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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들이
박 완 서
남편이 구두끈을 매는 동안 나는 그의 양복의 먼지라도 좀 터는 척한다. 그가 댓돌을 내려 불과 이 미터 상거의 대문을 밀고 문 밖에 나서면, 다녀오세요. 응.
나는 급히 대문을 팔꿈치로 밀어 닫고 대문에 기댄 채, 심호흡을 한다. 댓돌에서 대문까지 이 미터, 아니 넉넉잡아 삼 미터 쯤―. 아침시간의 그사이가 얼마나 긴지 나밖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등을 대문에 기댄 채 그 동안을 잘 견딘 나를 무척이나 대견해한다.
이제 나는 남편이 넓은 정원이라도 가로지르듯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유유히 가로지른 이 미터를 단 두 걸음에 건너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 미터만 건너뛰면 부엌이고, 찬장 속 진간장병 뒤에 참기름병 뒤에, 다시 깨소금 항아리 뒤에 가장 어둡고 으슥한 곳에 숨어 있는 그 매혹적인 병을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겨우 이제야 혼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는 언제라도 그렇게 할 수 있겠기에 그 병에 대한 갈증이 남편의 출근 오 분 전만큼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달 수도 있고, 그렇게 하기까지는 내가 견딜 수 있는 최대한까지는 견뎌봐얄 게 아니냐는 교활한 속셈이 있다.
나는 내 병, 그 은밀하고 어둑한 처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병에 짐짓 냉담한 척한다.
우선 아주 신나게 집 안을 털고 쓸고 훔친다. 통틀어 열한 평의 한옥은 광이나 부엌 등을 빼면 훔치고 닦아야 할 곳은 불과 예닐곱 평이나 될까? 나는 너무 빨리 그 일을 끝마치고 만다.
다시 그 새침하도록 싸늘하고 고혹적인 병을 향해 내 전신은 온통 곤충의 촉각처럼 예민해진다.
도저히 더 오래 ‘그 일’ 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다금한 채로 나는 내 열한 평 중에서 그래도 부엌에서 먼 곳만을 허둥지둥 맴돌다가 몇 가지 빨랫거리를 찾아낸다. 지금 당장은 그거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빨랫거리는 너무 적다. 나는 집 안 청소보다 더 빨리 그 일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세 아들의 것, 모두 네 켤레의 양말과 네 장의 손수건을 빤다.
남편은 아주 조금—, 겨우 우리 식구를 굶기지 않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큼 조금밖에 돈을 못 번다. 그리고 나에게 아주 조금밖에 일을 주지 않는다. 그는 좀처럼 말이 없고 어떤 근심이나 기쁨도 얼굴 살갗에 드러낸 적이 없을뿐더러 늘 점퍼 차림인 그는 여간해서 내복조차 갈아입으려 들지 않는다. 아침에 내가 양말이라도 빨 수 있는 건 그가 양말만은 벗고 자니까 슬쩍 빤 양말과 바꿔놓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나마의 일거리도 놓치고 만다.
자식들도 아버지를 닮아 별로 말이 없고 내 보살핌을 아주 조금밖에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식들처럼 빨리 어른이 돼버린 아이들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들이 어른이 된 날을 지금도 생생한 노여움을 갖고 기억할 수 있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내가 만든 귀여운 옷을 입히는 걸 큰 낙으르 삼았고, 아이들 옷을 재단하고 꿰매는 데 비상한 기쁨을 느꼈었다. 그런데 별안간 어느 날 내 아들은 그런 옷 입기를 거부한 것이다.
글쎄 그 탱크와 로켓이 아플리케된 깜찍한 주홍색 우단 재킷을 한사코 마다하고 “내가 뭐 어린앤 줄 알아요. 창피하게스리……” 여남은 살밖에 안 된 녀석이 이렇게 나를 핀잔주고 볼품없는 교복만 입다가 어느 틈에 집에서는 아버지의 헌옷을 걸칠 수 있을 만큼 자라버린 것이다. 더욱 분한 것은 내가 만든 옷을 거부할 임시부터, 그러니까 여남은 살부터 자식들은 내 보살핌까지 멀리하려 들더니 어느 틈에 패류(貝類)처럼 단단하고 철저하게 자기 처소를 마련하고 아무도 들이려 들지 않는 것이다.
나에겐 패류의 문을 열 불가사리의 촉수 같은 악착같고 지혜로운 촉수가 없다. 나에겐 또한 남편이나 자식들의 것 같은 스스로를 위한 패각(貝殼)도 없다. 도저히 그들이 나에게 후하게 베푼 무위와 나태로부터 나를 지킬 도리가 없다.
일 년에 한두 번쯤 상경하는 시골의 시어머니가 그 샐쭉한 실눈으로 나를 흘겨보며
“쯧쯧, 어떤 년은 저리도 사주팔자를 잘 타고났노. 시골년이 금시발복을 해도 분수가 있지. 서방하고 잠자리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도 밥이 주러운가 의복이 주러운가…….”
나는 이 소리가 미칠 듯이 징그러울 뿐 추호의 이의도 없다. 팔자가 좋다는 건 얼마나 구원이 없는 암담한 늪일까?
순식간에 네 켤레의 양말과 네 장의 손수건을 헹구어 넌 나는 인제 정말 할 일이 없다 ― 무슨 생각이라도 좀 해야지 ― 나는 이미 내 무수한 촉각이 그 향기로운 병에 깊숙이 탐닉해 있음을 의식하면서도 괜히 좀 그래본다.
실상 생각할 거리란 일거리보다 더 아쉽다. 우선 저녁반찬을 뭘로 할까 궁리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김치와 두부찌개, 아침엔 콩나물국. 남편의 수입은 꼭 그 정도의 식단을 허용하고 가족의 식성 또한 내가 콩나물찌개나 두부국을 끓이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근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정말이지 조금도 없는 것이다.
때로는 남편의 수입이 조금 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그것으로 생활의 어떤 변화를 기도할 필요는 없다. 꼭 그만큼, 신통하게도 꼭 그만큼 아이들의 납입금이 오르거나 쌀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주 드물지만 때로는 남편에게도 공돈이 좀 생기나보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드물지만 때로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시골에서 아쉬운 편지가 오게 마련이다.
정말로, 어쩌면 정말로 나는 아무 근심이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만으로 의식이 충족한 팔자 좋은 년인 것이다.
꼭 갈퀴 같은 손에 갈퀴같이 꼬부라진 성품을 지닌 시어머니가 할퀴듯이 한 말이 아무리 몸서리쳐져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소금장수 아줌마가 소금을 사란다. 나는 살까 말까를 망설일 필요가 없다. 몇 해째 단골인 그녀는 꼭 소금 항아리가 빌 때쯤 오게 마련이었으니까.
그녀는 빈 소금 항아리에 소금을 부으며 과부살이 설움을 주섬주섬 털어놓는다.
“애 넷을 이 짓을 해서 먹여 살리려니…… 먹기만 하면야……. 국민학교까진 안 가르칠 수도 없…….”
그녀의 왁자지껄한 사설이 길어질수록 나는 뭔가 견딜 수 없다. 산더미 같은 근심과 일거리로 그녀는 괭팽히 충만해 있고 나는 그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참담한 내 빈핍(貧乏)을 자각한다.
팔자 좋은 년, 팔자 좋은 년 ― 시어머니의 말을 주문처럼 외워 봐도 무서운 빈핍의식이 악몽처럼 덮쳐오고 머릿속에 둔한 두통이 매연처럼 서린다.
다시 찬장 속 첩첩이 늘어선 병들, 맨 뒤에 있는 수줍디수줍은 날씬한 내 병으로부터의 유혹으로 나는 미칠 듯이 다급해진다.
어서 가달라고 악을 쓰려다 말고 아직도 돈을 치르지 않았음을 겨우 깨닫는다. 돈을 받아 앞치마 전면을 차지한 큰 주머니에 쑤셔넣은 그녀는 남편보다 훨씬 느리게 댓돌에서 대문까지의 이 미터를 걸어 나간다.
그 동안을 견디는 내 인내력은 참 아슬아슬하다.
매연이 꽉 찬 듯한 두통이 점점 심해오고 어쩔 수 없는 갈증과 죄의식이 집요하게 엉겨붙는다. 나는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 양으로 내 갈증에 마지막 저항을 해본다.
부엌으로 가지 않고 마루에 다시 앉는다.
무명폭처럼 좁은 하늘이 낮게 우리집 추녀와 앞집 추녀 사이를 걸치고 있다. 꼭 푸른 차일을 친 것처럼. 나는 그 푸른 차일이 마치 높고 넓은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듯하여 여간 답답하지가 않다.
집과 집 사이에 담장도 없이 겨우 무명폭만한 하늘을 뚫어놓고, 앞집이 우리집 가슴팍을 누르고 있대서 짜증을 낼 처지도 못 된다. 내 집이 바로 뒷집 가슴팍을 그렇게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긴 골목의 집들은 서로가 서로를 누르고 짓궂게 다붙어서 꼭 무명폭만한 하늘을 나누어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앞집 벽은 너무도 가깝고 밉다.
내 집 벽이 뒷집에 가깝고 밉다는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위로 받을 수 없을 만큼 앞집 벽에 대한 혐오감은 절박하다.
17인치 텔레비전만한 부우연 유리창이 딱 하나 달린, 찌든 홑이불을 펴 넌 것 같은 벽에는 군데군데 손바닥만하게, 럭비공만하게, 풀어놓은 넥타이만하게 시멘트로 땜질한 자국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칠이 떨어진 사이로 진흙덩이와 썩은 수수깡이 보이던 것을 집수리 한답시고 그렇게 발라놓은 것이다.
도대체 이 추악한 벽화는 어쩌자고 이렇게 가까운 것일까? 모든 시계(視界)와 사념(思念)까지도 막아놓고 있다.
점점 심해오는 두통도 저 벽화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머릿속에 찬 매연과 추악과 벽화를 한꺼번에 몰아낼 듯이 심한 도리질을 해본다. 그러나 그 미운 벽화는 나를 향해 가차없이 포위 망을 축소해오고 있다.
나는 문득 이 숨막히는 포위망으로부터의 단 하나의 출구를 안다. 아니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비실비실 도망친다. 부엌 쪽으로. 출구는 그곳이다. 찬장을 연다. 손이 경련하듯 떨린다. 이미 죄의식은 없다. 그냥 절박하다. 어쩔 수 없다. 맨 뒤에 있다. 어쩌자고 그렇게 구석진 곳에 있담. 다시 한번 초조로 손이 떨린다. 부들부들. 퍼뜩 두려워 진다. 중독? 생전의 시아버지의 수전증이 생각난다. 그러나 곧 안심할 수 있는 구실이 떠오른다.
어떤 주도(酒道)에 통달한 저명인사가 심야방송에서 그랬겠다. 양주는 섞어서 마셔야 별미지만, 국산주는 섞어서 마시면 몸에 해롭고, 양주는 계속해 마시면 알코올 중독의 염려가 있지만, 국산주는 아무리 계속해 마셔도 중독의 염려가 없다고. 나는 그 소리가 썩 마음에 들었고, 남편보다 백 배는 더 잘났음직한 저명 인사가 사담도 아니고 방송을 통해 한 말이니 얼마나 권위가 있냔 말이다.
내 두려움에서 안심까지는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물론 시골에서만 살다가 돌아간 시아버지가 양주를 맛은커녕 구경이라도 했을 리 만무건만 나는 그 대목은 살짝 뻬먹는다. 나는 그렇게 다급하다.
날씬한 병 모가지는 손아귀에 들어오기에 맞춤하고 새침하도록 차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차디찬 이 병이 내 육신과 얼마나 뜨거운 교합을 할 것인가를.
병을 들어낸다. 병 속의 투명한 액체,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도 귀한 증류수 ―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병마개를 따고 독한 소주를 꿀같이 빤다.
소주는 향그럽고 뜨겁다. 나는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즐긴다. 혀를 아프게 찌르고 목구멍을 화끈하도록 뜨겁게 지나간다. 목구멍을 지나간 열기가 아침을 뜨지 않은 빈속에서 활활 화려한 불꽃처럼 탄다. 또 한 모금, 또 한 모금, 천천히, 조금씩. 이 음료는 좀 거만하다. 결코 한 방울도 헤프게 목구멍을 통과하는 법이 없다. 한 방울 한 방울이 지닌 밀도 높은 자극을 충분히 받아들이게끔 조금씩 넘어가면서도 식도를 그득히 채운다.
드디어 내가 어제 장바구니 속에 몰래 숨겨가지고 온 소주병은 말끔히 비고 이제 병은 병일 따롬 아무런 매력도 없다.
나는 지금 잘 핀 연탄을 뱃속 그득히 안은 난로처럼 뜨겁고 행복하다.
다시 마루에 앉는다. 이제 하늘은 결코 차일일 수 없다는 듯이 코발트빛으로 높푸르다. 산다는 게 조금씩 즐겁다.
하늘뿐일까? 앞집 벽의 그 미운 암회색의 반점들이 화선지에 떨어뜨린 먹물처럼 부드럽고 우아하게 번진다.
나는 마당을 거닐어본다. 남편과 소금장수처럼 그렇게 천천히, 잘 다듬어진 잔디밭 사이의 디딤돌을 딛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보조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착실하다.
모든 것이 괜찮은 것이다. 여편네가 남편 몰래, 남편은 벌써 십여 년 전에 패가망신의 근원이라고 단호히 끊은 술을 매일 마시는 일이 별로 엄청난 일도 아닌 것이다.
답답하던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탁 트이고 두통까지도 투명해진다. 나는 내 뇌세포를 말끔히 투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아름답고도 스릴 있는 환상이었다. 내 뇌세포는 정밀한 기계 속처럼 섬세하고 경도 높은 금속처럼 빛나건만 어딘지 도괴 직전의 고층건물처럼 위태롭다.
그러나 위기의식은 추호도 없다. 나는 짓궂은 구경꾼처럼 그 도괴 직전이 재미있다. 나는 지금 당장 내 옷소매에 불이 붙는대도 구경꾼일 수 있을 것 같다.
술! 고마운 것. 나는 마침내 자유로운 것이다.
대문을 흔드는 소리가 난다. 큰아들이었다.
“웬일이냐? 벌써 오게.”
“시험이에요.”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퉁명스럽다.
“너희 학교는 매일 시험만 보니?”
그는 자기 방에 들어서자마자 귀찮다는 듯이 미닫이 먼저 닫으려는 것을 나는 못 닫게 가로막으며 시비를 건다.
“시험은 오늘부터예요.”
"그래도 넌 일 년 열두 달 시험공부만 하던걸.”
“고3 아녜요. 그렇게 해도 대학엔 붙을까 말까란 말예요.”
“저런 가엾어라. 쯧쯧 가엾은 것.”
나는 이 패류처럼 단단한 녀석을 가엾어할 수 있는 게 마냥 유쾌하다. 아들은 못마땅한 듯 눈을 모로 세우더니
“재수 없는 소리 마세요. 누가 입시에 떨어지기라도 했단 말예요. 가엾게.”
그가 다시 미닫이를 거칠게 미는 순간 나는 툇마루에 앉은 채 재빨리 상반신을 방 안으fh 들이민다. 내 골통과 미닫이가 부딪쳐서 좀 요란한 소리를 내니까 아들놈도 머쓱해진다.
침침한 평 반짜리 방에는 한쪽 벽이 온통 책이다.
숱한 참고서들 ― 『완전영어』 『완벽수학』 『정선 ××』 『정통××』. 저런 것들을 아무리 포식해봤댔자 네놈은 패류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을 게다. 나는 패각 속의 그 완전하고 완벽하고 정선된 세계가 조금도 대수롭지 않다. 도리어 빈정거려주고 싶게 가소롭다.
“너는 여자친구도 없니?”
“고3 이래두요.”
녀석은 목소리를 드높였으나 격앙하지는 않고 느릿느릿……, 마치 ‘짐은 국가다’ 라는 제왕의 목소리처럼 거룩하고 비장하다.
“좋은 때다. 흐흐흐…….”
나에겐 고3이 조금도 거룩하지 않을뿐더러 녀석의 여드름 자국은, 여드름 난 패류는 참 꼴불견이란 생각으로 백치처럼 즐겁기만 하다.
히들히들 웃고 있는 나를 노려보던 아들은 시선을 딴 데로 비끼며 입 맛을 다신다.
“참, 딱도 하슈.”
아들은 고3 의 그 존대무비(尊大無比)한 값어치도 모르는 어미가 딱하고, 나는 고3과 여드름과 완전, 완벽, 정선이 딱하다. 우리 모자는 한동안 서로를 딱해 한다.
녀석과 나는 딱해하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녀석은 양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고 숨결까지 거친데 나는 여전히 히들히들 턱뼈가 물러난 듯이 헤프게 웃음만 흘렸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닮은 감정 속에 있었다. 딱하다는 애매한 느낌 밑에 짙은 미움을 앙금처럼 가라앉히고 있었다.
드디어 아들의 왁살스런 손이 내 상반신을 거칠게 떠밀어 문 밖으로 내쫓으며
“나가줘요. 제발 나 좀 혼자 있게 내버려둬줘요. 시험이란 말예요, 시험.”
미닫이가 짝 하고 금속성인 소리를 내며 닫히고, 불의에 떠밀린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해 툇마루 밑으로 동그라진다.
꽤 몹시 엉 덩방아를 찧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
거부 ― 완강한 거부, 딱해하는 것조차 거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흥, 하고 콧방귀라도 뀔 것 같다. 아들이나 남편의 굳게 닫힌 거부의 미닫이 앞에서 행여나 안을 엿볼 수 있을까 치사하도록 서성대는 일은 다시 없을 것 같다.
한참 만에 툇마루를 잡고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휘청하며 시야가 크게 출렁 였다. 나는 다시 히들히들 웃음을 흘렸다.
― 나가줘요, 제발―
그 소리는 귀에 싱그러울뿐더러 퍽 암시적이다.
성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 출렁이는 풍경에 풍성한 웃음을 보낼까보다. 아스팔트도 내 발 밑에서는 고무공처럼 탄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고무공을 밟듯이 출렁출렁 공중을 날듯이 훨훨 어디든지 나가보고 싶다.
팔천원짜리 캐비닛과 그 속에 담긴 몇 가지의 폴리에스테르 섬유와 스테인리스 식기와 양은솥 나부랭이와 『완전 × ×』 『완벽× ×』 『정선× ×』의 책들을 온종일 지켜야 하는 일을 아들에게 살짝 떠맡기고 나가는 것이다.
만약 아들이 자기가 그 일을 맡게 될 것을 눈치챈다면 당장 맨발로 뛰어나와 그 일만은, 그 끔찍스러운 일만은 제발 면해달라고, 나가달란 것은 문 밖이지 결코 집 밖이 아니었으니 노여움을 푸시고 그 일에서만은 구해달라고 싹싹 빌 것임에 틀림 없다.
절대로, 그렇고말고, 절대로, 아들에게 빌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서둘러서 옷을 갈아입었다.
재작년, 막내동서를 볼 때 입으려고 장만해놨더니 남편이 무늬와 빛깔이 너무 요란스럽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바람에 못 입고 넣어두었던 것을 꺼내 입 었다.
지지미라든가 뭐라든가 대접만한 분홍꽃이 흐드러지게 핀 옷에다 흰 버선을 신고 비닐백을 드니 파티에라도 초대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파티에선 칵테일을 마신다던가, 서양술끼리 섞은 것을. 그런 건 마시지 말아야지. 서양술은 섞어서 마셔야 별미라지만 중독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춤만 춰야지. 그리고 내가 아는 아주 친한 몇몇 사람에게만 살짝 가르쳐줘야지. 뭐니뭐니 해도 술만은 국산술이라야 한다고, 국산술은 알코올 중독의 염려가 절대로 없으니까라고.
대문을 소리 안 나게 살짝 열고 문 밖으로 나섰다. 이제 열한 평의 파수꾼은 내가 아니라 아들녀석 이었다.
쾌재의 웃음이 흐들흐들 흘렀다. 골목에서 큰길로, 큰길에서 한길로, 번화가로, 나는 자꾸 파티에 가고 있었다.
내 파트너가 될 행운의 신사에게 속삭여줄 칵테일과 소주의 비밀을 되뇌며, 출렁이는 하늘과 고층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고무공 같은 아스팔트의 탄력을 즐기며, 나는 서둘지 않고 마냥 파티에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흘끔흘끔 또는 빠안히 나의 대접만한 꽃무늬의 성장을 선망하고, 나는 그들에게 풍성한 웃음을 나누었다.
나는 너무 많이 걸었다. 문득 차를 타보고 싶었다. 합승의 아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한낮의 합승에는 승객이 꼭 좌석 수만큼이고, 좌석은 안락하고 천장에서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rk〉가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창 밖에는 저만큼 밑에, 매끄러운 승용차와 색색의 택시가 내 웅장한 합승을 옹위하고, 낙엽 지는 가로수, 고궁의 담, 비둘기가 있는 광장, 처음 보는 동상 또 동상, 국화꽃 화환이 받쳐진 또 동상이 아름다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나는 어느 틈에 〈서울의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본래 소심한데다가 음치여서 노래를 소리내어 불러보기란 처음인데 썩 잘 부른다고 여겨졌다.
나는 점점 소리를 드높였다. 천장의 노래는 자꾸 바뀌고 나는 무슨 노래든지 척척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창 밖의 풍경이 출렁이고, 치마저고리의 대접만한 꽃송이가 출렁이고, 내 내부에서는 홍겨움이 출렁이고, 또 정교하고 심세한 뇌세포가 바로 도괴 직전처럼 아슬아슬하게 출렁이고, 나는 이 모든 출렁 이는 것들의 신나는 구경꾼이었다.
나는 구경과 노래에 싫증이 나면 옆자리의 신사의 어깨에서 포마드 냄새를 맡으며 깜박깜박 오수를 즐길 수도 있었다. 차가 멎으면 신사는 일어나서 내리지 않고 딴 자리로 가고, 내 옆자리엔 새로 탄 신사가 와 앉고, 내 옆자리의 신사는 빈번히 갈리고, 나는 오래오래 내 편안한 자리에서 노래와 구경과 오수를 번갈았다.
어떤 고층건물의 어두운 입구에 K여사의 개인전 입간판이 보였다. 불현듯 나는 K여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마 K여사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버스는 그 어두운 입구를 훨씬 지나서야 멎었다. 나는 차에서 뛰어내려 그 건물 쪽으로 바삐 걸었다. 이런 곳에서 아는 사람을, 그것도 K여사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즐겁고도 다급했다. 그 여자의 길고 거무튀튀한, 촌스럽지만 순박한 얼굴이 눈에 선하다.
드디어 숨 가쁘게 그 입구까지 왔을 즈음, 앞에서 기운차게 걸어오던 청년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힘없이 몸의 중심을 잃고 뒤쪽으로 곤두박질치며 겨우 빌딩 입구의 대리석 기둥을 껴안고 나동그라지는 것만을 면했다.
나는 차고 매끄러운 대리석 기둥을 껴안은 채, 붉은 카펫이 깔린 전시장 속을, 성황을 이룬 관람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리석 기둥은 몹시 찼다. 뼛속까지 시려왔다.
뼈가 시리니까 K여사가 내 친구가 아니 었음이, 실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음이 차츰 분명해진다.
언젠가 딱 한 번 그녀가 쓴 「자화상」이란 글을 읽어본 적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그 글에서 자기 얼굴을 꼭 시든 가지 같다고 묘사했었다.
나는 그전부터 기미가 군데군데 끼고 촌티를 못 벗은 채 노랗게 찌들어버린 내 얼굴을 언 감자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글에 단박 호감 이상의 동류의식을 느껴왔었다.
그뿐이 었다.
과히 비싸거나 귀하지 않은 가장 서민적인 허드레 야채, 그것도 시들거나 얼어서 버림받은 채 헌 소쿠리 밑에서 뒹구는 가지나 감자의 따분한 신세를 서로 나누고 있다는 오랜 친근감이 보기 좋게 배반당한 것이다. ˙
대리석은 찼다.
나는 K여사가 내 친구가 아닌 것이 자꾸만 무안하고 서러웠다. 전시장 붉은 카펫엔 군데군데 값비싼 화분이 놓이고 성장한 선남선녀들이 자못 정중하게 그러나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 어쩌면 K여사는 그렇게 감쪽같이 나를 기만한 것 일까.
그녀는 시든 가지이기는커녕 화려하고 비옥한 영지(領地)의 영주(領圭)인 것이다. 지금 그녀는 잘 가꾼 광활한 영지에 손님들을 초대하고, 정오의 공작처럼 화사하고 오만할 것이다.
대리석 기둥은 뼈가 시리게 차고, 나는 추위와 전연 식욕을 동반하지 않은 배고픔으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사람들은 드나들 때마다 나를 치고 내 대접만한 꽃무늬 옷을 신기한 듯 아래위로 훑었다.
나는 가까스로 대리석 기둥을 놓고 혼자 걸음을 옮겼다.
스산한 바람에 플라타너스는 칙칙한 낙엽을 보도 위로 힘없이 흘리고, 나는 대접만한 분홍 꽃이 만발한 치마폭을 깃발처럼 날렸다.
마침내 나는 내 속에서 활활 타던 그 화려한 불꽃이 차츰 사위어가고 있음을 의식했다.
분방한 흥겨움의 땔감이 다해가는 초조가 임종의 예감처럼 싸늘하게 등골을 흘렀다.
오피스 가의 오후 ― 어젯밤의 과음으로 아침을 설친 신사가 ‘봉주르’ 니 ‘샹제르’ 니 하는 불란서 풍의 멋진 이름이 붙은 지하 식당에서 어금니에 이쑤시개를 꽂고 땅 위로 솟아오르고, 오십 원짜리 국수를 먹은 아가씨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입술연지를 고치고, 주간지, 또 주간지, 숱한 주간지가 행인에게 추파를 던지고, 실직한 신사가 석간을 기다리는 시각 ― 나는 육교와 지하도, 또 지하도와 육교를 부리나케 오르락내리 락하며,
“썅 더러워서 퉤퉤, 썅 더러워서 퉤퉤.”
끊임 없이 투덜댔다.
사위어가는 불꽃에 검부락지를 던지듯이, 나는 상소리로 내 취기와 체온의 마지막 땔감을 삼고 있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 풍성한 귤 손수레 곁에서 멎어버렸다.
백원에 둘씩인 귤은 나에겐 어마어마한 낭비였으나 귤의 산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참을 수 없을 만큼 다급한 갈증이 왔다. 나는 귤즙과 굴즙이 유발한 타액을 함께 쪽쪽 빨았다.
그러고는 남은 굴껍질을 코에다 대고 깊이 호흡했다. 귤즙보다 더 맛있게 쌉쌀하고 향긋한 껍질의 향기를 탐했다. 치사하도록 오래 탐했다.
실은 나는 귤껍질 나부랭이를 통해 내 생활과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강한 동경을 달래고 있었다.
매캐한 니코틴 냄새를 빼고는 나는 내 남편을 상상할 수 없다. 그는 그 자신 또한 니코틴 냄새 나는 체취를 지녔을 뿐 아니라, 그의 의복 가구 벽지까지 그 매캐한, 사람의 상념을 따분하게 짓누르는 담뱃진 냄새로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심한 오염을 입은 것은 나인 것이다.
나는 남편과의 생활을 굳이 오염이란 말로 오욕시키고 싶은 격렬한 노여움을 남편에게 느꼈다.
일찍 어른이 되어 자기 세계에 칩거한 아들들에게 느끼는 것과 흡사하면서도 한층 격렬한 노여움, 악이라도 쓰고 싶은 뜨거운 격앙이 경련처럼 굽이쳤다.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비옥한 땅의 농촌이었는데도 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멀리 서해 바다를 볼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의 내 소녀 시절은 늘 외톨이였던 것 같다. 홀어머니의 극성으로 분수에 넘치게 마을에서 단 하나의 중학생이 되어 이십 리나 되는 수원까지 걸어서 통학하느라 마을 친구들과 멀어졌고, 졸업하고는 마을에서 단 하나의 중학교 졸업생이기 때문에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홀어머니가 진일 마른일, 온갖 천역(賤役)까지 감내해가며 마련한 학비로 얻은 중학교 졸업장의 쓸모에 대한 깊은 회의와 어머니에 대한 무거운 채무의식으로 잔뜩 위축돼 있었다.
그런데 의외에도 빨리 ― 나에 게는 의외였지만 어머니는 미리 계산하고 있었던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 졸업장은 쓸모가 결정되었다.
서울서 순전히 고학으로 대학까지 나와 중학교 선생 노릇 칠팔 년에 고래둥 같은 기와칩까지 사놓았다는 이 마을 출신으로 가장 눈부신 출세를 한 우물집 둘째아들과의 혼담이 무르익어 갔다.
우물집이라면 영감은 마을에서도 이름난 주정뱅이요, 나를 자기 며느릿감으로 눈독 들인 마나님은 암상스럽고도 쌀쌀맞아 정이 갈 것 같지 않았지만 모실 것도 아니고 신랑만이 문젠데 신랑은 어려서부터 고학으루 대학까지 마치느라 그랬는지 별로 시골집에 다니러 온 적이 없었고, 나이 차이가 십여 년이나 되기 때문에 어릴 적의 기억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었다.
맞선볼 날이 가까워 왔다. 나는 마치 퀴즈대회에라도 출전하려는 듯이 소설가, 시인, 가수, 배우의 이름과 몇몇 명작의 개요까지 외가며 대학 출신 지성과 맞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내일이 맞선보는 날, 나는 계란 팩을 하고 누워 있는데 의외의 전갈이 왔다.
맞선은 보나마나라고, 어머니 마음에 드는 규수라면 정혼해버리라는 편지가 신랑에게서 왔단다. 신랑은 그런 효자란다.
이렇게 쉽사리 정혼이 될 줄은 몰랐다면서 나의 어머니는 춤이라도 출 듯이 기삐하고, 혼기의 동네 처녀들로부터는 왕비에라도 간텍된 듯한 선망과 질시를 받았다.
그날 밤 나는 매캐한 흙냄새 나는 구들장에 엎드려 숨을 죽여가며 오래오래 울었다.
효자 신랑은 암만 해도 싫었다. 하필 신랑이 효자라니…….
그러나 효자 신랑 때문에 훌쩍이면서도 나는 흙냄새와는 이질적인 도회의 훈향, 세련된 향수 냄새 같은 도회의 훈향을 더듬고 있었다. 도회의 훈향은 아득하고도 고혹적이었다.
효자 신랑을 통해서라도 좋으니 그 훈향에 접근하고 싶었다.
혼인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우물집 마나님은 새 며느리를 일 년쯤 자기가 데리고 시집살이를 시키다가 서울 살림에 내보내려 했는데 신랑이 안 된다고, 식도 서울서 간략하게 올리고 바로 새살림을 차리겠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효자도 아닌가?
나는 서울서 준비할 것도 좀 있고 해서 혼인날을 며칠 남겨놓고 어머니와 함께 상경했다.
신랑은 서른몇이란 나이보다 훨씬 찌들어 보였다. 혼인날을 앞둔 신랑의 싱그러운 흥분 같은 것이 조금도 엿뵈지 않았다.
그는 덤덤히 우리 모녀를 그가 사놓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 ㅡ 지금의 열한 평짜리 내 집 ― 으로 안내했다.
어머니는 여관을 잡을 걸 그랬다고 민망해했으나 신랑은 한푼이라도 아끼시오, 라고 간단히 대꾸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서 오랜 고학생활과 열한 평짜리 기와집이 총결산인 근 십 년의 봉급생활을 엿보는 것 같아 서글펐다. 그와 단둘이 된 적도 몇 번인가 있었으나 변변히 말을 주고받지는 못 했다. 둘 사이의 이런 침묵을 감미로운 침묵으로 착각하기에는 나는 좀더 예민했다.
나는 나의 침묵과 그의 침묵 사이에 깊은 간극을 느꼈다. 내 침묵은 많은 할말을 수줍음과 두려움 때문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때문이었으나, 그는 정말로 할말이 있을 리 없는 텅 빈 침묵으로 나를 대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에게서 느낀 이런 엄청난 간극을 조금도 어쩌지 못한 채 곧 식을 올리고 초야를 맞았다.
초야에는 그래도 여느 신부처럼, 마치 절묘한 피아니시모의 선율에 떠는 여리디여린 들꽃처럼 몰래 깊이 떨며 신랑을 기다렸다.
별안간 신랑의 강한 체취를 느꼈다. 어릴 적, 중풍으로 들어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의 사랑방 냄새, 홧김에 온종일 피워대던 잎담배의 독한 냄새로 찌든 사랑방 냄새와 너무도 닮은 신랑의 체취 ― 그러고는 곧 난폭하고도 짧은 입맞춤, 꼭 할아버지의 장죽을 장난삼아 물어봤을 때의 그 선뜩하고도 담뱃진 냄새가 독한 쇠붙이의 감촉 같은 입맞춤 ㅡ 그러곤 서둘러서 신랑은 나를 덮쳐버렸다.
내 애처로운 떪은 조금치의 보살핌이나 위무도 못 받은 채 초야의 신랑의 의무에 거칠게 짓겼다.
의무가 끝난 후 신랑은 오래오래 담배를 빨고 돌아눕더니 이내 코를 골았다.
그는 담배를 즐겼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분위기를 담배 냄새와 부옇고 매캐한 매연으로 삼고 있었다.
술도 꽤 하는 편이었으나 심한 주정뱅이던 시아버지가 만취한 채 눈 속에서 동사한 후 딱 끊고 말았다. 가끔 몸서리치면서 알코올의 무서움을 독백처럼 뇌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담배가 술보다 몸에는 더 해롭대요. 폐암도 담배 때문이라던데요.”
“쳇 또 아는 척하는군, 뭘 안다구. 음식치고 해롭지 않은 게 있는 줄 알아?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조금씩 죽어가는 거야. 그렇지만 알코올은 달라. 알코올은 여기를, 바로 여기를 미치게 한단 말야. 쉬 죽지도 않고.”
그는 왠지 자기 머리를 두드리지 않고 내 골을 주먹으로 사정 두지 않고 콩콩 두트리며 눈엔 독기 같은 게 서렸다. 필경 참담했던 자기의 소년 시절 때문에 주정뱅이던 아버지를 저주하고 있으리라 짐작하면서도 나는 으스스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남편과 함께 미친 상태를 두려워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을뿐더러 다분히 유혹적이기조차 했다.
이미 나는 가장 안 미친 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상태가 얼마나 재미 없나를 알고 있었으니까.
어느 틈에 길은 오르막길이고 나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휘청거렸다.
“참 더러워서 썅것들, 퉤퉤, 썅것들 뤠뤠.”
다시 무의미한 상소리를 웅얼거렸으나 취기도 격앙도 되살아나지 않았다. 실상 취기도 격앙조차도 없이는 나는 너무도 춥고 배 고팠다.
한 무더기의 군밤을 샀다. 드디어 서울 시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왔다. 별안간 탁 트인 시야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도대체 저 넓이란 내 열한 평의 몇 배쯤일까? 나는 내 열한 평이 무슨 됫박이나 되늠 것처럼 그걸로 내 허허한 시야를 되려다 지친다. 그러고는 그 속에서 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 그 숱한 타인들에게 까닭도 없이 맹렬한 적의를 느낀다.
낙엽이 쌓인 숲속에 더블로 된 바바리를 걸친 청년이 혼자 비스듬히 앉아 있다. 프로필에 엷은 우수가 깃들어 멋있다. 대접만한 꽃무늬 옷이 창피했지만 나는 그에게 이미 강하게 이끌리고 있었다. 좀전의 뭇 타인들에게 느낀 적의와는 아랑곳없이 한 타인에게 무조건 이끌린다.
“나, 옆에 좀 앉아도 괜찮겠수?”
“좋도록 하세요. 여기는 시민들의 공원이니까요.”
“군밤을 나누어 먹고 싶은데 생각 있어요?”
“별로…….”
“왜 이런 곳에 혼자 있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피곤해서요. 하늘이라도 좀 보며 혼자 쉬려고요.”
그는 혼자라는 말에 악센트를 준다. 내 아들들도 『완전× ×』, 『완벽 × ×』을 보다가 문득 하늘을 보고 싶은 적이 있었을까? 패각 속의 옹졸한 하늘 말고 이렇게 높고 무한히 트인 하늘을 처음으로 아들들이 궁금하다.
“군밤을 먹으며 같이 하늘을 봅시다. 자―”
나는 짓궂게 ‘같이’ 에 악센트를 주며 그의 손을 끌어다가 한 움큼의 군밤을 억지로 쥐여주었다.
그의 얼굴에 엷은 홍조가 스쳤다.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그의 골격은 단단하고, 오래 그렇게 있고 싶을 만큼 그곳은 나에게 편했다.
느닷없이 이 청년의 입술도 할아버지 장죽의 놋쇠 같은 맛을 하고 있을까가 알고 싶다. 이 청년은 여자를, 가녀린 소너를 어떤 방법으로 안을까가 알고 싶다. 사춘기 소녀처럼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온갖 은밀한 일들이 알고 싶다.
이런 ‘알고 싶다’ 는 욕망이 술이 깰 임시의 갈증처럼 다급해서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다. 나는 마침내 청년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려 든다. 청년이 황급히 물러앉으며 내 상반신을 바로 잡아준다.
“학생, 학생은 귤냄새를 풍기고 있군.”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
“아주머니, 아주머닌 술냄새를 풍기고 있군요.”
“그래? 흐흐흐…….”
나는 오래 흐느낄 듯이 웃는다.
그는 좀더 멀리 옆으로 비켜 앉으며 제법 엄하게
“취하셨나봐요. 댁이 어디죠? 바래다드리죠.”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으니 염려 말고 도서관으로 가봐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학생은 참 친절하군. 고마워요.”
그는 잠깐 더 머뭇거린다.
“가보래두.”
나는 제법 엄해진다. 서로 엄해짐으로써 그와 나는 다시 타인이 된다.
그가 간 후에 집이 여기서 어디메쯤인가를 생각하지만 좀 어렵다.
점점 더 춥다. 대접만한 꽃무늬의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가을 숲속에서 현란하지만 비정하다. 이 강인한 광물질은 사람의 옷이면서도 사람의 체온과는 무관하다. 나는 춥다.
인제 내 내부의 땔감이 완전히 회진(仄塵)되었음을 나는 안다. 다시는 그 천진한 즐거움도 뜨거운 격앙도 없다. 다 가버린 것이다.
열한 평의 틀에 부어진 채 싸늘하게 굳어버린 쇠붙이인 나를, 나는 똑똑히 자각한다.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굳어버린 것이다.
소주 한 병쯤이 굳어버린 쇠붙이를 다시 쇳물로 ―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한 이글대는 쇳물로 환원시킬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소주 한 병이 그렇게 뜨거운, 냉혹하도록 뜨거운 열원(熱源)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만 녹슬어가고 있을 뿐 이글이글 용해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의 도움도 없이 내 의지나 체력의 도움조차도 없이 그냥,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열한 평의 틀을 향해 곧바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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