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추억이 어찌 캠퍼스에만 있으랴. 기운이 넘치던 젊은 날 저녁 자주 들리던 막걸리집에도, 연인과 함께 시간 가는줄 모르고 담소하던 다방에도, 멋부리며 폼나게 앉아 짐찟 음악가인 척하던 크라식음악실에도, 또 가끔씩 들리던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도 우리의 추억은 있다.
오늘은 어쩐지 그 옛날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가보고 싶었다. 혼자가기 멋적어 딸래미를 대동하여 책방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다. 세월이 흘러 이 곳도 모두 없어지지나 않을까하는 안타까움에서 추억의 장소를 기록해 둡니다.
이제는 이 곳도 살아 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자칭 문화의 거리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리입구의 간판도 현대식 디자인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면서 그 옛날에는 없던 조형물도 한 구석에 장식해 놓았습니다. 보수동 쪽의 다소 넓은 골목에는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겨울의 날씨 만큼이나 썰렁한 거리가 언제까지 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런지.... 경영학적인 마인드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골목길에 세워진 자전거며, 인도를 차지하고 앉은 책더미하며 모두가 정겹게 보입니다. 저 계단위로는 보수동 산동네 모습이 옛날 그 모습보다 단정하게 서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골목길로 접어 듭니다. 좁디 좁은 골목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책방들의 지붕이 서로를 감싸안고 세월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문화의 거리로 조성되면서 옛날의 흙길은 소박하게 포장을 했습니다. 어둑한 가게의 조명들이 도심의 화려한 네온싸인보다 훨씬 정겹게 닥아옵니다. 사람의 냄새가 풍겨 나오는 골목입니다. 천정까지 정신없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저 책들 속엔 누군가 청운의 꿈을 키웠을 주인공들의 손 때가 묻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옛날에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기서 교과서며 참고서를 사고 팔았지요. 한학기가 끝나면 참고서며 대학교재들을 들고와서 몇푼 쥐어주는 돈으로 충무동 골목집에서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셨는데.....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부모님께 참고서 새책값 받아와서 여기서 헌책사고 친구들과 빵집에 가던 그림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래저래 한참 인기있던 그 시절의 책방들 입니다. 책이 귀하지 않는 좋은 시절, 모두가 아파트에서 토끼처럼 살면서 책을 쌓아둘 곳이 없는 시절이 되다보니 그냥 쓰레기로 버린 책들이 누군가의 손에서 가려져 꾸역꾸역 이 곳으로 모여 들기도 했겠지요?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제법 쓸만한 책들이 많습니다. 내 친구 장인어른이 경영하던 책방의 책을 찍어 봅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다른 사람에 의해 위탁경영을 한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지키는 주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고서적만 취급하던 전문서점이었는데...... 이 골목 저 골목, 혹시나 내 추억의 한 자락이 걸려있나해서 두리번 거립니다. 제법 아름답게 포장된 도로가 내 꿈의 한자락을 걷어 가 버렸나 봅니다. 그러는 사이 골목길에 한두 사람이 책을 고르며 흥정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내가 책 팔 때 매정하게 깍아치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그 모습이 눈에 아련합니다.
드나드는 골목마다 이렇게 문화의 거리를 선전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거리....... 그렇습니다. 그 곳에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추억으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계단 언저리에 빵을 구워파는 아주머니는 비닐로 찬바람을 막으며 손님을 기다립니다. 하루내내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과 책방을 오가는 사람들이 손님의 전부 입니다. 이 헌책방 골목에 이런 풍경이 없으면 앙코없는 찐빵이라 하겠지요? 함께 있으니 더욱 좋은 풍경이지요. 탁트인 보수동쪽 서점들은 개점 휴업인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더 편리한 곳보다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집 책방이 더 마음에 가나 봅니다. 구경만 하기도 무안하여 한두권 책을 골라 봅니다. 한 정가10만원짜리 헌책을 좀 싸게 사나하고 물어보니 4만오천원 내라고 합니다. 결코 싼 것만은 아니라 생각되어 다른 책을 몇권 골라서 깍지 않고 사왔습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책값 깍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디다. 이 곳을 지키라고 나름대로 넉넉한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다.
대청동 쪽에서 들어가는 책방골목의 입구입니다. 책방골목을 나서면서 아쉬운 여운이 남는 건 무슨 까닭인지요? 저멀리 골목길 끝에서 막걸리 마시러 가자고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 야!!! 친구야 !!!!!! ................" 이제는 흰머리를 이고 있는 한 노인이 책방골목 구경을 한 것으로 추억의 한자락을 접습니다. 오래토록 이 골목이 유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곳이 부산의 역사입니다. 아버지가 구경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한쪽에서 책을 골라 읽고 있던 딸래미에게 미안하여 한컷 서비스 해 줍니다.
2008. 1월 31일 추억취재 정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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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빛과 그림자 원문보기 글쓴이: 아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