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야말로 수학여행하는 학생의 신분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이다
이번 여행 일정 중 나의 호기심과 관심을 가장 받지 못한 여정이라서 시니컬한 말투로 얘기했더니
남편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남편은 미국의 수도이자 국제정치와 외교의 중심지인 워싱턴에 궁금한 게 많았던 모양이다
하긴
이곳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백악관에서 발표하는 몇 페이지의 페이퍼에 담긴 내용이
주변국의 정치 경제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워싱턴이란 도시 자체의 중요도에 관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워싱턴 국회의사당 한켠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대통령이 취임식 할 때 나오는 출입구와 세계 주요 초청인사들이 앉는 장소 등을 설명 들으며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넓은 잔디밭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수많은 인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취임식을 하는 미국 대통령의 영광과 환희의 순간을 잠시 감정이입해 본다
이젠 백악관이다
어제 딸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백악관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했는데
백악관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육중한 철책 담장 사이로 뽀얀 건물만 바라볼 수 있었다
너무나 자유분방하게 백악관 앞 거리를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인파의 풍광이 생소했다
무거운 표정으로 총을 들고 지키는 사람들도 없고 그저 제복을 입은 사람들만
군데군데 보일 뿐 삼엄한 경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경호가 아니라 그림자차럼 경호하는 것이라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곳은 미국 초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이다
남편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오늘 일정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남편은
거의 모든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구를 해 나도 신기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남자와 여자는 관심사가 이렇게 다르다
이 토마슨 제퍼슨이 바라보고(째려보고) 있는 곳은 바로 대통령이 묶는 백악관이라고 한다
'당신이 정치를 잘하는지 내가 지켜볼 거야' 하는 의미라고 하는데 정설인지 모르겠다
다음에 들를 장소인 링컨 박물관의 링컨이 바라보고(째려보고) 있는 장소는 국회의사당이다
"당신들이 법을 잘 만들고 집행하는지 내가 지켜볼 거야" 하는 의미라는....
그런데 이 기념관들의 시선을 이어보니 실제로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어
정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링컨 대통령의 기념관은 제퍼슨 기념관에 비하면 몇 배나 커 보였다
그리스의 신전에 와 있는 느낌도 들고.
좀 아는 척을 해 보자면
제퍼슨 기념관의 기둥은 이오니아 식이고
링컨기념관의 기둥은 도리아식이다
세 가지 기둥을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이오니아식 - 양 머리 모양 기둥
코린트 식 - 나무와 꽃 장식 기둥
도리아식 - 장식이 없는 간결한 기둥
이렇게 구별하면 쉽다
그리고 링컨 기념관 앞쪽은 이렇게 탁 트인 인공호수 뒷 쪽으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링컨이 째려보고 있는 곳은 확실히 국회의사당이다
마치 인도의 타지마할을 연상하게 하는 전경이다
실제로도 타지마할을 밴치마킹했다고 한다
수많은 미국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 장소에서 인증샷을 안 남길 수 없지
저 멀리 보이는 오벨리스크를 워싱턴에서 만나다니 하며 깜짝 놀랐다
수탈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남의 나라에서 가져온 전리품을 선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던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나 이슬람국에서 침탈해 온 것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집접 제작한 것이라고 해 안도했다
실제로
이 오벨리스크에 가까이 가서 보니 너무나 현대적인 건축미가 보이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벨리스크를 고대 태양을 숭배했던 나라들의 전유물이 생각한 내 좁은 식견이 드러난 부분이다
다음은 남편이 그렇게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장소인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간다
이곳은 공원 내에 삼각형을 이루는 장소에 조성되었는데
튀르키예에 있는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 큰 규모라고 한다
튀르키예의 앙카라에서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가 보고 그 규모에 놀랐었다
튀르키에가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말이다
워싱턴에서도 꽤 큰 규모로 잘 가꾸어진 기념공원을 만났다
기념공원 옆 기둥벽에는 한국전 참전용사의 실제얼굴을 부조로 새겨놨다
이 얼굴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쓰러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숙연한 시간이다
남편 포즈 참 좋은데 하며 돌아보기 전에 얼른 도촬 하듯 찍은 사진이다
이런 사진이 참 좋아~~
이곳엔 성조기와 함께 짙은 회색빛의 기가 함께 걸려있는데
이 깃발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참전용사들을 더 찾아내겠다는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이 사진을 찍어놓고 남편이 정찰부대를 이끄는 소대장쯤 되어 보인다고 놀렸다
사진으로만 봤던 이 참전용사들의 동상이 실제 어떤 모습으로 놓여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고 한다
무척이나 만족스런 표정으로 이곳을 꼼꼼히 살펴보는 남편.
그래, 여행이란 이렇게 궁금한 것을 해소하고 보고 싶었던 장소를 확인하는 과정인 게야
영어 표지판도 읽어가며 끄덕끄덕
여러 기념관이 있는 공원엔 실제 방학을 앞둔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다니며 역사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 일정표를 보고
아잉, 오늘은 꼭 수학여행하는 기분일 거야 했는데 딱 맞네.
발랄한 학생들 통제하며 다니는 교사들의 모습에
우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힘드시겠어요 하며 음료라도 건네고 싶은 이 오지랖
6.25 전쟁이 일어난 시기가 장마철이었으니 이 우비를 입은 병사들의 모습이 아주 사실적으로 보였다
우비를 입고 걸어가는 용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치열하고 절박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이곳을 걸어 나왔다
이 워싱턴이란 도시 자체가 백악관, 국회의사당, 제퍼슨기념관, 링컨기념관, 등이 어우러진
하나의 커다란 공원으로 이루어져
딱딱한 정치 1번지의 이미지가 아닌 녹음 우거진 아름답고 기품 있는 도시처럼 보였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간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의 기부금으로 설립된 박물관이다
이런 거대한 박물관이 16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인류의 지식을 넓히기 위한 시설을 워싱턴에 세우고 싶다'는 유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간 건물 1층엔 거대한 코끼리가 떡 버티고 있는데
우리 여행팀의 이 코끼리 사용법은
"머리가 향하는 부분은 입구이고, 똥꼬가 향한 곳은 화장실 방향입니다
그러니 나오실 때 이 점을 잘 참고하셔서 화장실도 이용한 후 1시간 뒤 건물 밖에서 만나요"
수없이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에 학생들을 데리고 다녔던 경험이 있는
나와 남편은 대충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인도에서 발견된 45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2층 전시관을 먼저 찾았다
아~~
45캐럿이 이 정도의 크기구나 하면서 말이다
유리관에 밀봉된 채 빛을 발하고 있는 푸른빛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박제되어 이곳을 비추겠지
남편이 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긴 의미는
나중에 이런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
부담시러워~~~
박물관에 관심 없는 두 사람은 대충 둘러보고 코끼리를 야무지게 사용했다
똥꼬가 향하는 방향으로 갔다가,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와
잔디밭 벤치에서 여유 있게 쉬었다
패키지 여행자에겐 이런 뜻밖의 쉼표가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
그러면서 어설픈 셀카타임!
걸어 다니면서 발견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오히려 반가운 워싱턴 거리
우린 수학여행을 마치고 이제 해리스버그로 향한다
해리스버그 하면 게티즈버그가 먼저 떠올랐다
링컨의 유명한 연설장소였던 게티즈버그
버그란 어떤 시, 읍, 면 등의 단위가 아닐까?
가이드가 바로 내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버그란 바로 타운이란 뜻이라고 한다
2시간 정도를 더 북쪽으로 올라가 나이아가라로 가기 위한 기착지로 가는 셈이다
해리스버그의 조용한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호텔
우리가 주로 쉐라톤 호텔에서 묵었는데 이 쉐라톤은 오픈하자마자 곧바로 팬데믹으로 이어져
관광객을 받지 못했기에 거의 새 호텔이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로비에 도착해 방 배정을 기다리는 동안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커피까지 친절히 내려놨다
따뜻한 커피 마시며 기다리니 쌀쌀한 밤공기를 헤치고 들어온 몸이 금방 풀린다
아담하고 깔끔한 이 호텔이 조용한 초원에 서 있어 너무 맘에 든다
생각 같아서는 얼른 캐리어 던져놓고 달려 나와 이 초원을 거닐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은 육로 국경을 통과해 캐나다 나이아가라까지 올라가야 해 새벽에 일정을 시작한다
산책도 생략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오늘 수학여행 만만치 않게 피곤했어하면서 말이다
첫댓글 엄빠 관심사 다른거 넘 웃기네요ㅋㅋㅋㅋㅋ 흥미 없다더니 이번 여행기 재밌는걸요?
화성, 금성에서 온 남녀라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