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 떠 오른 흉노족 미추왕]
석 산 박 영 석
머나먼 대륙에서 벌어진 이야기도 금방 제 눈으로 본 듯, 침을 튀겨가며 주워섬기는 얘기꾼들의 이야기 중에는 전쟁 이야기가 으뜸이라, 진시황의 만리장성 이야기, 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과의 전쟁 이야기 초한 전, 근래 벌어진 한무제와 흉노의 전쟁 이야기 등에서도 역시 백미는, 바람 같은 흉노(훈) 기병이 지나간 자리엔 바람밖엔 없드라 라는 이야기였으니,
스키타이가 살든 흑해 연안으로 떠나간 친척들, 우랄산맥과 코카서스 산맥기슭에 정착한 지인들, 더 깊숙이 멀리 칼파티아 산맥 쪽으로 이주해간 친척들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서글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슬픔의 한가운데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어, 힘든 일거리라도 찾아 나서야 하는 것 이다.
먹고 사는 것이 인간에겐 참으로 중요한 역사요 엄청난 대사라. 역사는 쉬지 않고 흐르고 흥망 성쇄도 흘러, 조비의 魏나라(220년-265), 사마염의西晉(265년-316), 사마예의東晉(317년-420), 5호16국 시대를 연, 匈奴선우 後孫 유연의 304년 漢나라 개국, 후에 前趙(304-329)로 개명하니, 5호16국시대는 참으로 흥망이 요란한 난장 판이였다.
유수 같은 세월이라지만 어느새 신라에서는 匈奴족 出身의 제13대 미추왕(262-284년)의 시대가 열리고, 시조인 김알지의 7대손이며,갈문왕 구도의 아들이라고 했다.[신라사초의 다른기록 유]
석탈해왕 초기에 훈족(匈奴)이 신라 경주 땅으로 이주해 왔으니, 그 정도 세월에다 석씨왕가의 사위 자격 왕으로 이상할 것이 없다는 미추왕부터 시작하여 550년간 김씨 왕조의 세습이 계승된다는 것은 지지기반이 확고하다는 얘기다. 카스트 제도 같은 골품제도라는 이상한 제도가 있어
일반인의 이해가 어려운 것으로, 모(용)씨가 김씨로 개명하기도 하니, 이것은 모계사회인 퉁구스 특징인지 신라의 지배층엔 흉노와 같은 북방 기마민족인 선비족도 있었으니, 모계사회인 유목민이 이유인지, 사위가 왕이 되는 제도 탓 인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로서는 알 길이 없는 이상한 것이었으나, 미추왕은 백성을 사랑하고 국방에 힘쓰며 선정을 배풀어 신라는 안정되고 백성들의 칭송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