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기 용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여러분들 시간을 특별히 내어서 자기 용서하는 시간을 가지셔야 한다고
거듭 거듭 말씀 드렸습니다. 그 시간을 가지고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을 때까지
자신을 용서하셨습니까?
가장 하기 힘든 것이 ‘자기 용서’입니다.
영성의 길을 가신다는 분들이 가장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시기도 하구요.
그 시간을 가지셨다 하더라도 한참 미흡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나를 용서해야 하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길래?
우선 이 질문부터 하게 되겠지요.
차분히 앉아서 현생의 자신을 돌이켜 보시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시고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화가 나있는지
돌이켜 자신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다면,
다음으로 전생에 대한 생각으로 넓혀 가시겠지요.
현생에서 얽힌 존재들과 전생에서 역할을 바꾸어 하셨겠지요.
피해자-가해자, 남-여로, 빛-어둠의 역할로서 많은 부분에서 얽혀들었겠지요.
그래서 현생에서는 피해자로서 많이 당하고 있겠지만 전생에서는 그 분들께
많은 피해를 주고 때로는 사건. 사고를 내고 있었겠지요.
그렇다면 서로가 피장파장이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누군가에게 전가할 수는 없겠지요.
자신과 타인들에 대해 용서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원한도 없을 테니까요.
자신을 용서하시고 변하십시오. 자신을 완전히 용서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고 굳건하게 믿고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찬 영적인 삶이 가능하십니다.
그런 후에 자신의 길을 당당히 가게 되는 것이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이들을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고 계시겠지만,
이 영적인 삶을 선택하셨다면 어떤 걸림돌도 당당히 거침없이 밟고 헤치고
지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기 용서’는 가장 기본이자, 자신이 변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이런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서 돌아서 가봐야 험난한 길만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용서하시고 영적길에서 당당히 승리하시고 상승을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일어날 외부의 어떠한 일에도 관심을 갖거나 연루되지는 마시고
내면에만 집중하시기를 바라고 내면의 평화가 가득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메시지 올립니다>
용서(容恕 : Forgiveness)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온전하게 되려면 온전하게 "용서"하여라. 너희 자신을, 가족을, 이웃을, 원수들을, 인류들을 온전하게 "용서"해야만 완전함에 이르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란다.
너희에게서 흠과 티가 없는 한없이 밝은 빛이 나오려거든 "용서"하여라, 모든것을 "용서"하여라. 그 마음에서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을 때까지 "용서"하여라. 그렇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며, 너희 스스로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란다.
너희들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바로 "용서"였단다. 너희들의 참 나인 자아를 통하여 수많은 인생의 결정과 선택을 해 오면서, 후회와 번복과, 불신을 해 왔더구나.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거나 신뢰하지 못하고, 부정하거나 의심하기 일쑤였음을 알 수 있었단다.
이러한 현상들이 생겨난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희들의 지금까지의 삶의 형태가 영 의식을 통한 경우보다는 혼에 의한 물질 선택이 주를 이루었기에 자아와 혼이 분리된 채로 지나왔기 때문이며, 자아의 선택에 신뢰를 보내지 못하면서 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단다.
이렇게 방황하는 삶을 살아오다 보니 인생은 꼬이고, 만족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여 마무리를 짖지 못하고 어영부영 끝냈던 것들이 너희들의 삶이 아니었나 싶구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니, "용서"는 더군다나 이루어질 수 없게 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원망만이 쌓이고 사랑할 수조차 없게 되었단다. 너희가 이러한 상태에서 마음을 비우고 깨달음의 길을 간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란다.
명상을 하는 곳에서 자신을 "용서"하는 것을 시키는 곳도 있었다만, 일부에 그치고 마는 것이기에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단다.
'진리를 알면 자유롭게 되리라'라고 하였지만 너희들이 자신들의 진실과 조우하게 되면 불편해 했었단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부정해왔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자신의 진실과 만난다 하더라도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온전하게 "용서"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다른 이들을 "용서"할 수 없으며, 사랑할 수 없는 것이로구나. 너희들 스스로를 "용서"하고 신뢰를 회복하여야만 이 마음이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는 것이란다. "용서"와 신뢰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너희들을 괴롭히던 번뇌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란다.
너희들이 물질세계의 경험을 터득하다 보면 마음과 몸에서 충돌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서로의 목표가 틀리다 보니 충돌에 의한 결과가 번민으로 나타나는 것이란다. 평생 동안 너희들을 괴롭히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잊고 살아가는 물질에 충실한 인생들도 있고, 내면과의 싸움을 싸우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인생들도 있더구나.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싸움은 자신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인생을 자살로 종료시키거나, 답은 구하지도 못한 채로 인생을 종료시키는 경우가 너희들의 삶들이었단다.
삶은 참으로 고단하여 너희들의 양 어깨를 짓누르고 마음을 어지럽게 하면서 인생길을 평안하게 안주하지 못하게 하며, 다양한 시련과 시험들을 두루 섭렵하게 하기도 하고, 너희들을 어려운 관문들을 통과하도록 유도하는구나. 지금까지 너희들은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하다 보니, 더욱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삶의 고통이 너희들을 속박하는 감옥이 되어 너희들을 노예처럼 만들고 말았더구나.
이것이 너희들에게 인생의 번뇌가 되어 삶의 버거움을, 삶의 고통을 느끼게 하였다만, 이것을 인생 공부를 위한 여정으로 보지 못하고 오직 고통으로만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너희들에게 올무가 되었을 뿐이란다.
너희들이 지나온 시간의 여정들이 그랬었기 때문에 후회되는 삶이 되었고, 기쁘지 않은 삶이 되었으며, 고통의 연속이 되는 회한(悔恨)의 인생길이 되었었기에 깨달음의 근처에도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란다.
왜 기쁘지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하고, 후회만이 가득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자아의 상실 때문이었구나. 너희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던 자아는 스스로를 봉쇄하고 칩거에 들어가면서 너희들과 분리될 수밖에 없었으니, 이것이 너희들의 삶을 물질에 매달리게 하는 시초가 되었단다.
분리되었던 자아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리는 것이 너희들의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는 것이며, 물질에 종속되었던 너희들의 몸체를 의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지름길이란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상실된 자아를 되찾기 위한 방법이 바로 "용서"란다.
그동안 너희들이 외면하였던 부분들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부정하였던 부분들을 모두 수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바란단다. 지난날 선택에 대한 후회와 불인정, 결정에 대한 번복들을 모두 거둬내고 마음속에 인정을 통하여 신뢰를 회복하여라.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 용서"란다. 너희들 스스로를 스스럼없이 "용서"하고, 지난날 모든 과정 속에서 얽히고 설킨 것들을 모두 "용서"하면 신뢰가 돌아오게 되며, 상실되었던 자아가 되살아나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란다.
지금까지 너희들을 괴롭히던 번뇌도 더 이상 훼방꾼이 아닌 조력자로서 너희들을 돕게 될 것이란다. 마음의 번뇌는 먼지 같아서 없어진 것처럼 보이다가도, 먼지처럼 다시 떠올라 또 괴로움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을 하니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단다.
번뇌는 너희들의 완성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서 사용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었다고 보면 된단다. 모르던 때에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너희들의 숨통을 옭죄어 숨쉬기를 어렵게 하였으며, 삶의 여정도 매우 험난하고 지치도록 하여 너희들을 완성의 길의 초입에서 모두 넘어지게 하였단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올무에 걸려서 넘어지지 말고, 밝고 아름다운 너희들만의 인생을 펼치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너희 자신을 모두 "용서"하고, 진정한 자아를 되찾기를 바란단다. 그래 ,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번뇌를 완성시켜서 참된 조력자로서 만들려면 반드시 "용서"가 이루어져서 너희들의 자아와 너희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란다.
온전한 "용서"가 이루어져야 너희 가족을, 이웃들을, 인류들을 온전하게 용서할 수 있게 되며, 그 후에야 '다 이루었다'가 나올 수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의 마음이 "용서"함으로 모두 비워지면 그 빈곳에 사랑과 자비가 넘치도록 차고 넘칠 것이란다. 그러면 전체 인류들을 사랑으로 포용하게 되고, 완성의 길에 들어가 진정한 그리스도와 부처가 되는 것이란다.
너희들의 성서에도 베드로와 예수의 대화 속에 진정한 "용서"에 대한 대화가 기록되어 있단다. 이것이 예수가 알게 된 진정한 "용서"의 메시지란다. 제일 먼저 자신을 그렇게 "용서"하고, 자신의 가족들과 이웃들을, 원수들을 그렇게 "용서"하다 보면 너희들의 마음이 번뇌에서 해방되어 모두 비워지게 되는 것이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마음을 다스린다하여 번뇌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단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다가, 또 다시 나타나는 속성을 가진 것이 바로 번뇌라는 것이란다. 왜냐하면 너희들의 물질인생의 완성을 위하여 장치로서 설치한 프로그램이었기에 없앨 수가 없는 것이었단다. 그것을 모르고 수행하던 수행자들이 완성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란다.
번뇌는 온전한 "용서"를 통한 마음 비우기가 이루어져야만 완성되어 더 이상 번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서 결국 조력자로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 번뇌를 없애게 되는 것이란다.
관세음과 마리아가 지금까지 역할을 맡아서 최선을 다 해주었단다. 이것이 완성의 길을 위해 너희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마다않고 해준 존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단다.
자, 온전하게 "용서"하여라.
더 이상 너희들을 힘들게 하던 구속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해방되기 위해 온전하게 '용서"하기를 바란단다. 이것이 너희들이 너희들의 진실과 대면했을 때에도 너희들을 당당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인이며. 거리낌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방법이란다.
보아라.
내면의 신에 대하여, 또 내면의 신과 하나로 합일하여 신인이 되는 것과, 자신이 신이 되는 것까지 그 과정과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자신에 대하여 그 동안 얼마나 무지하여 폭력을 행사하며, 멸시하였는지를 알게 한 것이란다.
신이 되는 과정은, 신을 만나는 과정은 자신을 얼마나 "용서" 하느냐에 달려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란다. 자신을 온전하게 "용서"하지 못하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란다.
태초에 너희들을 창조할 때, 나의 형상대로 짓고 나는 나의 호흡, 즉 나의 생명을 너희들에게 불어넣어줌으로 해서 너희들을 나와 같은 하느님들이 될 수 있었단다. 죽어있는 물질체에서는 신을 발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에게만이 신의 형상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란다.
너희도 살아있음으로 해서 신이 될 수 있으며, 신과 하나가 될 수 있고, 스스로가 하느님이 될 수 있는 것이란다. 이것이 바로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요, 영생하는 것이란다. '진리를 알면 자유함을 얻으리라'는 결국 죽음의 덫에서 풀려나 온전하게 자유하게 되는 것이란다.
이런 과정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너희들 스스로를 향한 온전한 "용서"에 따른 마음 비우기가 이루어져야 함이며, 번뇌를 극복하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서, 그 가운데 사랑과 자비를 통하여 신으로서의 덕목을 성취하는 것이로구나. "용서"함이 이루어져야 참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는 것이란다.
지금까지 너희들의 마음은 오직 본능이라고 하는 물질 욕망에 사로잡혀 출세, 승진, 성공, 부귀영화, 명예, 권력 등 너희들의 삶의 모든 계획을 보이는 세계에 치중하며 살아오는 것이 덕목이요, 이상이었단다.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충족시키더라도 만족함을 얻지 못하고, 더 많이 축척하며, 갈구하여 끝없는 욕망의 노예처럼 살아왔단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단다. 표면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쌓았던 부귀영화와 명성이 무너져 내릴까 하는 노파심이 너희들의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끝없이 욕망을 드러내고,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 늘 불안해하고 좌불안석하게 만들며, 노심초사하게 하는 것들이 너희들의 혼의식이 너희들을 물질계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하나의 수단이란다.
너희들이 물질경험을 통하여 하나의 과정을 이해하고, 완성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어서 과정을 밟게 되어 있다만, 3차원의 물질세계의 의식은 그 과정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방해를 하고 있으며, 또 이곳이 최종 도착지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해서 다음 과정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이번의 삶이 마지막임을 자각하게 하여 제자리에 머무르고 집착하게 만든단다. 그래서 자신의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끌어안게 만들고, 욕망을 불러 일으켜서 동물적 본능으로 살아가게 만든단다.
너희 인류들은 지금까지 그 함정에 빠져서 주저앉아 버렸고, 그곳에서 탈출하여 나올 생각들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단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생명들의 현주소였단다.
이런 결과는 혼의식과, 영의식의 분리에서 일어나게 되었으며, 두 종류의 의식을 심어준 것은 물질세계를 경험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들을 혼 의식이 담당하고, 물질세계의 과정이 훌륭하게 종료되고 나면, 영의식이 활동하게 하여 다음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계획했던 부분들이 과도한 혼 의식의 집착에 의해 오류가 나기 시작했고, 너희들을 물질계에 물들게 하여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 결과가 지금의 너희 인류들의 삶을 동물적 본능에 따라 살도록 한 것이었단다.
이것을 이중인격 또는 다중인격이라고 너희들의 학자들은 표현하고 있다만, 혼 의식과 영 의식의 분리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란다. 너희들의 의식세계는 물질경험의 완성을 이루고 비물질 경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었다만, 과부하가 걸려서 오류가 나게 된 경우란다.
이것이 끝없는 욕망의 집착으로 나타나게 되어 번뇌가 너희들을 괴롭히고,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란다. 그 결과는 상실감으로 돌아와 너희들을 두려움의 공포에 빠지게 하니, 바로 많은 부와 명예를 잃어버릴까, 빼앗길까 하는 마음에서 오는 두려움이요. 실패와 가난에 따른 허탈감과, 불안에 따른 심리적 박탈감이 너희들을 두려움의 공포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란다.
그러면 너희들은 자신을 그렇게 만드는 마음을 더욱 증오하고 미워하며, 원망하고 때로는 원수처럼 저주하기도 한단다. 더욱 철저하게 두 마음으로 나눠지고, 합쳐질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지난날의 너희들이었단다.
너희들 학문에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더구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으로 나눠놓고 이야기한다만, 두 마음이 모두 너희에게 근본으로 주어졌음을 알기 바라는 것은 빛 가운데서는 어둠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어둠 가운데서는 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너희들의 삶 가운데서도 선함 가운데서는 악이 선명하게 보이고, 악함 가운데서는 선함이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여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알게 하였음이란다.
극과 극을 경험하게 하여 두 기운 중에서 과연 어떠한 것이 진정 너희들이 이루어야 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였으며, 두 마음 가운데 악한 마음은 두려움과 공포를 통하여 죽음, 즉 사망을 알게 하였으며, 선한 마음은 기쁨과 행복을 통하여 평안, 즉 생명을 알게 하였단다.
너희들의 삶은 생명을 통하여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죽음을 통하여 인생을 종결짓도록 하였단다. 결국 사망을 통하여 두려움을 알게 한 것은 두려움에 굴복하라 한 것이 아닌, 완성하라 한 것이었단다. 생명을 통하여서 인생의 소중함을 배우도록 한 것은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깨닫도록 배려한 것이란다.
이렇게 두 마음을 모두 경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넘치는지를, 알게 하여 균형점을 찾도록 안배한 것은 평등 가운데 중용을 지키도록 한 것이었단다. 두 마음을 모두 경험하고 중심에 서서 자아를 지켜보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고 객관적으로 너희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란다.
참 자아는 너희들의 분리함 속에서 그 동안 손님으로서, 이방인으로서 너희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희들은 그 동안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중심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기 때문이었으며, 한편으로 치우치는 인생들을 선택하여 살아왔기 때문이란다. 전생의 경험들을 통하여서 이번의 인생의 경험과 함께 완성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 현재 너희들의 삶의 계획이었으며 목적이었단다.
과연 지구의 인류들이 이것을 얼마나 이해할 것이며, 깨달을 수 있을지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구나. 인생에 주어진 질문을 통하여서 이 해답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은 해답을 찾을 길이 넓고 평탄하며 곧은 길이 아닌, 험하고 좁은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란다. 너희들은 해답을 찾기를 바라면서도 쉽고 평탄한 길만을 고집한단다. 힘들고 굴곡진 가시밭길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이 너희들의 참모습이란다.
너희들을 창조하고 지구에 인생의 학교를 설립한 것은 너희들이 인생의 포로들이 되어 고통 받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으며, 물질에 사로잡혀서 노예처럼 살기를 원해서도 아니었단다. 이 과정을 통하여서 진실한 너희들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기를 바랐었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서 완성되는 삶을 살아가기 원했었기 때문이란다.
너희들이 창조자임을,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게 하려한 것이었으며, 너희들의 내면에 나의 영을 심어주어 나에게 오는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었고, 나의 영을 통하여서 너희들이 하느님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었단다.
그래서 두 마음을 두어 경험토록 한 것이었으며, 빛과 어둠, 음과 양, 선함과 악함을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음이니, 이것이 너희들의 인생이요, 삶이었단다. 물질세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참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었구나.
너희들은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경험을 하기 전에, 모두들 나의 자녀됨의 권리를 누리던 인생들이 있었던 과거가 있었다만, 행복한 인생들의 소중함과 귀함을 알지 못하고 인생들을 허비하였음이니, 어쩌면 그때의 뼈아픈 과거의 상처를 두 번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하여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단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의 삶을 통하여 그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으며, 잘못된 선택이 어떠한 결과로 돌아오는지를 분명하게 보임이었으니 이제 너희들은 지난날의 과오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란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제 분리되었던 두 마음, 즉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하나로 온전히 통합하여 완성하기를 바란단다. 참 자아를 중용으로 바라보고 중심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고, 혼의식과 영의식이 하나로 융합하여 진정한 하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물질세계에 얽매이지 말고 정신세계로 잘 전진하여 올 수 있도록 하려무나. 이것을 위해 너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란다.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와 친구, 이웃, 가족 뿐만 아니라 세상의 원수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들을 "용서"하고, 너희들의 마음에 품으라는 것이란다. 어떻게 너희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저주하는 상대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죄를 짓고 너희를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의 수렁에 빠트린 형제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또 너희마저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도 뉘우치지 못하여, 너희를 비웃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
내 아들 예수를 보아라. 자신을 팔아넘긴 제자도,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제자도, 자신을 버리고 모두 도망간 제자들도,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게 한 유대인들도, 자신을 죄인으로 고소한 제사장들과, 그 일에 연루된 모든 이들과, 빌라도 총독까지도 그는 모두 "용서"하며, 그 죄를 저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기도하였던 그를 보아라. 그리고 모두 '다 이루었다'라고 하였단다. (요한복음 19:30 KJV)
가장 어려운 것이 눈에 보이는 상대를 "용서"하는 것보다, 너희의 마음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이란다. 너희의 인생을 쓸개와 같은 고통과, 가시밭길과 같은 실패함을 맛보게 하며, 끝없는 시험과, 시련의 고통을 안겨 주었던 너희 자신에 대하여 증오하고, 미워하며, 저주하였던 지난 날을 돌아보아라. 눈물의 연속이었으며, 끝없이 나를 찾았다만, 응답하지 않던 나를 버리려고까지 하였던 너희를 돌아보아라.
하지만, 자녀들아! 나를 버리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서 찾아주었음에 감사하단다. 그 동안 너희를 끝없는 질곡의 고통 속에 빠트린 너희 자신을 "용서"하라 했을 때, 예수를 보아라, 했음을 잊지 않고, 따라와 참된 "용서"함을 알게 된 너희들에게 감사하단다.
그래서 분리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자신을 "용서"하게 된 뒤에 너희들의 변화된 마음을 보아라. 그래, 모든 이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더구나. 모든 인류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단다.
"용서"하는 마음에 사랑과 자비만이 가득차고 넘침을 경험하게 되었단다. 그 사랑과 자비를 이웃과 인류들을 위해 부어줌을 보았단다. 이것이 바로 온전히 너희를 "용서"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단다.
온전히 너희를 "용서"함 속에 그 마음이 비워지게 되었으며, 그 비워진 마음에 사랑과 자비함이 자리할 수 있게 된 것이란다. 너희의 마음이 너를 투명하게 비춰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중용으로 바라볼 줄 알았으며, 평등할 줄 알았고, 교만의 늪에 빠지지 않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기에, 너희에게 준비된 선물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란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용서"하여라. 너희를 시련의 모진 가시밭길로 인도한 자아를 "용서"하고 빛과 어둠을, 선함과 악함을 경험하게 해 준 자신에게 감사하여라.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만날 수 있도록 애쓰고 힘써 준 너희들 내면의 신이 있었기에 너희들의 인생의 계획들이 이렇게 있어왔던 것이었단다.
내면의 나의 영과 만날 수 있도록 계획된 일의 결과였구나. 너희 자신과 자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나와 만날 수 없단다.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참선, 수행, 명상을 한다고 하여도, 나와 만날 수 없음이란다.
너희들이 진정으로 나와, 나의 영과 만나려거든 진실한 "용서"가, 온전한 "용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을 온전하게 "용서"해야 그 안에 사랑과 자비가 들어갈 빈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그 동안 너희를 괴롭혀 왔던 번뇌들도 온전한 "용서"함 속에 녹아서 너희와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것이란다.
번뇌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함 속에 완성되는 것이란다. 그것이 바로 너희 자신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믿음 가운데서 온전히 "용서"하는 것이란다. 회개라는 것이 "용서"함에서 나오는 것이란다.
너희를 창조하고 마음을 두었으니, 그 마음이 나의 영이었구나. 그 동안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여 질투하였고, 증오하며 저주하였음이니, 진실한 회개는 바로 온전한 "용서"함이란다. 그러면 너희들의 두 마음들이 하나가 되고 인류들은 "용서"하며, 모두 다 사랑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다 이루었다'가 되는 것이란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나의 뜻이 지구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란다. 바로 너희들을 통하여서란다. 너희들에게 온전한 "용서"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단다.

첫댓글 용서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 되리라!
도의 길 천국의 길은
신성의 자각과 마음의 용서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