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이다. 99억원 가진 사람이 1억원 있는 사람에게 100억원 채우게 달라고 할 수도 있는 반면, 100만원 월급쟁이가 매월 3만원씩 이웃돕기에 나설 수도 있다. 돈의 주인이 되면 돈은 상대적으로 되지만, 돈의 노예가 되면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절대적으로 변한다. 돈 주인은 마음의 평화와 경제적 안정을 누리지만, 돈 노예는 항상 불만족에 쌓여 돈은 있을지라도 삶은 거친 광야처럼 삭막하다.
돈의 주인인지, 노예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1000억원대 부자가 이웃을 위해 10억원을 내놓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참 훌륭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그 정도 재산이 있었다면 저럴 수 있어’라고 반응하는 것은 돈의 주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돈의 주인은 ‘돈의 많고 적음’보다는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당신이 1000억원대 부자라면 과연 매년 10억원 씩 뚝 떼어 이웃의 삶이 풍요해지는 데 쓸 수 있을까?’
화장품 브랜드 ‘꽃을 든 남자’로 유명한 소망화장품의 강석창(43) 대표는 ‘돈의 주인’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1992년에 회사를 설립한지 10년 만에 ‘매출액 1000억원’의 회사로 만드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는 점만이 아니라, 맨주먹으로 발품을 팔아 돈을 벌기 시작한 때부터 ‘매출액의 1%’를 이웃돕기에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다. 아니 사업을 시작하기 전, 월급쟁이 때부터 그는 ‘나눔의 삶’을 살고 있다. '몸뻬'로 수천억 장학금 일군다
돈 많아야 나누는 것 아니다, 나누겠다는 마음 있으면 돈도 불어난다
‘꽃을 든 남자’의 나눔은 1999년 7월부터 매출액의 2%로 늘어났다. 월 매출액이 100억원이 넘으면 3%까지 기부액을 늘릴 계획이다. 최종 목표는 매출액의 5%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강석창 대표는 어린시절 걸린 식중독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만성 담마진’이란 병을 앓았다. 만성담마진은 몸이 차가워지거나 찬바람을 쐬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만성질환이다. 집안이 워낙 가난해 식중독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후유증이다. 어쩔 수없이 두드러기가 날 때마다 독한 약을 먹어야 했다. 그 부작용으로 위장장애등을 앓아 허약체질이 됐고 고등학교조차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고교 중퇴 후 미용재료 상점을 운영하던 사촌형을 돕다 군대에 가게 됐다. 그는 신체검사에서 허약체질로 단기사병판정을 받았지만 가정형편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논산훈련소로 갈 것을 고집했다. 그러나 만성담마진이 재발해 입대 11개월 만에 의가사 제대를 했다. 제대 후 조그만 화장품 회사에 입사해 화장품 업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가정형편도 어렵고 몸도 허약한 그였지만 소득이 생기는 족족 이웃과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1987년 어느 날, 화장품 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뛰던 그는 1만5000원이면 아프리카 한 가족이 한달을 먹고 살수 있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게 됐다. 그날로 국제기아대책기구와 실로암안과에 후원을 결심하고 이를 실천했다. 지금도 두 단체에 대한 개인적인 후원은 계속하고 있다. 실로암안과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개안 수술을 해주는 곳이다.
영업을 위해 돌아다니던 그는 교통사고로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바꿔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강 대표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회사 사장은 그에게 안전한 차를 구입하라고 1200만원을 줬다. 하지만 그는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60개월 할부로 구입하고 사장이 준 돈을 유용(?)했다. 자신이 그동안 모은 1200만원을 더 보태 2400만원을 마련, 실로암 안과에 쾌척한 것이다. 사실상 전 재산을 이웃을 위해 나눴다. 그때 실로암안과는 백내장 수술기기를 구입해 놓고 2400만원이 모자라 기기를 내다 팔 처지에 있었다고 한다. "서울 떠나도 부자 될 수 있다"
강 대표는 '적은 소득이 의로움을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는 성경구절을 꺼내며 "하나님의 계심을 경험한 사건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신이 마련한 돈과 실로암 안과가 필요했던 돈이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1992년 소망화장품을 창업했다. 회사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홍제동의 허름한 빌딩 5평짜리 공간을 빌려 남녀 직원 각 한명씩 총 3명이 일하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사장이란 직함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직원들과 협의해 회사 매출액의 1%를 사회 기부활동에 쓰자고 의견을 모았고 몇 년 후 이를 실천했다.
화장품 영업사원 때부터 나눔에 눈 떠, 회사 만들 때부터 매출액 1% 무조건 나눔
회사 규모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 1995년부터 기아대책기구와 실로암안과에 매출액의 1%를 보내기 시작했다. 1999년 7월에 매출액이 20억원을 넘어서자 1%를 더 떼 월드비전을 통해 북한 어린이를 돕고 있다. 이외에도 갱생보호사업을 주로 하고 있는 담안선교회생활관 건립을 위해 1억5000만원을 기부했다. 앞으로 1억5000만원을 더 내놓을 계획이다. 지난 4월에는 국제기아대책이 주최하는 이라크 돕기 모금방송에 후원사로 나섰다.
이런 나눔의 덕일까? 기아대책기구 등에 매출 1%를 기부하면서 1997년에 내놓은 ‘꽃을 든 남자’ 스킨샤워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또 남성용 로션에 메이크업 베이스 기능을 넣은 컬러로션은 '얼굴이 장난이 아닌데'란 광고 카피와 함께 전 국민의 유행어를 만들고 남성화장 문화를 바꾸기도 했다. 이외에 먹는 화장품 멜라클리어, 염모제 클리닉 HN칼라, 한방화장품 다나한 등 내놓는 제품마다 대 히트를 기록했다.
소망화장품은 창립한지 10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IMF외환위기 시절에 대다수 화장품 업체들이 고사하는 동안 소망화장품만은 매출을 늘렸다. 지난해에는 매출 800억원을 올렸고 2%인 16억원을 고스란히 나눔을 위해 썼다. 매출기준으론 2%에 불과하지만 순익 기준으론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웃에 쾌척한 것이다.
강 대표 본인은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 목동 사옥까지 출퇴근을 하는데 1990년에 교통사고 이후 샀던 프라이드 자동차를 10년이나 손수 몰고 다녔다. 안구건조증으로 운전이 힘들어지자 하는 수 없이 운전기사를 고용하면서 새로 승용차를 샀지만 배기량 1500cc짜리 소형차로 만족했다. 전쟁하듯 번 6000억원 장학재단에 쾌척
그는 최근 화장품의 유통망을 획기적으로 바꿀 브랜드숍 '뷰티크레딧' 준비에 한창이다. 600여 개의 고급 화장품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미용보조식품, 건강기능식품, 마사지, 두피·모발관리실을 접목시킨 토털스킨케어 숍을 만들 계획이다. D 데이인 오는 11월 11일, 서울 노량진, 광명 등 전국 5개 지역에서 동시에 브랜드숍을 오픈한다. 내년 6월까지 전국 50개 매장을 오픈하고 장기적으로 1000여개매장을 만들어 화장품 유통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품질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 제품에 대해 제조물 책임보험에 가입하고 소망화장품,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유명 화장품 제조업체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20~30% 비싼 단가를 고집할 계획이다
프라이드 10년 탄 '짠돌이', 매출액 5% 기부가 최종 목표
강 대표는 "현재의 화장품 시장엔 인터넷 쇼핑몰이나 초저가 매장이 난립해 고객들의 가격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며 "혼란기에 들어선 화장품 전문점 시장에 새로운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뷰티크레딧에 대해 평가했다.
그는 뷰티크레딧을 통해 소망화장품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각오다. 또 갖가지 틈새시장 공략과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로 10년 안에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물론 이와 더불어 매출액의 5%까지 사회 환원 사업에 쓸 목표도 잊지 않고 있다.
강 대표는 "사람들의 소망을 해결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는 말로 자신의 포부를 요약한다. 월급 200만원 정도 받는 사람이라도 1만5000원 정도를 떼내 영양실조에 걸려 배만 불록해진 전 세계 어린이들을 돕는 일, 그게 바로 강 대표처럼 ‘돈의 주인’이 되어 당당한 부자에 이르는 길이다. '앙드레 김'의 나눔과 세금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