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 누구를 표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 수준도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을 보면,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 의 예배를 거론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서 예배가 다윗과 아삽의 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모세의 때에도 있었습니다. 더 멀리는 아브라함 때에도 있었고, 노아, 더 거슬러 올라가 아벨의 때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때를 거론하지 않고, 다윗과 아삽의 때를 거론합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과 아삽의 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는 아벨이나 아브라함, 모세 등, 선조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따라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형식, 규모 등에서도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를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사람들이 다윗과 아삽의 이렇게 아름다운 시대의 예배를 자신들이 드려야 할 예배의 표준으로 삼음으로써, 그와 같이 아름다운 형태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오늘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우리의 신앙의 표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의 수준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역사나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열악한 형태로 신앙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거론하면서 ‘봐라 저들도 저 정도로 예배하지 않았느냐?’, ‘저 정도로 신앙 생활해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지 않았느냐’ 라고 하면 그 사람의 신앙은 그 정도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좋은 여건 속에 있어도 그 신앙은 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최악의 여건 속에 있어도 귀감이 되는 훌륭한 신앙을 지닌 성도의 모습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아보십시오. 그는 위대한 성도와 같은 반열에 설 만큼의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이제 여러분 자신이 설정하고 있는 신앙의 표준을 다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성경 속에서, 혹은 교회 역사에서, 혹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가장 위대했던 신앙의 사람들을 신앙의 표준으로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혹시 정말 본받아서는 안되는 사람 혹은 그러한 신앙의 모습을 표준으로 삼거나 아니면, 그것을 들어 자신의 형편없는 신앙 상태를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깊은 자기 반성 속에서 훌륭한 신앙을 지닌 성도 혹은 그 의 모습을 자기 신앙의 모델로 삼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