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이근형
수십 년이 흘렀어도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가난하고 소심한 시골의 무명음악가 슈베르트. 그의 음악에 매료되어 깊은 사랑을 나누던 연인 앞에 한 검투사 장교가 나타났다. 곧 장교에게 마음을 뺏기고 그의 품에 안겨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이슬 맺힌 눈빛으로 바라보던 슈베르트. 결혼식이 열렸던 성당 안에서 허공을 응시한 채 어정거리며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렇게 독백한다,
“나의 음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나의 사랑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라는 영화는 끝났고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나에게 문학은 중학교 2학년 특별활동 작문시간에 찾아왔다. 선생님이 자유로운 글쓰기 시간으로 20분을 주셨다. 나는 가장 먼저 썼지만 작은 슈베르트였다. 방금 원고지에 쓴 글을 선생님이 나와서 읽으라고 하셨지만, 가슴만 콩닥거리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 못 썼다고 쭈밋거렸다. 반 아이들은 선생님께 내가 다 썼노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인내의 한계에 이르러 노기가 발동한 선생님은 내 책상으로 오셔서 내가 쓴 원고지를 압수하셨다. 급기야 나는 교탁 옆으로 불려 나갔고 ‘찰싹’ 선생님이 날리신 따귀 소리에 교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거 읽어!!”
“...선생님, 못 읽겠습니다.”
선생님은 울먹이며 바들거리는 나를 대신하여 반장을 불러내어 대독시키셨다. 교실은 내 글을 읽는 반장의 목소리와 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잔잔히 퍼지고 있었다. 반장의 대독이 끝났다.
“아주 최고야. 자알 썼어. 아, 이렇게 잘 쓰는 녀석이 왜 그렇게 뭉그적거렸어!”
좀전의 노기 띤 음성에서 흡족한 미소로 바뀐 선생님의 폭풍 칭찬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의 문학은 첫 키스처럼 다가왔다.
중3 때도 윙크를 보내왔다. 그날은 등록금을 못 낸 아이들을 호출하는 날이 아닌데도 서무과로 오라는 호출이 있었다. 이상하다고 느꼈다. 나는 등록금 미납으로 서무과에 불려가는 단골 학생이었으니까.
“너, 소년조선일보에 작품 보냈니? 거기서 상장하고 상품이 왔다.”
서무과 직원 누나의 깔끔한 목소리로 건네주는 서류봉투. 신문사에 보낸 나의 시가 가작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바뀌어 상장과 만년필로 온 것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하고 상점 점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나와 나이가 같은 사장님의 고등학생 딸이 말했다.
“‘학원’ 잡지에 시 보냈어요? 이번 달 ‘독학생’으로 입선했네요?”
“아아, 네에..”
그렇게 문학이라는 이름의 사랑은 이어지는 듯했고 계속 머물러줄 줄 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내 앞에 슈베르트의 애인에게 나타난 장교처럼 하늘의 부르심, 소명(召命)이라는 무사(武士)가 나타났다. 그는 멋지고 당당했으며 나를 압도하는 힘이 컸다. 저항할 힘도 없지만 그럴 마음도 전혀 없었다. 동시에 문학과는 멀어졌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게 부르심을 따라 열심히 살았다. 다만 슈베르트의 연인 같은 문학에로의 그리움이 영화 속 음악처럼 시나브로 나타났다, 멀어지고 다시 그러하곤 했다. 강 같은 세월이 흘러 정해진 소임을 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소명이 끝난 게 아니라 방향이 바뀐 것이다. 중학교 때 찾아온 사랑을 다시 만나면 된다.
지난해 가을볕이 좋은 어느 날 대학교 평생 교육원 수필 창작반에 등록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노라면 내 설교가 저만큼의 영향력이 있었을까 싶어 슬몃 부끄럽다. 강의 시간마다 나의 글을 돌아보게 되고, 수정하고 깨닫는가 하면 나를 은근슬쩍 멋스럽게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음악이 아니면서 리듬이 있고 미술도 아니면서 보여주고 허구를 사실로 믿게 하는 마성(魔性)이 있다. 그의 내면과 외모의 매력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수필가 목성균 선생님은 생명의 위경(危境) 가운데에서도 떨리는 손끝으로 수필을 써서 따님에게 주며 정리하라는 당부를 하신 후 다음날 별세하셨다니 그분의 문학에로의 열정을 어찌 섣부른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랴. 다만 그 열기의 백 분의 일이라도 흉내 낼 수 있다면...
슈베르트는 서른하나의 나이에 아프기만 했던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독백처럼 그의 음악은 끝나지 않은 사랑이 되어 지금도 우리의 곁을 흐르고 있다. 지금의 내 나이는 그가 향유(享有)했던 시간의 배가 넘었다. 좀 늦긴 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이른 때, 오늘 밤에는 가슴 속에 흐르는 그의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기도를 드린다.
“나의 소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문학을 향한 사랑도 끝나지 않게 하소서.”
첫댓글 아베마리아를 듣고 싶어지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선생님
무심수필교실에서, 무심수필문학에서 자주 보고 싶습니다.
제 글을 통해서라도 소통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문학소년의 재능을 주님께서 활용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시는 선생님, 문학을 향한 사랑으로 소명을 이어가시리라 믿습니다.
슈베르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