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아내가 된 장은영입니다. 근간 최 회장의 경영일선 복귀여부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가 왜 이런 시도를 하게 됐는지, 그 과정과 저간의 사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소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착잡한 마음을 지면에 담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시간 중에도 잠시 틈을 내어 관심을 기울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최 회장의 복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한 번 경영에 실패한 사람에게 또 다시 회사를 맡길 수는 없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고, 그의 복귀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지금처럼 동아의 향방이 불투명하고 국내 건설경기 또한 침체된 상황에서 그래도 해외 건설사업 등을 통해 동아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데에는 최원석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로에 놓인 한 기업을 되살리는 데에 어느 쪽의 논리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왜 최 회장이 실패한 경영인이 되어 사퇴를 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현재 동아의 실상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바로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환자가 왜 병이 들었는지, 그리고 현재 병세가 어떤지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그에게 외과의사의 메스가 필요한 것인지, 내과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의 치료가 뒤따라야 할 것인지를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98년 5월 최 회장이 전격 자진사퇴를 한 후 그 다음달인 6월에 실시한 정밀 실사내용을 토대로 볼 때, 당시 동아건설은 총 자산이 6조2천2백7억 원, 총 부채는 5조6천8백17억 원으로서 순자산가액이 5천3백90억 원에 이르는 비교적 기반이 단단한 기업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즈음 재개발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토지비와 이주비 등에 과다한 비용이 지출됐었는데, 갑자기 IMF 사태를 맞게 되자 금융권에서 무차별적인 자금 회수에 들어가 단기적으로 유동자금이 절대 부족해진 데에 있었습니다.
동아건설은 당시 PRICE WATER HOUSE와 40억 달러에 이르는 김포 매립지 개발 약정을 체결하면서 매립지 용도 변경을 강력히 추진하는 한편, CSFB은행을 통해 외자를 유치하는 등의 자구계획을 펴나갔습니다. 그러나 해당 정부 부처와의 혐의 없이 일방적으로 체결한 매립지 개발 건은 연일 언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았고, 성사 단계에 있던 외자유치 건도, 동아에 지원하는 자금은 간접적으로 리비아를 돕는 것이라는 미국 재무성의 반대로 마지막 순간에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은행권의 협조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가운데, 당시 주 채권 은행인 서울 은행장은 최 회장이 용퇴를 하는 조건 하에서만 지원을 하겠으며, 그럴 경우, 대한통운 협진과 국제운송의 경영권은 보장하겠다는 약조를 했고, 이에 최 회장은 단 하루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동시에 보유하고 있던 동아건설 및 전 계열사의 주식과 부동산은 물론, 심지어 살던 집과 선산까지도 모두 동아에 기증했습니다.
수십 개의 워크아웃 기업들 중에서 최 회장의 경우와 같이 오너가 모든 것을 그처럼 완전히 포기하고 깨끗이 손을 뗀 사례는 아직껏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최 회장은 대장암 진단을 받아 극도로 자신감을 잃고 있었고, 가정불화 등의 개인 사생활로 인해 언론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는 부담감, 그리고 그러한 본인의 모습이 동아 전체의 이미지를 흐리고 실제 불이익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눌려 있던 상태였습니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회사의 생명을 볼모로 채권단과 협상을 벌여본다거나, 시간을 끌며 그 자리에서 버티어보는 요령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무 선선히 자진사퇴를 한 최 회장의 결정은 오히려 갖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이후 1년 반에 걸친 긴 시간동안 최 회장의 재산 은닉과 경영 비리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뒤따랐습니다.
그 기간 동안 최 회장은 일체의 사회활동이나 대인관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친지나 가까운 지인들은 물론, 특히 동아와 관련돼서는 전임 회장이 회사 사람들이나 채권단 사람들을 접촉하게 되면, 공연한 오해나 사고 회사 회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동아와 관계된 사람이나 일에 대해선 일체 언급조차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검찰의 수사는 지난 해 말 종결되었습니다. 수사 결과 최 회장은 개인적으로 어떠한 부정축재나 재산도피도 하지 않았음이 확인됐고, 해외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던 외화는 그 성격이 개인 용도를 위한 것이 아닌 만큼, 전액 국내로 반입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 동안 동아는 수 차례의 인원감축, 동아증권이나 시티백화점 등의 계열사 매각, 서원레저와 호주 글렉노만 골프코스 및 주택단지 등의 부동산 매각, 김포 매립지 매각, 유가증권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보여주는 결과는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98년 6월 당시 5천4백여억 원에 이르던 순자산가액이 99년 10월 말 기준, 마이너스 1조3천4백11억 원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팔 것 다 팔고, 줄일 수 있는 사람 다 줄이고, 깎을 수 있는 임금 다 깎고도 빚이 세 배 가량이나 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수개월 전부터 경영진간에, 그리고 경영진과 직원들간에 갈등과 불화가 계속되더니 급기야 전문경영인으로 파견된 회장은 불법 비자금 조성과 자산 매각 과정에서의 수많은 의혹 등으로 강제 퇴진 당해 현재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는 상황에 이르게 됐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우수자산은 헐값에 매각되고, 신규 수주는 한 건도 없고, 리비아 공사는 커뮤니케이션의 맥이 끊어져 있는 상태에서 이제 동아는 새로운 CEO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6월말, 동아의 채권단은 새로운 최고 경영자를 구하는 공채광고를 각 일간지에 냈습니다. 건설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인들이 약 20명 가량 이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입니다. 스스로 물러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를 다시 써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해프닝´이라고도 하고, 어느 사설에서는 경영을 잘못해 물러날 수밖에 없던 사람이 국민의 부담으로 회사가 살아나니까 다시 복귀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꼬집기도 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기업주가 물러남으로써 그 기업의 전반적인 경영 상태가 호전되었거나, 적어도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라면, 이 시점에서 그가 다시 경영에 관여한다는 것이 용인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최원석이 다시 맡아보겠다는 회사는 국민의 부담으로 다시 살아난 회사가 아니라 아직도 회생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어느 길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자칫하면 그야말로 국민에 엄청난 부담이 될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는, 시름시름 앓고 있는 회사입니다. 최회장 개인적으로 볼 때는 선친께서 해방과 함께 창업한, 그리고 본인이 이어받아 20년 넘게 키워오면서 반평생을 자기자신과 동일시해온 그 동아입니다.
뿌리깊은 부실경영이나 감춰온 부정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IMF를 맞아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남의 손에 맡겨놓고 나왔는데, 그동안 경영상태가 더욱 악화된 동아를 빤히 보며 이제 최원석이가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한번 뛰어 볼 기회를 달라는 것이 그렇게도 용납될 수 없는 만용인 것인지, 그렇다면 지금도 무심히 그저 누군가 다크호스가 나타나 동아를 구원해주기만을 구경하는 것이 그나마 체면을 지키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또한 동아의 직원들에게는 그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만약 최회장이 경영주로서 부도덕했기에 밀려난 기업인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최회장의 복귀를 막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동아 회생 방향에 있어서, 직원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 또한 무시되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가 판단을 잘 하지 못해 당장 수익이 되지 않는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하고, 그로 인해 기업이 위기에 봉착해 구제금융을 얻게된 것은 결국 국민에게 손실을 끼치는 것이며, 어떠한 변명으로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잘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손실을 보상할 그 무엇이 있다면 일단은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욱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최원석 본인이 시작을 해놓은 사업이니만큼, 제대로 마무리를 해 우리 나라 건설업의 명예를 확고히 해야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아는 하루라도 빨리 워크아웃을 벗어나 국가경제의 부담을 덜고, 가능한 한 많은 해외 수주를 통해 국가에 보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누가 가장 필요한 사람인가는 해당기관에서 엄정히 판단할 몫이며, 최 회장으로선 본인이 선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판단결과를 존중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다만, 동아와 관련해 본능적인 책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최 회장인데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무언가 자신의 역할을 찾아보려는 그 시도 자체가 비하되는 것에 대해선 안타까움 마음을 금할 수 없어 부족한 소견이나마 이렇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얼마전 장충동 집 앞에 일부 동아 직원들이 찾아와 ´최 회장은 다시 경영에 복귀해 동아를 살려내라´는 시위가 있었을 때, 최회장이 눈물을 훔치며 했던 말을 옮겨 적어봅니다. "당장 먹을 양식이 떨어져 자식이라도 굶겨 죽이지 않으려고 부잣집 대문 앞에 두고 왔는데, 그 자식이 영양실조가 나타난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다."
비록 훌륭하다고 칭찬 받는 부모가 못 될지라도 제가 낳아놓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선 그 부모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래도 최회장만큼 동아를 사랑하고 그 운명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게 됩니다. 그 마음과 20여 년 동안 쌓아온 그의 노하우가 미력하나마 거름이 되어 다시금 건강해지고, 이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글을 읽는 분들의 작은 이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