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시: 2012.1. 31. (火). 10:00- 15:30
0, 장소: 화악산 (경기 가평군 북면, 강원 화천군 사내면, 춘천시 사북면,)
0, 코스: 실운현 - 도계능선 - 화악산 - 석룡산 - 38교
참 오래간만에 화악산에 가보았습니다
2011년 가을 단풍들때 산아래 이기자부대에 근무하는 막내 면회갔다가
승용차를타고 중턱까지 가보았으니 햇수로 11년 되었습니다
정상에있는 미사일기지옆은 70년 여름에가보고 오늘 가보았습니다
화악산 중턱까지 버스를타고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오는데 옛날 생각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되고 격세지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화악산아래 수밀리에서 17개월동안 참 많은 추억이 어린곳 이었습니다
무더운여름 열번도넘는 해안으로 침투했던 무장공비 월북차단 목진지 매복작전과
RCT와 BCT 혹한기 훈련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산중턱에서 눈내리는 사창리 (화천군 사내면) 쪽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새벽에 비상이 걸리고 멀건 된장국에 보리밥 한그릇을먹고 배낭을메고
산속 험한길과 비포장 작전도로를 따라서 해질무렵에야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1개의 보병대대가 중대별 소대별로 이곳저곳에서 후레쉬불에 텐트를치던
2차대전때의 영화같던 그기막힌 장관이 떠올랐습니다
식수물을 떠와라
화장실부터 만들어라
통로길을 만들어라
야간표식을해라
중대장님 텐트가 어디요 (전화선을 연결하러온 대대통신병)
숙영준비를마친 중대부터 대대 취사장에가서 밥을타다 먹었습니다
검으틱틱한 보리밥과 절반쯤식은 된장국이 왜그렇게 맛있었던지 모릅니다
이곳에서 한달동안 망치로 밤알크기로 돌을두들겨 깼습니다
전투준비를위한 진지공사에쓸 (방어용 벙커신축) 골재를 만들었습니다
날마다 공병대 덤프트럭이 우리가만든 골재를 실어갔습니다
7월달 인데도 밤이되면 추워서 모포를 두장씩덮고 잤습니다
화악산중턱
이곳은 가평쪽에서 올라온 산중턱 퍽높은곳 입니다
앞쪽은 강원도 화천군이고 뒷쪽은 경기도 가평군입니다
일기예보에 퍽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더니 10:00시가 조금 넘었는데
이쪽 저쪽이 어두워지면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이터널 근처에는 그때부터 붕괴위험이 있다는 옛날터널이 지금도 있습니다
70년 7월 토요일 아침에는 언제나 가평쪽에서 미군 큰트럭에 7-8 명의
양공주 아가씨들을 싣고 올라왔습니다
아가씨들은 망치로 돌을깨는 우리군인 들에게 손을흔들며 지나갔습니다
그때는 군인들은 거의가 순박했기에 박수만 신나게 치면서 환호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미군 미사일 부내까지는 멀어서 잘안보이지만 아가씨들이 도착하면서 부터는
주보 (한국군 으로는 PX) 에서는 트럼벳 소리와함께 경쾌한 음악소리가 진동했습니다
미군은 그때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었던것 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저것들이 전쟁나면 전투를 어떻게 할것인가 흉을보며 의아해 했는데
월남에 가서보니 선진국의 각종 항공기를 이용하는 새로운전술과 각종 신형장비와
건쉽헬기 그리고 팬텀기와 B-52 폭격기의 무서운위력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풍부하고 빈틈없는 보급지원을 보면서 세계1등 국가가 미국임을 실감했습니다
포탄이나 실탄이 부족할것 같다면 폭우가 쏟아지든 한밤중이든 대대에 한대씩 배당된
헬기가 보급품을싣고 날아왔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1등 국민이고 최강의 선진국 군인들 이었습니다
화악산 중봉
화악산에서 한달간 예정으로 골재작업을 한다더니 무장공비출현과
군사령관님의 특별지시로 작업이 한달간 연장 되었습니다
틈이나서 머루딴다고 전령과 무전병을 데리고 셋이서 저곳에 갔다가
머루도 못따고 땀으로 멱을감고 고생한일이 있었던곳 입니다
오다가 중대장님 (홍용운님 경기고 출신) 께들켜서 혼나는 줄알았으나
산꼭대기에 무슨 머루가 있냐며 자기 전령이따온 머루를 항고뚜겅에
가득담아 주시며 웃었습니다
그 홍용운 중대장님은
그해겨울 무지하게 추운날 연대장님의 선착순집합 비상에 양말을
못신고 집합했다가 발바닥에 동상걸려 검은피가 뭉친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중대장님께서는 싸인펜 알멩이를 빼내고 알콜로 씯더니 내발바닥을
면도칼로 째고 입으로 검은피를 빨아내며 입을행구곤 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중대장님은
"이런 강추위에 한시간씩 연병장에 쫄병들을 세워놓고 잔소리 후렴하는
쓰불놈의 연대장은 제대시켜 버려야혀 안그런가"
하였습니다
화악산 중봉
멀리서 찍은사진 입니다
철조망 옆에가서 카메라를 꺼내니 날씨가 너무추워서 카메라가 작동이 안되었습니다
70년여름 산중턱에서 작업을할때 각소대별로 저곳을 한번씩 가보았습니다
우리소대도 선임하사팀과 두조로 나누어서 저곳을 한바퀴 돌아 보았습니다
그때는 미군부대였으나 지금은 우리공군의 방공포병과 미사일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저곳은 42년만에 가보고 철조망만 만져보고 돌아 왔습니다
눈길
초겨울부터온 눈이 지대가 높아서 녹지안아서 눈이 퍽많았습니다
년초에 다녀온 지리산이나 덕유산보다 눈이 많아서 참으로 좋았습니다
쉬밀고개 이정표
중봉아래 바윗길 험로에서 아이젠 한짝을 잃어린나는 이곳에 올때까지
열번도넘게 넘어지고 눈길에 딩굴고 미끄러졌습니다
아이젠 한짝이 그렇게 큰힘을 발휘한다는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6,25 때 지리산에서 빨치산들은 맨발에 고무신만신고 새끼줄만 감고도
날라다니듯 다녔다는데 어떻게들 잘다녔는지 궁금했습니다
일행 31명중 여자들도낀 절반은 석룡산을 넘어서 왔습니다
저 석룡산넘어 도마치고개 에서는 무장공비들 때문에 다합하면 근한달은
매복작전 하면서 살았던것 같습니다
그곳은 큰머루도 많고 마사토지역의 가리칡은 기막히게 맛이 있었습니다
중봉능선
가평 조무락골로 내려오다본 중봉능선 입니다
여름장마에 소낙비가 몰려다니듯 하루종일 저렇게
검은 구름과함께 눈이 내렸습니다
날씨가 너무추워서 점심을 먹을수가 없었습니다
눈길을 내려오면서 빵 육포 사과를 먹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복호동 폭포
눈오고 추워서 사진만 한장찍고 지나왔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핫팩과 카메라를 함께 넣어놨으나
두장은 찍을수가 없었습니다
고라니
삵이나 어떤 산짐슴이 뿔이없는 고라니 암놈을 잡아먹고
머리와 가죽만 남아 있었습니다
땅이 얼어서 묻어줄수도 없어서 그냥 지나올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무락골 입구
석룡산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봄이오면 저길로 사창리 - 다목리 - 김화 - 철원 - 화천까지
텐트와 코펠도챙겨 2박3일정도 다녀오고 싶습니다
*** 에필로그
저는 1970년 - 1971년 화악산 아래에있는 쌍용연대 3중대에서 소대장을 하였습니다
지난 2001년 - 2002년에는 저의 막내가 쌍용연대 11중대에서 소대장을 하였습니다
막내와저는 31년 터울이고 31년후에 제가 땀흘린 곳에서 막내도 땀을 흘린것 이지요
그래서인지 화악산이 좋고 화악산아래 사창리가 내마음의고향 같기도 하답니다
저는 동해안에 다녀올때는 가끔씩 화천 사창리를 거쳐서 카라멜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첫댓글 이 추위에 반팔 이시네요. 대단 하십니다 .
즐겁고 안전한 산행 오래오래 이어가길 바랍니다.
좋은만남님 항상 고맙습니다
어릴때먹은 인삼덕에 열이많아서 영하 10도나 20도
정도에서는 반팔이 차림이 편해서 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서원님 고맙습니다.
저희 산악회에서 몇년전에 비를 맞으며 힘들게 다녀왔던 산이네요
전 그때 어느코스로해서 갔다 왔는지 잘모르겠는데요
몇십년전에 근무했던 기억들을 어쩜 그렇게 자세하게 쓰신데요
건강하신 모습도 부럽고 기억력에도 놀래고 아무튼 존경스럽습니다
총무님 반갑습니다
40년이 넘었지만 1년반동안 군사지도들고 수십번씩 다녀본곳 이기에
지금도 어디든지 찾아다닐수가 있을것 같답니다
화악산은 산야초와 칡 잔대등 먹을것이 아주많은산 이랍니다
무장공비 은거차단을위해 화전민들을 전부 강제로 소개시켰지만
그들이살던 집터 축대쌓은 논과밭이 많은곳 이기도 하지요
경기도에서 가장높은명산 이라고들 한답니다.
자연스럽게 멋진곳이군요..
그리고 건강한 모습이 멋지십니다~~~
싸리재님 격려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