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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禪軒 독서일기 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대동야승』 中 趙慶男 著 『續雜錄 속잡록』
병조 참의 유백증(兪伯曾) 상소와 경룡과 중남의 정세 보고》 (177)
<1628년 무진년 상 숭정(崇禎) 원년, 인조 6년>
○ 병조 참의 유백증(兪伯曾)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삼가 아뢰옵니다. 전하께서 난리를 다스리고 세상을 바른 데로 돌리시는 재주로 막혔다 다시 통하는 때를 당하셨으니 백성의 소망이 마치 큰 가뭄에 비를 바라는 것과 같사온데 6년 사이에 두 번째 병란을 겪고, 천심(天心)이 기뻐하지 않아 재앙과 변괴가 자주 일어나며, 요성(妖星)과 괴물이 끊임없이 나타나서 역사에 씌어지고 있사옵고, 가뭄에 대한 걱정도 근자에 없던 일로 금년 농사는 전혀 가망이 없사오니, 어지신 하늘이 어찌 깨우쳐 줌이 없으리요. 난리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데 또 이런 흉년을 만나 강성한 오랑캐가 틈을 엿보고 갖가지로 공갈하는데, 아무리 강구해 보아도 좋은 계책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예로부터 나라가 망하는 것은 반드시 임금이 어둡고 신하가 아첨하는 데서 기인되는 법이온데, 지금은 밝으신 임금이 계신데도 세상은 바로잡히지 않고, 권신(權臣)이 없는데도 나랏일은 나날이 잘못되어 가서 위태롭고 어려운 형세가 말세의 혼탁함과 같사옵기로 신은 잠자고 밥 먹는 것조차 잊고 밤낮으로 생각하여 그 병의 근원을 찾아냈습니다. 한갓 총명만을 자부하여 강령을 붙들지 못하고 남을 이기기만 좋아하여 공정한 마음으로 사리를 살피지 못하고, 절의를 배양하지 않음으로써 바른말을 듣는 길은 날로 막히고, 고무시키고 격려시키기 못하면서 인자심만 지나치며, 사정에 얽매여 위엄과 성냄이 중도를 잃고, 명예를 좋아하는 단점을 버리지 않고 일 처리를 성실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전하의 병이옵고, 어물어물하여 그대로 넘기며, 태평하고 안일하여 제 몸만 아낄 줄 알고 나랏일을 담당하려 하지 않으며, 한 가지 일을 처리하려 하여도 말썽이 있을까 염려하고, 한마디 말만 하려 하여도 노염을 살까 염려하여 이리저리 두려워하고 돌아보아, 선악도 분별하지 못하고 시비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신하들의 병이옵니다. 아, 임금의 옷을 입고 임금의 밥을 먹으니 은혜가 이미 지극하고, 발탁되고 등용되었으니 책임도 크다 하겠사온데, 정사의 잘잘못을 보기를 마치 살찐 월(越) 나라 사람이 여윈 진(秦) 나라 사람 보듯이 하니 이 무슨 습속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하물며 지금은 기강이 무너지고 인심이 이반되었사오니, 만약 임금을 원망하는 무리들이 불측한 마음이 없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역적의 변고가 그칠 때가 없을까 염려되오니,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옵서는 쓰러져 가는 기업을 이어받으시어 정사에는 은혜와 용서가 많고, 일에는 모두 옛것을 인습하시니 사유(四維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는 땅에 떨어지고 호령은 시행되지 않아 아전들의 농간은 갈수록 고질이 되고, 수령의 토색질은 날로 심하여 백성의 고혈은 이미 다 빠지고, 국가의 창고는 모두 비었으니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망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큰 병이 든 사람이 원기가 실낱같아 사지(四肢)도 움직일 수 없고, 두 눈도 뜰 수 없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 같사오니 신은 통곡함을 참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옵서 즉위하신 처음에 궁노(宮奴)를 베시고 위훈(僞勳)을 삭제하신 일 등은 성명(聖明)하신 용단에서 나왔사온데, 지금은 그 기운이 꺾이시어 우유부단하시니, 위에서 하시는 일이 이러하온데 아래에서 흥기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옛날 초(楚) 나라 임금이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하여 궁녀(宮女)들은 굶어 죽는 일이 많았으며, 성중(城中)에서 상투가 높은 것을 좋아하니 사방에서 한 자를 높였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문이 크게 열려 벼슬길이 날로 문란하니, 벼슬을 탐내는 무리들이 염치를 무릅쓰고 달려들어 아첨을 잘 부리면 한 자리를 따게 되고, 조금만 모나면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형들은 그 자제에게 입을 다물고 지내라고 경계하고, 친구들끼리도 서로 친함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하며, 군신(君臣) 사이에도 성심성의로 나가지 않으니 이러고야 어찌 천지가 조화되어 비올 때 비가 오고 볕 날 때 볕이 나기를 바라겠습니까. 진실로 큰 뜻을 분발하여 열심히 다스릴 길을 도모하고, 좋아하고 미워함을 밝게 보여주어 대신을 책망하고, 호령을 발동하기를 번개 치고 바람 불듯이 한다면 사람마다 격려하고 분발하여 제 몸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이러고서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아, 오늘날 일은 말할 만한 것이 많사오나 만약 그 본원을 맑게 하지 않는다면 천만 가지 말이 공언에 불가할 따름입니다…….
○ 경룡과 중남이 서울에 당도했는데, 경룡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3월 26일에 진강(鎭江)에서 떠나 4월 3일에 심양에 당도하여 국서를 올리니, 칸의 말이, “새로 연 시장에 물자가 있고 없는 것은 두 나라의 교역(交易)이 있고 없는 것이니, 어찌 빈손으로 돌아올 것을 나무라랴. 다만 사람을 돌려보내는 일만은 당초 그대 나라의 소청에 의하여 남녀를 가려서 보냈던 것인데, 겨우 70여 명만 속환하고 그 나머지는 그저 돌려보내어 중도에서 도주하게 되고, 사망자도 태반이나 되었으니, 이는 속환해 간다고 칭탁하고 유혹해서 달아나게 하는 수작이니 이 무슨 일이오? 또 의주에서 철병한 이후로 도주한 사람들은 일일이 돌려보낸다 하고서 하나도 잡아 보내는 일이 없고, 또 옳다 그르다는 말이 없으니 화친을 맺은 지 몇 년도 못 가서 이 지경으로 약속을 위반한다면 내가 어떻게 그대 나라의 맹약을 믿는단 말이오? 옛날 남조(南朝)가 우리나라와 더불어 소와 말을 잡아 천지에 제사하고 돌을 세워 맹서문을 새겼으나 변방을 지키는 신하가 침략하므로 우리 이전 칸께서 하늘에 고하고 군사를 출동하였더니, 개(開)ㆍ철(鐵)ㆍ요(遼)ㆍ심(瀋)ㆍ금(金)ㆍ복(復)ㆍ해(海)ㆍ개(蓋)ㆍ광녕 등지 24개의 위(衛)가 일조일석에 모조리 우리 손에 들어왔소. 이는 하늘이 우리를 괴상히 여기지 않고, 남조를 괴상히 여긴 까닭이오. 남조는 그대 나라와 함께 대국이란 이름만 믿고 우리를 초개같이 대우하여 강상(江上)에서 개시하는 날에도 관원이 친히 곤봉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을 때렸다고 하니, 이 무슨 일이오?” 하며, 크게 성내어 말하므로 소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우리나라 백성의 생활은 다만 농사짓는 것으로 업을 삼아서 1년의 곡식을 얻으면 그것으로 1년을 지내고 있으니, 그 가난한 형상은 지난해 행군하던 날에 대인(大人)들도 직접 목격했을 것이오, 의주에서 평산(平山)까지 오는 동안 얻은 보화가 얼마였소. 그 경우를 상상해 보시면 다 말하지 않아도 분명히 알 것이오. 하물며 약탈을 당한 나머지에 비록 만분의 일이 보존되었다 할지라도 무슨 여유가 있겠소? 부모 처자가 서로 떨어져 있는 자들이 위대하신 칸의 속환해 가라는 기별을 듣고 겨우 백목이나 종이ㆍ명주 등을 준비해 가지고 강상에 와서 속환하려 하면 금인(金人)이 값을 너무 많이 바라고, 한 사람에 대한 값이 소 열 마리ㆍ말 열 마리ㆍ주단ㆍ청포ㆍ목면ㆍ수은(水銀)ㆍ표피(豹皮)ㆍ종이 등속으로 거의 천 냥에 달하는 숫자를 부르고 있으니, 저자에서 속환하려는 자가 상심하고 낙담하여 통곡하고 돌아가는 실정이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본래 속환해 가고자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초에 우리나라에서 백성이 제집을 잃어버리고 부모 처자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속환에 대한 문제를 끌어낸 것이며, 칸이 속환을 허락한 것도 인자심에서 나와 그런 것인데, 어찌 속환해 간다고 칭탁하고 유인하여 도망가게 할 리가 있겠소? 우리는 그대 나라의 후한 은혜를 받아 성명을 보전하고 있는데, 지금 또 여기 와서 황당한 말로 속여 고한다면 후일에 어떻게 되겠소? 더구나 금국 사람을 마구 때렸다는 말은 절대 그렇지 않소. 이날 금국 사람들이 물건을 잡아 놓고 매매를 막는 지경까지 이르므로 관원이 분히 여겨 곤봉을 가지고 금단할 때에 마침 곤봉 끝에 부딪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니 부디 용서하고 소소한 잘못을 나무라지 말기 바라오.”하니, 칸이 말하기를, “그대 말이 비록 옳으나 관원이란 자가 친히 곤봉을 휘둘렀으니 스스로 체면을 잃은 것이오. 무슨 억지 말을 하오?” 하였습니다. 4일에 칸은 8명의 장수와 함께 변방을 순행하여 말 먹이는 곳을 살펴본다 칭탁하고, 수백 명의 정예병을 뽑아 대릉하(大陵河)에 당도하여 파발꾼들을 약탈하여 50여 명을 살해하고 돌아왔습니다. 5월 16일에 모진(毛鎭)의 차사가 곡호(曲虎) 등을 거느리고 심양(瀋陽)에 당도하여 잔치 대접을 받고서 20일에 떠났는데, 칸과 8명의 장수가 모여 앉아 소인을 불러 앞으로 나오라 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하는 말이, “요즘 그대 나라의 하는 짓을 보니, 모문룡과 부동하여 우리나라를 침범할 계획이 있는 듯하니 그대는 속임 없이 바로 말하시오. 만약 거짓말을 하면 그대 목숨이 절단나고 말 것이오. 한 번 죽으면 다시 살 수 있겠소?” 하므로, 소인이 대답하기를, “무슨 의심스러운 일이 있길래 이처럼 목숨을 해치겠다는 말까지 하시오? 아마도 사정을 잘못 듣고 그러는 것이 아니시오?” 하니, 칸이 말하기를, “곡호가 모진에 내왕하는데 그대의 나라일을 어찌 못 듣겠소? 또 중남의 보고를 보니 회령(會寧)에 개시(開市)할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회령은 예로부터 개시하던 땅인데 지금은 어째서 허락하지 않소? 의주가 그대 나라 땅이라면 회령은 그대 나라 땅이 아니오? 도망한 사람을 잡아 보내지 않고 세월만 끌면서 핑계하기를, ‘각 고을에 명령하여 조사해 내게 했다.’ 하고, 또 ‘부모와 처자식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하니, 그대 나라에서 그대 나라 사람을 보면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우리에게야 무슨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겠소? 지난해 맹약을 맺을 적에 성보(城堡)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안주(安州)ㆍ황주(黃州)에서 성지(城池)를 수리하고 있으니 이것은 무슨 일이오?”하므로, 소인이 대답하기를, “모문룡 장수가 꾀만 있고 용맹이 없다는 것은 칸도 아는 바이니, 아마도 두 나라에 이간을 붙여 화친의 일을 끊게 하자는 것이 아니겠소? 장수의 꾀는 그대로 곧이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절대로 이간 붙이는 말을 가지고 의심을 품지 마시오. 우리나라가 먼저 맹약을 파기하고 군사를 내어 남조(南朝)를 돕는다면 단지 내 한 몸만 아니라 박창성(朴昌城)ㆍ오동지(吳同知)가 먼저 그대 나라에서 죽게 될 것이오. 금국이 먼저 맹약을 파기하고 군사를 움직인다면 우리들이 먼저 우리나라에서 죽게 될 것인데 어찌 두 나라 사이에 황당하고 간사한 꾀를 부리겠소? 이럴 리는 만무하오.” 한즉, 칸이 8명의 장수를 돌아보며, “이 말이 어떠냐?”고 묻자, 대답이, “그 말이 옳으며 또 모문룡 장수가 이간을 붙인 일도 없지 않을 것이니 먼저 조선에 서신을 보내어 답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시험해 보십시오.” 하였습니다. 또 소인이, “회령에 시장을 여는 일은 내가 이 땅에 들어온 뒤의 일이라 조정의 여론이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는 지방도 협소하고 물자도 적은데 강상에 시장을 열고, 또 회령에 시장을 열면 말도 안 될까 염려해서 그런 것이지, 그 사이에 무슨 의심스러운 일이 있겠소?” 하니, 칸이 성내며 말하기를, “그대 말은 거짓이오. 이미 강상에 시장을 설치할 것을 허락했는데 어찌 회령에 시장을 설치할 것을 싫어할 까닭이 있겠소?” 하였습니다. 소인이 말하기를, “성지(城池)를 수리한 것은 용골대(龍骨大)가 우리나라에 있을 때부터 이미 알았소.”하니, 칸이 말하기를, “그대가 우리나라에 머문 지 여러 해가 되어 정상을 잘 알고 일마다 변명하는데 대단히 잘못이오.” 하였습니다. 18일에는 아미라고(阿尾羅古)가 소인을 불러 말하기를, “지난해 화친한 일은 내가 아니면 이루어졌겠소? 내가 대장이 되어 그대 나라로 나가 민생을 살해하지 않고 화친을 맺고서 왔다는 것을 그대 나라 사람이 알까요?” 하므로, 답하기를, “어찌 모를 리가 있겠소?”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화친을 맺은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대 나라를 위해 진력하고 있다는 것을 역시 알까요? 그대 나라가 좋아하지 않으면 나도 좋아하지 않을 거고, 영원히 좋게 여기면 나 역시 영원히 좋게 여기겠소. 이는 다름이 아니라 그대 나라와 화친을 주장한 것이 나였기 때문이오. 지금 우리 칸이 그대 나라에 대해 좋게 여기지 않는 말이 많이 있는데 어찌 할까요?” 하므로, 소인은 감사를 표시하고 말하기를, “어제 칸의 말을 들었는데, 우리나라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많이 하고 있다 하니, 매우 염려가 되오. 무슨 일이 이처럼 의심을 사게 되었는지 알 수 없소. 우리나라의 일은 오로지 왕자(王子)만 믿으니 부디 우리나라를 위해 끝까지 힘을 다해 주기 바라오. 그러면 왕자의 명성이 크게 드러날 것이오.” 하니, 그의 대답이, “그대는 번거롭게 말하지 마시오. 내가 할 것이니 그대는 요면(要免)의 집에 가되 그 집에서 만약 이 일을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오.” 하였습니다. 요면이란 자는 귀영개(貴永介)의 큰아들로 그 역시 화친을 힘쓴 자입니다. 그래서 곧장 요면의 집으로 가서 뵈러 왔다 말하고 들어가 면대하여 비밀리에 아미라고가 시킨 대로 말하고, 대답도 아미라고가 가르쳐 준 대로 했더니, 그의 말이, “다만 속환해 가는 일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로부터 도주한 사람의 수효를 헤아려서 그 숫자대로 그대 나라 사람을 잡아오라고 어제 칸이 말했으니 이 일이 지극히 난처하오. 그대가 돌아가는 즉시 조정에 자세히 아뢰어 빨리 처리해야 하오.” 하였습니다. 이날에 몽고 장수 즉로(卽老)의 아우 마소대주(麻所大主)란 자가 가정(家丁) 50여 명을 거느리고 항복해 왔는데, 이 몽고 장수는 지극히 부유한 자입니다. 그래서 아미라고는 말 2백 필ㆍ소 백 마리ㆍ양 백 마리ㆍ낙타 12마리를 내주고 여자를 서로 교환하여 출가시키고, 10여 일을 머물게 하고 본토로 돌려보냈습니다. 5월 15일에 요면과 네 장수가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영원(寧遠) 근처에 가서 노략질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도의 연대(煙臺)와 성보(城堡)를 다 헐어 부셨으며, 29일에 심양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월 16일에 질관(質官)과 호구(虎口) 두 장수가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몽고 지방으로 가서 약탈하고 4일에 들어왔기로 많이 듣고 본 것을 물어보았는데, 곡절(曲折)에 대해서는 다 아뢸 수 없습니다. 이번 중남(仲男)이 온 것은 중요한 목적이 오로지 돌려보내는 것과 회령에 시장을 개설하는 것 등입니다만, 칸이 친히 분부한 내용은, “여기서 내보낸 칸의 딸 등을 놓아 보내고, 박규영(朴葵永)ㆍ오신남(吳信男)ㆍ김진(金榗)ㆍ박유건(朴維建)등도 찾아보고 오라. 또 강숙(姜璹)에게 은자(銀子) 30냥과 규영ㆍ신남에게 각각 20냥씩을 면대하여 내주고 표를 받아오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비밀리에 사정을 탐지해 본즉 중국 여자에 대한 일은 실지 상황을 듣고 본 것 같은 감이 있으니 조정에서 미리 알고 선처하시기 바랍니다.
비밀 전교에, “이번 오랑캐 차사 중남이 온 것은 도주해 온 사람을 돌려보내는 일인데, 도주해 온 수효가 도합 3천여 명이다.” 하였다.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오늘 인대(引對)에 우의정 김류(金瑬)가 아뢰기를, ‘지금 이처럼 중대한 논의에 영의정ㆍ좌의정이 병으로 참여하지 못했사오니, 청컨대, 비국으로 하여금 가서 물어보게 하고 재결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였사옵기로, 신 이경직(李景稷)이 영의정과 좌의정에게 가서 물은즉, 영의정은 병이 중하여 인사불성이 되었고, 좌의정은 말하기를, ‘우리 백성이 불행하여 사로잡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해 왔는데, 우리가 또 잡아보냈다가 만약 죽음을 당하게 되면 천리와 인정에 차마 못할 일일 뿐만 아니라 천하 후세에 장차 무어라 하겠는가. 이 일만은 비록 큰 화를 당할지라도 결코 응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람을 보내어도 그 사람이 죽지 않을 수도 있으니 오랑캐는 본래 이 일을 중히 여기는 자들이므로, 만약 많은 재물로 속환해 온다 하면 저들이 그 재물이 탐이 나서 받은 사람을 반드시 죽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죽지만 않는다면 이미 화를 늦추고 또 백성도 보존할 것이니, 진실로 이렇게만 된다면 혹 무방할는지 모른다. 그 수치와 모욕에 있어서는 돌아볼 겨를도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중남(仲男)이 말하기를, “전일에 이난(李灤)이 본국으로 들어갈 적에 도망해 온 사람을 잡아 보내겠다고 칸 앞에서 이미 승낙하고 돌아간 지 이미 오래인데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으며, 이난은 이 일을 조정에 말하지도 않았고, 또 이난이 사 가지고 온 여인은 바로 한윤(韓潤)이 거느린 계집이며, 그 밖에도 잘못한 처사가 한 둘이 아니오.” 하므로, 곧 명령하여 이난을 잡아다 국문했다. [한국고전종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