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징크스처럼 머리가 또 뻣뻣해지는군요.
아줌마회원의 요청도 있고, 그렇고 그런 밥상에 식상한 아자씨들도 있을 듯 하니 오랜만에 요리강좌 하나 할까요.
요리의 기본적인 접근방식부터 잠깐 얘기하고 강좌에 들어가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어디어디 식당엘 가서 먹으면 같은 된장찌개라도 기×차게 맛있는데 우리집은 왜 맛이 이 모양이야? 된장이 맛이 없어서 그런가?"
그런가하면 또 어떤 집 아자씨는 "난 식당밥 거저 줘도 못먹겠어. 아무 것도 안넣고 끓여도 우리집 된장찌개가 최고야." 요런 말을 하죠. 물론, 후자에는 크샨티페 버금가는 마님에 대한 '수구리근성'이 매우 짙게 깔려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걸 보면 요리는 하는 사람이 먹는 사람의 식성을 얼마나 잘 간파하고 플레이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열두살 때까지 엄마가 밥을 떠먹여주며 키운 마마보이한테는 아마도 계란부침이나 햄구이같은게 어울릴 겁니다. 이런 사람한테 속이 뒤집어지도록 얼큰한 매운탕 따위는 빛좋은 개살구겠지요.
극단적인 예로 우리 옆 사무실에 외국인 사원 하나가 미국서 와있는데 이 친구를 보면 평소엔 사내식당밥을 곧잘 먹다가도(잘 먹는 척 하는 건지 모르지만),그러면서 김치의 독특한 향이 어쩌구저쩌구 치사를 늘어놓으면서도, 틈만 나면 맥도날드가서 햄버거 사서 먹습니다. 냐금냐금.
이게 식성이란 겁니다. 입맛 바꾸기란게 담배끊기 보다 8.5배 쯤, 노름꾼이 화투장 놓기보다 13.2배 쯤, 인간성 더러븐 넘이 자선사업가 되기보다 15.4배 쯤 어렵습니다. 만일 신랑이 시골서 뿔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자란 경우라면, 우리 아줌마덜,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이럴 땐 더 볼 것 없이 토속적인 메뉴와 양념으로 승부를 걸 필요가 있습니다. 청국장이라든지, 열무, 깻잎, 더덕구이...... 뭐 이런 종류 말입니다.
훌륭한 요리는 입을 제대로 만나야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잖으면 '개발(狗足)의 편자'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사설이 길었군요.
자, 오늘의 요리는 '정통 골뱅이무침'입니다. 이건 골뱅이무침의 본산이랄 수 있는 서울 충무로의 동아골뱅이 주방장 할매한테 배운 겁니다. (이 집은 98년 조선일보가 선정한 '골뱅이무침 잘하는 집 - 베스트 5' 중에서 첫손가락에 꼽혔음) 잘만 해놓으면 맥주안주로 이만한 거 없습니다.
우선 골뱅이통조림 한깡통이 필요한데, 주방장 할매의 주장에 따르면 반드시 빨간상표의 '동표 골뱅이'를 써야 맛이 난답니다. 깡통 표준형 하나에 3천 몇백원 쯤 할 겁니다.
이놈을 상당히 큰 그릇(생각보다 꽤 커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료가 상당량 들어가니까 - 뭣하면 적당한 세수대야를 쓰던지)에 쏟아붓고, 맨 먼저 대파를 채썰어 넣으세요. 요즘은 정육점 같은데서 채썬 것을 파는 수도 있습니다. 손재주 없으면 사서 넣어도 무방합니다.
채썬 것 기준으로 크게 두 움큼을 넣으세요. 대파 두뿌리 반 정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마늘을 넣는데 아끼지 말고 팡팡 찧어 넣으세요. 좀 지나치다 싶어 혀끝이 아릴 정도가 되야 맛이 납니다. 열톨 쯤 찧으면 될려나.........
여기다 포(脯)를 넣는데, 황태포를 으뜸으로 치고, 없으면 북어포, 그것도 아니면 쥐포를 찢어 넣으세요. 쥐포인 경우, 불에 약간 구워 넣어야 합니다. 양은? 손가락 두마디로 집어서 집히는 만큼. 마른오징어 찧은 것? 이건 안됩니다.
다음으로 미원을 좀 치고, 곱게 빻은 고춧가루는 한숟갈 반. 식초 쭈루룩, 간은 따로 안해도 됩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 외에 쓸데없이 후추가루를 넣거나 설탕을 넣거나 했다간 책임 못집니다. 그리곤 냅다 버무리세요. 젓가락보단 손이 낫습니다. 일회용 비닐장갑? 웬만하면 벗으세요. 비빌 때는 땀이 약간 밴, 담배냄새가 약간 스며있는 듯한 순수한 손이 좋습니다.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 시원하게 만드세요. 이정도 양이면 세병은 무리없이 비울 겁니다. 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또 해 드십시오.
다음에 기회있으면 안동찜닭, 대구의 별미-고디탕에 대해서도 한번 하죠. 안동찜닭은 전번에 한번 먹어보고 시도해 봤는데 실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