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생뚱맞은 얘기지만, 저는 요즘 드라마 '동이'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사극을 즐겨 봅니다. 근데, 왜?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보시는지...
저는 동이를 보는 까닭이 명쾌합니다.
동이(사실은 동이라는 이름은 픽션이고,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라는 여인은 비록 31세에 요절했지만, 영조라는 군주를 낳았던 여인입니다. 이후 손자인 정조를 위시해 순종까지 8명의 군주를 배출한 계보의 수장이었던 인물입니다.
조선 후기, 특히 영조와 정조시기는 조선 500년 역사에서 어쩌면 이탈리아의 문예부흥기처럼, 조선의 부흥이 예고됐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서양은 이미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 신대륙으로 이민을 가 오늘날 미국이라는 대제국을 탄생시켰고, 영국에선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프랑스 대혁명으로 부르조아 계급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가 태동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조선도 한번쯤 도약할 수 있었던 시기이가도 했습니다.
동이의 아들(연잉군, 후에 영조)은 조선시대 몇명 되지 않았던 서민적인 군주였습니다. 그의 이같은 경향은 그의 어머니 동이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동이라는 여인은 천민 집안(사실 그녀의 집안은 몰락한 양반가문이긴 했지만...) 출신으로 당대 쟁쟁했던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를 물리치고 최후의 파워게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무려 53년을 통치했습니다. 국사시간에 배웠듯, 영조시대에는 당파를 고루게 등용시켰던 탕평책이 펼쳐졌고, 세종과 더불어 왕권이 강화됐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의 손자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대왕으로 일컬어지던 성군이기도 했습니다.
균형 잡힌 정치적인 시각도 장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치열한 파워게임을 극복하고 자신의 아들을 군주에 자리에 올렸던 어머니 동이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만약 동이라는 여인이 자연적인 수명을 살다 갔으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던 여인,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언제 제고될지도 모르는 절차절명한 위기를 극복했던 그 지혜가 아들과 손자,그리고 증손자에까지 유전자로 남겨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서민적인 눈높이를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동이라는 여인은 자신의 아들이 희빈 장씨의 아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할 때, 중국(청나라)과 등거리 외교를 통해 서양 문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일깨워 줬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최소한 자연적인 수명을 누렸더라면, 청나라를 통해 서양문물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어쩌면 일본보다 먼저 부국강병책을 구현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같은 사안들을 생각하며 드라마 동이를 보고 있습니다.
역사는 어쩌면, 미래를 보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슴이 저립니다.
첫댓글 요즘보니 연잉군이 어릴때부터 남달랐고 뛰어나게 나오던데.. 그가 바로 영조이며, 그후에 이어지는 계보 때문이겠군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느것이 진짜이고 어느것이 붙인건지... 다시한번 역사를 되집어 보게 되더군요^^
'동이'라는 여인이 자연적인 수명을 누렸다면? ...그 이후 여러 역사의 양태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흥미로은 말씀이군요. 나라는 어찌되건 자기들의 기득권에만 눈이 멀은 못된 신하들의 세력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이고 서양문물을 활발히 받아들였을 터이고..사도세자의 죽음 , 당파의 세력이 제어되어졌다면 정조의 수도이전이 성공했을 수도 있고'정조 독살설' 등등 그 이후 굵직한 여러 역사실 사실을 되돌리고...
'동이'라는 드라마에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군요.
저는 역사드라마에 무관심한 편이라...
그림비님 알고보면 역사는 참 재미있습니다. 누가 그랬잖아요? 역사는 현재를 들여다 보는 거울이라구요. 이젠 우리도 거울을 들여다 보기가 부담가는 나이가 됐지만...
역사극이던 현대극이던 장편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지만 역사극의 양식미는 좋아하는 편이지요. ^^
저도 요즘 무척 재미잇게 보고 잇습니다 표독하고 약간 무식()한 방법으로 악을 행하던 장희빈이 아니라 ,장희빈하면..매질한 최씨를 독에 가두고.. 그런식의.. 미롭고..뭣보다 숙의 캐릭터가 재밋어서요글구 동이와의 라인도 보기 좋구요 한답니당중간에 쪼금 늘어져,미를 앓을만하니.연인군이 등장해 재미를 주네요..
왜 잇쟎아요
암튼 다른 장희빈의 모습도
저도 여늬 아낙과 마찬가지로 사극
나 궁금한 건 못 참는데...허향은 멀 이르는 말인가여
허향님 땜에 이곳이 가을처럼 풍성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투덜고수님과 쌍벽, 절대동감 ^^
바이올렛님의 성함, 참 예쁘네요.
, 글 쓰는 것 비슷한 것으로 밥 먹고 있습니다.
...
바이올렛님의 질의에 대답드립니다.
許가는 맞구요, 향은 한문으로 鄕입니다.
물론 본명은 아니구요.
시골(강원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문학동아리가 있었는데,
그때 "이담에 등단하면 사용할 필명 하나씩 만들자"고 해서 지은 필명입니다.
근데, 이 나이 먹도록 등단은 못했구요.
죽기 전까지 등단은 할 수 있을려나
근데, 바이올렛님,
혹시 고등학교를 이대 후문 옆에 있는 교복 예쁜 학교 나오시지 않았나요
제 고향 친구가 그 학교 나왔는데...
대학은 흑석동에 있는 학교 나왔구,
지금은 교편 잡고 있는데,
I. 世祖 005 02/09/07(갑술) /
의금부에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
: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난신(亂臣)에 연좌(緣坐)된 부녀(婦女) 內에서 ....
이소동(李小童)의 아내 천비(千非), 이공회(李公澮)의 아내 동이(同伊), 심상좌(沈上佐)의 아내 미비을개(彌飛乙介)· 딸 계금(繼今)은 계양군(桂陽君) 이증(李증)에게 주고...........
*이공회: 이개선생의 아들로 단종복위운동의 실패 때 함께 사형 당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여인의 이름 중에 同伊란 이름이 기록되어 있네요, 물론 드라마 '동이'와는 별개이고요.
하나또하나님의 해박한 역사지식 고맙습니다. 물론 하나또하나님의 말씀처럼 同伊라는 이름과 드라마 '동이'와는 별개이지만, 이 드라마에 픽션으로 나오는 동이라는 여인(숙빈 최씨)도 역사(숙종실록)에는 몰락한 양반 집안의 규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 숙빈최씨는 ......
숙빈 최씨의 생몰은 1670년 11월(현종11년)에 태어나서...
1676년(숙종 2년) 7살 때 입궁하여 무수리(침방나인)를 하면서 인현왕후를 섬기게 됨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와 함께 안국동 감고당으로 가지 않고 궁궐에 남아있다가.... 숙종의 은총을 입게 됨.
1693년(숙종 19년) 10월: 왕자 영수(숙종의 서3남)를 낳았으나 생후 두 달만에 사망함.
1694년(숙종 20년): 갑술옥사로 인현왕후는 복위되고, 왕비가 되었던 희빈 장씨는 다시 후궁이 됨. 9월에 연잉군이 탄생함.
숙종 61권, 44년(1718 무술/ 淸강희 57년) 3월 9일(무오)
숙빈최씨가 졸하였다...
하나또하나님의 설명 고맙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만약, 숙빈 최씨가 48세에 별세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조선 후기의 역사도 바뀌었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이덕진 한가람역사연구소장, 김준혁 수원박물관 학예사)
저는 근간에 정조와 조선 후기에 대한 책 읽기에 푹 빠져 있는데,
숙빈 최씨라는 여인이 그의 아들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고 통치할 때까지
생존했더라면
정치공학상, 조선 후기는 상당한 개혁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숙빈 최씨가 조선 후기 역사에서 비록 31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지만,
그 의미가 막중했다고 봅니다.
이크, 많이 장황했습니다.
죄송함
결국 숙빈최씨는 48세를 일기로 졸하였습니다. 이런 결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