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淸凉山歌 - 퇴계 이황
♣ 경북 봉화군의 청량산(870m)은 낙타 혹 같은 봉이 연립, 그 기이한 경관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이다.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이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에 위치하며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 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 시비가 있으며, 청량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청량산과 현재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청량산은 퇴계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바위병풍을 두른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또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방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 8개 굴이 있다. 특히 김생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김생이 이 굴에서 9년동안 서도를 닦은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도 9년동안 길쌈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한다. 이리하여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길쌈해 놓은 천은 한올 흐트러짐이 없는데 반해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이에 김생은 다시 1년을 더 정진한 후 세상에 나와 명필이라 칭송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를 비롯하여 어풍대, 풍혈대 등의 12대가 있고,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또 역사적 유물로 청량사와 응진전, 오산당, 청량산성 등이 있다. 오산당은 김생굴 앞에 있는데, 퇴계가 문인들과 강론하던 곳에 후학들이 세웠다고 한다. 청량산 남쪽 축융봉에는 옛 산성터가 남아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았다고 하는 청량산성이다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봉, 8대(臺),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잡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법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념으로 구도열을 사를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청량산고증>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 청량사 입구 모정 부근에 주차하고 직진, 약 1.5km 올라가면 입석바위 아래 응진전 입구가 나온다. 산행은 지형상 이 응진전으로 가는 길을 시발점으로 해야 쉽게 비경 곳곳을 구경할 수 있다. 입석 안내판에서 급경사 사면길을 따라 5~6분 올라가면 '청량사 1.0km, 입석 0.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아랫길은 청량사로, 오른쪽 길은 응진전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통나무계단길로 발길을 옮겨 20분 올라가면 수십 길 절벽 중턱에 자리한 외청량사 응진전이 나온다. 68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응진전은 공민왕을 따라 피란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이다.
응진전을 뒤로하고 5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벽 아래 바위구멍에 있는 샘터인 총명수가 있다. 총명수를 뒤로하고 2분 거리에 청량사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어풍대에 닿는다. 수십 길 낭떠러지인 어풍대에서는 내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서쪽과 북쪽을 에워싸고 있는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등이 휘둘러 보인다.
어풍대를 뒤로하고 4~5분 가면 '←청량사, 김생굴→'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여기서 산행은 오른쪽 길로 이어진다. 5분 정도 올라가면 또 나오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길은 금탑봉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 길로 5분 올라가면 김생굴에 닿는다. 김생굴을 뒤로하고 왼쪽 아래가 급경사인 사면길을 따라 15분 거리에 이르면 남쪽 청량사 방면 갈림길이 있는 지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북쪽 가파른 능선길로 7~8분 올라가면 급경사 돌밭길로 들어선다. 8분 더 오르면 '의상봉 1.6km, 응진전 1.4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급경사 길로 30m 오르면 주능선 안부 철계단 아래에 닿는다. 철계단으로 발길을 옮겨 20m 올라가면 자소봉 중턱 너럭바위 전망장소에 닿는다. 자소봉 꼭대기는 20m 수직절벽이다. 북서쪽으로 비봉, 북으로 소백산 방면 백두대간이 시야에 와닿는다. 동으로는 일월산, 남으로는 축융봉이 마주보인다.
자소봉 철계단을 다시 내려와 안부에서 자소봉 남쪽 절벽 하단부 우회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탁필봉 꼭대기를 밟는다. 노송 어우러진 탁필봉에서는 지나온 자소봉이 첨탑처럼 마주보인다. 탁필봉을 내려서서 서쪽 능선길로 10분 거리에 이르러 약 20m 높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서면 뒤실고개다. 대개 여기서 청량사로 하산한다.
뒤실고개에서 계속 서쪽 능선을 타고 5분 오르면 795m봉이다. 795m봉을 뒤로하고 계단길을 지나면 자란봉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약 100m 내려가면 '의상봉 0.6km, 자소봉 1.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급경사 길을 20분 더 오르면 '의상봉 870.4m' 라고 새겨진 정상비석이 있다. 정상은 주변이 숲으로 에워싸여 시원한 조망이 안 된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더 나가면 쇠난간과 노송이 있는 전망장소가 나타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풍광이 일품이다.
하산은 전망장소에서 남쪽 두들마 마을로 내려서는 하산로가 있다. 이 코스는 워낙 급경사여서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 20 여분 내려서면 두들마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을 지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20분 더 내려오면 청량폭포 앞 폭포슈퍼민박집이다. 청량사를 구경하려면 정상에서 뒤실고개로 다시 내려와 남쪽 계곡으로 20분 내려서면 청량사 본전인 유리보전이 나온다. 청량사는 문무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전해진다. 유리보전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유리보전 현판글씨는 공민왕 친필이다.
유리보전을 뒤로하고 범종각을 지나 침목이 깔린 급경사 내리막길로 들면 왼쪽으로는 찻집 안심당이 눈길을 끈다. 산악인 이대실씨가 15년째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심당을 뒤로하고 S자로 굽돌아 내리는 급경사길로 15분 거리에 이르면 주계곡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청량사 입구 삼거리를 기점으로 입석 - 응진전 - 어풍대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뒤실고개 - 자란봉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다음, 두들마 - 폭포슈퍼민박, 또는 뒤실고개 - 청량사를 경유해 삼거리로 내려오는 산행거리는 4km 안팎으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시간이 남는 경우에는 승용차를 이용, 응진전 입구에서 약 500m 더 간 청량산휴게서 앞마당에 주차시키고, 축융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청량산휴게소에서 올라왔던 길로 40m 거리에 이르면 왼쪽에 '얼음굴'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방향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8~9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개지 바위구멍에서 찬 바람이 나오는 얼음굴이 있다. 얼음굴에서 북문터를 지나 25분 올라가면 '휴게소 1.3km, 공민왕당 0.3km, 축융봉 0.9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능선길로 들어가 10분 올라가면 무덤 1기가 나온다. 무덤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10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바위로 오르는 철계단이 나타난다. 20m 높이 철계단을 올라가면 옛날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축융봉 정상이다. 축융봉에서 북쪽 계곡 건너로는 청량산을 이루는 12봉 중 11봉을 비롯해서 자소봉 아래 내청량사와 금탑봉 아래 외청량사인 응진전 등이 마치 동화 속의 집처럼 보인다. 낙동강 모습도 장인봉(의상봉)보다 더 넓게 조망된다. 남서족 멀리 안동 방면으로 흘러가는 낙동강과 안동호 일부가 조망된다. 올라온 코스를 역으로 내려와 안내판 삼거리에서 왕복 15분이면 공민왕당도 다녀올 수 있다. 청량산휴게소를 기점으로 얼음굴 - 북문 - 안내판 삼거리를 경유하여 축융봉을 다녀오는 거리는 약 4km로,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팔영산에 이어 청량산으로 들 게 됨이 큰 축복이라 여겨지니 곤히 잠드는 시간 조차 아까워집니다 모닝콜은 다섯 시 십분 전에 윌리엄텔 서곡으로 설정해 놓았건만 행여 놓칠새라 시간시간 토막 잠을 자고
벨소리 짧은 비명에 온몸이 주저없이 발딱 일어나서 우선 샤워부터 하고 남편의 조반과 도시락 준비를 합니다
여섯 시 삼십 분 딸랭이(딸)는 곤히 잠든 시간 두 산꾼이 집에서 탈출 해 늙은 애마를 닥달하면서 시청으로 들어섰고 잠시 후 면식이 있는 분들과 수인사 나누는 남편의 뒷전에 얌전히 섰다가 시청버스를 타고 뭔일인지??? 송탄으로 들어갑니다
가는 길이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심정이 사실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달려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아침대용식으로 준비한 순두부를 양념을 섞어 먹는다고들 분주한데 홀로 버스에 남아 찹쌀떡 하나에 청도반시를 두 개나 연거퍼 먹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사람에 대한 낯갈이와 음식에 대한 편식을 완전히 고치지 못해 가끔 그 편식과 편애증에 시달립니다
차의 길은 치악을 향해 가고 골골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뻔뻔한 안개가 오늘도 고개를 쳐들고 기승을 부리니 남편이 슬며시 안전띠를 끌어다 매는데 버스가 낡은 탓인지 내 좌석엔 생명줄이 숨어 버려 그냥 갑니다
길을 바꾼 버스가 단양으로 향하고 풍기IC를 빠져 나가 영주로 그리고 봉화로 들어서니 첩첩산중 오지였음이 실감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곳곳으로 가는 길들의 도로공사가 한창입니다
구불구불 돌아 드는 길에 이따금 눈에 들어서는 풍광에 또 한 번의 변심이 일어납니다 이곳 봉화 땅에도 살고 싶어서...
평택시청에서 일곱 시에 몇 분을 보탠 시간에 출발 한 버스가 들머리 청량산 입석에 우리를 풀어 준 시각은 열한 시 사십 오 분입니다
이렇게 해서 꿈꾸었던 산에 들 게 되어 행복합니다
입석을 들머리로 오르는데 마주 보이는 산릉이 흐릿한 시선으로 작은 산꾼하나 내려다 봅니다 저기 아래에선 회장, 대장님이 회원들 모아서 선도 하느라 부산하고 오늘도 사진 핑계 삼아 먼저 발걸음 합니다
어풍대에 올라서면 버스로 굽이 돌아 들어온 길이 내려다 보입니다
금탑봉 아래 응진전은 겨울채비를 한 탓에 우중충합니다 옆에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은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탓에 어수선합니다 응진전을 외청량, 청량사를 내청량이라고도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금탑봉 아래 벼랑에 힘겹게 버티어 선 응진전이 대단해 보입니다 녹음이 우거졌을 때나 단풍이 한창일 때 그림은 그야말로 환상이던데 그러나 늘 같을 순 없으니 그리고 이런 그림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입니다
응진전 건너편 연화봉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습니다 왼쪽 동그란 부분은 어떻게 보면 벙어리장갑을 세워 논 것 같기도 하고 손 바닥 선인장이 보는 듯도 합니다
몇 번이고 꼬누던 청량사를 가장 근접하다 계산되는 곳에서 잡았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사가 한적합니다 정 가운데 유리보전이 보입니다
연화봉이 예뻐서 당겨봅니다
오른쪽부터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입니다 멀리서 보면 손 바닥 안에 쥘 수 있는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맞닥뜨리면 이크 놀래라 @@@ 입니다
오작교라 합니다 견우가 직녀를 만나러 가는 길인가 봅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니...
저어기 연화봉이 피어나고 아래엔 청량사 오층탑이 선연하게 들어옵니다
나무의 기상이 의연합니다 첨탑에 큰 키가 흔들릴 듯도 한데 꼿꼿한걸 보면
자소봉 고스락에 서면 탁립봉 경일봉이 보일 것 같아 두리번거리는데 확실한 가늠이 안됩니다 혹시나 싶어 안경을 닦아보지만 어림없습니다 아무리 문질러 닦아도지투명해지지 않는 개스가 얄밉기까지 합니다
조금 더 북쪽으로 몸을 돌려 봅니다
자소봉 실제 고스락은 올라갈 수 없네요
무지막지한 테라스를 머리에 이고 점심을 나누는 님들의 표정입니다
탁필봉 신라 명필 김생이 탁필봉이란 붓을 잡으면 어떤 글을 써낼까 괜히 궁금해집니다
산불경방기간이라 묶어 논 등로가 자꾸 뒤쫓아 와 눈에 밟힙니다 자소봉(보살봉)옆으로 경일봉 탁립봉으로 연결되는 길이겠지요
연적봉에서 훔쳐 본 그림입니다 급한 마음으로 훔친 그림이라 동서남북 기억이 희미합니다 서쪽이던가? 국회의원들의 뻔뻔한무기 상용어인 기억이 잘안납니다를 한 번 써먹어 봅니다
연적봉에서 뒤실고개를 넘어가는 길입니다 저 길을 곧장 가면 선학봉과 장인봉(의상봉)이 나오고 장인봉 전망대에 서면 낙동강 물길이 장쾌하게 들어 온다는데 아쉽게도 저 길도 들어 가면 벌금 오십 만 원 이랍니다
좌 자소봉(보살봉) 우 탁필봉인데 우째 보살님이 더 높은 날을 세웠네요
아이구 자꾸 마음의 눈에 밟히는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 청량산 제1의 고스락인 의상봉(장인봉)과 선학봉입니다 못 먹는 감 찔러볼 수도 없으니 더욱 아쉽네요 하기사 오늘 같은 날 저 벼랑에 선다 한들 낙동강 물길이 보일리가 없을테니 조금 위안이 됩니다 그렇다면 다음이라는 기약의 장이 남아 있게 되니까요
유형문화재 제 47호유리보전앞에 있는 청량사 오층탑입니다
건너편 산릉이 축융봉인 듯 합니다 오늘 저기까지 들어가서 청량산 육봉의 면모를 확실히 들여다 보려고 했는데 경미한 사고를 저질러 나 하나로 인해 못가게 되어 멀리서 바라보며 침이나 삼킵니다 달콤함이 아니라 쓴내가 나네요
유리보전을 곁눈질합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곳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이라 합니다.
청량사 위쪽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청량정사와 산꾼의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층탑을 후면에서 담은 그림입니다 적나라한 모습보다 왠지 더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혼자만의 아집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런 묘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응진전이 있는 금탑봉인데 오층탑 왼쪽으로 들어옵니다
흔적
피사체를 향한 신중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분위기가 청량산을 다시 찾게 되는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느긋하게 차 한 잔을 음미할 수 있는 분위기 말입니다
청량사를 찾은 나그네를 압도하여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하는 청량산 청량사의 고루(鼓樓)입니다

안심당(安心堂) 청량사를 오르면 우선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 일컬어지는 안심당을 볼 수 있는데 안심당은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으로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여 숨을 돌리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넉넉한 공간입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라는 주제가 눈길을 다른곳으로 돌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말속의 깊음에 잠기게 하는 여유를 주기도 합니다
세상만사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안심까지도 내려 놓는 순간 깊은 차의 향이 스며들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것을 실천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저 멋있는 굴뚝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졌음에 안심의 여유를 가졌을 뿐입니다
산꾼의집은 산악구조대 본부를 겸하고 있는 곳입니다 아홉 가지 약초를 달여낸 구청자를 공짜로 맛볼 수 있는데 근처에만 가도 구수한 차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데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차 한 잔의 무거움이(?) 허락치 않아 돌아섭니다
청량정사는 버림받은 자식처럼 황량합니다 굳게 닫힌 문을 그냥 응사하다가 옆자락 잠시 들여다 보고 내려섭니다
유년기에 노는 걸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냥 얌전히 소꿉장난이나 하면서 노는 것 보다 뜀박질이 제일 신이 났지요 그렇다고 잘 달리진 못했는데...
그러던 어느날 놀이 중 신나게 뛰는데 돌계단 가장자리가 무너지면서 제법 큰 바위 하나가 빠지는 바람에 내 작은몸은 도랑 아래로 곤두박질치면서 뾰족한 바위에 이마 부분을 부딪쳐 찢어졌지요
이내 같이 놀던 아이들의 재빠른 신고로 어무이가 달려 오셨고 상처난 부위를 응급 지혈 한 뒤 병원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내과에 가서 몇 바늘 꿰맸는데 그 상처가 아직도 선연합니다
내향적이면서도 조금은 극성 맞았던(?) 소녀는 걷는 것보다 뛰기를 더 좋아했던 탓에 무릎과 팔꿈치가 성할 날이 없었고 그 상처가 때로는 부스럼이 되어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ㅎㅎㅎ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요 어린시절에도 식탐이 별로 없고 편식을 많이 했던 탓에 영양이 실종 되었겠지요? 그러니 무슨 힘으로 다리가 버티겠습니까? 다쳐서 집에 들어가면 어무이는 그러셨지요 " 니는 맨날 헛밥만 묵었나??"
그런가봐요 아직도 다리가 부실함을 종종 느낍니다 다리 힘만 있으면 단 번에 올라갈 수 있는데도 네 발 짐승을 불사하고 내림길에 종종 잘 미끄러지고
오늘도 그런 사고가 났습니다 점심을 남들보다 먼저 먹고 기다리는 동안 뭘할까 고민하는데 눈앞에서 다람쥐가 사람 무서운줄 모르고 알짱거리는지라 가까운 곳에서 카매라에 담을 수 있겠다 싶어 살금살금 내려갔는데 밉살스럽게 생긴 인상탓인지 다람쥐는 내빼고
별 생각없이 험상궂은 길을 올라 오다 낙엽밑을 헛디뎠나봅니다 순간 몸이 뒤로 기울어지면서 허공에 뜨는 듯 하길래 아차 큰일 났다 싶은데 대충 짐작으로 휘청휘청 몇걸음 밀려나더니 다리가 붕 뜹니다 땅바닥에 다리가 닿는 동시 몸이 구릅니다
딴에 안다치려고 몸을 둥글 게 말고 옆으로 굴렀는데 마지막 돌에 몸이 걸리면서 멈췄지만 순간 얼굴 광대뼈부분이 돌에 부딪치면서 제법 "뻑"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아이고 깨졌구나 짐작하며 부딪친 부분에 얼른 손 바닥을 갖다대고 몸을 돌려 앉았더니 다른 곳은 다치진 않은 듯 했습니다
위에서 있던 사람들이 내려와서 사고를 직감하고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일행 중 대장님 짝꿍 오정자님이랑 또 보건소 간호사들이 몇 분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어떻게해야 할지 확실한 진단이 났습니다
얼굴은 ㅅ자로 상처가 났고 상처가 제법 깊어 여덟시간 내에 꿰매야 한다고
대장님 당황한 기색으로 가장 가까운 길로 내려가자고 하는데 왔던 길 다시 back하자는 얘긴데 당사자가 뻔뻔하게 대답합니다 "어차피 왔던길로 내려가나 청량사로 내려가나 시간은 별로 차이 나지 않으니 원래 계획했던 대로 하자고..."
그래서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씩씩한 척 앞장서서 가니 다른 분들이 생각할 때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각자 상상에 맡기고 탁필봉을 지나 아무도 오르지 않고 통과하는 연적봉에 올라가 와중에 그림 몇 점 훔치고 뒤실고개를 향한 철계단을 내려가는데 건너편에 청량산 고스락인 장인봉(의상봉)이 눈에 들어오길래 "아!! 저기가 장인봉인데" 그랬더니 회장님 기가 찬지 할말을 잊어버립니다
앞에서 슬슬기는 아줌니들을 잘도 추월하는 서방님 뒤를 따라 속도를 낸 탓인지 혈관이 확장되면서 지혈되었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이번엔 얼굴을 손 바닥으로 아예 누르고 빠르게 하산 완료
권회장님이 119에 신고해서 재빨리 출동한 구급차에 권회장님, 오정자님, 남편과 함께 타고 봉화 해성병원에서 상처를 꿰매는데 의사는 연신 바느질하면서 구시렁댑니다
"에이 제일 가늘고 작은 바늘로 흉터 별로 안남게 꿰맬라 했더니 상처가 너무 깊어 바늘끝이 보이지 않으니 바늘을 바꿔야겠다"고 하더니 또 구시렁댑니다 "아이고 너무 깊게 패여 징그러워" 열린 귀는 별소리 다 담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안하고 쓸데 없는 사족이 길었습니다 사실 퇴계 이황이 청량산의 육륙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라며 절경인 청량산을 숨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작은산꾼인 나도 청량산에 들 듯이 아무리 숨겨도 들통이 나는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숨겼던 아름다운 산이 들통이 나 온 산이 시끌벅적 되었듯이 아름다운 사람 하나 소개 하려고 오늘 있었던 사고를 창피를 무릅쓰고 드러냅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충북 신선봉, 미인봉산행에서 입니다 별 말이 없으면서 진솔한 느낌을 주는 말투와 늘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산사람 하나 알 게 되어 내심 기뻣습니다
내속에 느낌표로 다가오는 그녀를 맘속으로 참 좋은 사람이다고 여겼는데 오늘은 그녀가 통채 내속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물론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좋다고 여기고 고맙다고 여김이 인지상정이지만 사고 순간 그녀는 내손을 주물러 주며 남편에게도 같은 동작을 하도록 권하였고 병원에 함께 가서의 처신도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 안 심 시키는 태도는 지금껏 내 좁은 소견으로 간호사들에게 가졌던 선입견과 불신감을 확달아나게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처에 마취주사를 놓고 꿰매는 동안 손을 잡고 안심을 시키며 의사에게도 조용한 어투로 깔끔히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권하였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백의의 천사 간호사였습니다(실제 그녀는 소아과 간호사였음)
사고 나기 전 오름길에서 그녀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드리겠다고 했더니 살짝 사양하는 말도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이러다 그녀의 마음에 푹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대장님 참 좋겠습니다 믿음직하고 따뜻하고 지혜로운님을 아내로 삼았으니 일생동안 행복할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도 그런 아내가 되어야 하는데... 그녀를 닮도록 노력해야지요
오늘 남편도 마음고생께나 했을텐데 시종 위로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무뚝뚝한 줄 만 알았던 남편이 아주 곰살맞게 해주어서 좋았는데 그래도 안다치는 게 났지요 백 번 천 번
그리고 여러사람 마음 고생 시켜서 미안했습니다 권회장님 애써 주셔서 고맙고 oo간호사님도 여러산님들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호사다마는 인생에서 언제든지 배제할 수 없음을 실감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경치 속에서 잘 노닐었는데 백구가 시샘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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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이고... 어찌 이런일이... 산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그런 부상당한 몸으로 산을 더 탐하셨단 말입니까? 일행에 민폐끼치지 않으려는 누님의 마음, 골백번 이해는 되지만 얼굴에 바늘 들이밀 정도의 부상에 아무렇지않게 산행을 계속 진행하셨다는 것에 은근히 부아가 치밉니다.
사진 담는 것도 산행중 큰 즐거움입니다만 지나치게 진지한 것도 좋지않아요. 그나저나 지금은 어떠하신지요? 많이 쓰라리고 아프실텐데... 청량산 그 다람쥐넘. 확 기냥!!
다람쥐넘인지 ..년인지 확쎄리필라? 라고 할라고 했지요 수똥이님....큰일났다요..상처나서 ..허경숙님 또 시집 한번 더가시기는 틀려버렸냉 ㅎㅎㅎ.그만 하기 천만 다행입니다...헤^*^헤...(나는 이제 빵님에게 둑었당)
병원에 갔다가 인자 왔어요 누굴 탓하기 전에 내가 못난 것을 집중력도 부족하고 그래서 산만한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여러사람 근심 시켜 미안하고 아픈거야 시간이 지나면 낫것지 그리고 시집 갈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안그래도 나쁜 인상 진짜 여자 조폭으로 오인 받는 거 아닌가 몰라요 자- 산꾼들 조심 부상
전주에 그코스로 갔다왔는데 아뭏튼 크게 안다치심을 청량산 신령님께 감사드립니다. 힘들게 찍은 사진이나보면서 즐기는 사람이라 미안한맘이드네요. 그래도 안전산행 기원드리겠습니다.
유아독존님! 감사합니다 다녀오셨으니 공감대는 형성이 되시겠네요 좋아서 하는 산행이라 그런지 다치고도 정신 못 차리네요 늘 안전산행 해서 님들 걱정 안드려야죠 죄송함다 님께서도 늘 즐산, 안산 하시기를...
영남알프스 회원님의 청량산 산행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꼭 한번 가봐야 겠다고 마음 먹인지가 3년이 지났습니다.^^ 청량산은 그리멀지 않은 곳인데 한울타리님의 발자취를 따라 꼭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경방기간 중에는 등로를 묶어 놓기 때문에 산행 묘미가 많이 떨어집니다 청량산이 멀지 않은 곳에 보금자리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부럽습니다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틈날 때마다 들어 보시면 되겠네요 참으로 아름다운 산이었습니다 즐산, 안산하시기를...
큰일날뻔 하셨네요. 순간의 공포..... 몸서리가 쳐집니다. 정선생님은 또 얼마나 놀라셨을까... 육신의 연악함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부러지고 다치고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기에 항상 신중과 느긋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혼자가는 산행이 늘 두려운 겁니다. 조리 잘하세요. 남은 상처에 마음쓰일까 마음쓰임다.
유유자적 가시는 발걸음이 부러울 뿐입니다 늘 시간에 쫓기고 마음이 쌓는 부질없는 욕심에 쫓기다 보니 산만해지나 봅니다 더욱 더 정신 바짝 차리고 다닐게요 참 사모님과 옥순, 구담봉 계획은 경방기간 끝나고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도 기간에 제지 당해 제비봉 올랐었지요 하긴 제비봉에서 보는 구담,옥순도 캡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