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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서초구에 있는 반포 종합 운동장 테니스장을 방문했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화사한 꽃이 소복하게 담긴 꽃병이었다. 특별한 행사장에나 볼 수 있는 생화를 평일 테니스장에서 만난 건 의외였다.
“이형순 서초구 테니스 협회장님께서 매 주 월요일마다 직접 생화를 사다 꽃꽂이를 해 놓는답니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들기 때문에 예쁜 꽃을 보면서 마음까지 환해지라는 뜻으로 봉사하고 계셔요.”
20년 이상 꽃꽂이를 해 재능기부의 일환인 프로보노 활동을 하고 있는 이형순 협회장님(66세)을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저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테니스로 건강을 다지면서 각계각층의 남녀노소 다양한 분들 만난 것이 제 인생의 최대 축복이자 행복이고 성공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에 소질이 있어 윈드서핑, 골프, 볼링, 수영도 오래 했으나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테니스를 중단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한 것이에요. 테니스 덕분에 제 중년의 삶이 이렇게 풍부하고 행복하잖아요.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꼭 테니스를 하라고 권합니다. 동네에서 놀면서 다른 종목에 비해 경제적인 테니스로 몸을 만들고 인적 네트워크도 탄탄해 지니 테니스의 좋은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정도 입니다.”
이 회장은 사이다 같은 목소리로 본인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신 있게 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저는 남편하고 결혼한 게 좋은 게 아니라 딸 아들을 낳아 열정적으로 잘 키웠다는 사실이 굉장히 좋습니다. 시부모 대소변도 받아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두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장을 갖고, 결혼해서 손주를 넷이나 안겨 주었으니 가정적으로 성공한 것이 아닌가요? 역시 자식은 낳아 길러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우여곡절을 겪는 인생사에 테니스는 꼭 필요한 운동이었어요. 그래서 외국에 나가 있는 딸네만 빼고 아들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테니스를 즐기며 삽니다. 힘든 시절 테니스로 잘 견뎠고 앞으로는 즐거운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이 회장은 4년 전 서초구 테니스 협회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다시 연임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서초구 테니스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법인을 설립해 협회에서 서초구 반포 종합 운동장을 3년간 위탁 경영하게 되었어요. 2019년 4월 초에 공개 입찰하는 준비를 정낙훈 사무국장과 함께 해서 성공. 2019년 9월 1일부터 이 코트를 위탁운영 하고 있어요. 주인의식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해 휴일도 없이 매일 코트로 출근을 합니다. 법인에 근무하는 직원만 12명. 더 나은 복지시설을 위해 고민을 하는데 새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들이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즐겁고 재미가 있어요. 왜냐면 테니스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나이 들어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코로나 중에도 변화는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2년 전 기자가 취재를 갔을 때만 해도 12면 코트 중 네 면이 클레이였는데 놀랍게도 모두 인조 잔디로 바뀌고 라커룸이나 지도자들의 쉼터도 최신식으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
“공사하는 2개월 동안 거의 코트에서 보내면서 심혈을 기울였어요. 새로 만든 모든 라커에 공기 청정기와 온 냉이 다 되는 에어컨을 설치하고 일곱 명의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쉼터에는 휴식용 간이침대와 가전제품까지 일체 구비해 놓았지요. 지도자들은 존경받아야 하고 그만한 처우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요구하기 전에 먼저 시설을 해 놓으려고 합니다.”
코로나로 협회에서 주관하던 행사들도 많이 바뀌었을 텐데 서초구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협회장배나 구청장배는 기본적인 것이고 한불 친선교류전을 몇 년 해 왔어요. 관내 서래마을에 프랑스 사람들이 많아 이 코트를 자주 이용하죠. 그래서 협회에서 그분들을 초청해 상당히 크게 행사를 열어 호응이 좋았는데 현재는 코로나로 못하고 있어요. 1인 1스포츠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봄에 무료 레슨을 했고 현재 화요일과 금요일에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시니어들을 위한 무료 강습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유소년 대회는 했는데 코로나로 5월5일에 테린이들을 위한 대회를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앞으로도 테니스 보급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어요.”
서초구는 신중초 서초중 서울고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자라고 있다. 협회에서는 이 선수들에 대해 어떤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인가
“사실 요즘 Us 오픈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레일라 페르난데스나 에마 라두카누등 10대 선수들을 보면 탐이 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선수들이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참, 고민을 하게 되어요. 골프 채널은 그렇게 많은데 테니스 채널 하나가 없을 정도니 얼마나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빈약한지 알 만하죠. 학생들이 연습하는 코트조차도 국제 규격이 아니니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문체부나 대한테니스 협회, 서울시등 협업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올해부터는 이 엘리트 선수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후원을 하고 점진적으로 국회의원이나 구의원등 정치인들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된 코트를 만들어 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강남 한 복판 금싸라기 땅에 있는 반포 종합 운동장 사용료는 한 면당 이용 금액이 평일 시간당 7천원, 주말은 9천원으로 매우 싸다. 최근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이 있다는데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은퇴 후에 오시는 분들도 많이 오시지만 젊은 세대들이 굉장히 많이 유입이 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에요. 문의 하시는 분들의 연령분포나 실력에 따라 적절한 클럽에 소개해 드리고 있는데 이 코트에 100개가 넘는 클럽이 활동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이동 인구가 많아 모든 문을 통제하고 한 곳으로만 통하도록 만들었어요. 보건소에서 원하는 모든 서류는 반드시 구비하고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전 직원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는데 올해만 다섯 번을 받았네요.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도록 홍보하고 있어요.”
테니스는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최고의 명약이라고 표현하는 이 회장은 결혼 후 남편의 권유로 라켓을 잡기 시작했다.
“30년 전 레슨비가 월 3만 5천원이었어요. 남편이 틈만 나면 테니스를 하러 나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레슨을 등록해 주면서 배워보라고 하더군요. 그 후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벽치기 하면서 땀을 빼고 집으로 돌아 올 때면 기분이 리셋되어 흥얼거리며 식사 준비를 하게 되더라고요. 가족들 돌본다고 전국대회 출전할 틈이 없었는데 후배들이 파트너 해 달라고 요청하는 통에 얼결에 국화가 되었고 그 이후 집중적으로 레슨에 몰입해 국화부에서도 우승하게 되었어요. 테니스 인생을 뒤돌아보면 즐겁고 재미있었던 추억이 한 가득입니다.”
이 회장은 20년 전부터 불우한 이웃이나 장애우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며 봉사해 왔다. 어떤 계기로 그런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냥 나눔 자체가 좋아서라고 한다.
“신반포4차 자원 봉사단을 만들어 18세 이하 장애우들이 살고 있는 곳을 주기적으로 찾아가 물품도 전달했지만 꼭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왔어요. 장애우들의 자립을 위한 신성한 노동을 통해 나눔의 즐거움을 배우게 되었죠. 베풂이 생활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해 오면서 잔뼈가 굵어서 그런지 즐거워요. 보람도 있고 가끔은 구청의 추천도 받아서 봉사를 나가기도 했는데 상까지 주더군요.”
60후반에 접어든 이 회장은 나머지 인생을 더도 덜도 말고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온 가족이 별 탈 없이 건강하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코트에서 더 멋있게, 멋지게 놀면서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단다. 멋지게 나이든 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곳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어울려 운동하는 것을 보며 깨닫는 것이 많아요. 우리가 자라던 시절과는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나 자유분방한 점이 많은데 뒷방 늙은이처럼 MZ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도태되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늘 시대의 변화에 발을 맞추고 트랜드에 맞는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독서하고 메모 하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 하는 것이 바로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떼를 운운하며 틀에 박힌 사고로는 유연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봐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공부했고 지면으로 신문은 꼭 봅니다. 남편과 함께 서울대 자연 과학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과학기술 산업 융합 최고 전략과정도 이수했는데 배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서초구 테니스 협회는 잠원과 양재, 스포렉스, 스포타임등 서울시 25개 구 중에서 가장 많은 실내코트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12면의 실내코트와 60여 면의 실외코트에서 1,000여명의 동호인이 활동 하는 서초구의 테니스 환경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 회장의 면모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금 이 코트 부지가 유수지이기 때문에 화장실을 만들지 못했는데 알맞은 장소를 물색해구청에 안건을 상정해 놓은 상태입니다. 전체 방송시설도 준비 중이고 이 코트에 지붕을 씌우는 돔을 구상하고 있어요.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야 할 계획인데 반드시 이루어 질 것으로 봅니다."
스토리는 전달하면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 되지만, 실천하면 '스토리두잉'(Story Doing)이 된다는 말처럼 추진력 있는 이 회장의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들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던 이 회장은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대장기질이 있었단다. 또 지역에서도 주된 역할을 한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리더십이 길러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회장님처럼 진심으로 주변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거기에서 더 큰 기쁨을 얻는 것이야 말로 힘이 있고 전염성이 강한 리더십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프로노보-전문성을 살려 타인과 공익을 위해 무료로 봉사 활동을 하는 전문가를 일컫는 말
글 사진 송선순
80프로의 출석률을 자랑하는 서초 수요클럽
서초 수요 클럽은 20년 전 서초구에서 운동하던 여성 동호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현재 회원 43명. 30대 부터 79세까지 활동하고 있다. 처음 서초 보라아파트에서 창단되었고 그 이후 반포그린코트에서 운동하다 3년 전 반포 종합운동장으로 옮겼다.
매 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오전 10시 부터 오후 두시까지 코트 네 면에서 운동하는 회원들은 모임 날이면 30명 넘게 참석한다. 어느 클럽과 비교해도 참석율 최고라고 자랑할 만 하단다. 그만큼 회원들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실력을 조율한 경기 방식이 친목을 다지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기본 두 경기는 뽑기로 파트너를 정 하고 나머지 경기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회원들이 골고루 어울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장 두 번, 총무 두 번을 하며 서초수요클럽을 유지 발전시키는데 혼신의 힘을 쏟으며 봉사 해 온 이형순 서초구테니스 협회 회장은 “이 클럽은 고향 같다. 그간 고비도 있었지만 번창해 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며 “과거엔 여성들만 있었으나 현재는 은퇴하신 남성들도 회원으로 영입해 다채롭게 조화를 이뤄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병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박상철 회원을 만났다.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 후 이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열정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테니스로 얻은 긍정 에너지 덕분이다”며 “현재 저의 건강과 행복은 서초 수요클럽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며 테니스 예찬을 했다.
이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특별히 성격이 모나거나 결격 사유가 없고 게임하며 어울릴 정도의 실력이면 가입할 수 있다.
다섯 번의 무릎 수술과 한 번의 허리 수술을 하고도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해서 즐테하는 70대 후반의 최옥진님도 이곳 회원이다. 2년 전까지 경기도 여자연맹 회장을 역임한 최 고문은 “창단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서초수요의 역사를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 되지 않는다”며 “위계질서가 있고 극진히 선배 챙겨주는 아우들 덕분에 매 주 즐겁게 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달 회비 3만원. 코로나 이전에는 모임 때 마다 회원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식사를 찬조했다. 가끔은 버스를 임대해 여행도 떠났으나 지금은 아득한 추억이 되었고 모여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한다.
이 클럽을 리드하고 있는 김영신 회장은 국화부에서 5회 이상 우승한 슈퍼급이다. 70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되어 지금도 포핸드 파워가 대단하다.
김 회장은 “1년에 한 번씩 회장이 바뀌는데 그동안 회장을 역임한 고문단들이 협회 임원으로도 활동하며 협조를 해 주고 있어 매우 든든하다” 며 “클럽 회원들의 실력을 자랑하기 보다는 인성이 좋고 남녀 청장년층을 모두 다 아우르는 서초구 최고의 클럽이다”고 전했다. 또 “이 반포코트를 이용하는 모든 동호인들은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해야 하고 만약 이 규칙을 어길 때에는 어디선가 경고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며 “방역을 철자히 해서 회원들이 모여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 서초구 테니스 협회의 노력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네 코트 가득 메운 회원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름을 걱정할 것이 아니고 몸의 근육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매력적 삶이라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서로를 배려하며 균형과 조화를 이뤄나가는 서초수요클럽. 나태주 시의 제목처럼 참 좋다.
글 사진 송선순