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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2:1-5
2024년6월2일 주일 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요한계시록 22:1-5 KOERV(쉬운성경)
[1] 그러고 나서 그 천사가 수정처럼 맑은 생명의 물이 흐르는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나와,
[2] 도성의 큰길 한가운데를 흘러 내렸습니다. 강의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의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냅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잎들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21장의 내용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1 KOERV
[1] 그때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째 하늘과 첫째 땅은 지나가 버렸고, 바다도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5:18 KOERV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기까지 율법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의
글자 하나 점 하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 까지 율법은 그대로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 즉 하나님 말씀, 혹은 모세 오경이 온전하고 계속 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사라지기까지"라는 말씀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내려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지
여부는 알기 어렵습니다.
요한계시록 21:2 KOERV
[2] 나는 거룩한 도성, 곧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남편을 맞으려는 신부처럼 아름답게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신부"는 교회를 말합니다.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몸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한몸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과 교회는 하나입니다.
신부는 "새예루살렘" 즉 교회입니다.
(계 21:2, David E. Aune, Revelation, Thomas Nelson, 1998, 1121).
반론도 있습니다.
즉 "새예루살렘"은 성도들이 유업으로 받아서 사는 도시라는 견해입니다.
새예루살렘을 신부 즉 교회로 보는 견해나 그 반론도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새예루살렘은 성전이 없고 하나님과 어린양과 교회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새예루살렘은 이 땅의 도시와 전혀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간다 하셨습니다.
천국의 삶은 이 땅의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삶과 다른 것입니다.
천국, 즉 새예루살렘은 해와 달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밤이 없습니다.
도시의 문을 닫을 필요도 없습니다.
죄가 없고 거룩한 자들, 택함받은 자들만 모여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새예루살렘에 밤이 없다는 것은 이 땅에서 일반적으로 낮에 활동하고 밤에 수면을 취하는 삶의 방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과 그 영역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알기 어렵습니다.
새하늘과 새땅 속에 새예루살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예루살렘"은 신부 혹은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계시록 21장을 보면 "새예루살렘"은 도시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개념이 이땅의 방식과 다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기 어렵습니다.
밤이 없다 했습니다.
해와 달이 필요없다 했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비춘다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시집가고 장가가지 아니한다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3 KOERV
[3] 그리고 나는 보좌에서 나는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사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 공식"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과 함께 거하십니다(David E. Aune, 1123).
요한계시록 21:22, 27 KOERV
[22] 나는 그 도성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7]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끄러운 짓을 하거나 속이는 사람도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자기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올라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들어갑니다.
즉 구원받은 사람만 새예루살렘 백성입니다.
새예루살렘은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16 KOERV
[16] 여러분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가운데 살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곧 하나님과 어린양과 구원받은 백성이 성전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택함받은 백성이 하나입니다.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1-2 KOERV
[1] 그러고 나서 그 천사가 수정처럼 맑은 생명의 물이 흐르는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나와,
[2] 도성의 큰길 한가운데를 흘러 내렸습니다. 강의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의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냅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잎들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인간, 식물, 동물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물과 공기는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 요소 입니다.
천국, 새예루살렘에도 물이 중요한 요소로 묘사됩니다.
요한계시록 21:6 KOERV(쉬운성경)
[6]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 이루어졌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에서
나는 물을 거저 주어 마시게 하겠다."
영혼이 죄로 인해 갈급해진 자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만족을 구하는 자들이, 천국 백성입니다(참조 시편 42:1-2; 이사야 55:1-2;
요한복음 7:37-38; 계 21:6, Mac 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1971).
시편 42:1-2 KOERV(쉬운성경)
[1] 오, 하나님 사슴이 애타게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내 영혼이 당신을 애타게 찾습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리워 목이 탑니다. 언제나 내가 가서 주를 뵐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시입니다.
요한복음 7:37-39 KOERV
[37] 명절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날은 명절 가운데 가장 큰 날이었다. 이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모두 나에게 와서 마셔라.
[38]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 성경 말씀대로 생명의 물이 흐르는 강이 그 사람 속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나중에 받게 될 성령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아직 돌아가시지 않아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그때까지는 성령이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의 물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4:13-14 KOERV
[1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모두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결코 목마르지 않는 물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영적인 물이 성령입니다(계 21:6, Mac 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1971).
그런데 성령은 인격체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물로 비유하신 것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물처럼 흐르거나 바람처럼 사람 눈에 보이지 않게 일하십니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나무 잎이나 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열매를 보고 아는 것입니다.
말투가 겸손하고 긍정적으로 변하거나,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삶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1절(계 22장)에서 말하는 생명수의 강은 땅 위의 강처럼 물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강이 아닙니다(계 22:1, Mac 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1973).
땅의 강은 흘러서 바다로 가고 증발하여 하늘 구름이 되고, 비가 내리면 강물로 흐릅니다.
그러나 새예루살렘, 천국의 생명수 강은 그런 땅의 물의 순환과 같지 않습니다.
생명수는 하나님 보좌에서 하늘 거주자들, 즉 천국 백성에게
영원한 생명이 지속적으로 흐르는 것을 상징화 하는 것입니다(계 22:1, Mac 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973).
이 말씀(계 22:1-2)은 스가랴 14:8과 에스겔 47장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보았습니다(스가랴 14:8).
스가랴서 14:8 KOERV(쉬운성경)
[8] 그 날 예루살렘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나올 것이다. 그 물의 반은 동쪽의 사해로 흘러가고 나머지 반은 서쪽의 지중해로 흘러갈 것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 에스겔은 그 성전에서 흘러나와서 사해로 내려가는 한 강을 보았습니다.
그 강이 흐를수록 더 깊어져서 물이 닿는 모든 곳에 생명을 일으켰습니다(에스겔 47).
에스겔서 47:1-9 KOERV
[1] 그 사람이 나를 다시 성전 문어귀로 데려갔다. 성전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동쪽으로 난 성전 문턱 아래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물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남쪽으로 돌아서 제단 남쪽으로 지나갔다.
[2] 그는 나를 데리고 북문을 지나서 바깥으로 나와, 담을 돌아서 동문에 이르렀다. 물이 동문의 오른쪽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줄자를 손에 들고 동쪽으로 재면서 갔다. 그는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자 나를 데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발목에까지
올라왔다.
[4] 그가 다시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자 나를 데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무릎에까지 올라왔다. 그가 다시 재어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를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물이 허리에까지 올라왔다.
[5] 그가 다시 천 자를 쟀다. 그러나 이제 물은 강을 이루어 나는 건널 수가 없었다. 물이 너무 깊어서 헤엄을 쳐서 건널 정도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걸어서는 건널 수가 없었다.
[6] 그 사람이 내게 말하였다. “사람의 아들아, 이것을 보았느냐?” 그리고 나서 그가 나를 데리고 강둑으로 올라왔다.
[7] 강둑에 올라서서 보니 강의 양쪽에 엄청나게 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8]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이 물은 동쪽 지역을 향해 흐르다가 아라바로 내려간다. 그리고 거기서 사해로 들어간다. 이 물이 사해로
들어가면 사해의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9] 이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든지 그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살아 우글거릴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사해의 소금물도 단물이
되어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이 강이 흐르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살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이 보는 환상 속에서 스가랴나 에스겔이 본 환상, 즉 계시가 성취되었습니다(Leon Morris, Revelation, IVP,
1984, 255).
생수가 왜 예루살렘에서 흘러 나옵니까.
생수가 왜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기 시작합니까.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계십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과 성전은 그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스가랴나 에스겔이 본 생수의 환상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예루살렘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새예루살렘은 하늘의 어느 장소이거나 이 땅이 갱신되어서, 즉 새롭게 되어서, 새예루살렘으로 변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하늘이든 땅이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새예루살렘이 이루어질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처음 하늘과 땅과 바다가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씀합니다.
창 세 기 2:8-14 KOERV
[8] 하나님께서 동방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꾸미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곳에 두셨다.
[9]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온갖 종류의 나무가 자라게 하셨다. 눈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0] 에덴에서 강이 흘러 나와 그 동산을
적셨다. 그리고 그 강은 네 개의 작은 강줄기로 나뉘었다.
[11]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이다. 이 강은 하윌라의 온 땅을 두루 돌며 흘렀다.
[12] (그 땅에서는 질이 좋은 금과 브돌라와 오닉스가 나왔다.)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다. 그 강은 구스의 온 땅을 적시며 흐르는 강이다.
[14]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이다. 그 강은 앗시리아의 동쪽 끝을 따라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의 이름은 유프라테스이다.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온다 했는데, 구체적으로 에덴의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와서 그 동산을 적셨다는 표현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에덴의 강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헐몬 산에서 물이 발원한다 할 때 헐몬산 어느곳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혹은 지리산에서 물길이 시작된다 할 때 지리산 어디라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굳이 에덴 동산의 물의 발원지를 말한다면 동산 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ㄹ
그런데 1절(계시록 22)에서 강은 "하나님과 어린 양" 보좌에서 흘러나온다 했습니다.
구약 시대는 성막, 성전, 예루살렘이 예배에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예수님 자신과 성도가 성전입니다.
교회는 믿는 자의 무리입니다.
몸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2:19 KOERV
[1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무너뜨려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겠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가리켜 성전이라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2, 22 KOERV
[2] 나는 거룩한 도성, 곧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남편을 맞으려는 신부처럼 아름답게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22] 나는 그 도성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도성, 새예루살렘에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2 KOERV
[2] 도성의 큰길 한가운데를 흘러 내렸습니다. 강의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의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냅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잎들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성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성 즉 새예루살렘 한가운데를 흐릅니다.
새예루살렘을 신부 즉 교회로 보면 교회 성도들 가운데 물이 흐르듯 성령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힙니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 지식 나무 열매를 제외한 각종 과일을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 지식 열매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출산의 고통과 노동의 수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새예루살렘에서 노동의 수고 없이 풍성한 열매를 먹을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의 회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새예루살렘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풍성하게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생명 나무 잎은 만국을 치유하는 치료제로 쓰입니다.
새예루살렘은 죄없는 자만 들어가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만국을 치료하는 치료제로 생명나무 잎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천국 백성이 사는데 있어서 생명나무 열매와 잎은 어떤 긍정적 기능을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계 22:3] 그곳에 더 이상 저주라고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도성 안에 있고,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새예루살렘은 저주가 없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저주 혹은 죽음의 저주입니다.
지금 현재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가자, 그리고 지구상 어디선가 전쟁과 싸움과 범죄와 사건과사고와 재해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칩니다.
그러나 새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어린 양 보좌가 있고 악과 전쟁과 죽음을 제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 함께 그의 백성과 사는 새예루살렘은 저주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즉 하나님의 백성이 새예루살렘에 거하면서 하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즉 예배와 찬양 등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할 때 예배와 찬양이 주가 되지만, 그외 어떤 방식으로 섬기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4] 그들은 그분의 얼굴을 뵐 것이고,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땅 위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현재도 없습니다.
땅에서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
그러나 새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종들 즉 백성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46 KOERV
[46] 이 말은 어느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이만이 아버지를 보았다.
하나님께로 부터 온 이, 즉 예수님만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새예루살렘은 모든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사는 것입니다.
[5] 그곳에 다시는 밤이 없을 것이고, 사람들은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새예루살렘은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밤이 없습니다.
밤이 없다고 하니 잠은 언제 자는지 걱정할 수 있습니다.
새하늘 새땅의 삶은 이 땅의 삶의 방식과 무엇인가 다르게 이어질 것입니다.
시집도 아니가고 장가도 아니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육체적 즐거움을 넘어서는 더욱더 지극히 기쁘고 즐겁고 거룩한 삶이 새하늘 새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다스리는 대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하늘 새땅의 삶은 지루할 틈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다스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21 KOERV
[21] ‘보라, 하나님 나라가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맏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는 신자는 분명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천국 백성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주어진 자리를 성실하게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