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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지론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瑜伽師地論卷第三十八
彌勒菩薩說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本地分中菩薩地第十五初持瑜伽處 菩提品第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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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살은 법에 대하여 바르게 닦느냐 하면, 이 닦음에는 요약하여 네 가지 모양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샤마타[奢摩他]요,
둘째는 비파샤나아[毘鉢舍那]요,
세째는 샤마타와 비파샤나아를 닦고 익힘[修習奢摩他毘鉢舍那]요,
네째는 즐거이 샤마타와 비파샤나아를 닦고 익힘[樂修習奢摩他毘鉢舍那]이다.
云何菩薩於法正修。當知此修略有四相。一者奢摩他。二者毘缽舍那。三者修習奢摩他毘缽舍那。四者樂修習奢摩他毘缽舍那。
무엇을 샤마타라고 하느냐 하면, 모든 보살은 여덟 가지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잘 의지하고 지니기 때문에 말을 떠난 오직 일과 오직 뜻만의 반연할 바 대경 안에서 마음을 매어 마무르게 하며, 모든 쓸모없는 이론을 떠나고 마음의 요란한 생각을 여의고서 뜻을 짓기 때문에 모든반연할 바에 대하여 훌륭한 알음을 지으며, 모든 선정의모양[定相]에 대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안에 머무르게 하고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 평등히 머무르게 하며, 내지 하나의 길[一趣]에 평등하게 유지하나니, 이것을 샤마타라고 한다.
云何奢摩他。謂諸菩薩由八種思善依持故。於離言說唯事唯義所緣境中繫心令住。離諸戱論離心擾亂想作意故。於諸所緣而作勝解。於諸定相令心內住安住等住。廣說乃至一趣等持。是名奢摩他。
무엇을 비파샤나아라고 하느냐 하면, 모든 보살은 샤마타의 뜻 지음으로 말미암아 쪼며 닦고, 곧 먼저 생각하였던 법 그대로 그의 모양을 생각함에 있어서 이치대로 간택(簡擇)하고 가장 지극하게 간택하며, 극히 간택하는 법과 깨달아 밝아지는 지혜의 행[覺明慧行]까지 이르나니, 이것을 비파샤나아라고 한다.
云何毘缽舍那。謂諸菩薩由奢摩他熏修作意。卽於如先所思惟法思惟其相。如理簡擇最極簡擇。極簡擇法廣說乃至覺明慧行。是名毘缽舍那。
무엇을 샤마타와 비파샤나아를 닦고 익힘이라고 하느냐 하면, 모든 보살은 샤마타와 비파샤나아에 대하여 끊임없이 행을 더하고 정성스럽고 정중하게 행을 더하며,항상 닦고 익히는 것이니, 이것을 샤마타와 비파샤나아를닦고 익힘이라고 한다.
무엇을 즐거이 샤마타와 비파샤나아를 닦고 익힘이라고 하느냐 하면,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은 지관(止觀)의모양에 있어서 그의 마음은 움직임이 없고 하욤 없음[無功用]에서 모든 더한 행을 여의며, 저절로 처소를 옮기고 껴잡아 들이며, 어지러우나니, 이것을 즐거이 샤마타와 비파샤나아를 닦고 익힘이라고 한다.
云何修習奢摩他毘缽舍那。謂諸菩薩於奢摩他毘缽舍那。無間加行殷重加行恒常修習。是名修習奢摩他毘缽舍那。云何樂修習奢摩他毘缽舍那。謂諸菩薩卽於如是止觀相中。其心無動。於無功用離諸加行。任運轉處攝受無亂。是名樂修習奢摩他毘缽舍那。
그러므로 알아라. 이 안에서 이 모든 보살은 여여(如如)하게 샤마타와 비파샤나아를 닦고 익히면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즐거이 샤마타와 비파샤나아에 머무르며,
여여하게 즐거이 샤마타와 비파샤나아에 머무르면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샤마타와 비파샤나아가 맑고 깨끗하여 지며,
여여하게 샤마타가 맑고 깨끗하여 지면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함이 더욱 자라나서 넓고 커지며,
여여하게 비파샤나아가 맑고 깨끗하여지면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지혜와 소견이 더욱 자라나서넓고 켜진다.
當知此中是諸菩薩
如如修習奢摩他毘缽舍那。
如是如是樂住奢摩他毘缽舍那。
如如樂住奢摩他毘缽舍那。
如是如是奢摩他毘缽舍那淸淨。
如如奢摩他淸淨。如是如是身安心安增長廣大。
如如毘缽舍那淸淨。如是如是若智若見增長廣大。
대승의 경론에는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대한 글들이 자주 발견되는 데,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대한 오해도 있고, 말만 같을 뿐이지 전혀 다른 내용도 많습니다. 그런데 위의 유가사지론의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대한 글은 부처님의 원음, 초기불교, 아비담마의 전통적인 설명과 매우 근접하고 유사합니다. 아래에 부처님의 원음인 니까야에서 인용한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대한 경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할 경전]
아래에서 두개의 경전을 인용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원음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대한 더 많은 설법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관한 여래의 위없는 법문들
http://cafe.daum.net/mahavipassana/5R2g/33
영지(靈知)의 일부경(A2.32) - 사마타와 위빳사나
주) 앙굿따라니까야 2권 삼매경 1/2/3(a4:92~94) 참조
1.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영지(靈知)의 일부이다. 무엇이 둘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32. “Dve 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마음이 개발된다.
마음이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욕망이 제거된다.
Samatho, bhikkhave, bhāvito kamattha manubhoti?
Cittaṃ bhāvīyati.
Cittaṃ bhāvitaṃ kamatthamanubhoti?
Yo rāgo so pahīyati.
비구들이여, 위빳사나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통찰지가 개발된다.
통찰지가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무명이 제거된다."
Vipassanā, bhikkhave, bhāvitā kamatthamanubhoti?
Paññā bhāvīyati.
Paññā bhāvitā kamatthamanubhoti?
Yā avijjā sā pahīyati.
2. "탐욕에 오염된 마음은 해탈하지 못하고,
무명에 오염된 통찰지는 개발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탐욕이 제거되어 마음의 해탈[心解脫]이 있고,
무명이 제거되어 통찰지를 통한 해탈[ 慧解脫]이 있다."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bhāvīyati.
Iti kho, bhikkhave, rāgavirāgā cetovimutti,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ī”ti.
삼매 경3(A4:94)
Tatiyasamādhisuttaṃ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었지만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는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었다.
2.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었지만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는 얻지 못한 사람은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를 얻은 사람을 찾아 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도반이여, 형성된 것[行, sankhara]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명상해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까?’라고.
‘kathaṃ nu kho, āvuso, saṅkhārā daṭṭhabbā?
Kathaṃ saṅkhārā sammasitabbā?
Kathaṃ saṅkhārā vipassitabbā’ [passitabbā (ka.)]ti?
그러면 그분은 그가 본대로 그가 체득한 대로
‘도반이여, 참으로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148)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명상해야 합니다.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해줄 것이다.
Tassa so yathādiṭṭhaṃ yathāviditaṃ byākaroti— ‘evaṃ kho, āvuso, saṅkhārā daṭṭhabbā, evaṃ saṅkhārā sammasitabbā, evaṃ saṅkhārā vipassitabbā’ti.
그러면 그는 나중에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을 것이다.
주148) 형성된것들은 참으로 무상(anicca)하다고 보아야 하고, 무상하다고 명상해야 하며, 무상하다고 깊이 관찰해야 한다. 그와 같이 괴로움(dukkha)이라고 무아(anatta)라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3.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한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은 사람을 찾아 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도반이여, 어떻게 마음을 하나에 고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하나되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라고.
‘kathaṃ nu kho, āvuso, cittaṃ saṇṭhapetabbaṃ?
Kathaṃ cittaṃ sannisādetabbaṃ
Kathaṃ cittaṃ ekodi kātabbaṃ?
Kathaṃ cittaṃ samādahātabban’ti?
그러면 그분은 그가 본대로 그가 체득한 대로
‘도반이여, 이렇게 마음을 하나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해줄 것이다.
Tassa so yathādiṭṭhaṃ yathāviditaṃ byākaroti— ‘evaṃ kho, āvuso, cittaṃ saṇṭhapetabbaṃ, evaṃ cittaṃ sannisādetabbaṃ, evaṃ cittaṃ ekodi kātabbaṃ [ekodi kattabbaṃ (pī.)], evaṃ cittaṃ samādahātabban’ti.
그러면 그는 나중에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을 것이다.
4.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지 못한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은 사람을 찾아 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도반이여, 어떻게 마음을 하나에 고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하나되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라고.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명상해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까?’라고.
그러면 그분은 그가 본대로 그가 체득한 대로
‘도반이여, 이렇게 마음을 하나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다.
참으로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명상해야 합니다.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라고 그에게 설명해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나중에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을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은 사람은 이러한 유익한 법들에 굳게 서서 번뇌들을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을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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