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을 읽는 노인과 문제가 많은 수요일, 11월 15일 (3)
백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읍장은 수와르족의 소행이라고 단정짓고 수와르족 두 사람을 체포하려고 하였다. 이 때 늙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읍장 나으리,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시지요.”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였다. 치명상이 된 목의 상처를 헤쳐보고 시체에서 나는 오줌 냄새를 맡아본 후, 노인은, 범인은 삵괭이라고 말하였다. 노인은 검시관의 현미경과도 같은 눈을 가진 모양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셜록 홈즈에 버금갈 만한 추리력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죽은 백인은 삵괭이 가죽 세 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소지품 등을 참고하여 노인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죽은 백인은 삵괭이 새끼 세 마리를 잡아서 가죽을 벗겼고 숫삵괭이에게는 상처를 입혔다. 남은 암삵괭이는 밀림을 헤치고 다니면서 백인을 미행하다가 적절한 곳에서 공격하여 가족의 복수를 한 것이다. 노인은 장차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까지 하였다. 사람의 피맛을 본 암삵괭이는 다시 사람을 공격하리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지 않아 노인이 예측한 일이 실지로 일어났고 읍장은 삵괭이 수색대를 꾸린다. 수색대에 꼭 필요한 사람은 물론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다. 내키지 않았지만 노인은 반강제로 수색대에 합류하게 된다. 이제부터 삵괭이 사냥이 시작되며, 그 디테일이 박진감있게 서술되고 묘사되기 시작하지만, 나는 그것을 엇비슷하게라도 옮겨놓을 수가 없다. 나는 그 이야기를 귀로 듣되, 주로 꿈속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도 내 친구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를 만나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유튜브를 켜놓고 잠자리에 들지만, 내 우정은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 무리가 나올 때까지는 깨어있었던 것 같은데...... 엄청난 크기의 보아뱀도 나왔던 것 같고, 맹독을 지닌 방울뱀도 나왔던 것 같고, 지긋지긋한 모기떼도 나왔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읍장이 간계를 부려 노인만 남겨두고 수색대를 철수시켰다는 것은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제부터는 노인과 삵괭이 사이의 일대일 대결이 펼쳐진다. 노인은 수와르족으로부터 배운 것이 틀림없는 체계적인 수색방법을 사용하여 치밀하게 수색을 하면서 밀림 깊숙이 전진한다. 삵괭이도 굳이 도망칠 의향이 없다. 사람에게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사람을 떠보기도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조바심을 내게 만들기도 한다. 노인은 짐승의 이러한 속셈을 훤히 꿰고 있지만, 그 점은 저쪽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싸이즈의 두 생명체가, 한 쪽은 잇빨과 발톱으로 무장하였다면 다른 쪽은 총으로 무장한 채, 그런 장비와 자신의 두뇌를 사용하여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삵괭이의 수상한 행동에 이끌려 따라가 보았더니 부상을 입은 숫삵괭이가 고통 속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은 암삵괭이가 숫삵괭이의 고통을 끊어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고, 숫삵괭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 그 후 정정당당한 대결은 계속되었으며 끝내 노인은 호적수 암삵괭이를 죽인다. 노인은 암삵괭이의 죽은 몸을 보면서, 그 신체의 아름다움에 탄복하고 그 계략의 교묘함에 경의를 표한 후, 아마존의 깊은 물속에 수장시켜준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 이 한편으로 세계적인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는, 그 세계적인 작가는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 작품도 자연보호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한다. 나로 하여금 “아뿔싸” 하고 탄식하게 만든 통찰이지만, 암삵괭이는 다름 아니라 자연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류는 아마존 개발을 당장 멈추고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을 보존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공격하면 궁지에 몰린 자연은 피맛을 본 암삵괭이처럼 인간을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론 인류의 일원으로서 나도 쓰레기 분리수거에 적극 동참하는 등 — 우리 아파트는 최근에 분리수거장을 리모델링하였다 -- 자연과 환경의 보호에 열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뿐일까? 즉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가 자기 친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그것뿐일까? 환경 보호 같은 것 말고, 보다 일반적인 성격을 지니는 삶의 태도, 거창하게 말해서, 실존적인 성격을 지니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없을까? 쉽게 말해, 나로 하여금 베란다 누수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문제에 어떤 태도로 대처해야할 지를 알려주지는 않는가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안토니오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봐야 할 것이다. 학력이나 재력, 권력 그 어떤 것을 보아도 보잘 것 없는 늙은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조차 이 늙은이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읍장은 안토니오를 미워할지언정 깔보지는 못하며, 치과의사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반말지꺼리를 하지만 안토니오만은 다르게 대한다. 치과의사는, 마을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안토니오를 은근히 존경할 뿐 아니라 은근히 사랑하기까지 한다. 안토니오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것은 일단 그의 유능함, 예컨대 날카로운 검시 능력과 기상천외의 추리력, 해박한 지식과 고급 기술의 습득을 통한 밀림에서의 생존력 등등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의 이러한 유능함은, 그에게 갖추어져 있는 모종의 아우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비한 아우라는 보통의 유능함과는 다른, 인간으로서의 유능함이라고 할 만한 것에서 나온다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안토니오는 스와르족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다.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와 풍속을 배우면서 그들과 같이 산다는 것은 보통의 문명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읍장이 그러하듯이 원주민들을 미개인이라고 부르면서, 설사 호기심을 보일지언정, 적당한 거리를 두고자 할 것이다. 안토니오는 원주민과 말이 통할 뿐 아니라 심지어 암삵괭이하고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이 역시 특별한 유능함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마 내가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더 성실하게 읽으면 (혹은 들으면), 그리고 그것을 더 충실하게 분석하면, 인간 안토니오의 유능함을 더 많이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친구의 다른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조바심이 나 있다. 연애소설 읽는 안토니오 말이다. (계속)
첫댓글 흥미진진.. 다음 편 기대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