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보내 정치할 겨를 없어... 하루에 한 챕터만 간결하게 보내시오(ㅇㅋ 미안해! 2번 보내서... 고마워! 짜증 조금 내줘서) 엄마 만나러 가는 길... 너무 가기 싫어 ㅋㅋㅋ(ㅎㅎㅎ 축구든 뭐든 기세야 기세) 지러 가는 건데 뭔 기세야? (질 때도 기세... 외유내강) 열받아 사실(Why?) 엄마랑 나랑 너무 안 맞는 거 억울해(사르트르의 "내던져진 존재"를 기억하시라!... 워딩 바꾸지 말고) ㅋㅋㅋ 응!(파이팅! 국대 에스더 힘!) 놀리지 마(나/에스더)" 밤은 왜 가장 깊은 교실이 되는가?
-
시 8편은 내 노스텔지아를 소환하는 가스펠 중 하나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3a) 주의 하늘과(3b) 주의 베풀어 두신(3d) 달과 별들을(3e) 내가 보오니(3f)..." 왜 목가적으로 보이는 이 시를 <밤의 교실>이라고 했을까요? 시인은 거대한 우주와 별들과 달을 보며 그것을 주의 손가락'이라 부릅니다. 밤의 고요가 칠판이 되고 별이 글자가 됩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질문들이 어둠 위에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이 시는 자연을 설명하는 시편이 아니라 자연을 해석하는 시선입니다.
-
시인은 하나님이 정말 자신에게 마음을 두시는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실은 하나님의 놀랍고 섬세한 돌보심을 자신의 눈에 다 담아내지 못했던 것임을 깨닫고 아름다운 언어로 주님의 영광과 은총을 노래합니다. 특이한 것은 왜 낮에는 보이지 않던 질문들이 어둠 위에 또렷하게 떠오르냐는 겁니다. 우리는 불이 켜져 있을 때 사물을 구분합니다.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아름다움과 추함, 성공과 실패를 끊임없이 분류합니다.
-
빛은 대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불을 끄면>이 모든 구분이 무너집니다. 바로 이 지점이 블랑쇼가 말한 <바깥'>과 닿습니다. 블랑쇼에게 바깥은 단순히 집 밖이나 사회 밖이 아니라, 내가 익숙하게 세상을 이해하고 분류하는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는 주체와 객체, 나와 타자, 높음과 낮음 같은 구별이 흔들립니다. 이렇게 보면 <불>은 단순한 전등이 아니라 밤입니다. 불이 켜지면 우리는 서로를 비교합니다.
-
하지만 불이 꺼지면 비교의 기준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불을 끄면 모두 모두 똑같아"는 단순한 평등 구호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위계와 차별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는 본래의 자리에서 서로 마주합니다. 불을 끄면은 인간이 만든 차이의 빛이 꺼지는 순간이며, 블랑쇼의 '바깥'은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존재가 어떤 이름이나 위계 없이 드러나는 새 창조의 자리입니다. 블랑쇼의 <어둠/바깥>은 비교와 분류의 세계를 벗어나 존재 자체와 마주하는 십자가, 지성소, 안식, 생성이 아닐까.
2026.7.12.sun.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