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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강풍 영향으로 체감온도가 극감 하여 제대로 운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카이 워크 회전 시설물 전에 차단시켜 놓아 제대로 조망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주혁이가 발왕 산 약수를 마시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와 용평 리조트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더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오른 후 발왕 산 하늘공원과 발왕 산 약수 길을 걷고 미진했던 부분을 보충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말이 다가 오자 용평 리조트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기 시작하였다. 오늘도 바람 걱정이 앞섰지만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케이블카 덕분에 20여분 만에 발왕 산 정상에 올랐다. 날씨는 어제보다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날은 찼다. 우선 발왕산 약 수길을 걷기로 하였다. 할머니는 대신 스카이 워크 1층에 남아 기다리기로 하였다. 눈이 내려 빙판 길이라 좋은 판단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제노 여사는 발왕 권좌에서 전체 가족사진을 찍자 제안을 하여 주변인을 물색하여 부탁을 드려 해결하였다.
그리고 세 가족만 다시 사진을 찍어 준 후 딸과 주혁이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그리고 새벽에 내린 눈이 얼어 있어 부분적으로 매우 미끄러웠다.
옅은 운무가 산 산 산을 미혹의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역광이라 피사체들의 색감에 거의 흰빛이 많아 노이즈 현상이 강하게 드러났다. 우리나라 산은 참 부드럽다. 강물도 유순한 편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민족의 정서는 가무를 중심으로 대동계를 만들어 부락단위로 품앗이를 하며 정답게 이웃사촌이라 하며 살아온 민족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바뀌기 시작하더니 오늘과 같은 처지로 변해 버렸다. 이념적 선택으로 교육환경을 바꾸어 놓더니 이 꼴이 된 것이다. 역사는 어차피 순환의 궤도를 달리게 되어 있으니 언제 가는 나름 제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평창 동계 올림픽 마스코트가 있어 주혁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 준 후 얼음이 깔린 데크 길을 내려가기 위하여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어느 부부가 당당하게 내려가겠다고 비켜달라고 조르더니 여러 차례 미끈하더니 포기하고 돌아 서서 가버렸다.
다른 자세로 한 장을 더 찍어 준 후
모자지간을 세우고 다시 한 컷~~
순간적으로 먹구름이 몰려와 주변이 별안간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혹시 폭설이라도 내리려나 기대하였으나 한두 시간 흐른 후 날씨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작은 적설량마저 강풍에 휩쓸려 간 곳은 걷기에 편하였지만 태양의 열기 영향으로 녹다 얼어버린 구간은 경사면을 내려갈 때 스침 손잡이를 꼭 잡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미끄러웠다. 낙상 사고에 대비하여 조심조심을 주문하며 걸음을 옮겨 나갔다.
고산에서 풍경을 이끄는 것은 역시 고사목이 주인공이다.
데크 길 옆으로 서 있는 건물이 바로 스카이 워크다. 1층에는 선물센터와 카페가 있고 로비에는 간식거리를 파는 매점도 있으며 스카이 워크로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걸어서 오르며 단이 바뀌는 곳마다 조망 권역을 설치해 놓아 창밖을 보는 재미도 솔솔 하게 해 놓았다. 건물 정상 부분에 긴 통로를 만들어 놓고 그 중앙에 360도 회전하는 발판을 만들어 자동으로 동서남북 방향 풍경을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끝 부분에는 전망대를 설치하고 바닥은 투명 유리를 깔아 고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 1층 로비에서 외부로 바로 나갈 수 있는 현관문이 있어 나가면 바로 하늘공원으로 접근할 수 있고 광장 남서향 전체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고사목 사이의 둔덕을 오르거나 그 옆으로 산 정상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어 산책하기 좋은 멋진 길이다. 봄날 찾으면 각종 야생화가 시선을 끌고 여름엔 녹음 운치가, 가을엔 단풍이, 겨울에는 설경이 장관을 이루는 곳인데 겨울이 채 익지 않아 설경 파노라마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정상까지 스키 슬로프 옆으로 난 산 길을 걸어서 오를 수도 있어 왕복 5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상급 트레킹 코스로서 걸어 오르며 느끼는 고도감과 전경의 빠른 변화가 너무 아름다워 한 번 즈음 걸어 볼만 한 곳이다.
서너 번의 데크 길을 꺾어 내려 서자 얼음 풍경이 기다렸다는 듯이 샘 바로 옆에서 불쑥 나타났다.
어제보다 여유로운 모습이다. 적설량과 상관없이 눈이 내린 날은 조금 상온으로 바뀌고 30cm 이상 적석량이 쌓이면 복사열의 영향으로 상당히 체감온도는 상승하게 된다. 반팔 상의만 입은 상태로 보행도 가능해진다. 대신 노출부위를 최소화 시커야 한다. 피부가 까맣게 타게 될 영향 때문이며 설맹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굴이나 선글라스는 필수다. 북사면 길, 안부를 걷고 있어 바람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늘 바람은 동남풍이라 북사면을 걷는 우린 바람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상고대와 빙벽에 시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서서 사진 포인트를 찾아가며 딸과 손주의 사진을 찍어 주며 약수터로 접근해 나갔다.
주혁이는 고 두름도 따느냐 정신이 없었다.
엄마랑 얼음 칼싸움을 하기 위하여 큰 고 두름을 따서 엄마 손에 쥐어 주고 얼음 칼싸움을 하며 주혁이는 신이 났다.
다람쥐도 쉬어간다는 발왕 약수 광장에 도착하였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 부르는 붉은빛 주목나무가 이곳을 찾은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순백의 눈을 품어 빚는다는 발왕 약수가 암반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발왕산 지역은 과거 5억 년 전 고생대 초기에는 적도 부근 바다였으나 퇴적작용과 지각변동으로 지금의 높은 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발왕 약수는 정상에 쌓인 눈이 녹아 단단한 화강암 속으로 스며들어 만들어진 깨끗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인 약수다.
암반수는 여러 이름으로 명명되어 토출 되고 있었다. 재물, 장수, 지혜, 사랑 수가 암반을 뚫고 암반 사이로 넘치고 있었다. 주혁이 엄마는 재물 수를 주혁이는 지혜 수를 할아버지는 사랑 수를 선택하여 각자 마셔두었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각자의 인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 좋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중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넘치면 수습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절제와 여백의 마음 미학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텅 빈 충만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을 때 스스로 삶에서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하며 일러 주었다. 삶은 언제나 차근차근 조심의 다리를 건너야 제대로 된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사유하며 살아야 된다는 뜻이다. 어느 날 큰 재물이 생겨도 올고 그름을 따져야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고, 지혜 또한 그 본질을 깨닫고 사유의 과정을 거쳐야 진실한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의 본색은 티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도구가 될 수 없다. 사랑을 도구로 사용하는 순간 흉기가 되어 너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바로 본질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 그리고 남녀의 본질을 구분하며 서로를 헤아리며 살아가는 것이 사랑의 실체를 성숙시켜 나가는 일이다.
역시 딸은 딸인가 보다 홀로 남아 스카이 워크 가페에서 머물러 있는 엄마 생각을 하는지 수통 자동판매기에 카드로 결제를 하고 수통을 사서 생수를 담아 주혁이에게 주면서 할머니에게 드리라 당부하는 모습을 보고 위로가 되는 것을 느껴다. 그 물은 지금도 냉장고 생수 보관 지역에 남아 있다.
생수통 문제로 모자지간의 대화도 인상적이었다. 주혁이가 수통을 전하며 할머니 발왕 수 드세요 하자 주혁이 덕분에 좋은 물 먹는다고 칭찬을 하며, 수통은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자동판매기라 답하는 딸에게 이어서 얼마? 2500원, 어휴 비싸다. 싼 물건만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에서 사면 900원이면 사는데. 딸은 이내 가격이란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변하는 것이 물건의 가치와 가격이란 뜻을 전하며 반론을 제기하였다. 산중이라는 특수한 지역의 희소성이 가격을 부풀러 지게 했다는 이유를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사전에 준비하지 않은 우리들이 물어야 하는 대가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으로 들 때마다 물 컵과 병은 수호신 같은 존재라 여기며 늘 챙기며 살았는데 요즈음은 늘 잊는 것이 많아졌다. 놓치며 사는 것이 늙음의 멋이라지만... 그래도 고마운 것은 샘 관리자 측에서 아주 작은 종이 물컵을 박스 안에 준비해 두어 찾는 사람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게 배려해 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약수 투어를 끝낸 후 다시 역순으로 스카이 워크 건물 광장 하늘공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해안 산맥 방향을 조망하며 순한 산세를 보며 우리 민족의 기질을 떠올려 보았다. 흰옷과 흰 고무신 그리고 막걸리 동질의 질감처럼 느껴지는 삶이었는데 이젠 되바라져진 삶이 된 지 오래다. 고속성장이 만들어 놓은 괴물도 문제지만 이념적 상반이 만든 흉물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 줌의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사념은 털어버리고 정념을 채우려 하늘공원으로 올라섰다.
하늘공원으로 다가 서자 눈 길을 잡는 곳은 바로 오대산 능선이었다. 첫날보다 능선 상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오늘 새벽에 내린 눈의 영향 때문이다.
돌출되어 있는 통로가 바로 스카이 워크 핵심 시설물이다. 원형판이 바로 360도 회전판이고 사람이 올라서면 돈다. 그리고 길게 나와 있는 부분이 바로 전망대로 가는 통로이고 마지막 부분이 전망대다 바닥은 투명 우리가 깔려 고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공포감도 느껴지는 곳이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스카이 워크 통로가 열렸다.
바람도 바람이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으면 바람도 운다. 서러워 우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받는 것이 화가 난 듯 쌩하다 우하며 우는 것이다. 그런 바람소리가 스카이 워크에 서 있는 내내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양반이었다.
용평에서 모든 일정을 끝내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주차장으로 가 차에 탄 후 대관령 ic로 진입하여 내달렸다. 동 둔내 ic로 나온 후 국도를 타고 횡성, 양평을 경유하여 마재로 접근하였다. 마지막 여행지를 마재로 잡은 것이다. 실학에 대하여 주혁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주혁이도 정약용과 목민심서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었다.
정조의 뜻에 따라 축성된 수원화성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를 이용하여 축성기간을 상당히 앞 당겼다. 이 사실을 주혁이도 알고 있었다. 실물을 본 후 감탄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현장학습의 중요성이 느껴졌다.
남자라 그런지 화포에 대하여 관심도 많었다.
박물관 입장하여 서점으로 주혁이를 데리고 갔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관련된 책 2권을 사서 선물해 주었다.
실학파(實學派)는 조선 중기에 등장했다. 그들은 헛된 이론이 아닌 사실을 추구하여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실학을 주장하였다. 여기서 헛된 이론이란 성리학을 말한다. 성리학은 고려 말, 중국에서 들어와 조선에서 크게 발전했으나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때마침 임진(壬辰)·병자(丙子)의 양난 이후 청나라를 통해 서양문명이 들어왔는데, 이는 학계를 크게 변화시켜 실학이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곧 정치·경제·천문·지리·어학 등에 17세기 이수광, 유형원을 시작으로, 18세기 이익, 유수원, 박지원을 이어서 정약전, 정약용, 김정희 등의 학자가 참여하여 실용적 학문으로 실학의 꽃을 피우지만 사회개혁으로 파급은 제한적이었다.
책을 매입한 후 시청각 교육실로 들어 가 실학에 대하여 살펴보는 시간을 갖었다.
북학파를 다른 말로 이용후생 학파라고도 한다. 전통적인 주자성리학의 화이관·명분론에서 벗어나 청조의 선진문명과 우수한 기술을 적극 수용하여 조선 후기 사회체제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 대표적인 학자로 홍대용·박지원·이덕무·박제가 등이 있다. 북학이라는 말은 박제가의 북학의에서 비롯되었다.
홍대용은 북학의 토대가 되는 북경행을 제일 먼저 주장하여 북학파 선구자다. 북학파가 주장하는 실체는 청의 문명을 받아들이고 서구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 속에서 상공업의 유통과 생산기구, 일반 기술 방면의 발전을 바탕으로 사회 모순을 개혁하고 국가를 발전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홍대용과 박지원은 북학파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개혁의지는 같았지만 추구한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박지원은 문학과 상업을 장려시키려 하였고, 홍대용은 과학기술의 보급으로 개혁의 뜻을 펴려 하였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중세기에 뛰어났지만 학자들은 과학사상을 늘 천시하여 발전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하였지만, 홍대용은 이를 추구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 찬란한 빛을 만들어 주었다. 그의 기하학은 지극히 실용적인 것으로 토지 측량에 적절히 이용될 수 있는 이론이었고.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주해수용은 현실에 적용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그렇지만 홍대용의 사상은 후배인 박제가, 이덕무에게 전해지면서, 더욱 빛을 발했으며 후기에 와서는 개화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의 저술서인 담헌서(湛軒書)는 미천한 과학 수준에 과학을 소중한 역사의 유산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조가 승하 후 어린순 조를 대신하여 정권을 잡은 정순왕후(조선 영조의 계비(1745~1805). 성은 김(金). 사도 세자를 반대하는 벽파(僻派)와 손을 잡고, 반대파인 시파(時派)를 탄압하였다.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면서,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신유박해를 일으켰다.)는 천주교와 관련된 약전, 약용 형제를 귀양을 보낸다.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된다.
흑산도로 유배된 약전은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산어보를 저술한다.
강진으로 유배된 약용은 외가의 도움으로 다산초당을 짓고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500 여권의 책을 저술한 후 유배에서 벗어나 마재로 돌아와 여유당을 짓고 학문에만 정진하다 마재에 유명을 달리한다.
실학 박물관 전관을 둘러본 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모형 용모에 주혁이 얼굴을 빌려 기념 촬영을 한 후 1층 로비 구석에 있는 학습능력을 체크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다산 선생님의 얼굴 모습을 탁본 형식을 빌려 재현해 내는 것도 해보고
주혁이 스스로 비치된 컴에 앉아 박물관 학습 능력 체크를 한 후 통과되어 미래 실학자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비로소 2021년 하반기 여행이 완료된 것이다. 함께 동행하며 여행을 한 2박 3일 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모든 일정이 주혁 이중심으로 기획되었지만 부족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한다. 그리고 2022년 전반기 여행은 5월 달로 정해졌으며 행선지는 여수를 중심으로 한 성웅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르고 남도 특유의 문화와 거제도의 곳곳 찾을 계획이다. 내년 5월 여행에 대한 계획과 일정은 스스로 잡아 보라고 할 계획이다. 본인이 스스로 잡은 계획을 토대로 한 후 추가하여 여행을 기획할 예정이다. 딸의 주장대로 만두를 잘하는 워커힐 부근 전문집을 찾아 가 저녁으로 챙기려 하였지만 퇴근시간과 맞물려 오고 가는 동선 복잡할 것 같아 이마트 부근 식당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닭갈비를 좋아하고 비빔밥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정한 것이다. 어른들 역시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라 이견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비빔밥을 먹여 주는 것으로 손주와의 여행은 종료되었다. 다 함께 집으로 와 두 시간 휴식 후( 집중 퇴근 시간을 피해 귀가할 목적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하였다. 쉬는 사이 나는 지하로 내려 가 딸의 여행 짐을 몽땅 정리하여 딸아이 차량에 실어 놓고 차량을 점검해 주었다.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자동차 키를 주었더니 귀가한다고 하여 다시 내려가 딸과 주혁이를 안아 주고 배웅하였다.
늘 하는 이야기처럼 오늘도 조심 운전하거라, 도착하면 엄마에게 전화하고... 주혁이는 보고서 작성을 잘하고 12월 성탄절에는 성탄 미사를 함께 드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다면 함께하자~~~ 떠나는 모습을 보면 늘 서운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안녕, 조심 운전하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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