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애 [ 四無礙 ]
네 가지 막힌 곳 없는 것으로,
법무애(法無礙:온갖 교법에 통달한 것)
의무애(義無礙:온갖 교법의 요의를 아는 것)
사무애(辭無礙: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치 못함이 없는 것)
요설무애(樂說無礙:온갖 교법을 알아 기류가 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데 자재한 것)임
[네이버 지식백과] 사무애 [四無礙]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
보살은 상대의 근기·성향을 잘 파악
부처님 가르침을 즐겁게 들려주기도
지금까지 부처님의 열 가지 힘(십력), 네 가지 자신감(사무소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그에 이어서 세 번째로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 즉 ‘사무애지’에 대해 설명할 차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 가지란 의(義), 법(法), 사(辭), 요설(樂說)입니다. 뒤의 두 가지로 짐작하건대 일단은 말(言辭)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구업 짓지 마라’라거나 ‘묵언수행’이란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초심자들에게는 자칫하면 ‘말 하지 말라’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물론 세속의 사람들은 너무나 뜻 없는 말만 하기 때문에 부처님 앞에 오거나, 사찰에 들어가서는 잠시라도 침묵 속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평생 중생들을 위하여 말씀을 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말 하지 말라’보다 ‘말을 잘 하라’가 부처님 가르침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자주 합니다. 부처님에게 사무애지 즉 ‘말’에 관한 능력이 들어 있다는 것도 바로 ‘말을 잘 하는 것’과 맥이 통하지 않을까요?
사무애지에 대해서 사전을 펼쳐보면 “네 종류의 장애가 없는 자유자재한 이해·표현능력”이라는 설명과 함께 “법무애는 가르침에 대하여 막히는 것이 없는 것, 의무애는 가르침이 나타내는 뜻의 내용을 알아 막힘이 없는 것, 사무애는 온 세상의 언어에 통달하여 자재한 것, 요설무애는 이상의 세 종류의 지혜로서 중생을 위해 자재하게 설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불교대사전> 홍법원 간행)<대지도론> 제25권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러한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에 대해 조금은 더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령 ‘땅’에 대해서 말한다고 할 때, 땅은 단단한 성질, 굳은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럴 때 ‘땅’이라는 이름이 ‘법’입니다. ‘땅의 굳은 모양’을 말하는 것이 ‘의’입니다. ‘언어로써 땅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사’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사람들이 듣기 좋게 말해주는 데 걸리지도 막히지도 않으며 자유자재하게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이 ‘요설’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에 있어서 통달하여 막히지 않는 것을 걸림 없는 지혜(無礙智)라고 이릅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그 전체적인 특징이나 개별적인 특징을 분별하는 것이 ‘의(義)’입니다. 그리고 그 특징으로 인하여 이름을 알게 되므로, ‘의’ 다음에 ‘법(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름이나 뜻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말하는 데에 있어 막히지 않고 아주 멋지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辭)’입니다. 또한 그것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널리 펼쳐서 말하는데 다함이 없으며, 또한 모든 선정에서도 자재해서 막히지 않는 것, 이것을 ‘요설(樂說)’이라 한다는 것이 대지도론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에 있어 걸림이 없는 능력은 부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살에게도 있다고 대지도론에서는 말합니다. 특히 보살의 ‘요설무애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근기를 지녔고 어떤 성향인지 파악해서 그에 맞추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는 데에 아주 즐겁게 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게다가 이렇게 걸림 없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에 보살이 다음 생에 세상 모든 지식과 주술과 기술에 대해서 통달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도 않는다는 것이 보살의 사무애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또한 보살이 사무애지를 성취한 까닭에 몸의 빛깔과 능력과 광명이 범천보다 뛰어나고 모든 범천과 하늘의 공경과 존중을 받으면서도 그에 집착하지 않으며 오직 저들을 분발시키려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법을 설해서 아뇩다라삼약삼보리에 머물게 합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은 이렇게 나와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일입니다.
[불교신문3132호/2015년8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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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무애 [ 四無礙 ]|작성자 수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