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의 풀꽃향기 사랑
정정숙
들꽃을 보면 그 청순한 아름다움에 발길이 머문다.
풀꽃을 보면 그 가냘픈 생명력에서 인내를 배운다.
들길에서 외롭게 피어 하늘거리는 풀꽃과 마주치면 잊고 살았던 그리운 이들이 떠오른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속절없는 세월속에 꿈과 사연들이 아련히 되살아나곤 한다.
그들도 찬미하고 노래하는 시인이 있어 존재의 이유를 느끼며 바람결에 자신을 맡길까.
밤새 별빛과 속삭이며 저 혼자 피어 아침 이슬 머금고 웃는 모습은 햇님을 닮고 싶어서일까.
거칠은 산야에서 피고지는 가녀린 풀꽃의 몸짓은 우리네의 어떤 삶, 사랑의 향기와도 같다.
03년, 봄~가을 벤쿠버에서 ‘음식물의 부자유와 배설의 산고’로 질병과 싸우는 이방인.
어디서도 마찬가지지만 경제의 융통성, 영어로 자기의사 표현, 스트레스나 상처를 받지 않을
두둑한 배짱으로 영육이 건강해야만 이민사회에서 견디어 낼 수 있다. 한 가지도 여유롭지 못
한 나는, 낯선 이국의 도서관에서 눈물로 내이야기를 쓰며 이민 땅 꽃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눈만 돌리면 온통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드넓은 금잔디 들판. 이곳의 민들레는 5cm 넘는 키
가 없다, 목이 잘리지 않기 위해서 잔디와 키 높이를 맞춘 것 일가. 풀꽃들은 잔디가 짧을 때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다가 잡풀이 자라면 바람에 물결 같은 흔들림을 보여준다. 그 떨림
은 나뭇잎의 떨림보다 애처롭고 눈길을 끄는 화려한 꽃잎의 흔들림보다 외롭다. 나뭇잎은
비가 오면 부분이 젖고 바람이 불면 서로를 막아 주기도 하며 나무 한 그루가 작은 사회를 이
루지만, 풀은 한 포기마다 개체로서의 수난을 스스로 막아낸다. 풀 한포기가 떨고 있는 모습
은 내 모습을 닮았다. 열정으로 일어서는 사랑만큼 김수영님의 ‘풀처럼 눕고 우는 풀’들을
보면서 태평양 저 넘어 고국 하늘을 바라본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울다가
/ 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다.//...
풀 깎기를 할 때면 풀 향기가 풍성하다. 온몸으로 풀냄새에 취하여 걷다보면 반기는 꽃들과
눈웃음 교환한다. 다듬어진 금잔디는 질 좋은 양탄자처럼 되지만 목이 잘린 민들레와 영혼을
벗어난 보랏빛 제비꽃, 이름 모를 풀꽃들은 획일화 된 잔디 깎는 기계에 수난을 겪으며 제 모
습을 잃는다. 살아남은 가녀린 풀꽃, 엔진의 위협에도 한 귀퉁이에서 한들거리는 긴 갓 냉이
꽃과 난쟁이 아욱, <내가 만난 꽃 중 가장 작은 꽃>...... 황동규의 꿈 꽃들이다. 각박한 이민
땅에서 참 사랑이 메마르고 눈길이 온기를 잃는다 해도, 아직 살아 있음은 돌 틈사이나 담 밑
이름 없는 원혼처럼 피어나는 작은 꿈 꽃들이 살아 있음과 무엇이 다르랴.
“나의 첫사랑, 풀꽃향기처럼 애잔하고 순결하여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사랑, 죄의 유무를 따
질 필요조차 없는 사랑, 그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모른 채 순수한 감정과 순결뿐인 인연으로
시작하여 끝나는 사랑. 풀꽃 향기처럼 어느 순간 스치고 지나가기에 그 청신함이 추억으로 기
억될 수 있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기에 그 흔적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맨 처음
의 사랑. 나는 그것이 현실과 결부되어 남루하고 구차하게 변주되기를 원치 않는다.” 는 내가
좋아하는 수필 이옥자님의 고백을 애절하게 공감 한다. ㅡ 첫사랑이 아련하게 끝남으로 애
틋하게 기억되어 혼탁한 일상에 힘들어질 때, 집착과 애증으로 처절해질 때, 불현듯 첫사랑의
추억이 한 줄기 바람결에 날리는 풀꽃 향기로 가슴을 적셔줄 수 있다면 그 첫사랑은 쓰고 긴
인생에 신약(神藥)이 될 것이니까. 나의 첫사랑도 풀꽃 향기이고 싶듯이 누군가에게도 풀꽃
향기 같은 사랑이 되고 싶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
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인내와 희생의 결실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열매들을 사랑한다는 풀꽃향기어린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싶기에, 지금 고독한 글쓰기로
불볕더위와 시소 깨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꿈과 소망, 단 한 줄이라도 타인의 마음을 적시는 풀향기 같은 글을 슬 수 있다면,
그래서 어느 이름 모르는 이가 그 한 줄을 읽고, 무심결에라도 하늘거리는 풀꽃을 보게 되면
‘풀꽃처럼 살다간 ‘어떤 삶의 향기’로 한번쯤 새겨줄 수 있다면, 백일의 밤이 낮이 되어도
좋으련만... .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는 못해도 바람에 스치는 향기가 되어 머리카락이라도 휘
날리게 할 수 있다면... . 기형된 장의 아픔으로 앉아 있을 수 없는 고통의 미학, 자신이 흘린
혼신의 땀방울은 아픈 이웃 누군가에게 잃어버린 꿈을 상기 시키는 사랑의 향기가 될 것이다.
풀꽃향기는 영원으로 향하는 바람의 넋이며, 방랑하는 나그네의 고향노래이다.
메모: 03년, 작년 서부 캐나다 밴쿠버의 요양 살이 동안,
푸른 잔디 초원에서 풀꽃과 친구하며 살아낼 때 캐나다의
기상이변, 이상기온에 따른 심한 여름 가음에 식수는 모자라고,
나무들이 목말라 죽어가고, 잔디나 화초에 물을 주면 몇 천불의 벌금이 정해지고.
진정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선진 국민들,
그들과 함께 푸른 초원이 누렇게 타들어 가는 절박한 순간... ...
세계는 하나 이국의 풀꽃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존재' 자화상도 보았습니다 .
첫댓글 나의 첫사랑, 풀꽃향기처럼 애잔하고 순결하여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사랑, 죄의 유무를 따 질 필요조차 없는 사랑, 그사랑이였어리라. 애잔하게 내마음에 와닿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