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의 강신 참신과 불천위
제사를 책임지고 맡아서 주관하는 사람을 제주(祭主)라 한다. 제수를 진설한 후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가 차례대로 선 뒤,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분향한 다음 재배하고, 술을 조금 잔에 붓는데 [뇌주(酹酒)라 함] 이것을 강신(降神)이라 한다. 신위를 모신다는 뜻이다. 뇌주는 술 한 잔을 모사(茅沙 띠풀과 모래)그릇에 세 번 나누어 붓는 것을 말한다.
분향과 뇌주는 죽은 이의 혼백(魂魄)을 모셔 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혼은 정신의 영을 가리키고, 백은 육체의 영을 가리킨다. 사람이 죽으면 정신의 영인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체의 영인 백은 땅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향을 피울 때 올라가는 향의 연기는 하늘의 혼을 모셔 오고, 모사에 붓는 술은 땅의 백을 모셔오는 의미를 가진다.
강신의 절차가 끝나면, 제주 이하 모든 참례자들이 재배하는데, 이것을 참신(參神)이라 한다. 그런데 신주(神主)를 모시면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紙榜)을 써서 모시면 강신을 먼저 한다.
집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떤 집에서는 술을 따른 잔을 향불 주위를 세 번 돌려서 드리는데 이를 거한(去寒)이라 한다. 거한이란 찬 기운을 제거한다는 뜻인데, 향불에 술을 따뜻하게 데운다는 의미다.
그런데 술잔을 세 번 돌리는 연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어 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는, 불교 의식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부처님이 두 그루의 사라나무[斯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들자, 제자들이 부처님을 관(곽) 속에 모시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일 제자인 가섭이 마침 출타중이어서, 다비를 거행하지 못하고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7일이 지난 후에야 가섭이 도착하여, 곽 주위를 세 번 돌면서 예를 표하자, 부처님의 두 발이 곽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이를 곽시쌍부(槨示雙跗)라 하는데, 제사 때 술잔을 세 번 돌리는 거한의 풍습도 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전래의 삼(三) 중시 사상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제사의 거한도 세 가지 즉 하늘, 땅, 세상만물에 고한다는 의미를 띄고 있다는 것이다. 삼(三)을 중시한 것이나, 천지자연을 숭배한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 온 우리 민족의 습속이었다. ‘삼세번, 삼짇날, 삼칠일 금기(三七日禁忌), 삼재(三才), 삼신산(三神山), 삼족오(三足烏) 등이 다 그러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로 보아 거한의 의례는 아마도 후자의 설이 더 설득력을 지니지 않을까 싶다.
하늘과 땅, 종묘에 제사 지낼 때는 소, 양, 돼지 등을 제물로 바쳤는데, 이를 희생(犧牲)이라 한다. 남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거나, 자기의 손해를 무릅쓰고 남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희생이라 하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다.
종묘의 정전 옆에 성생단(省牲壇)이라는 단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제사에 올릴 희생이 적절한지를 미리 점검하던 곳이다. 제사에 쓸 소나 돼지 등이 병이 들었거나 생김새가 바르지 못하면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묘 성생단
필암서원 계생비
전라남도 장성군 필암리에 김인후를 추모하기 위해서 세운 필암서원이 있는데, 경내에 필암서원 계생비(筆巖書院繫生碑)라는 비가 있다. 여기에 씌어 있는 계생(繫牲)은 제사에 쓸 희생을 매어 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비는 서원에서 향사를 지낼 때 제물로 쓸 가축을 매어 두고, 제관들이 미리 그 주위를 돌면서 제물로 쓸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였던 곳이다.
특히 나라의 제사에 쓰던 살지고 투박한 산 짐승을 충둔(充腯)이라 하는데, 제사 전날에 헌관(獻官)이나 감찰(監察)이 소, 돼지, 양 따위의 충실한 짐승을 희생으로 선택하여 썼다.
제사와 관련된 말에 추원보본(追遠報本)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원(遠)과 ‘본(本)’ 자는 단순히 ‘멀다’나 ‘근본’이란 뜻이 아니고, ‘조상’이란 뜻으로 쓰인 글자다. 그러므로 추원보본은 조상을 추모하고 조상께 보답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전래 제의는 매우 복잡하지만, 상(喪)을 치르는 과정과 관련한 제사를 제외한 중요한 제사는, 시제(時祭), 차례(茶禮), 기제(忌祭), 묘제(墓祭) 등이다.
시제는 계절에 따라 1년에 4번 지내던 제사인데, 사대부가에서는 2월, 5월, 8월, 11월에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차례는 원래 매월 초하루와 보름 또는 명절이나 조상의 생일 등에, 간단히 낮에 지내던 제사를 지칭했다. 지금은 설날 아침에 지내는 연시제(年始祭)와 추석날 아침에 지내는 절사(節祀)가 있다. 차례에는 축은 읽지 않는다.
기제는 돌아가신 날 이른 시각에 지내는 제사로,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의 4대를 모셨다. 그러나 지금은 점차 줄어지고 있다.
묘제는 기제를 지내지 않는 5대 이상의 조상들께 묘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 주로 음력 10월에 날짜를 정하여 지낸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보통 기제사(忌祭祀)는 고조 즉 4대까지만 모시고, 5대부터는 혼백을 무덤에 묻어 버리고 묘사만 지낸다. 그런데 불천위(不遷位)로 정해진 분은 영구히 제사를 모신다. 불천위란 큰 공훈이나 학문이 높은 분에 대해,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를 가리키는데,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줄임말이다. 불천위는 신주를 묻지 않고 계속 봉사(奉祀)한다고 하여 부조위(不祧位)라고도 하며, 불천위를 모신 사당을 부조묘(不祧廟)라고 한다.
종묘에는 조선의 27왕 중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25왕과 그 비가 모셔져 있다. 그 중 정전에는 19왕(영친왕 포함)의 불천위가 모셔져 있고, 별전(영녕전)에는 불천위에서 빠진 7왕(정종, 문종, 단종, 예종, 인종, 명종, 경종)과 추존된 왕들이 모셔져 있다. 이들은 조천위(祧遷位)라 불린다.
일반 사가의 불천위는 가불천위라 하는데,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 유림에서 정한 유림불천위(儒林不遷位), 문중에서 정한 문중불천위(門中不遷位)가 있다. 이 중 국불천위가 가장 권위가 있음은 물론이다. 국불천위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불천위를 모신 가문은 이를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보통 기제사보다 훨씬 많은 음식을 차리고, 지방의 유림이나 유지들이 참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