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잠깐 와서 이야기 좀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나는 ‘모’라는 말이 붙은 단어에 쉽게 동요한다. 모국어라든지, 모성, 모친 같은 단어가 그러하듯, ‘모’라는 말이 붙은 단어는 지키고 싶어진다. 그래서 갔다. 깜깜한 밤에 모교의 고등학생들을 만나러 가면서 떠올린 작품이 ‘연못 유치원’이다.
30년 전, 올챙이였고 수채였고 아기 붕어였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연못을 박차고 나왔다. 연못보다 훨씬 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개구리로, 잠자리로 잘 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생들을 만났는데 몇몇은 씩씩했고, 몇몇은 우울했고, 몇몇은 힘겨워했다. 하루 왔다 가는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싶어 미안하다. 올챙이야, 아프지 말아라. 수채야, 잘 날 수 있길 기도할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런 말밖에 없다. 연못 유치원에 노니는 시간을 더 즐기고 소중하게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하면 ‘꼰대’가 될까 봐 눈으로만 말했다. 열 마디 말보다 이 한 편의 시가 낫다.
이 작품은 동시다. 동시란 어린이를 위한 시를 말한다. 그것은 퍽 유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 말자. 잘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어린이가 있다. 그러니 동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