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가 브라질에 2대1로 진 날이었을 것이다.
난 제주에서 민박을 하고 있는데 부산공황에서 터어키 남자 세명이 있는데 민박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있는지를 묻는 전화가 왔다.
나는 영어를 할 수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대답을 했다.
손님도 없고 해서 우린 외국인이고 하니 방갈로 60,000원의 방을 30,000원 받기로 하고 예약을 받았다.
다음날 부산에서 7시에 배가 도착하여 선착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들은 터키 사람들이지만 독일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아주 잘했다.
나 또한 호주에서 유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다.
그들을 민박집으로 안내하면서 여행코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민박집에 도착하여 가장 전망 좋은 방과 가격을 50% 할인 하여주니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들은 자동차를 렌트하고 싶다고 했지만 난 걱정이 되었다.
그레도 우리 집을 찾아준 손님인데 싶어서 우리 집 차를 이용하되 내가 운전해 주겠다고 하니 얼마냐고 물어 보았다.
난 망설이다가 나중에 돌려 주더라도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기름 값 정도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하루만 차를 사용하고 다음날은 한라산 등반을 한다고 했다.
그레서 한라산 등반을 할 때 차로 모시겠노라고 이야기 한뒤 약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우린 간단한 음식을 사 가지고 만장굴에 갔다.
사건은 이때부터였다.
만장굴 입장료가 2000원 이였는데 할인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오! 세상에...
난 할 수없이 매표소 직원에게
터어키는 가난한 나라이니 할인해 주자고 사정해서 청소년요금 1,000원에 입장시켜 드렸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에 갔다.
그곳에서도 2,000원인 입장료를 1,000원에 할인하고
내가 너무 친절을 베푼 것이 실수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그들은 폭포가 보고 싶다고 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산에서 서귀포까지는 가장 먼 곳이다.
한국사람들도 이틀 코스로 잡은 곳이 그곳이다.
그런데 가고 싶다는 것이다.
할 수없이 모셔다 주었다.
정방폭포가 좋을 것 같아 그곳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에서는 절대로 할인이
안 된다는 것이다.
휴...한시간 동안 실갱이 하다가 내 돈 내고 입장시켰다.
그들 몰래.
정방폭포 관람이 끝나고 중문으로 가던 중 레스토랑에 가자는 것이다.
그레서 난 외국음식점을 찾으려고
하다가 30분이 지체되었다.
한 사람이 배가 고픈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월드컵을 개최하는 도시에서 유럽사람들을 위한 술집이나 식당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황당했다.
그레서 난 롯데호텔 쪽으로 갔다.
롯데호텔에는 외국음식점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건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롯데호텔 앞에서 그 친구가 한말이다.
야! 이 새끼야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
가는 곳마다 돈을 내야하고 데리고 가는 곳마다 비싼 곳만 데려 가고
자동차도 우리가 빌렸으면 금방 식당을 찾았을 텐데 1시간이나 빙빙 돌게 하고.
너 뭐 하는 새끼야
너, 사기꾼이야 뭐야 라고 했다.
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우선 2,500원 짜리 라면 집에 데려 갔으나 자기들끼리 싸우더니 한 사람이
나가버렸다.
한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남은 일행들과 난 중문 일대를 완전히 뒤지고 다녔다.
그때 시간이 밤 9시 정도였다.
우린 찾다가 지쳐서 길거리에 앉아 있는데 그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국사람 같으면 한방 칠 것 같았다. 우선 식당에 가서 사과하고 음식값을 내가 지불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40,000원 값 기름을 넣었다.
너무너무 억울했다.
돈보고 일한 것도 아닌데.
정말 섭섭했지만 아무 말도 없이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되었다.
난 그들을 만난 뒤 하루가 지났지만 10일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참고로 제주도에서는 밤에 6시 7시면 여행 일정이 끝난다.
이유는 관광명소가 6시면 모두 문을 닫기 때문이다.
난 울면서 그 날 잠을 잤다.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하고 장시간 운전에.....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부어 있었다.
그러나 난 그들을 위해 커피를 준비했다.
한라산에 대려다 주겠노라고 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나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난 그냥 씩 웃고 말았다.
난 그 날 경찰서에서 자원봉사(외국인 통역 서비스)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두르라고 당부한 뒤 아침을 먹었다.
약속시간이 2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이 밖으로 나왔다.
난 할 수 없이 삼촌에게 부탁하여 한라산 중반까지 운전을 하도록 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에 산중간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들은 매표소에서부터 말썽을 부려 나올 때까지 말썽을 부렸다.
10시가 넘으면 입장 할 수도 없는데도 그들은 막무가내로 산행을 했다.
백록담에는 1시 이후에는 올라갈 수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올라갔다.
그들은 천지(물이 고인 부분)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서 목욕을 하다가 청원 경찰에게 발각되어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여러 번 왔다.
그때마다 죄송합니다. 외국인이라 몰라서 그리 했습니다 라고 변명해야만 했다.
그 후 1시간이 지난 뒤 다시 전화가 왔다.
배가 고파서 도저히 산에서 못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난 멕도날드에 가서 빅맥 3개를 사 가지고 한라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내려오는 곳으로 1시간 30분 정도 올라 가다가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침이 마르게 날 칭찬했다.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산에서 내려왔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내려와서 인지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난 그들을 도깨비 도로에 데리고 갔다. 그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우린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탑동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정말 개구장이였다.
난 너무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날 가만히 나두질 않았다.
새벽 3시까지 놀다가 우린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셋째 날
우린 전날 무리해서인지 11시가 다되어서 용두암으로 향해 출발했다.
용두암에서도 그들은 용두암의 입을 잡고 애원하며 사진을 찍었다.
우린 해안도로를 타고 협재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 곳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축구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므로 큰 TV화면이 있는 술집으로 가자고 해서 난 해변 가의 분위기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의 주인까지 나와서 가장 좋은 자리로 우릴 안내했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값이 비싸서였는지 가장 싼 맥주를 시키고는 땡이였다.
주인의 인상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날은 서귀포에서 게임이 있는 날 이였다.
그레서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즐기는 골드타임 이였다.
그곳을 나와서 그들은 배가 고프다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난 공항의 가까운 곳에 그들을 내려주었다.
그들이 찾은 식당은 다름 아닌 김밥 전문점이였다.
일단 싸니까 그들이 선택한 것 같다.
그곳에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김밥 2인분에 라면 2인분 이였다.
난 영어로 주문을 받으면서 매뉴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주문했다.
김밥 2인분에 루들 2인분요
라면이 영어로 루들 이거든요.
그런데 김밥은 나왔는데 이상한 김밥이 나왔다.
그리고 루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안나오는 것이다.
그레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누드김밥 시킨 것 아니냐며 반색을 했다.
난 할 수없이 라면 두개를 빨리 부탁한다고 말하고 그들의 눈치를 보니 이미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한사코 누드김밥은 시키지 않았으니 반품한다는 것이고 아주머니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난 엄청 짜증이 낳다.
난 화가 나면 버릇이 있다.
내가 다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일단 손해보고 말지 라는 생각 때문이다.
난 이미 다 돈을 지불했으니 그냥 먹자고 했다.
그들은 라면까지 깨끗하게 먹어버렸다.
난 안심하고 그들을 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그 시간까지 그들은 돈을 지불하지 않은 상태였다.
숙박비 식대 자동차 기름 값 등 청구서에는 500불 이상이 나왔다.
그들이 제주도에 머무르면서 후불을 원했기 때문에 수첩에 메모를 해 두었다.
그들은 봉투에 돈을 넣어 주었다.
난 시어보지도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
그들은 떠나면서 나에게 뜨겁게 포옹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처럼 마음이 넓고 친절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난 말했다.
한국사람은 다그래 라고....
공항을 나오다가 문득 편지 봉투 안을 보았다. 그곳에는 150불이 있었다.
난 공안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난 몇 가지의 제주도 토산품과 엽서를 사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잠시 기다리라며 엽서에 내용들을 남겼다.
그런데 한 친구 가 표를 사다말고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행기표를 흥정하고 있었다.
그 날은 중국 경기가 서귀포 있었던 날이라 많은 사람이 공항에 있었다.
난 30불을 봉투에서 빼서 후론트앞에 가서 공항 세는 제가 내지요.
라고 말했다.
1초도 안돼서 싸움은 끝났다.
다음날
그들에게 전화가 왔다.
핸드폰을 두고 왔다는 것이다. 흐미
난 일하다말고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방에도 없고... 마당에도... 공항에도... 제주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자동차 의자 사이에 끼어서 있는 것이었다.
속달로 부쳐 주었다.
그들의 전화가 도착된 뒤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 후 여러 번 전화가 왔었다. 일본에서도...터키 경기가 있었을 때도...
그런데....
운명적으로 우린 터키와 붙어야 했다.
누굴 응원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졌다.
터키에서 전화가 왔다.
그들과 해어지면서 내가 했던 말을 고대로 한국말로 말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