했다.
주스러 섬이 이처럼 물 위에서 이동하는 현상은 그 원인이 비교적 간단했다.
주스러 섬의 토양은 거의 부유물의 퇴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7억 년 전쯤 무거운 돌이나 흙이 섞이지 않는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서 육지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땅이 빙하기의 지각변동 때 떨어져 나가 바다로 밀려나가기 시작한 것이 주스러 섬의 기원이라고 했다.
부유물의 퇴적에 의해서 생겨난 주스러 섬은 영양물질이 풍부하여 다양한 종의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무성한 식물들과 함께 다양한 종의 생물들도 풍성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오로라 섬은 밤이 되면 오색찬란한 빛이 비처럼 쏟아져 내려 장관을 이루고, 오로라 빛의 향연을 구경하기 위해서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오로라 빛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향연은 우주의 신비로움을 감상하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개미 사람이 살고 있는 섬도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밀림이 우거진 섬에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토성들이 여기저기 탑처럼 쌓아져 있고, 그 토성의 탑 속에는 개미 사람이라고 부르는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개미 사람들은 키가 50cm 정도로 얼핏 보면 원숭이 같기도 한데 허리는 잘록하고 머리에는 더듬이 같은 뿔이 달렸으며 다리는 4개이고 사람처럼 걸어 다니며 행동했다.
개미 사람들은 도구를 사용해서 토성의 탑을 쌓고 먹이를 저장하거나 가공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위계질서와 서열이 정해져 있고 협동해서 공동으로 일하는 사회적 능력이 우수했다.
적이 침범할 때는 단체로 행동해서 물리쳤으며 다른 동물처럼 발톱이나 이빨을 이용하지 않고 날카로운 돌이나 나뭇가지 등의 무기를 이용할 줄도 알았다.
개미 사람들은 다른 동물이 접근하면 민감하게 대항하거나 경계태세를 보이지만 신선들이 다가가면 온순한 행동을 했다. 신선들은 개미 사람들을 해치는 적이 아니라 자기들을 안전하게 잘 보살피는 아군이라고 인지하는 모양이었다.
개미 사람들이 짝짓기를 하는 모습은 인간과 비슷했고, 새끼들을 낳아서 포유동물처럼 젖으로 길렀으며, 모성애가 강하여 업거나 안고 다니기도 했다.
유령섬에서는 물이 거꾸로 흐르고 지형이 엉뚱하게 바뀌며 보이지 않던 식물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나 자라기도 하고 꽃보다 열매가 먼저 달리는 나무도 있었다.
자연의 질서가 뒤죽박죽된 세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는데, 식물이 이동하며 자라거나 생물이 식물처럼 뿌리를 내리고 고정된 장소에서 번식하기도 했다.
돌을 굴리면 밑으로 구르지 않고 위로 올라가며, 갑자기 땅이 얼어붙어 식물들을 얼어 죽게 만들기도 했다. 날이 풀리면 얼어 죽은 식물이나 생물들이 다시 살아나 움직이기 시작하고, 가뭄으로 말라 죽은 식물들이 비만 내리면 다시 살아나서 꽃과 열매가 달리기도 했다.
유령섬은 한 마디로 자연의 질서가 무너져 있고 자연의 섭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시시각각 발생하는 세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생태계를 자랑하는 1억여 개의 섬들을 여행하며 구경을 다니는 동안 1개월의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1개월 후 즈오 선녀로부터 누지오디 신선이 엄이주피 수련원에서 퇴소했다는 전갈을 받았고, 이윽고 초시로부터도 누지오디와의 만남에 대한 계획도 전해져 왔다.
나의 그리운 영혼인 누지오디 신선은 츠나부시미란 신선마을에 살고 있었다. 부활의 땅이라고 부르는 츠나부시미 마을에는 무덤에서 부활한 생존자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제2의 삶을 보람 있게 펼쳐가고 있었다. 모두 지구에서 초대된 생환의 영혼들이었다.
츠나부시미 마을은 우리가 거처하고 있던 츠나음이 연구소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위치였는데, 워낙 주변이 빽빽한 밀림으로 덮여 있어 그런 마을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냈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숲속에서 살면서 그리운 영혼에 대한 아무런 정보조차 모르고 지내왔다니 엇갈린 운명이 슬퍼지기도 했다.
초시는 이미 누지오디 신선에게 연락하여 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고 마음의 충격을 입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둔 상태였다.
츠나음이 연구소에서 그리운 영혼인 누지오디 신선에게 무선통신을 취했고, 가상공간 화면 속에 누지오디 신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누지오디는 가상공간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고 잠시 동안 말문이 막힌 상태로 정적이 흘렀다.
누지오디도 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고 나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리운 영혼의 모습은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지구에서 초대받은 샤르앙이라 했는가?"
누지오디 신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제가 지구에서 여행온 샤르앙입니다.”
"네 어릴 때 별명이 무어라 했지?"
"백마선이었지요."
“맞아. 백마선... 오랜만에 불러보는 사랑스런 이름이구나. 할머니는?"
“제가 열여섯에 돌아가셨습니다."
"네 동생은?"
“......”
나는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차마 입으로 말 못하고 눈물만 뚝뚝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잘못되기라도 했니?"
"네. 저.... 저....."
"어서 말해보렴.”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스물 둘에.. 죄송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병원에서도,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거든요.”
"그랬구나. 참으로 고운 영혼이었는데……. 제 형보다 먼저 가다니...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라. 고운 영혼의 나라에서 편히 지내고 있을 테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만나 뵈어 꿈만 같습니다. 샤르별에서도 인정을 받는 수도자의 길을 걸으신다니 그나마 제게는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냐.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나도 너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네 이름을 샤르앙이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는 사실, 아름다운 선녀 샤르비네와 일심동체의 언약을 맺었다는 사실, 우주정신세계의 큰 나무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모두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이런 말을 마친 누지오디는 샤르비네를 바라보며 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선녀가 샤르비넨가요?"
"네, 누지오디 신선님! 제가 샤르비네입니다."
"고맙소. 샤르비네 선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한담? 샤르앙과나와의 관계는 이미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요. 그동안 샤르앙으로부터 누지오디 신선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요. 아무튼 고마워요. 이미 둘은 일심동체가 되었다니 내 마음이 기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축복의 인사를 전하오.”
"감사합니다. 누지오디 신선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있는 곳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니 샤르앙을 데리고 한번 찾아주오."
“잘 알겠습니다. 누지오디 신선님. 가까운 시일 내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샤르비네와 말을 마친 그리운 영혼 누지오디 신선은 또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늠름하고 장하게 자라주어서 고맙다. 샤르비네 선녀와 네가 빨리 찾아와 주었으면 고맙겠다. 기다리마."
"네, 잘 알겠습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이런 무선통신대화가 끝난 후 누지오디의 모습은 가상공간 화면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그리운 영혼과의 약속일자가 다가와 샤르비네와 나는 츠나부시미 마을로 걸어서 향했다. 춘우셔시를 몰고 편하게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걸어서 서너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길이어서 도보로 츠나부시미 마을을 찾아가기로 했다.
츠나부시미 마을로 찾아가는 길은 조그만 오솔길 같은 산길이었다. 울창한 밀림 속에 난 길이기는 했지만 수도하는 신선들이 계속 왕래하는 길이라 걷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츠나부시미 마을에 살고 있는 지구의 영혼들이 츠나음이 연구소를 자주 왕래하며 측요스의 자문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길이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리운 영혼 누지오디 신선도 측요스의 부름을 받고 자주 왕래하였던 길이었을 것이다.
츠나부시미 마을을 찾아가는 산길에는 길섶을 따라 많은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지구의 야산에서 흔히 구경할 수 있는 그런 소박한 모습의 야생화들이었다.
아마도 그리운 영혼도 이 길을 따라 츠나음이 연구소를 수없이 왕래하며 이런 야생화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구의 고향 마을에 피어 있던 꽃들과 비슷한 야생화들을 바라보면서,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렸으리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쩌면 야생화들의 꽃송이가 남기고 온 그리움의 얼굴들로 보여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으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츠나부시미로 향한 발길은 바빠지기만 했다.
지구의 고향마을에서 걷던 길하고도 느낌이 비슷해서 여러 가지 회상에 잠기며 걷고 있는데 어느새 츠나부시미 마을의 입구에 당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낯익은 모습이 우리들을 마중 나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지오디였다.
누지오디가 우리를 발견하고 반가움과 슬픔이 엇갈리는 표정을 지으며 애써 담담함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누지오디는 감추고 있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뛰어오듯 달려와 나를 얼싸안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글썽이면서 나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만져보고 목을 끌어안기도 했다. 나도 무어라 말도 꺼낼 수 없어서 그리운 영혼의 품에 안겨있기만 했다.
정말 얼마 만에 느껴보는 포근한 체온이던가.
죽은 줄만 알고 지내던 그리운 영혼을 이렇게 우주 끝 머나 먼 하늘 아래서 다시 만나게 될 줄 꿈이나 꾸고 상상이나 해볼 수 있었던 일이었겠는가?
그 꿈보다 더 기막힌 상봉을 그리운 영혼과 지금 나누고 있으니, 꿈이라면 제발 다시 깨어나지 말기를 천지신명께 마음으로 빌고 또 빌뿐이었다.
지구에는 죽었던 영혼이 살아서 돌아온 기쁨보다 큰 것이 없다는 표현을 빗대서 이런 속담을 쓴다.
'죽은 사람 살아서 돌아오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다.’
샤르비네는 곁에서 그리운 영혼과 나와의 감격적인 상봉을 지켜보며 말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무덤에 장사지냈던 그리운 영혼을 우주 끝 별나라에 찾아와 다시 생환된 모습으로 상봉할 줄은 상상도 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우주의 드라마와 같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초월적 우주현상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한토막이 생각난다.
"옛날 옛적에는 죽은 영혼들이 1년에 한 번씩 날을 받아 이승을 다녀가곤 했단다. 그날에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었지. 그때처럼 죽은 네 아버지랑 할아버지랑 또 다른 영혼들이라도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녀가면 얼마나 좋겠니."
할머니가 지어낸 이야긴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저승에 있는 영혼들이 한 번이라도 이승을 찾아와 그리움의 회포를 풀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았다.
할머니가 그런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난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왜 못하지?"
"염라대왕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문을 닫아버리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란다."
"염라대왕은 나쁜 사람인가 보지? 왜 문을 닫아?"
“이승과 저승의 질서가 문란해지기 때문이었단다. 저승에서 찾아온 영혼이 돌아갈 시간은 다 되고, 이승 사람들은 저승에서 온 영혼을 자꾸만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염라대왕이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지.”
"그렇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걸."
"그러게 말이다.”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한숨을 길게 내쉬던 할머니의 애절한 모습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설령 이곳이 저승이라 한들 꿈에도 못 잊어 그리워하던 영혼을 단 한번만이라도 이렇게 상봉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어떤 미사여구로도 그 기분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산다는 자체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꿈도 꿔 볼 수 없고 이야기의 줄거리로 상상조차 해볼 수 없는 상황을 우주드라마로 연출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운 영혼과 감격적인 상봉을 나눈 후 누지오디 신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하구나! 백마선. 이렇게 당당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성장해 주어서……. 초시 신선님을 통해 너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다 전해 들었다. 벅찬 이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 아무튼 하늘자동차를 타고 오면 쉽게 찾아올 길을 어째서 어렵게 험한 산길을 걸어 왔느냐?"
“일부러 그랬어요."
“그래. 무슨 뜻인지 알기는 알겠다만... 아무튼 힘은 많이 들지 않더냐? 백마선 샤르앙아."
"네, 전혀 힘들진 않았어요."
“다행이구나."
"이젠 저도 누지오디 신선님이라고 불러드려야겠네요?"
"오냐. 나도 네 이름을 샤르앙이라 부를 테니 너도 나를 그렇게 부르렴. 땅에 있으면 땅의 법칙을 따르고 하늘에 있으면 하늘의 법칙을 따라야 하듯, 신천지에 왔으니 신천지의 법을 따라야지. 그렇지 샤르앙아?"
“네, 누지오디 신선님."
그리운 영혼은 함께 동행한 샤르비네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샤르앙을 그렇게 각별하게 대해 주고 우주의 큰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샤르앙을 보살펴 주고 있다는 소식을 초시 신선님께 듣게 되었소. 초시 신선은 나에게도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 아무튼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할지 모르겠소."
"무슨 말씀을요. 누지오디 신선님. 저는 샤르앙과 일심동체의 인연을 맺고 앞으로 하늘과 땅의 멋진 이야기를 꾸며 갈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뛰고 기쁘기만 해요. 감사하다는 말은 제가 전하고 싶어요.” “허허, 그런가요? 역시 큰 영혼의 그릇들이라 선녀님의 말씀은 큰 감동으로 들리오."
“별 말씀을요."
이런 상봉을 나눈 후 누지오디 신선은 앞장서서 걸으며 우리를 츠나부시미 마을로 안내했다. 츠나부시미 마을은 크지 않았지만 역시 복사꽃 물결로 덮여 있고 온갖 기화요초들이 향기를 날리며 피어 있는 전형적 모습의 선경마을이었다.
여기저기 꽃그늘에 가려 그림처럼 지어져 있는 집들은 무릉도원 지상낙원의 모습을 잘 웅변해 주고 있었다.
그리운 영혼 누지오디 신선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선경마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든든해지고 내 일처럼 기뻤다.
마을에 도착해서 누지오디 신선이 거처하는 신선누각에 들어가 보니 4차원 문명세계의 이기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계속 작동되고 있는 포스머스 화면에서는 지구에서 전송받은 지구 소식이 이어지며 살아 있는 영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전송받은 사진을 복사해서 그림처럼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지구에서 작동하고 있는 UFO 무인정찰기를 통해 고향의 모습들도 사진으로 전송받아서 생활관 전시실에 많이 걸어두고 고향의 그리움을 잊고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아무튼 누지오디 신선이 살고 있는 신선누각에 온갖 4차원 문명세계의 이기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고, 가상화면 통신장치, 4차원 의료장치, 뜰 앞에 세워져 있는 자가용 하늘자동차 등등... 샤르별의 신선들이 누리는 모든 문화적 혜택과 풍요한 모습이 넘쳐서 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이제 그리운 영혼도 당당한 샤르별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여느 샤르별 신선들과 다름없이 풍요로운 삶을 만끽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그토록 기쁠 수 없었다.
그런데 누지오디 신선이 살고 있는 신선누각을 방문했을 때 낯선 선녀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선녀가 샤르비네와 나를 정중하게 맞으며 장미꽃 향이 물씬한 추시브 꽃 한 송이씩을 손에 쥐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모처럼 귀한 손님들을 맞게 되어 기뻐요."
그리고 상냥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신선누각의 좋은 자리로 자리를 잡게 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셔서...."
우리들은 함께 선녀에게 인사를 했다.
선녀는 또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오르는 향료수 한 잔씩을 권하며 마시라고 했다.
누지오디는 그 선녀를 가리키며 "나의 배필, 러시며 선녀다.” 하고 소개했다.
러시며 선녀도 지구에서 왔으며 역시 무덤에 묻혔다가 부활된 영혼이라고 자세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운 영혼과 러시며 선녀가 서로 비슷한 처지라서 서로의 애정이 깊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면서 잘 지낼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그래서 나는 러시며 선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러시며 선녀님. 제 그리운 영혼에게 이런 든든한 배필이 새로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비슷한 처지의 운명이시라고 하니 앞으로 더욱 깊은 사랑을 나누시고 행복한 제2의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러시며 선녀도 한마디 했다.
"누지오디 신선이 지구에 두고온 백마선에 대해서 항상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래서 백마선의 이름은 이미 귀에 박힐 정도랍니다. 아무튼 지구에서 찾아온 아름다운 영혼을 맞이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앞으로 샤르별에 머무는 동안 좋은 일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원할게요."
“감사합니다. 러시며 선녀님."
러시며 선녀와 샤르비네는 금세 친해졌는지 하하호호 떠들며 선녀들끼리 통하는 화제들을 꺼내 놓고 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그리운 영혼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이 마을에는 어떤 신분의 신선들이 살고 있나요?"
"모두 지구에서 찾아온 영혼들이란다. 죽었다고 무덤에 묻혔다가 생환되어 샤르별을 찾아온 비슷한 처지의 영혼들이지."
“이렇게 많은 영혼들이 무덤에서 생환되어 샤르별을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지구에는 가끔씩 주인이 사라진 빈 무덤이 있단다. 무덤 속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 부활한 몸으로 샤르별을 찾아오기 때문이지.”
"지구에서는 죽은 사람이 찾아오는 일보다 즐거운 일이 없다고 하는데…. 아무튼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4차원 문명세계의 혜택을 우리 지구인들이 입고 있는 셈이지. 너무 고마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을 거야. 우리는 죽었다가 살아난 영혼들이지만, 너는 살아서 이곳을 찾아와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얼마나 복 받은 일이냐. 그 고마움을 잊지 말고 하늘에 감사하며 너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깨달아 앞으로 큰 뜻을 펼치기를 바라노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장하구나. 나의 사랑하는 영혼아."
누지오디 신선과 이런 대화를 마친 후 츠나부시미 마을을 골고루 살펴보았다. 지구에서 찾아온 부활의 영혼들은 저마다 무릉도원의 행복한 삶에 젖어서 세상 고난을 다 잊은 채 풍요로움을 즐기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다.
지구에서 그리운 영혼의 처지와 비슷한 운명으로 샤르별을 찾아온 영혼들이지만, 저마다의 아픔과 그리움의 사연은 가슴에 가득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으리라.
아무튼 지구에서 찾아온 부활의 영혼들이 모두 그림 같은 신선누각을 차지하고 4차원 문명세계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든든해 보이기만 했다.
우주 끝 샤르별에서 지구의 혼이 되살아나 후천세상의 새로운 기운으로 작용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샤르비네와 나는 츠나부시미 마을의 사랑하는 영혼들과 작별을 나누고 다시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4차원 문명세계의 메세지 5 <샤르별의 자연, 문명과 신선 인류들> - 박천수著
첫댓글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꿈 같은 이야기 이지만 진실로 그러한 일은 있는데 다른 세상에 가서 살고 있다니
네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지구영혼이 샤르별에서 살아간다는게 의미가 있는거 같습니다.
네 샤르별에서 지구에 관심갖고 항상 보살피고 있는 소식이 반갑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